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58화 (257/407)

회심의 일격 (4)

"이 자리에서 프리드 환자 뇌사에 대한 신경외과의 공식적인 의견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매튜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프리드가 경찰과 대치하던 중 외상이 생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미노의 블록 중 하나가 넘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뇌사의 주원인이 외상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매튜가 고개를 끄떡이며 기자의 질문에 답변했다.

"환자는 일 년 전 뇌동정맥 기형으로 본원에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즉 완치되지 않은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죠. 이번 사건은 얼핏 환자가 외상으로 뇌사에 빠진 듯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뇌사의 원인은 내재된 질병에 의한 것입니다."

매튜의 발표가 끝나자 기자들이 끊임없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일부는 질문을 위해 손을 들었다.

"거기 기자분, 말씀하시죠."

"KCC의 카를로 기자입니다. 과장님께서는 뇌사의 원인이 질병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번 사건을 경찰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는 뜻으로 보이는데. 맞습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입니다."

매튜가 말을 계속했다.

"경찰이 프리드를 현상 수배범과 오인한 점, 그 과정에서 프리드가 부상을 입었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뜻은 경찰이 책임져야 할 몫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질문 있으십니까?"

"이번 사건의 원인이 흑인에 대한 가혹한 제압으로 발생했다는 보호자 측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답변드릴 수 없습니다. 의사가 판단할 영역이 아닙니다."

그는 의학적인 지식과 노련한 답변으로 인터뷰를 이끌어갔다.

더불어 보호자 측이 꼬투리를 잡아서 경찰의 발목을 붙잡는다는 듯한 교묘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이 자식이. 진짜.'

최기석은 모니터 속 매튜를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 뻔뻔한 주둥아리에 따끔한 한 방을 먹여 주고 싶었다.

프리드의 주치의는 바로 자신이다.

그런데 매튜가 무슨 권한으로 공식 인터뷰를 연단 말인가. 그것도 사실을 180도 왜곡한 채로 말이다.

"미스터 최. 매튜 과장님 말, 사실이야?"

"그럴 리가 없잖아요. 과장님 멋대로 나선 거예요."

앙리의 질문에 최기석이 새빨간 얼굴로 대답했다.

"이번 인터뷰는 파급이 크겠어요. 일반인이 들으면 보호자와 환자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또 폭풍이 불겠네."

앙리와 오스틴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최기석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감정은 잠시 억눌러 둘 필요가 있다.

인터뷰는 이미 생방송 전파를 탔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단순히 분노하기보다는 대책을 세우는 게 더 중요했다.

생각을 거듭하던 중 머릿속에 의문이 스쳤다.

대체 매튜는 갑자기 왜 프리드 환자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을까.

사실 그가 프리드에게 신경을 써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프리드는 뇌종양외과 환자가 아니며, 프리드가 매튜에게 해가 될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최기석은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매튜가 그런 공식 성명을 내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이 누구일까.

분명 그는 수혜자와 친분이 있거나 모종의 거래를 했을 확률이 높았다.

"먼저 일어납니다."

최기석이 휴게실을 벗어나 찾은 곳은 외과 중환자실이다.

"서…… 선생님. 어…… 어떻게 된 거죠?"

프리드의 아내 제인이 그를 발견하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방금 뉴스 봤는데요. 신경외과 교수님이 나와서 우리 남편이 병 때문에 뇌사에 빠졌다고 했어요."

"저도 보고 오는 길입니다."

"나쁜 사람. 이런 식으로 우리를……."

제인이 치를 떨며 말을 흐렸고, 최기석은 거기서 숨겨진 무언가를 읽어냈다.

"혹시 매튜 과장님을 본 적이 있습니까?"

"아, 네. 바로 이틀 전이었어요. 신경외과 교수라고 하면서 남편에 대한 걸 이것저것 캐묻더라고요. 그러다가 혹시 수술받을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어요."

"수술이요?"

"네. 닥터 최는 남편에게 추가 수술이 필요 없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수술은 의미가 없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그 교수가 알았다면서 그냥 갔어요."

제인의 말에 최기석이 이마를 문질렀다.

오늘 공식 성명을 듣고 나니 매튜의 수작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술이 큰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보호자에게 수술을 권한다.

보호자가 이를 거부하면, 치료를 거부했다며 외상이 아닌 병사로 몰고 간다.

매튜는 이런 부분까지 고려해서 작업에 나섰다.

설마 이번 일과 아무 상관없는 매튜가 나설 줄은 몰랐기에 최기석도 불의의 일격에 당했다.

"닥터 최. 이제 어떡하죠? 남편이 병 때문에 뇌사에 빠졌다고 결론이 나면, 속 터져 죽을 것 같아요. 남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닥터 최라면 알잖아요."

"물론 환자분과 보호자분의 억울함은 충분히 압니다."

최기석은 부드럽게 제인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저를 믿어주세요. 두 분이 속상할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분을 욕보이게 만든 신경외과 교수도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제발 부탁드려요, 선생님."

최기석은 울먹이는 제인을 안정시키고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사건의 중심인 프리드는 인공호흡기를 단 채 격리실에 누워 있었다.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 순환기내과의와 신장내과의를 호출했다.

뇌사 중에 또다시 발급성 신부전증과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이 발생한 것이다.

처치가 끝난 후 최기석은 중환자실을 나오면 한숨을 쉬었다.

악화일로를 걷는 프리드의 상태와 매튜. 그리고 경찰까지.

아직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 *

다음 날 오전.

회의는 끝났지만, 스태프들 중 누구도 일어나지 못했다.

루카스와 매튜가 피 튀기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매튜, 대체 정신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자네가 대체 무슨 권한으로 공식 성명을 내는 거지?"

"못할 이유도 없다고 보는데? 나도 엄연히 신경외과 과장이라고."

"자네 전공은 뇌종양이고, 환자는 뇌혈관질환을 앓고 있어. 이건 명백한 월권이야!"

"그럼 내가 나서지 않게 일 처리를 똑바로 해야지. 사람들 이목이 끌린 이슈를 방치하는 게 말이 되나?"

루카스의 주장을 매튜가 받아쳤다.

"머저리 같은 소리를……. 의사가 할 일은 언론플레이가 아니라 치료라고."

"우리 과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신경 쓰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업무지."

"경찰 편드는 게 신경외과 이미지를 신경 쓰는 건가?"

루카스가 이를 갈며 말을 이었다.

"한 번 더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어."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지릴 것 같군. 난 화장실이라도 가야겠어."

매튜가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회의실에 숨 막히는 침묵이 감돌았다.

누가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의 루카스.

그를 보고 스태프들은 쉽사리 나설 수가 없었다.

"회진 시작하지."

루카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회진이 시작되었다.

매튜를 제외한 채 말이다.

숨 막히는 회진이 끝난 후 최기석은 호흡기내과를 찾았다.

풀먼은 침상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책을 읽고 있었다.

폐암 4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평온한 모습.

예전에 보여줬던 초조하고, 히스테릭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아, 미스터 최. 좋은 아침입니다."

풀먼이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신경외과 일로 바쁠 텐데 너무 자주 찾아오는 거 아닌가요? 이러면 내가 미안해지는데."

"교수님, 찾아뵐 여유는 충분히 있습니다. 혹시 치료 계획은 세우셨나요?"

"어제 결정했어요."

풀먼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다음 주에 퇴원하고 호스피스 전문 병원에 갈 생각이에요. 지금 상황에서는 항암 치료든, 수술이든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러셨군요."

"듣자 하니 요즘 신경외과가 난리도 아니라면서요? 뇌사에 빠진 환자로 시끄러운 데다가 샴쌍둥이 환자까지 들어왔다고 하던데."

"맞습니다. 덕분에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최기석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미스터 최라면 잘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비록 만난 시간은 짧지만, 미스터 최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

"그건 바로 용기입니다. 남들이 망설이고 주저하는 일을 미스터 최는 거리낌 없이 해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스터 최가 다른 동기들보다 뛰어날 수 있는 거겠죠."

"과찬이십니다."

"하여간 지금의 용기를 잃어버리지 말아요. 그러면 미스터 최는 더 큰 의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최기석이 고개를 끄덕이고 화제를 돌렸다.

"제게 부탁하셨던 에세이 필사 말인데요. 오늘 아침까지 작업해서 절반 가까이 끝냈습니다. 작업한 부분을 먼저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전부 작업해서 한꺼번에 보내드릴까요?"

"네? 그걸 그사이에 절반이나 끝냈다고요?"

풀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가 손으로 하는 건 거의 다 잘하거든요. 한 번 보실래요?"

최기석은 테이블에 놓인 팬들로 즉흥 저글링을 시작했다.

그의 손에서 네 개의 팬이 원을 그렸다.

의진대에서 경품을 탔을 때의 실력은 아직 죽지 않았다.

"하하하. 이것 참. 미스터 최가 써전인지, 피에로인지, 속기사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군요."

풀먼이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열심히 도와줘서 고마워요. 일단 지금까지 작업한 부분이라도 받았으면 좋겠군요."

"네. 매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최기석은 풀먼과 대화를 끝내고 병실을 벗어났다.

그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간담췌외과다.

복도 끝 일인실로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정진명은 아직 잠에 빠져 있었으며, 정설화는 그런 정진명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설화야."

"기석아. 왔어?"

"아버님은 어때?"

"괜찮으신 것 같아. 어제 진료받은 후부터 조금 들뜨신 것 같기도 하고."

"다행이다."

최기석은 정설화 곁에 서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스미스가 췌장암을 완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으니, 정진명과 정설화의 심적인 부담은 많이 줄었으리라.

"아버님 깰 것 같은데 나가서 이야기하자."

"응."

두 사람은 병실을 나와 복도 창가에 나란히 섰다.

"아침은 먹었어?"

"아까 아빠랑 같이 먹었어. 환자식이 의진대보다 훨씬 맛있던데?"

"며칠은 괜찮을걸?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김치랑 고추장이 생각나겠지."

"하긴 조금 느끼하긴 하더라."

"있다가 저녁에 라면 끓여 줄게. 한인 식당에서 받아온 거 있거든."

최기석은 정설화와 대화를 이어갔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메이죠 클리닉에서 이렇게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했다.

"나 그만 가 볼게."

"그래. 일 열심히 하고 있다가 봐."

"오늘도 사랑해."

최기석이 정설화의 볼에 입을 맞추자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응. 나도."

정설화와 헤어진 후 수술실을 찾았다.

모처럼 오전 시간이 비었지만, 샴쌍둥이 모형 수술 연습이 예정되어 있었다.

지이이이잉.

가운에서 갑작스러운 진동이 느껴졌다.

콜폰을 꺼내 번호를 확인한 순간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외과 중환자실 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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