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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44화 (243/407)

레전드 (3)

"네."

카터의 질문에 김두진이 설명을 덧붙였다.

조금 전의 연주는 즉흥곡으로 어제 최기석을 만났을 때의 기분과 오늘 기분을 표현한 것이라고 답했다.

"근데요. 아저씨, 혹시 카터 아저씨 아니에요?"

"날 아니?"

"네! 저 아저씨 연주 엄청 좋아해요."

김두진이 방방 뛰며 말하자 카터가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두 사람이 피아노를 주제로 긴 대화를 이어갔다.

"최 선생님.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

"아주 잘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최기석은 씽긋 웃으며 임진희의 질문에 답했다.

두진이에게 일부러 연주를 시킨 이유와 파커를 만나게 한 이유까지 말이다.

이에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홀에서 너무 많이 떠든 것 같군. 괜찮으면 카페에서 계속 이야기를 할까?"

"네! 저는 좋아요! 엄마도 좋지?"

"당연하지."

"그럼 세 분이 좋은 대화 나누시기 바랍니다.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최기석은 일행과 작별 인사하고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오늘의 만남은 김두진과 파커, 서로에게 이득이다.

김두진에게는 음악적인 영감과 자극을 줄 것이고, 파커에게는 재활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리라 의심치 않았다.

'인연이라는 건 대단하구나.'

최기석은 두 사람의 만남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 피아니스트와 재능의 싹을 틔우고 있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메이죠에서 만날 줄이야.

이윽고 도착한 응급실.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게시판 앞이다.

구조 팀 일을 시작한 이유가 상점이었기에 평가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게시판에는 전과 마찬가지로 저번 주 활동에 대한 수치가 적혔는데, 그는 이번에도 1등을 달성하는 위염을 토했다.

2등 및 3등과의 점수 차이는 무려 3배.

실로 압도적인 수치다.

구조 팀 일에서 1등을 유지한다면, 하이어 시스템 미션에 목을 매달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왔나?"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파커가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미스터 최, 저번 주 성적도 독보적이더군. 아무래도 구조 팀에 적수가 없는 모양이야?"

"아닙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우리 팀 스태프들의 도움도 컸고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최기석이 입을 열었다.

저번 주에 생긴 궁금증을 풀어 볼 시간이 찾아왔다.

"과장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지?"

"구조 팀 의사별로 환자 응급도에 차이가 있던데,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호오, 그걸 벌써 파악했단 말이지. 눈썰미가 좋은데?"

파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유야 간단해. 사람이 제각기 다르듯, 의사도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다르단 말이야. 처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위급한 환자를 맡길 수 있겠나?"

"……."

"당연히 실력 있는 사람이 더 응급한 환자를 보는 게 맞아. 미스터 최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른가?

"아닙니다."

최기석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다만 벌써부터 네 능력은 여기까지야라고 선을 그으면, 성장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 노. 노."

파커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지. 과소평가 받는 게 억울하면, 본인이 치고 올라와야 해."

"감히 한 말씀 드리자면 과장님은 병원과 상급자의 역할을 너무 좁게 평가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의사 개인의 문제로 넘긴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의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의견이군. 미스터 최가 한 말이니까 그냥 넘어가겠어. 자네는 명실상부 구조 팀의 에이스니까 말이야."

"……."

"하지만 자네가 나락에 빠진 순간, 조금 전에 한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겠지."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맞부딪쳤다.

냉랭한 분위기를 감지한 주변 스태프들은 두 사람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오늘도 수고하라고."

최기석은 응급실을 나와 대기 중인 구조 1팀 구급차로 향했다.

본능이 말해 주고 있었다.

파커는 지독하게 위험한 인간이라고.

"닥터 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구조 1팀 스태프들이 구급차 바깥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최기석은 스태프들에게 인사한 후 스칼렛이 건네는 캔 커피를 받았다.

"잘 마실게요."

"오늘은 날씨가 흐리네요. 금방 비가 올 것 같아요."

스칼렛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바람도 제법 쌀쌀하게 불고 있었다. 언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다.

"그럼 오늘은 출동이 줄겠군요."

찰리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향했다.

"닥터 최. 다른 팀 구조사들하고 이야기해 봤는데 우리 팀 출동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응급실 과장님이 저를 지나치게 예뻐하고 있거든요. 아마 그 때문일 겁니다."

"그 과장님 남자 아닙니까?"

"맞아요."

"그다지 바람직한 사랑은 아니군요. 조만간 거절하는 게 좋겠어요."

찰리의 농담에 최기석을 비롯한 스태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잡담이 끝났다.

일행은 필요한 도구를 확인한 후 구급차에 올라탔다.

콜이 오는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최기석은 여유 시간에 상태창을 살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P.

P다.

현재 그가 보유한 P.

P는 49,500 P.

P로 조만간 레전드 아이템, 시간을 넘어서를 사용할 수 있었다.

P.

P를 모으는데 걸린 시간이 2년이라는 걸 고려하면, 아이템이 최초의 레전드 등급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 효과는 기대할 만할 것이다.

다음으로 살핀 것은 한계의 돌.

한계의 돌은 스킬 돌파에 필요한 아이템인데 총 10개를 보유 중이다.

문제라면 스킬 돌파 방법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문득 풀먼이 떠올랐다.

하루아침에 폐암 4기 환자가 되어 버린 그는 과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저기 웬 애가 있네요."

찰리가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응급실 입구와 가까운 곳에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자리를 지킨 채 멀뚱멀뚱 주변을 훑었다.

아무래도 부모님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최기석은 응급차에서 내려 아이에게 다가갔다.

"안녕, 나는 여기 병원 의사 선생님이야. 친구는 이름이 뭐니?"

"엘린이요. 다섯 살!"

엘린이 씩씩하게 대답하며 손바닥을 활짝 펼쳤다.

그 귀여운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엘린. 지금 부모님이 어디 있는지 모르지? 선생님이 부모님 찾아 줄 테니까 같이 가자."

그의 말에 엘린의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났다.

엘린은 최기석을 눈치를 보다가 결심했다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요!"

예상치 못했던 매몰찬 거절, 최기석은 난감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럼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부모님 보고 싶지 않아?"

"안 돼요! 엄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했어요."

"선생님 따라가면 아이스크림 사 줄게. 어때?"

"아이스크림이요?"

"그래. 아주 크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사 줄 게. 아이스크림 먹고 있으면, 선생님이 방송으로 부모님 찾아 줄 거야. 그럼 엘린도 좋지?"

"헤에…… 좋아……."

엘린이 입을 활짝 벌렸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완전히 무장해제 된 모습.

아이들 유혹하는 데는 먹을 것만 한 게 없다.

"자, 선생님이랑 가자."

엘린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엘린이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안 돼요!"

"왜? 방금 좋다고 했잖아."

"안 돼요! 저리 가요!"

엘린이 좀 전과 달리 새침한 얼굴을 했고, 최기석은 한숨 쉬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아이스크림 말고 다른 거 먹고 싶어? 그럼 과자 사 줄까? 선생님이 맛있는 감자 칩 사 줄 게."

"헤에…… 좋아……."

엘린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꼭 과자 먹으러 가는 거다."

"네."

간신히 엘린을 달래서 홀로 가려는 순간 엘린이 재차 그의 손을 뿌리쳤다.

"안 돼요!"

"자꾸 왜 그래. 선생님이랑 가기로 약속했잖아."

"안 돼요!"

엘린은 계속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고, 급기야 그의 모든 유혹을 뿌리쳤다. 과자도, 아이스크림도, 피자도, 치킨도 안 돼요라는 한 마디에 반사되었다.

"하아…… 미치겠네."

최기석이 찰리를 향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찰리는 그저 배꼽을 잡고 웃기 바빴다.

팽팽한 대립 속에 한 쌍의 부부가 황급히 이쪽으로 달려왔다.

"엘린! 어디 갔었어!"

"엄마, 아빠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지?"

"엄마!"

엘린이 여성의 품에 안기면서 상황이 종료되었다.

최기석은 부부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구급차로 돌아왔다.

지이이이잉.

때마침 상황실에서 전화가 왔다.

"구조 1팀입니다."

[베이크 스트리트에 있는 한 주택에서 자살 환자가 발생했어요. 지금 바로 출동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찰리, 바로 출동하죠."

최기석이 통화를 끊고, 찰리를 응시하자 찰리가 휘휘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진짜 이럴 거예요?"

"장난이잖아요. 장난."

찰리가 피식 웃으며 구급차를 몰았다.

쏴아아아아아.

구급차가 도로로 나서자 장대비가 쏟아졌다.

순간 최기석은 심장이 옥죄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

심장이식의 부작용은 아니고,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육감의 신호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통증.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건지…….

이윽고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최기석은 처치 도구를 챙겨서 연립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2층에 도착하자 복도 끝에 있는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선생님, 여기요!"

한 중년 여성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복도를 가로질러 현장에 도착하자 한 남자가 소파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겉보기에는 편하게 잠든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남자는 숨을 쉬지 않았으며 맥박이 없었다.

체력: 2/10

주 증상: 호흡곤란 / 심정지

아픈 부위: 폐 / 심장

진단명: 호흡성 쇼크 / 심장성 쇼크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자살 기도

가족력: 없음

주의 요소: 벤조디아핀 계열의 약물 과다 복용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피자 환자는 호흡성 쇼크와 심장성 쇼크를 앓고 있었다.

특이사항으로 과다 약물 복용이 있었다.

'저건가?'

그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있는 약통에 머물렀다.

아무래도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자살시도를 한 게 아닌가 싶었다.

"후아, 매번 느끼는 거지만 닥터 최는 의사가 아니라 마라톤 선수 같아."

"하아…… 하아…… 진짜. 못 쫓아가겠다."

뒤늦게 스태프들이 현장에 합류했다.

"찰리와 그렉은 제세동기 준비해 주세요. 스칼렛은 환자에게 활성탄 투여해 주시고. 플루마제닐 IV로 연결하세요."

"플루마제닐이요? 이 환자 벤조디아핀 계열에 수면제를 먹은 건가요? 그걸 어떻게 알죠?"

스칼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물 확인해 봤어요. 그러니까 빨리!"

최기석의 지시하에 처치가 바쁘게 이뤄졌다.

살려야 한다 스킬과 각성 CRP 버프를 받은 채 시행한 심폐 소생술.

적절한 타이밍의 제세동기 사용 및 약물 과다 복용 시 필요한 정확한 처치.

이로 인해 환자의 바이탈은 금방 정상으로 돌아왔다.

환자를 싣고 클리닉으로 복귀하는 길, 찰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네요."

"뭐가요?"

"사실 환자가 서너 명은 있을 줄 알았거든요. 구조 팀 활동 이후 쭉 그래 왔으니까. 그런데 비가 와서 그런지 닥터 최의 환자복도 줄어든 것 같군요."

"그랬으면 좋겠……."

최기석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육감이 보내는 통증이 다시 그를 덮쳤다.

쿠르르르릉.

때마침 퍼지는 요란한 천둥소리.

"어디 아픈 거 아닙니까? 아니면 다쳤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으니까."

최기석은 찰리를 안심시키며 전방을 바라보았다.

이 불안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잠시 후 환자를 응급실에 넘기고 다시 응급대기에 나섰다.

쏴아아아아. 쿠르르르릉.

빗줄기가 거세졌으며 천둥은 더욱 자주 쳤다. 음산한 것이 당장 어디에선가 괴물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케이튼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어요. 승용차와 대형 트럭이 충돌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이 통화를 끊기 무섭게 찰리가 응급차를 몰았다.

'대체 왜?'

현장이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아파져 왔다.

처음 겪어보는 통증에 최기석은 어찌할 줄 몰랐다.

"저기 있네요. T.

A(교통사고) 장소. 저거…… 탄 사람이 살아 있으려나?"

찰리가 승용차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승용차는 종잇장처럼 찌그러진 채 신호등에 처박혀 있었다. 트럭에 한 번 부딪치고 밀리면서 신호등에 다시 부딪힌 모습이다.

"닥터 최, 뭐해요? 닥터 최?"

찰리가 구급차를 세우고 최기석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런데도 최기석은 돌처럼 굳은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찰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아……."

찰리의 말에 최기석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미친 듯이 승용차를 향해 달렸다.

스승 송명진의 차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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