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57화 (256/407)

회심의 일격 (3)

중입자 치료.

이것은 통칭 꿈의 암 치료법이라 불린다.

중입자 가속기를 이용해 중입자를 발사하여 암세포를 파괴하는데, 완치율이 높으며 기존 항암 치료에서 보이는 부작용이나 후유증은 거의 남지 않았다.

현재 중입자 치료를 하는 곳은 일본과 독일, 중국, 이탈리아 정도뿐이다.

메이죠는 작년부터 중입자 가속기 도입을 추진했는데 올해 초에 드디어 시설이 완비되어 본격적인 치료를 시작했다.

"아버님은 아마 미국에서 중입자 치료를 받는 최초의 한국인이 되실 겁니다."

"이거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군."

"분명 좋은 소식입니다. 아버님의 췌장암은 반드시 나을 테니까요."

최기석의 말에 정진명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듬직해졌어. 나도 기대고 싶어지는걸?"

"힘든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있는 힘껏 도와 드리겠습니다."

"고맙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메이죠 클리닉이 가까웠다.

세 사람은 진료 접수를 하고 일반외과로 이동했다. 최기석이 사전에 진료 예약을 했기에 별문제는 없었다.

"진명 정. 환자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외침에 세 사람이 동시에 진료실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진료실이 북적거리는군."

스미스가 최기석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 최기석에게 사전 설명을 들었다.

결혼까지 생각하는 애인이 있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말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헤드 치프."

"그래. 하지만 재회 장소가 진료실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동감입니다."

"진명 정. 멀리서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우선 현재 상태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죠."

스미스가 한국에서 촬영한 검사결과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진단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췌장암 2기지만 그의 말은 훨씬 더 희망적이었다.

충분히 수술이 가능한 상황이며, 수술 성공률도 80퍼센트를 넘는다고 했다.

"절제하면 위험한 부위가 있는데, 그곳은 미스터 최의 말대로 중입자 치료를 하면 될 겁니다."

"그…… 그럼 선생님. 저는 살 수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두려워하실 필요 없어요."

스미스의 호쾌한 대답에 정진명이 환하게 웃었다.

온 세상의 빛이 전부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분이랄까.

극적인 순간에 구원받은 느낌이 들었다.

"헤드 치프.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번 수술 집도는 헤드 치프께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야지. 거절하면 날 미워할 거 아닌가?"

"그런 건 아니지만…… 감사합니다."

최기석이 고개를 숙이자 스미스가 됐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간담췌외과 1인실로 입원 오더 내렸으니까 환자분 모시고 가면 될 거야."

"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최기석은 스미스에게 재차 인사하고, 두 사람과 진료실을 나왔다.

"아빠. 다행이에요!"

"그래. 메이죠에 오길 천만다행이다."

정진명과 정설화가 감격의 포옹을 나눴고, 최기석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큰해지는 콧잔등을 훔쳤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가족이 안심하는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최기석은 정설화와 1층 카페에 자리 잡았다.

정진명은 입원 준비를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그동안 육체와 정신의 피로가 많이 누적된 듯했다.

"기석아. 정말 고마워."

정설화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빠가 췌장암 2기라는 이야기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거든. 일이 손에 안 잡혀서 과장님께도 매일 혼났고."

"……."

"네 덕분에 마음이 놓여. 메이죠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한국에서는 치료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이 정도야. 뭐."

최기석은 정설화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네가 그동안 내게 해 준 걸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난 별로 해 준 게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소리 마.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너와 내가 앞으로 평생 행복할 거라는 거야. 수련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더 잘할게."

그의 말에 정설화가 굵은 눈물을 흘렸다.

최기석은 정설화의 옆자리로 이동해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흐느낌으로 떨리는 몸.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괜찮아, 괜찮아. 뚝."

"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참을 수가 없어서."

"안 돼. 더 울면 예쁜 얼굴 망가져."

최기석은 정설화를 안정시킨 후 화제를 돌렸다.

"미국에는 며칠 동안 있는 거야?"

"일주일."

"치료받는 건 다 보고 갈 수 있겠구나."

"응."

"기왕 이렇게 된 거, 너도 푹 쉬고 간다고 생각해. 순환기내과 일이 워낙 힘들잖……."

위이이이잉.

콜폰이 울리는 바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설화야, 잠깐만. 네, 신경외과 기석 최입니다."

[미스터 최, 저 오스틴이에요. 혹시 수술 스크럽 가능해요? 세컨드 서기로 했던 선생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갑자기 빠지게 됐는데]

"혹시 저 말고 보조 설 사람은 없고요?"

[네, 없어요. 수술 스케줄이 꽉 찬 데다가 조금 전 응급수술 건이 두 건이나 생겼어요.]

"알았어요. 지금 올라갈게요."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한숨을 쉬었다.

"미안. 지금 수술실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괜찮아. 잘 끝내고 와."

정설화가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는 정설화와 헤어진 후 곧바로 수술실을 찾았다. C 로젯 앞에 신경외과 스태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늘 오프인 걸로 아는데 호출해서 미안하군."

"상황이 급하면 어쩔 수 없죠."

"경추 수술 스크럽 경험은 있나?"

집도의 카잔이 물었다.

"아직 서 본 적은 없지만 참관은 여러 번 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 오스틴이 미스터 최를 위해서 간단하게 브리핑을 해 주게."

"네."

오스틴이 설명을 이었다.

환자의 이름은 올리.

나이는 올해 50세로 경추신경근병증을 앓고 있었다.

경추신경근병증이란 목에 위치한 척수에서 뻗어 나온 신경들에 손상이 발생한 질환이다.

환자의 경우 신경과에 한 달간 보존적 치료를 했지만, 통증이 심각하고 경추에 병적인 변화가 발견되어 수술을 잡았다.

"그럼 들어가지."

카잔의 말에 스태프들이 일제히 스크럽에 나섰다.

지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고 스태프들이 각자 자리를 잡았다.

최기석은 세컨드 위치에 서서 이전에 참관했던 경추 수술의 과정을 되새김질했다.

살짝 긴장은 됐지만 얼어붙은 심장의 효과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전신마취 끝났습니다."

마취의에 보고에 카잔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경추신경병증에 따른 전방 터널링 수술을 실시한다."

"네!"

최기석은 Prone position(엎드려 누운 체위)인 환자의 뒷목을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메스."

카잔이 소독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로 환자의 피부를 갈랐다.

목의 주름을 따라 이어지는 절개.

이윽고 4센티미터의 절개창이 만들어졌다.

그사이 최기석은 로젯 안에 있던 C-arm(이동 가능한 엑스레이 장치의 일종)을 옮겨 환자의 목 부위를 촬영했다.

누군가의 지시 없이 알아서 움직인 것이다.

"제법이군. 수술 참관을 제대로 한 모양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다들 수술 부위를 확인한다."

카잔의 말에 스태프가 모니터를 응시했다.

환자의 5-6번 및 6-7번 경추 신경에 큰 손상이 있었다.

5-6번 경추에는 과도하게 형성된 뼈가 신경을 짓누르고 있었으며, 6-7번 경추에는 혈류가 정상보다 감소되어 있었다.

이번 수술의 목적은 이렇게 손상된 신경을 원상 복구시켜 주는 것이다.

"계속하지."

"네.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오스틴과 함께 절개창을 벌리고 이를 견인기로 고정시켰다.

이에 제1보조가 드릴을 이용해 경추의 바깥쪽 뼈를 잘라 냈다.

"뼛조각 제거하겠습니다."

최기석은 큐렛으로 뼛조각을 긁어냈고, 다 제거하지 못한 것들은 흡인기로 빨아들였다.

그의 꼼꼼한 처치로 수술 부위가 말끔해졌다.

"계속 간다."

카잔이 골피질과 섬유륜을 제거하는 작업에 나섰다.

최기석은 이를 유심히 지켜보며 출혈이 날 때마다 본 왁스나 Avitene 솜을 이용해 지혈에 나섰다.

때로는 미세 훅을 사용해서 카잔의 수술 시야 확보를 도왔다.

'처음이 맞는 건가?'

카잔은 환자의 경추 압력을 줄이던 중 최기석을 응시했다.

보조가 흠잡을 곳 없이 매끄러웠다.

더군다나 집도의인 자신은 물론이고, 제1보조까지 어시스트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이는 신경외과 전공을 택한 레지던트 3, 4년 차는 되어야 할 수 있는 행동이거늘…….

그는 최기석이 왜 늘 화제의 중심이 되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최초의 경추 수술 보조에 성공하셨습니다. 기초 경추 수술 마스터리가 형성됩니다(1/1). 해당 마스터리는 모든 경추 수술 숙련도에 영향을 미칩니다.]

[환자 바라기(+10)의 효과로 체력에 상당 부분 회복합니다.]

[200P.

P와 한계의 돌 1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쏟아지는 알림에 미소를 지었다.

불청객 같았던 스크럽이지만 보상이 짭짤했기에.

수술이 끝난 후 그는 휴게실에서 스태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미스터 최. 경추 수술 스크럽 처음 서는 거 맞아?"

퍼스트를 섰던 앙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오늘이 처음입니다."

"최소 열 번은 해 본 솜씨던데? 교수님도 나도 깜짝 놀랐어."

"운이 좋았습니다. 예전에 참관했던 케이스랑 똑같았거든요."

"보조라는 게 한 번 참관했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런 식이면 나도 벌써 수술했다고."

앙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이런 게 재능의 차이인가, 하여간 부럽다. 부러워."

"저 미스터 최에게 궁금한 게 있어요."

조용히 있던 오스틴이 대화에 껴들었다.

"뭔데요?"

"어제 뇌사 판정받은 프리드 환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금 그 환자 때문에 말이 많은데."

오스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프리드 사건은 매스컴을 탄 이후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었다.

가족들은 경찰에 가혹한 폭력으로 다쳤다는 주장을 했다.

반면 경찰들은 프리드가 우연히 다쳤으며, 지금의 상황이 온 것은 그가 과거 뇌동정맥 기형이라는 병을 앓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본격적으로 사건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에 사건의 화살이 내게 돌아온다면, 당연히 보호자 편을 들 겁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몇 년 전에 받은 뇌동정맥 기형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는 거."

"하긴 경찰의 수작이 너무 빤히 보이긴 하죠."

오스틴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이동했다.

병원 앞에서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프리드에 대한 관심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TV나 틀어 볼까요?"

오스틴이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최근 흑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이냐, 아니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른바 프리드 사건인데요. 현재 프리드를 치료 중인 메이죠 클리닉의 뇌종양외과 매튜 과장이 처음으로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메이죠 클리닉 뇌종양외과 과장 매튜입니다."

뉴스 채널에서 매튜가 기자들 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에 최기석은 자리로 돌아가 TV에 집중했다.

때마침 욱신거리는 가슴, 예감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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