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46화 (245/407)

레전드 (5)

"전신마취 끝났습니다. 지금부터 바이탈 유지하겠습니다."

마취의에 보고에 써전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부터 십이지장 복원술과 비장절제술을 시작한다."

스미스의 말에 제2보조가 복부를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방포 위로 솟아오른 철골로 인해 송명진의 모습이 더욱 애처로워 보였다.

"메스."

스미스는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아 개복술에 나섰다.

피부와 근막, 근육층, 복막이 차례로 갈라지면서 복부 안쪽의 모습이 한눈에 드러났다.

철골은 복막을 꿰뚫고, 십이지장 2번과 3번 부위에 박혔다.

철골이 박힌 부분의 겉면은 잿빛으로 죽어 있었으며, 미량의 출혈을 일으켰다.

더불어 이에 대한 충격으로 간문맥에 체액과 후복막에 담즙이 정체되어 있었다.

"출혈 컨트롤부터 하겠습니다."

딸칵! 딸칵!

최기석은 혈관겸자로 철근이 박힌 십이지장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조였다. 그리고 석션기를 이용해 장기 내에 고인 피를 빨아들였다.

"거기 두 사람이 붕대 풀고서 철근 잡아. 철근을 빼는 건 미스터 최다."

"네."

스미스의 지시에 인턴과 제2보조가 철근을 묶고 있던 붕대를 풀었다.

이에 최기석은 심호흡을 하고 철근에 손을 올렸다.

과거 의진대에 있던 시절 사이드 미러가 비장에 박힌 환자를 수술한 적이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폭군의 강림을 사용했다.

쑤우우우욱.

힘을 주고, 철근을 끌어올리자 철근이 단번에 빠졌다.

어설프게 힘을 줬다면 주변 조직에 손상이 갔겠지만, 그의 처치는 깔끔했다.

"잘했어. 미스터 최."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수술 장갑을 갈아 끼고, 수술 부위를 응시했다.

이제 막 철근을 뽑았을 뿐, 갈 길은 멀었다.

부디 그때까지 스승이 잘 견뎌 주기를…….

"철근이 박혔던 자리는 살릴 수 없다. 우선 해당 부위를 절제하고, 변연절제술에 들어간다. 메스."

스미스가 십이지장 절제를 끝내고, 주변 조직 소독에 들어갔다. 철근으로 오염된 부위가 넓었기에 소독에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벌써 이렇게 됐나?'

스미스는 수술 시계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써전이 바로 송명진이다. 그러다 보니 처치가 훨씬 꼼꼼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문제는 수술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는 점이다.

송명진은 일반외과 수술뿐 아니라 흉부외과와 신경외과 수술도 받아야 한다.

수술 시간이 길어질수록 데미지가 축적된다.

딱. 딱. 딱.

스미스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부딪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모자라. 미스터 최."

"네. 헤드 치프."

"지금부터 십이지장 상단부와 하단부 동시 봉합에 들어간다. 내가 상단부를 문합할 테니, 자네는 하단부를 문합하도록. 봉합사는 3-0 vicryl이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고개를 끄덕이고, 니들홀더를 손에 쥐었다.

끼기기기긱.

니들홀더로 바늘침을 조이고, 문합할 십이지장을 내려다보았다. 비록 조기 진급했지만, 일반외과 수술 대부분에 스크럽을 섰다.

심지어 휘플 수술까지도 말이다.

십이지장 봉합은 충분히 자신 있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도 시작하지."

이윽고 두 사람이 동시 봉합을 시작했다.

봉합법은 단순 단속 봉합법으로 바늘침으로 수술 부위를 한 땀 한 땀 묶어 주는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봉합법이지만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소요시간이 길었다.

찰칵. 찰칵.

조용한 수술실에 매듭 자르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봉합에 나선 두 써전은 입에 자물쇠를 채운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온 신경을 집중한 채 봉합에만 힘썼다.

반면 다른 스태프들은 두 사람을 도우며 종종 수술 시계를 응시했다.

이번 수술은 정확도만큼이나 빠른 완료가 중요하기에.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스미스가 한숨 쉬며 허리를 폈다.

십이지장의 상단부 문합을 마친 것이다.

포셉으로 문합부위를 눌러 봤지만, 누수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저도 끝났습니다."

최기석이 한 박자 늦게 니들홀더를 거뒀다.

이에 제2보조가 에틸린 용액으로 문합 부위를 최종적으로 점검했다.

십이지장 양쪽 봉합은 무사히 끝났다.

"비장 절제하고, 수술을 마무리한다."

스미스는 최기석과 다른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출혈이 심한 비장을 떼어 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로 수술시간은 대폭으로 줄어들었다.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감사합니다. 헤드 치프. 헤드 치프가 아니었다면……."

최기석은 감정이 북받쳐서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자신을 퍼스트로 세워 준 것도,

믿고 동시 봉합을 맡겨 준 것도, 특유의 솜씨로 수술 시간을 단축해 준 것도.

스미스가 아닌 다른 이가 집도의였다면 결코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리라.

"감격하기에는 일러. 이제 능선을 하나 넘었을 뿐이니까."

"……네."

"나가자."

일반외과 스태프들과 최기석이 동시에 로젯을 나왔다.

로젯 바깥에는 폐식도외과 과장 야사다와 심장외과 펠로우를 비롯한 흉부외과 스태프들이 대기 중이었다.

"솜씨는 아직 녹슬지 않았군."

야사다가 스미스에게 한마디 건넸다.

그는 송명진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스태프들을 모아 수술실로 달려왔다. 그리고 참관용 수술실에서 스미스의 수술을 지켜봤다.

그의 집도 속도와 정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스미스가 그레이트 써전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는 걸 새삼 피부로 느꼈다.

"손이 녹슨 써전이라면 은퇴해야지. 뒤를 부탁하네."

"물론."

야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닥터 송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어."

"동감이네."

짧은 대화 후 일반외과와 흉부외과 스태프가 교차했다.

벅. 벅. 벅. 벅.

흉부외과 스태프들이 일제히 스크럽에 나섰다.

"과장님. 저도 수술을 돕고 싶습니다."

"안 돼."

"저는 한국에서 흉부외과를 전공했습니다. CABG를 포함해서 다양한 수술에 스크럽을 섰고요. 스승님의 수술을 조금이나마 돕고 싶습니다."

"그래도 안 돼!"

야사다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미 수술에 최적화된 스태프들을 뽑았다. 이제 와서 사람을 바꿀 순 없어."

"제가 나서는 게 억지라는 건 충분히 압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최기석이 울분을 토하자 야사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송명진이 최기석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잘 알았다.

이를 반대로 풀자면 최기석 역시 송명진을 무척 존경하고 따른다는 뜻이 되리라.

팽팽한 긴장감 속에 야사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끝까지 고집을 피우겠다면 인턴 자리까지는 봐주겠어. 다만 그 이상은 불가능해."

"감사합니다."

최기석이 고개를 숙였다.

야사다의 배려 덕분에 인턴 자리라도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지이이이잉.

스크럽을 끝낸 스태프들이 동시에 로젯으로 들어갔다.

써전들이 자리 잡는 사이 인공심폐기사가 인공심폐기를 점검했다. 손상된 폐동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공심폐기의 도움이 절실했다.

"헤파린(항응고제) 투여. 캐뉼러부터 연결한다."

"네."

야사다의 지시에 최기석이 정맥 라인에 헤파린을 주입했고 제2보조는 송명진의 하대정맥과 상대정맥에 캐뉼러를 꼽았다.

드르르륵.

인공심폐기가 돌아가면서 수술의 막이 올랐다.

'자네를 수술대에서 볼 줄이야.'

야사다는 송명진을 내려다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브랜치에 내려갈 때만 해도 의욕이 넘쳤던 송명진이다.

예전부터 밑에 사람을 가르치는 걸 워낙 좋아했으니까.

"나는 말이야. 요즘은 후배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낙이라네. 왜 그런 줄 아나?"

"자네 머릿속에 들어가 보질 않아서 모르겠군."

"허허…… 싱거운 소리를…… 실력 있는 의사가 많아질수록 정상으로 회복되는 환자가 많아지지. 어쩌면 우리는 이제 물러나야 할 때인지도 몰라."

"수술에 자신이 없는 건가?"

"그건 아니야. 단지 조금 더 미래를 생각해 보고 싶다고 할까."

문득 송명진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죽으면 안 돼. 네가 원했던 미래를 보고 싶으면.'

가라앉았던 야사다의 눈빛에서 광채가 뿜어졌다.

"지금부터 폐동맥 파열 수술과 폐동맥 재건술을 시작한다."

"……."

"조엘 뭐해!"

야사다의 호통이 이어졌다.

수술 밑 작업을 해야 하는 제2보조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조엘, 뭐하냐니까!"

"죄…… 죄송합니다."

조엘이 뒤늦게 소독에 나섰다.

그런데 포셉을 움직이는 조엘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두 눈동자에는 두려움 빛이 역력했다.

"지금 장난치는 거야? 수술을 돕겠다는 거야? 아니면 방해하겠다는 거야!"

"그…… 그게 사실은……."

조엘이 겁먹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저는 못 하겠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수술은 절대로 못 하겠습니다."

"……."

"헤드 치프의 몸에 칼을 댈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까마득해집니다. 제게 처치를 가르쳐 주신 때가 떠올라서 도무지 손이 말을 안 듣습니다."

"바보 같은 자식! 이 남자는 네가 아는 헤드 치프 송이 아니야.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 가는 환자라고."

"그래도 저는……."

"꺼져! 너 같은 건 필요 없으니까."

야사다의 호통에 조엘이 고개를 떨어트린 채 로젯을 나갔다.

"미스터 최가 세컨드로 올라온다. 수술실에서 대기 중인 인턴 다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수술이 재개되었다.

인공심폐기가 돌아가는 가운데 정중흉골 절개술을 통해 송명진의 가슴을 열었다.

곧 좌측 폐가 모습을 드러냈다.

좌측 폐의 일부는 파랗게 멍들었으며, 작은 혈관들이 터져서 피가 흘렀다. 갈비뼈 일부가 폐를 찌른 상태이며 흉벽 손상과 횡격막 파열이 함께 관찰되었다.

"흉관삽관은 제대로 해 놨군. 자네가 했나?"

"네."

"잘했다. 혈흉을 처리하지 않았으면, 닥터 송은 벌써 죽었어. 메스."

야사다가 소독간호사가 건넨 메스를 손에 쥐었다.

그러자 제1보조가 처치할 부위에 피를 흡입하고 소독에 나섰다.

이어지는 첫 번째 처치는 폐절제술.

송명진의 폐 손상이 워낙 심각해서 해당 부위를 도려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스으으으윽.

야사다가 조심스럽게 폐를 잘라 냈다.

주변에 기관지와 혈관 등이 있었기에 손놀림이 신중했다.

텅!

침착한 처치 속에 파열된 폐가 곡반으로 떨어졌다.

'역시 시간이 문제겠지.'

야사다는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하고 수술과정을 단축할 수 있는 과정을 떠올렸다.

수술이 길어지면 송명진이 견디지 못한다.

그는 이미 일반외과에서 한 번 수술을 받았으며, 흉부외과 수술 후 신경외과 수술까지 받아야 한다.

"올리브. 미스터 최."

"네!"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와. 내가 가진 걸 전부 보여 줄 테니까."

야사다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 * *

수술용 참관실.

막 수술을 끝낸 스미스, 그리고 루카스가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야사다가 독기를 품었군."

"저건 거의 폭주 수준인걸?"

두 사람은 야샤다의 처치를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야사다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른 처치를 하고 있었다. 언뜻 보면 어린아이가 멋대로 손을 움직이며 의사 흉내를 내는 듯한 모습이다.

다만 아이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가 환자에게 집도한다는 점.

처치가 완벽하다는 점이다.

"뭐, 이해는 가는군. 닥터 송과 가장 친한 사람이 야사다니까 말이야."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미안하네. 자네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건네는 꼴이 되고 말았어."

"괜찮아. 자네와 야사다가 수술시간을 많이 단축해 줬어. 이만하면 사실 축복 수준이지."

"그래. 자네만 믿네."

스미스가 루카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때마침 인공심폐기사가 인공심폐기를 이탈시켰다.

네 시간은 걸려야 할 흉부외과 파트 수술이 고작 한 시간 만에 끝났다.

"이젠 내 차례군."

"행운을 비네."

"미안하지만 행운 따위는 필요 없어. 난 행운도 신도 믿지 않아. 내가 믿는 건 오직 내 두 손뿐이야."

뚜두두둑.

루카스가 목을 꺾으며 수술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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