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55화 (254/407)

회심의 일격 (1)

"환자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건 불법이야. 자료를 제대로 열람하고 싶으면 서류를 챙겨 오라고."

"내가 그걸 모르겠나? 하지만 말이야. 자네가 환자의 차트를 살피는 중이었고, 아주 우연히 내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면 문제가 없지 않나?"

제이콥의 말에 매튜가 미간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만나서 능구렁이 같은 소리만 하는군. 요새 피곤한 일이 많으니 탐색전은 관두자고. 본론부터 꺼내 봐."

"바라던 바네."

제이콥은 자신의 승진과 프리드에 관련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달했다.

반면 매튜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고작 환자의 신상정보인가? 그걸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신상을 캐낸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 하지만 물에 빠졌다고 숨 막혀 죽는 걸 기다릴 수는 없어. 최대한 발악해 보는 수밖에."

"뭐, 좋을 대로 하라고."

매튜는 모니터에 프리드의 차트를 띄우고 제이콥이 이를 보도록 허용했다.

'이건?'

제이콥과 함께 차트를 살피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프리드가 과거 뇌동맥기형으로 메이죠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수술의 집도의는 공교롭게 루카스였다.

아들 드레이크와 루카스, 그리고 제이콥까지.

세 사람을 단번에 엮을 수 있는 무언가가 매튜의 머릿속을 관통했다.

"건진 거라도 있나?"

"다행히 있군."

두 사람은 서로의 눈빛을 확인하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자네라면 이번 일을 내가 예상한 대로 처리할 것 같군. 하지만 그건 혼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지."

"물론이지. 내가 옛 동기를 찾은 이유도 그것 때문 아닌가."

"그렇다면…… 자네 부탁을 들어주지."

매튜의 호쾌한 대답에 제이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 빨리?"

"자네와 내 사이를 생각해 봐. 안 될 이유가 있나?"

"그건 그렇지만……. 자네 자리가 위태로울 수도 있어."

"원래 위기 없는 기회는 없는 법이지. 그리고 사실 나도 부탁할 게 있는데 말이야."

매튜는 아들 드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절도를 저질렀으며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음을.

"어쩐지 대답이 거침없다 했어."

제이콥이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아. 나는 자네 아들을 책임지고, 자네는 프리드를 책임져 주면 되겠군."

"잘해 보자고. 친구."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눴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샴쌍둥이 수술 스태프들과 로젯에 자리 잡았다.

평소와 달리 마취의는 없었으며, 수술대에는 환자 대신 3D 프린팅으로 구현된 모형이 놓여 있었다.

[용의 눈을 사용하셨습니다. 자동으로 최적의 시야를 확보합니다. 촬영 모드를 통해서 수술 영상을 기록합니다.]

스킬을 사용한 후 가볍게 목을 꺾었다.

모형으로 예비 수술을 하는 것임에도 긴장이 됐다.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수술.

이렇게 희귀한 고난도 수술은 앞으로도 접할 기회가 자주 없을 테니까.

"다들 준비됐나?"

"네!"

"오늘은 실제 수술의 20퍼센트만 진행한다. 나머지 부분은 이틀 간격으로 나눠서 연습하고, 이후에는 새 모형으로 실전 연습을 한다."

루카스가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고, 최기석을 응시했다.

수술을 시작하라는 눈빛을 받은 그는 모형의 머리를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비록 모형이지만 머리 양 끝이 붙어 있는 쌍둥이에게 처치하는 기분이 남달랐다.

"메스."

루카스는 조심스럽게 모형의 두피를 갈랐다.

쌍둥이가 두개골 일부를 공유하고 있기에 두개골을 벗겨 내는 작업도 평소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드릴은 어떻게 할까요?"

"이쪽하고 이쪽, 이쪽을 뚫는 게 좋겠군. 브라이언도 마찬가지야."

"이마뼈와 마루뼈 쪽으로 접근하라는 말씀이죠? 알겠습니다."

드르르르륵.

드릴 소리가 요란하게 로젯에 울려 퍼졌다.

두개골에 구멍이 뚫리자 루카스가 메스를 손에 쥐었다.

그는 두개골에 난 각각의 구멍을 선으로 연결하듯이 천천히 연결해 나갔다.

메스가 지나간 자리에 선이 남으면서 두개골 절제가 진행되었다.

"벗겨 내겠습니다."

최기석은 절개된 두개골을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모형의 머릿속.

"우와. 이렇게 정교할 줄은 몰랐습니다. 이 정도면 실제 환자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최기석은 모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뇌를 보호하는 막, 신경, 혈관과 머리뼈 등등, 모형은 실제 사람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그래도 조건이 완전히 같지는 않아. 혈관에서 피가 흐르지 않는 데다가 뇌척수액 같은 건 구현할 수는 없으니까. 어차피 중요한 건 해부학적인 접근이겠지만."

"……."

"우선 뇌막을 드러내고, 유착되어 있는 뇌 조직의 범위를 살펴보자고."

"네."

"메스."

루카스는 소독 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아 모형의 경질막과 지주막, 연질막을 차례대로 갈랐다.

"과장님. 아담과 브라이언은 전두엽과 두정엽의 뇌 조직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절제하게 되면 한쪽은 뇌손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세상 어떤 명의가 집도해도 피할 수 없어."

루카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최기석의 질문에 대답했다.

쌍둥이가 뇌 일부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이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손실이 일어난다. 단순히 뇌가 붙어 있는 거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분리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분리는 중심 고랑(뇌가 살짝 파인 부분) 앞에 위치한 제1운동 영역부터 시작한다. 이곳에는 단순한 유착이 있으니 박리해 주고 중심고랑부터는……."

루카스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중심고랑부터는 제1감각영역은 대각선으로 분리한다. 두정엽의 중간 부분부터는 다시 박리, 이후에는 후두엽 일부를 사선으로 분리한다."

"……."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작업이야.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네!"

"보비(전기 소작기)."

루카스가 소독간호사에게 건네받은 전기 소작기로 유착 부위를 지졌다.

치이이이익.

타는 소리가 나면서 유착된 부위가 서서히 떨어졌다.

최기석은 신디와 함께 처치 부위의 시야를 확보하고, 소독과 세척 등의 작업에 나섰다.

집도 속도는 평소보다 무척 더뎠다.

스태프의 작은 실수로 환자는 마비를 비롯한 각종 영구적인 후유증을 겪을 수 있었기에.

"교수님. 이번 수술은 정신력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신디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분리 작업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제1운동 영역 박리도 끝내지 못했어요. 작업 속도가 더디니 온몸이 답답해집니다."

"맞는 말이야. 이번 수술은 지금껏 해 왔던 뇌수술과는 180도 달라. 일반적인 수술이라면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수술을 끝내서 환자의 부담을 덜어 줘야 하지. 어떻게 보면 백 미터 달리기라고 할까?

"……."

"하지만 이번 분리 수술은 마라톤이야. 그것도 42.195킬로미터를 걸어서 완주하는 수준이지. 니콜라이."

"네…… 네?"

"아까부터 지나치게 몸을 꿈틀거리고 있잖아. 수술 중에는 정자세를 취하라고 안 배웠나?"

"죄…… 죄송합니다."

"모형으로 연습한다고 긴장의 끈을 놓지 마. 설마 연습을 개판으로 하고, 실전에서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루카스가 독설을 뿜어냈다.

평소답지 않은 날카로운 모습.

그가 이번 수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스터 최는 잘해 주고 있어,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하도록. 하지만 모형으로 수술 중이라서 할 일이 적다는 사실도 명심해. 실전은 달라."

"네!"

이어지는 분리 수술.

스태프들은 두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1단계 분리 수술을 끝냈다.

그것도 가장 쉬운 파트를 말이다.

모형 연습이 끝난 후 최기석은 동료들과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루카스는 수술 스케줄이 있었기에 곧바로 다른 로젯으로 이동했다.

"세 시간도 버티기 힘든데 스무 시간이나 수술해야 한다니……. 정말 끔찍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포기할까 싶기도 하고."

신디의 말에 니콜라이가 맞장구를 쳤다.

"근데 미스터 최는 끄떡없더라? 처치가 너무 꼼꼼하고 느려서 답답하지 않아? 나는 온몸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 같던데."

"적어도 오늘은 참을 만했습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최기석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힘들었던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신디의 말처럼 개미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았고, 쇠사슬이 팔다리를 옥죄는 느낌도 받았다.

느린 처치 속도에서 오는 극도의 답답함.

육체적인 피로라면 아이템으로 극복할 수 있겠지만, 정신적인 답답함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수술에 집중하려면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리라.

지이이잉.

번호를 확인한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 중환자실 콜이 있어서 바로 가 볼게요."

최기석은 빠르게 걸으며 통화를 연결했다.

예상대로 프리드에게 문제가 생겼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자발순환으로 접어들었던 그에게 이상 신호가 찾아온 것이다.

그는 외과 중환자실로 뛰어 들어가서 프리드의 곁에 섰다.

"선생님, 잘 오셨어요. 환자 호흡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호흡기를 달아야 할 것 같아요. 혈압도 계속 낮은 상태고요."

"처치는 제가 할 테니까 다른 일 보세요."

간호사를 스테이션으로 돌려보내고, 프리드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이후 승압제를 수액에 섞어서 투여했다.

일반적인 처치는 끝난 상황.

딸칵!

라이트를 켜고 프리드의 눈을 살폈다.

양쪽 동공이 확대되었으며 빛을 제대로 반사하지 못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불길할 느낌 속에 프리드를 가볍게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프리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어지는 뇌간 반사 검사. 최기석의 표정이 점점 흙빛으로 변했다.

최기석은 간호사에게 프리드를 잘 관찰해 달라고 부탁한 후 중환자실을 떠났다.

불행하게도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일과가 끝났다.

최기석은 기숙사에서 풀먼의 원고를 타이핑하다가 벽시계를 응시했다.

현재 시각 오후 9시.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그는 기숙사를 떠나서 다시 외과 중환자실을 찾았다. 그리고 프리드의 상태를 재차 점검한 후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새롭게 떠오른 진단명을 확인한 순간 병원 천장이 노랗게 변하며 현기증이 찾아왔다.

최기석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프리드를 내려다보다가 티칭 레지던트 레온을 호출했다.

"미스터 최. 무슨 일이에요?"

"하아…… 레온. 이 환자……."

최기석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7시간 전에 동공과 호흡, 그리고 뇌간 반사 테스트를 했어요. 그리고 지금 다시 해 봤는데. 결과가 똑같아서요."

"그래요?"

레온이 얼굴을 찌푸리며 최기석의 과정을 반복했다.

검사가 끝난 레온의 표정에 씁쓸함이 떠올랐다.

"저도 미스터 최와 결론이 같아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애초에 뇌에 데미지가 워낙 컸으니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죠?"

"……네."

최기석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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