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심의 일격 (5)
[닥터 최. 프리드 환자 응급이에요! 호흡하고 맥박이 계속 떨어져요!]
"바로 갑니다."
최기석은 발걸음을 돌려 외과 중환자실로 향했다.
이동 중 앙리를 만났기에 사정을 설명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손에서 땀이 나고 입술은 바짝 말랐다. 육감이 전하는 불길한 감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드르르륵.
중환자실로 들어가 프리드의 곁에 섰다.
환자 감시 장치가 불길한 전자음을 흘리고 있었다. 심전도는 불규칙하게 춤을 추었으며, 간호사의 콜대로 호흡과 맥박이 수직 낙하하고 있었다.
"닥터 최. 어떻게 하죠?"
먼저 와서 대기 중이던 간호사 아만다가 발을 동동 굴렀다.
"우선 에피네프린 원 앰플 IV(정맥주입)이요."
"알겠어요."
아만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최기석은 산소농도를 고농도로 전환하고,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퍽! 퍽! 퍽!
압박을 할 때마다 프리드의 몸이 들썩거렸다.
'젠장!'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진단명에 급성 신부전증과 심폐기능 정지가 떠올랐다.
어제 순환기내과의와 신장내과의로부터 처치를 받고 상태가 호전된 듯싶었건만, 결국 다시 악화되고 말았다.
"닥터 최. IV 인젝션 끝났어요."
"순환기내과하고, 신장내과 스태프 좀 불러주세요.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도파민 원 앰플 IV로 추가해 주시고요."
"네!"
최기석은 흉부 압박을 이어가며 환자 감시 장치를 살폈다.
처치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프리드의 상태는 여전히 불량했다.
'이대로 떠나면 안 됩니다.'
프리드를 내려다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책임 추궁을 벗어나려는 경찰과 이를 이용하는 매튜에게 보란 듯이 한 방 먹이기 위해서라도.
프리드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어떻게 된 겁니까?"
"CPR까지 필요해요?"
호출을 받고 온 순환기내과의와 신장내과의가 최기석의 곁에 섰다. 이에 아만다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알려 주었다.
"하아…… 하아…… 선생님.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최기석은 흉부압박의 다음 사이클을 기다리며 의사들을 응시했다.
"사실 신장내과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지금은 수술도 의미가 없고, 필요한 약물 처방도 다 했는데."
"순환기내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에크모로 치료가 안 된다면……."
두 의사가 최기석의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어떤 방법이라도 좋습니다. 일단 환자를 살려야 해요. 프리드가, 보호자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두 분 다 잘 아시잖아요."
"……."
"부탁드립니다."
최기석이 다시 흉부압박에 나섰다.
승압제를 분마다 투여하고, 계속 흉부압박 중이지만 프리드는 점점 죽어 가고 있었다.
심전도 그래프가 애처로울 정도로 미약한 곡선을 그려갔다.
"알겠습니다. 일단 투석 다시 해 보죠. 약물도 바꿔 볼게요."
"흉부외과에 연락해서 수술이 가능한지 물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신장내과의와 침상을 끌고 투석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투석이 진행되는 동안 흉부압박을 이어 갔다.
온몸이 땀에 절고, 숨이 턱 끝까지 찼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프리드를 살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이제 교대해요."
"괜찮습니다. 제가 계속할 게요."
신장내과의와 대화를 나누는데 콜폰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니 순환기내과의의 콜이다.
"방금 흉부외과에 협진 요청했어요. 그쪽에서 차트를 봤는데 수술은 불가능하대요. 수술을 해야 하는 명확한 병변이 없어서 아무 의미가 없다고……."
순환기내과의의 말에 최기석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바다.
수술이 가능하려면 심장혈관이 막혔다거나, 출혈이 발생했다는 식의 뚜렷한 원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프리드는 다소 두루뭉술하게 심폐기능이 떨어지고 있었다.
즉 수술이 가능한 상황이 아닌 것이다.
예측했던 바지만 결과가 실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해요.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대신 약물을 좀 강하게 써 보죠. 교수님이 추천한 약물이 있습니다."
"네."
혈액 투석이 끝난 후 최기석은 프리드와 중환자실로 돌아왔다. 순환기내과의 처방에 따르며 처치를 계속했지만 프리드는 악화일로를 달렸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불길한 전자음과 함께 심전도 그래프가 움직임을 멈췄다.
'아…….'
최기석은 흉부압박을 멈추고 넋 나간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영혼이 육체 바깥으로 탈출한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이 순간이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안 돼. 안 돼.'
최기석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재차 흉부압박에 나섰다.
"아만다. 에피네프린하고 도파민 끊지 말고, 계속 투입해 주세요."
"닥터 최. 환자분은 이미……."
"우리 끝까지 해 봐요. 아직 포기하기 이르잖아요."
최기석의 고집으로 CPR이 계속되었다.
그 처절한 모습에 스태프와 주변 환자들이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최기석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서 환자 감시 장치를 응시했다.
프리드는 미약한 맥박도, 한 줌의 호흡도 없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상태는 사망으로 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결과가 그의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닥터 최. 괜찮아요?"
아만다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기석은 대꾸 없이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프리드의 상태를 살폈다.
"……오전 12시 10분……. 환자는 심폐기능 정지로 사망했습니다."
힘겨운 한마디를 뱉고 중환자실을 나왔다.
제인이 그를 발견하고 다가와 가운 자락을 붙잡았다.
"닥터 최. 우리 남편은 괜찮은 거죠?"
"……."
"왜? 말은 안 하세요? 네? 제발 괜찮다고 말씀해 주세요."
"남편분은 방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그럴 수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프리드!"
제인이 대성통곡하며 울었고, 최기석은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 * *
그로부터 이틀 후.
프리드의 사망 소식이 매스컴에 방송되자 경찰에서 본격적인 여론전을 펼쳤다.
환자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 부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인은 공식 성명을 내서 이를 거부했다.
남편의 외인사가 분명한 상황에서 부검을 진행한다는 것은 사인을 곡해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면서.
경찰과 제인의 주장이 충돌하는 가운데 각종 매체는 최기석을 주목했다.
과연 그가 사망진단서를 어떻게 작성할까.
사망진단서에 사건의 향방이 달렸다.
* * *
최기석은 휴게실에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프리드가 세상을 떠난 후 현실감이 옅어졌다.
무슨 일을 해도 허공에 붕 뜬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동료들은 그가 최선을 다했다며 위로해 줬지만, 그것들은 전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그런다고 죽은 프리드가 돌아온 것은 아니었기에.
찰싹!
한참 멍하니 있던 그는 자기 손으로 두 볼을 가볍게 때렸다.
'정신 차리자. 이제.'
최기석의 눈에 서서히 생기가 돌았다.
프리드를 애도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맡은 환자들에게 소홀할 수는 없다.
똑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더더욱 .
드르르륵.
마음을 다지는 가운데 누군가가 휴게실로 들어왔다.
바로 매튜다.
"쉬고 있었나?"
"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매튜가 그의 맞은편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최기석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매튜를 응시했다.
"저는 과장님과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으면 듣기만 해. 다 자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 이야기일 테니까 말이야."
매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우선 뇌사 환자가 사망한 일은 참 유감이네. 들어보니 자네가 환자를 위해서 엄청나게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하더군."
"……."
"그건 그렇고. 흠흠…… 사망진단서 작성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인가?"
"네. 지금 의국으로 돌아가서 작성할 생각입니다."
"하긴 충격이 컸으니 그럴 만도 하지."
매튜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계속했다.
"환자 사인은 어떻게 내릴 생각인가?"
"죄송합니다. 전화가 와서……."
최기석은 휴대폰을 들고, 태연스럽게 통화하는 척했다. 그리고 앱 하나를 몰래 작동시켰다.
더불어 얼마 전에 구입한, 아까부터 작동 중인 장치를 손으로 매만졌다.
이것으로 대(對)매튜전 준비 완료다.
"병동 콜이 있어서 짧게 통화했습니다. 방금 전에 환자 사인을 물어보셨죠?"
그는 휴대폰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화제를 이어갔다.
"환자의 사인은 고민할 여지가 없습니다. 전 외인사로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최초 환자를 응급실에서 진찰할 당시 전신성 쇼크, 급성 경막하 출혈, 외상성 뇌실질내 출혈, 뇌탈출증, 뇌수두증, 미만성 뇌손상 등이 보였습니다."
"……."
"이 많은 진단들이 뇌동정맥 기형으로 발생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나?"
"그게 무슨 뜻입니까?"
"환자 진단에는 무릇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가는 법이지. 자네가 마음먹으면 병사로 처리하지 못할 것도 없을 텐데……."
"제가 사인을 병사로 처리하길 바라십니까?"
"뭐,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거야. 자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환자가 뇌사에 빠지기 전에 보호자에게 수술을 제안했거든. 보호자는 물론 수술을 거부했지."
"……."
"즉 치료거부와 병사를 엮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매튜는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상황이 이쯤 됐으니 허심탄회하게 말해 볼까? 자네가 원하는 건 뭔가?"
"전 하이어 시스템으로 최대한 빨리 흉부외과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럼 내가 자네의 조기 진급을 돕겠네. 대신 프리드 환자의 사인은 병사로 처리했으면 좋겠어."
매튜는 최기석을 살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최기석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한눈에 보였다.
그가 단번에 거절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큰 증거다.
"어차피 환자는 죽었어. 자네가 울고 불며 난리 쳐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
"그렇다면 실리를 챙기는 게 옳지 않을까?"
"제가…… 과장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죠? 저번에 호출했을 때는 악담만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그거야 자네가 루카스의 편이었기 때문이지. 내 편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져."
매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최기석의 조기 진급을 챙겨 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이 얌체 같은 녀석이 승승가도를 달릴 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이가 갈릴 정도니까.
다만 지금은 손잡는 척하는 것뿐이다.
프리드 사건과 아들의 절도사건을 동시에 묻기 위해서.
"난 조만간 신경외과 헤드 치프가 될 거고, 파커와 메이죠 클리닉을 장악할 거야. 앞으로 자네의 뒤를 봐줄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는 셈이지. 영양가 없는 루카스를 돕다가 괜히 봉변당하지 말라고."
매튜의 말이 끝나고 무거운 침묵이 휴게실에 감돌았다.
오랜 침묵을 깬 것은 최기석이다.
"과장님이 조기 진급을 약속하신다면, 저도 이번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현명한 선택이야."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최기석이 눈을 빛내며 말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