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51화 (250/407)

마지막 기회 (3)

응급실에 도착하자 전화를 걸었던 인턴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최기석은 바쁜 걸음으로 침상에 다가가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환자의 이름은 프리드.

의식불명 상태로 경추 고정기를 착용했으며, 머리에는 피로 물든 압박 붕대가 감겨 있었다.

환자 감시 장치로 확인한 결과 바이탈이 시시각각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딸칵!

라이트로 안구를 살피자 raccoon eye가 발견되었다.

raccoon eye는 너구리 눈이라고 불리는데, 두개골 밑바닥에 출혈이 생겨 양측 눈 주위가 까맣게 보이는 증상이다.

체력: 4/10

주 증상: 두통 / 의식불명 / 호흡 장애

아픈 부위: 뇌 / 두개골

진단명: 전신성 쇼크 / 급성 경막하 출혈 / 외상성 뇌실질내 출혈 / 뇌탈출증 / 뇌수두증 / 미만성 뇌손상 / 급성 신부전증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뇌동정맥 기형

가족력: 없음

주의 요소: 뇌동정맥 기형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런 미친!'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환자의 상태가 만만치 않았다.

머리에 입은 데미지가 광범위한 데다가 그로 인해 급성 심부전증까지 찾아왔다.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당장 수술해야 해요. 하지만 그 전에 비뇨기과 당직의부터 불러요. 수술은 신부전 처치가 끝난 후에 들어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인턴이 후다닥 자리를 벗어났다.

때마침 환자의 가족과 경찰관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우리 남편은……."

프리드의 아내가 프리드를 내려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위급한 상태입니다. 곧바로 수술이 필요하니, 보호자분께서는 서류를 작성해 주세요."

"우리 남편…… 살 수는 있는 거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으로써는 그것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최기석은 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다.

그의 시선이 경찰관들에게 옮겨졌다.

"이분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어떻게 하면, 머리에 이만한 충격이 갈 수 있죠?"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프리드는 교통사고나 추락사고를 당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외상의 정도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지독했다. 어떤 이유로 이런 부상을 입었는지 알아야 했다.

"그게…… 사실은…… 우리가 지명수배범과 프리드를 착각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있었고 도중에 프리드가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단순히 넘어졌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경찰의 대답이 미심쩍었지만 일단 넘어갔다.

경찰과 실랑이하는 것보다 환자를 살리는 게 더 급했기에.

"이분입니까?"

인턴의 콜을 받은 비뇨기과 당직의가 그의 곁에 섰다.

"네. 급성 경막하 출혈로 인한 급성 신부전증이 의심돼서 협진 부탁드렸습니다."

"잘 보셨어요. 혈중 크레아틴 수치가 기준치에 오십 퍼센트 이상 상승했더군요. 요 검사와 피 검사 결과에서도 문제가 있고요."

"그럼 처치는 어떻게 해야 하죠?"

"아세틸시스테인과 도파민을 저용량으로 투여하고, 투석에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비뇨기과 당직의의 말대로 처치하자 신부전증 증상이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이제 필요한 건 신경외과 수술뿐.

"응급상황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화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당직의를 보낸 후 수술이 가능한 써전을 알아보았다. 레온이 휴가 중이었기에 수술을 할 수 있는 써전의 수가 두 명으로 줄었다.

문제는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두 사람 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뭐하는 거야!'

최기석은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휴대폰에 불이 날 정도로 통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현재 상황을 문자로 남겼다.

"선생님.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프리드의 아내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최기석이 보호자를 달래는 사이 콜폰이 울렸다.

드디어 수술 가능한 써전이 정신을 차린 건가 싶었건만 뜻밖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바로 매튜다.

"네, 과장님."

[미스터 최. 지금 응급실에 실려 온 흑인 환자 있지?]

"맞습니다. 당장 수술해야 하는데, 써전들이 없어서 애먹고 있습니다."

[그 환자 일단 병동에 입원시켜.]

"이 환자는 급성 경막하 출혈과 외상성 뇌실질내 출혈을 비롯한 다양한 질환이 있습니다. 수술이 늦으면 죽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방법이 없잖아. 수술대기 중이던 써전을 내가 데리고 있는데.]

매튜의 말에 정신이 멍해졌다.

써전들이 전화를 안 받은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그럼 어떻게……."

[보호자를 잘 달래서 입원시켜. 지금 출발하면 써전들이 두 시간 후에 도착하니까 수술은 그때 해. 그때까지 바이탈만 잘 잡아두고.]

"잘 들었습니다."

최기석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과장님의 말도 안 되는 소리, 아주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장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겠습니다."

[미스터 최. 미쳤어?]

매튜의 언성이 올라갔다.

"네. 미쳤습니다. 환자를 방치하라는 과장님의 지시에 완전히 미쳐 버렸습니다. 물론 두 시간 후에 수술할 수야 있겠지만,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시체겠죠. 제 말이 틀립니까?"

[…….]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과장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겠습니다."

[멍청한 소리를…… 수술할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수술을 하겠다는 거야! 내 말대로…….]

뚝!

말을 다 듣지 않고 통화를 끊었다.

매튜와 계속 떠들어 봐야 입만 아프다.

최기석은 매튜가 다시 전화를 걸기 전에 루카스와 통화를 연결했다.

루카스가 곧장 전화를 받았기에 상황설명에 나섰다.

[곤란한 상황이군.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어.]

"그 방법은……."

[별수 있나. 자네가 집도해야지. 나도 클리닉으로 돌아가려면, 두 시간은 넘게 걸려. 미스터 최가 동기를 모아서 수술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제 집도를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그 말은 반쪽짜리 정답이네. 내가 자네에게 허락한 것은 단순히 집도할 기회가 아니라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기회니까.]

"감사합니다. 꼭 믿음에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자네 실력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참고로 매튜의 헛소리는 신경 쓰지 마. 그 환자 어차피 뇌혈관외과 파트 환자니까.]

"네. 알겠습니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수술실에서라도 전화하고."

루카스와 통화를 끊은 후 휴식 중인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에 래리와 자넷, 클레어가 호출에 응해 응급실에 도착했다.

"다들 쉬고 있는데 미안해.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어쩔 수 없었어."

최기석이 지금까지의 과정을 설명하자 다들 입을 떡 벌렸다.

그 중의 백미는 역시 매튜의 지시를 거부한 것이었다.

신규 레지던트가 외과 파트장과 대립한 것은 신경외과 역사에 남을 일이었다.

"기어이 또 한 건 저지르는구나."

래리가 피식 웃으며 최기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는 도와줄게."

"그런데 이러다가 우리까지 매튜 과장님에게 찍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나도 그게 걱정이야."

래리와 달리 자넷과 클레어가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모인 동기들 전원이 최기석의 보조를 서기로 의견을 정했다.

이 자리에 참가하지 않은 인물은 오직 니콜라이뿐.

그는 아예 최기석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자."

최기석은 동기들과 침상을 밀며 수술실로 향했다.

이윽고 스크럽이 끝난 후 스태프들이 수술대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 수술의 집도의는 최기석.

제1보조는 클레어, 제2보조는 래리, 제3보조는 자넷이 맡았다.

마취의가 전신마취를 하는 사이 래리가 입을 열었다.

"떨리긴 진짜 떨린다. 이런 어려운 수술을 동기들끼리 하게 될 줄이야."

"그러게. 제임스 홉킨스도 이렇게까지는 안 할걸?"

"정말 뜻밖의 하드 트레이닝이다."

세 사람이 입을 모았다.

이후 세 사람은 스크럽하는 도중 최기석에게 환자의 상태와 수술 방향에 대해서 들었다.

설명에 따르면 이번 수술은 만만치 않았다.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으며, 그 과정에서 환자에게 신경마비가 찾아올 확률이 높았다.

'미스터 최라면…….'

래리는 곁에 서 있는 최기석을 힐끔 쳐다봤다.

사실 신규 레지던트에게 뇌수술을 맡긴다는 건 전쟁터에 갓난아이를 내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최기석이라면 뭔가 해 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는 다른 동기와는 다른 차원에 있었으니까.

"전신 마취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바이탈 체크하겠습니다."

마취의의 말에 최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경막하 출혈 및 두부 외상에 대한 처치를 시작한다."

"오케이."

그의 말에 래리가 환자의 민머리를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스으으으윽.

최기석이 메스로 환자의 두피를 갈랐다.

실전은 처음이지만 트레이닝 룸에서 지겨울 정도 개두술을 해왔다.

조금 과장하자면 눈 감고도 개두술이 가능한 수준.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일사천리로 개두술을 끝냈다. 두개골을 드러내자 피가 굳어서 만들어진 얇은 막이 뇌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이런 환자를 두 시간이나 방치하라니."

"동감이다. 이 상태라면 두 시간이 아니라 한 시간도 못 버텼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게다가 환자가 죽으면 내 책임으로 몰고 갈 거고."

정치력이 올라간 지금, 바보처럼 남에게 당해 줄 생각도, 환자가 죽는 걸 맥없이 지켜보고만 있을 생각도 없었다.

"메스."

소독간호사가 건넨 메스를 손에 쥐고, 피로 형성된 막의 하단 부위를 조심스럽게 갈랐다.

치이이익.

제1보조인 클레어가 피막에 생리식염수를 쏘자 수압으로 피막이 서서히 벗겨져 나갔다.

피막이 허물처럼 벗겨지자 깔끔한 뇌가 드러냈다.

"여기다."

최기석은 포셉으로 뇌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실낱같은 피가 분수처럼 치솟아 올랐다.

이곳에서 발생한 피가 뇌 주변에 고여 막을 형성하고, 뇌의 압력을 증가시켰다.

치이이익.

최기석은 전기 소작기로 출혈 부위를 지졌다. 이에 찔끔찔끔 새던 피가 완전히 멎었다.

급성 경막하 출혈에 대한 처치는 이걸로 끝이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알지?"

"그 정도는 말 안 해도 알아."

"걱정하지 마."

그의 말에 동기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뇌실질내 출혈에 대한 처치를 해야 한다. 뇌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야 하는 만큼 수술 난이도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구간이다.

검사로 확인한 출혈 부위는 시상(thalmus).

시상은 간뇌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위로 후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정보를 전달하며, 위치감각을 파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수술이 잘못되면 환자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을 수 있었다.

"정위 장치 준비 끝!"

"고마워."

최기석은 정위 장치를 이용해서 뇌의 깊숙한 부분으로 파고들었다.

뇌엽을 비롯해서 복잡한 혈관 및 신경을 지나치자 곧 수술 부위인 시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 났네. 일 났어."

시상을 확인한 래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