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62화 (261/407)

Majo Heart Center (1)

이른 새벽.

최기석은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최근에 수련한 샴쌍둥이 모형 수술 동영상을 살피는 중이다.

그동안 펼친 모형 수술의 횟수는 총 10회.

그중 8회는 파트별로 시간을 나눠서, 나머지 두 번은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스무 시간짜리 풀타임 영상이다.

최기석은 필요한 부분을 꼼꼼하게 살피고 덜 중요한 부분은 빠르게 감았다.

동영상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는 중이다.

"후아…… 장난 아니네."

얼굴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저 수술 영상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직접 수술 보조에 나서면, 모형이 아닌 진짜 쌍둥이들 수술을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 싶었다.

최기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숙사를 떠났다.

출근하기에 이른 시간이지만 일과 전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호흡기 내과.

복도 끝 1인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드르르륵.

안으로 들어가자 풀먼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미스터 최. 일찍 일어났군요."

"좋은 아침입니다. 교수님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하루하루가 아까워서 길게 잠을 못 자겠어요."

풀먼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보내 준 에세이 완성본 잘 봤어요. 오타도 거의 없고 수정할 곳도 거의 없더군요. 바로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매튜 과장 일에, 샴쌍둥이 수술까지 겹쳤는데 내 일을 이렇게 빨리 끝내 주다니……."

"아닙니다. 교수님 에세이를 타이핑하면서 저도 많이 배웠는걸요.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말입니다."

"하하하. 미스터 최는 말을 참 예쁘게 하는군요."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 따뜻함이 묻어났다.

"혹시 책 제목은 정하셨나요?"

"바람의 숨결이라고 지을까 하는데 미스터 최 생각은 어때요?"

"바람의 숨결이라…… 뭔가 느낌이 있네요. 저는 좋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풀먼이 웃음을 터뜨렸다.

"고맙다는 말은 자주 들어서 지겨울 것 같고.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봤어요."

"특별한 선물이라면……."

"출근 전에 이메일 안 봤죠?"

"아. 네."

"메일 한 번 확인해 봐요. 언젠가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럼 선물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최기석은 풀먼과 대화를 마치고 일반외과 병동을 찾았다. 그리고 이동 중 휴대폰으로 메일을 살폈다.

메일을 확인한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풀먼이 보낸 것은 지금까지 발표된 적 없는 최신 척추 수술 자료다. 이 자료대로라면 기존 척추 수술보다 더 빠르고, 더 효과적인 척추 수술이 가능하리라.

'브랜치에서 본원으로 오신 이유가 이것 때문일 텐데.'

최기석은 자료를 닫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한 풀먼의 아픔이 다시금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도착한 일반외과 병동.

정진명과 정설화, 두 부녀가 나란히 잠에 빠져 있었다.

스미스의 완전무결한 췌장 수술과 꿈의 암 치료라 불리는 중입자 치료.

이 두 가지로 정진명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스미스가 조만간 퇴원 계획을 잡겠다고 했을까.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경과 관찰만 잘하면 문제없겠어.'

최기석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신경외과 병동을 찾았다.

야간 당직에게 인수인계받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오전 회의시간이 다가왔다.

회의실로 들어가자 이제는 신경외과 헤드 치프가 된 루카스가 회의실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루카스를 보고 있자니 괜히 뿌듯했다.

성공 중심의 성향을 가진 매튜가 아니라 환자 중심 성향을 가진 루카스가 헤드 치프가 됐다는 사실.

이것은 상당히 기념비적인 일이다.

아무리 미국일지라도 실력이 비슷하면 성공 중심의 써전이 승급하기 마련이 아닌가.

그런데 기적적으로 그 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지금 가진 정치력을 한국에서도 가졌다면 송명진이 의진대 과장이 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잠시 후 오전 회의가 무난히 끝났다.

특별한 점이라면 매튜를 대신할 뇌종양외과 과장, 루카스를 대신할 뇌혈관외과 과장의 소개가 있었다는 정도랄까.

두 과장의 성향은 모두 환자 중심.

앞으로 신경외과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일은 없을 듯했다.

"트윈스 팀은 소회의실로."

루카스의 말에 회진을 마친 한 무리의 인원들이 우르르 이동했다.

최기석은 동료들을 따라서 소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트윈스란 샴쌍둥이 수술 팀의 이름이다.

예전에 비해 인원이 늘어난 것은 실전 연습 결과 스태프들이 스무 시간 수술을 버티지 못했던 탓이다. 그래서 오늘 수술은 스태프들이 릴레이 형식으로 들어가기로 결정됐다.

[소속: 팀 Twins]

[팀 레벨: 3/5]

[단결력: 3/5]

[처치 레벨: 4/5]

최기석은 팀 스탯을 확인한 후 상태창을 껐다.

조금 더 수치가 높았으면 좋았겠지만 지금 아쉬워한들 의미는 없었다.

"지금부터 샴쌍둥이 분리수술의 최종 브리핑을 시작한다."

루카스의 외침이 회의실에 퍼졌다.

* * *

그날 오전.

수술용 참관실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중에는 메이죠 스태프는 물론이요, 미국 각지의 신경외과와 심지어 외국에 있는 의사들까지 자리했다.

잠시 후 펼쳐질 샴쌍둥이 수술을 보기 위해서.

지이이잉.

참관실 문이 열리고 한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크리스토퍼 부병원장, 그의 곁에는 파커가 비서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여기가 참관실인지 극장인지 모르겠군."

크리스토퍼가 상석에 앉아서 참관실에 있는 인원들을 훑었다.

"머리 양 끝이 붙은 케이스는 세계적으로 드무니 그럴 수밖에요. 게다가 얼마 전 프리드 사건……."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

"죄송합니다."

파커가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루카스가 수술을 잘해 줘야 할 텐데 말이야."

크리스토퍼가 모니터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 수술이 중요한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수많은 이유 중에서 그를 가장 신경 쓰이게 만드는 요소.

그것은 바로 수술의 라이브 송출이다.

샴쌍둥이 수술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금액은 현재 각지에 있는 후원자들을 통해 마련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수술을 라이브로 보고 싶다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매스컴에서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라이브 송출 여론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크리스토퍼마저 두 손을 들었고 말이다.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전 세계에서 물어뜯기겠군."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메이죠의 위상을 전 세계에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어."

"부병원장님의 말씀이 옳습니다만 루카스는 실력 있는 써전입니다. 부병원장님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할 겁니다."

"암, 그래야지. 본인도 신경외과 헤드 치프가 되자마자 수술에 실패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스태프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파커가 검지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 * *

같은 시각.

D 로젯 앞에 팀 트윈스의 스태프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모형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다들 기량은 최고수준에 이르렀어. 긴장만 하지 않으면 쌍둥이를 반드시 살릴 수 있다. 알았나?"

"네!"

"그럼 1팀부터 로젯으로 들어간다."

루카스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스크럽에 나섰다.

박. 박. 박. 박.

최기석은 솔로 팔을 문지르면서 수술 과정을 되새김질했다.

실수도 없고 실패도 없다.

무조건 아담과 브라이언을 살리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위이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고 수술의 절반을 책임지는 트윈스 1팀이 안으로 들어갔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울리는 사이 최기석은 쌍둥이의 팔찌를 확인하며 타임아웃(수술 전 환자를 확인하는 절차)에 나섰다.

"얘들한테 타임아웃은 뭐 하러 해?"

최기석을 지켜보고 있던 니콜라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본 절차야. 빼 먹으면 안 돼."

"바보 같은 소리를. 머리 양쪽이 붙은 케이스가 처음인데 어떻게 환자를 착각하지?"

니콜라이의 말에 최기석은 고갯짓으로 수술대에서 조금 떨어진 카메라를 가리켰다.

"우리 수술 인터넷으로 라이브 송출 중이야. 사소하더라도 책잡힐 일은 하면 안 돼."

"아…… 알았어."

최기석은 니콜라이와 대화를 끝낸 후 제2보조 자리에 섰다.

얼마 후 마취의가 전신마취에 나섰고 스태프들이 앞으로 진행될 수술에 대해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최기석은 대화에 끼지 않은 채 아담과 브라이언을 내려다보았다.

마취 중인 두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서로 머리가 붙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늘 밝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상태를 보기 위해 찾아가면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아담과 브라이언.

주치의인 그는 둘 중 누구도 포기할 수 없다.

이번 수술이 끝나면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살도록 만들 것이다.

"지금부터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시작한다."

루카스의 말에 최기석이 움직였다.

그는 쌍둥이의 머리를 소독하고 그 위로 방포를 덮었다.

이에 루카스가 소독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로 두피를 절개하기 시작했다.

모형 수술이 아닌 실전 수술.

게다가 참관실에는 각지에서 온 써전들이 있었고 인터넷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수술 장면이 공개되고 있었다.

부담감이 극심할 터인데도 루카스는 담담하게 절개를 이어갔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 때는 환자만 생각해. 환자를 반드시 살리겠다는 생각만 하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어.]

문득 최종 브리핑 전 루카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의 경우 얼어붙은 심장이 있어서 감정 컨트롤이 크게 필요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앙리."

"네."

루카스의 고갯짓에 앙리가 드릴을 손에 쥐었다.

드드드드드득.

드릴 소리가 요란하게 로젯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두개골을 드러내고 견인기로 절개 부위의 시야를 넓혔다.

수술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바이탈 이상 없습니다. 호흡과 맥박 전부 정상 범위입니다."

"바이탈이 정상이라도 오 분마다 계속 보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루카스의 부탁에 마취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과정은 모형 연습 때와 동일하다. 우선 뇌막을 벗겨 내고, 제1운동 영역부터 떼어 낼 거야."

"네!"

"시작하지."

"메쩬(수술용 가위)."

루카스가 소독간호사에 받은 메쩬을 손에 쥐었다.

메쩬은 얇고 세밀한 조직을 둔성분리(예리하지 않고 둔하게 분리)하기에 좋았다.

루카스가 유착 있는 쌍둥이의 제1운동 영역을 박리하는 동안 최기석과 앙리는 포셉으로 뇌 조직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해 주었다.

계속되는 세밀한 박리 작업.

박리에 나선 루카스의 손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조금 과장해서 시간이 멈췄다고 할까.

아주 사소한 실수를 하더라도 쌍둥이들은 평생 마비나 장애를 안고 살 수 있었다.

그렇기에 루카스는 모형 집도 때보다 더 꼼꼼하게 박리에 나섰다.

시간이 흘러 제1운동 영역의 박리가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꼭 수술이 끝난 것 같군."

최기석의 말에 루카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시선이 문득 수술 시계에 닿았다.

"제1운동 영역 박리에 세 시간이라…… 연습 때보다 삼십 분이 늦었군."

"……."

"힘들겠지만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마. 지금부터는 붙어 있는 조직을 떼어 내는 박리가 아니라 분리다. 하나로 붙은 두 아이의 뇌를 나눠 줘야 해."

"명심하겠습니다."

"집중하겠습니다."

"계속 간다. 메스."

루카스가 메스를 손에 쥐고 심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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