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40화 (239/407)

첩첩산중 (5)

C 로젯 앞.

모야모야병 수술을 앞둔 스태프들이 정렬해 있었다.

본격적인 수술에 앞서서 루카스가 직접 최종 브리핑에 나섰다.

"다들 알다시피 오늘 수술은 만만치 않다. 소아 뇌혈관 수술을 무수혈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꾸준히 호흡을 맞춰 왔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

"지금까지 흘린 땀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

"네!"

루카스가 브리핑을 이어 나갔다.

오늘 있는 모야모야병 수술은 복합 혈관 문합술로 진행된다.

소아의 경우 주로 간접 혈관 문합술을 펼치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복합 혈관 문합술의 경과가 가장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벅. 벅. 벅. 벅.

브리핑이 끝난 후 스크럽이 시작됐다.

최기석은 솔로 팔을 문지르면서 수술 과정을 되새김질했다.

가슴 한쪽이 간질간질한 것을 보면, 물아일체(수술 동영상 속 스태프의 능력 흡수)가 발동할 것 같았다.

스태프와 환자가 동시에 로젯으로 들어갔다.

마취의가 전신마취를 하는 가운데, 스태프들이 각자 제 일에 나섰다.

"저는 셀 세이버 준비하겠습니다."

최기석이 보고 후 바쁘게 움직였다.

셀 세이버란 수술 중 흡인한 피를 세척하여 환자에게 되돌리는 장치로, 무수혈 수술에 꼭 필요하다.

숨 가빴던 준비가 끝나고, 스태프들이 각자의 위치에 섰다.

"지금부터 모야모야병 수술에 대한 복합 혈관 문합술을 시작한다."

루카스의 고갯짓에 최기석은 정리된 베라의 머리를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메스."

루카스가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아 피부 절개에 나섰다.

한 방울의 피도 아쉬운 상황이기에 절개조차 신중하게 이뤄졌다.

드드드드득.

제1보조 신디가 드릴로 베라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었다.

페인킬러 덕분인지 손놀림에 이상은 없어 보였다.

부디 수술이 끝날 때까지 지금 같은 처치가 이어져야 할 텐데…….

두개골을 드러내자 머릿속 모습이 드러났다.

"뇌 견인기."

"네!"

최기석은 인턴과 함께 베라의 머리 위로 뇌 견인기를 씌웠다.

"이제 수술 부위에 접근한다."

루카스가 미세 현미경을 응시하며 포셉을 움직였다.

그의 손놀림은 거침이 없었다.

각종 뇌신경과 혈관들이 즐비한 머릿속을 제집처럼 파고들었다. 최기석이 지켜본 바에 따르면, 수술 부위에 접근하는 솜씨만큼은 루카스가 매튜보다 한 수 위다.

치이이익.

최기석은 루카스를 지켜보며 필요한 타이밍에 석션기로 피를 빨아들였다.

심지어 거즈를 쓰는 게 좋은 상황에서도 말이다.

무수혈 수술을 진행하는 만큼, 피를 최대한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다.

"혈소판, 헤마토크리트 수치 정상입니다."

"잘했어. 앞으로도 주의 깊게 지켜보도록."

최기석의 보고에 루카스가 미소 지었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혈액과 관련된 수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기석이 이를 파악하고 미리 언급해 주니 마음이 놓였다.

긴 작업 끝에 수술 부위에 도착했다.

'직접 보니 더 심각하네.'

최기석은 수술 부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야모야병이란 뇌 대동맥의 일부가 점점 좁아지다가 막히는 질환으로, 막힌 혈관에서 비정상적인 혈관들이 자라난다.

이 질환을 처음 본 일본 의사가 비정상적인 혈관들이 모락모락 일어난 것 같다고 하여, 모야모야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베라의 경우 모야모야병이 5단계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손볼 곳이 많다는 뜻이다.

"시작하지. 5-0 Dexson(흡수성 봉합사)."

끼기기기긱.

루카스가 니들홀더로 바늘침을 조이는 순간, 신디가 코를 연신 찡긋거렸다.

보조하는 동안 통증이 심해진 모양이다.

최기석은 알겠다는 표시로 헛기침하고, 신디의 보조를 준비했다.

드디어 복합 혈관 문합술의 막이 올랐다.

오늘 수술은 CABG(관상동맥 우회술)와 흡사한데, 현재 좁아져 있는 중대뇌동맥에 천측두동맥을 연결해 주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좁아진 혈관에 직접 피를 공급한다.

스으으으윽. 치이이익.

최기석이 중대뇌동맥을 메스로 가르자 붉은 피가 흘렀고, 신디가 석션기로 피를 흡수했다.

두 사람은 호흡을 맞춰, 천측두동맥에도 같은 처치를 했다.

'뭐하는 거지?'

루카스는 미세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두 사람을 응시했다.

퍼스트가 할 일은 세컨드가, 세컨드가 할 일을 퍼스트가 하고 있었다.

연습 때와는 명확하게 다른 모습이다.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일단 참았다.

처치 자체는 흠잡을 데 없이 깔끔했기에.

출혈이 멎은 후 봉합이 시작됐다.

루카스는 환자의 가늘고, 얇은 두 동맥을 봉합사로 문합해 나갔다.

봉합침이 한 번만 빗나가도, 결찰이 조금만 강해도, 혈관이 파손될 수 있는 위태로운 순간.

루카스의 손놀림이 오히려 빛났다.

그는 섬세하게 봉합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봉합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수술 부위가 피로 물들었다.

모야모야병으로 생긴 가성 동맥이 터진 것이다.

'이런!'

최기석은 혈관겸자로 가성 동맥 상단 부분을 묶고, 양손으로 석션에 나섰다.

그의 순발력 있는 처치로 출혈이 심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휴우…… 간 떨어질 뻔했군. 셀 세이버에 남은 혈액량은?"

"남은 양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출혈이 한 번만 더 발생하면, 대처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무수혈만 아니었으면 아무 문제 없는 건데."

루카스는 셀 세이버를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봉합이 잠시 중단된 가운데, 최기석이 혈관겸자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소량의 피가 찔끔 흐르다가 멈췄다.

다행히 지혈에 성공했다.

"출혈이 멎었으니 봉합을 계속하지."

"네!"

최기석은 문합 중인 혈관이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 주었다.

그가 흔들림 없이 혈관을 고정한 덕분에 루카스의 봉합에 속도가 붙었다.

"이거 재미없는 그림이군."

수술을 지켜보던 파커가 얼굴을 구기며 말을 이었다.

"뇌종양외과 전문인 자네의 생각은 어때?"

"아직은 몰라. 조금 더 지켜봐야지."

"중대뇌동맥과 천측두동맥의 문합이 끝나면, 사실 수술도 끝나는 거 아닌가?"

"맞는 말이야. 하지만 수술에는 항상 돌발 상황이 벌어지게 마련이지."

매튜는 담담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응시했다.

방금 전 모니터에 셀 세이버가 잠깐 비쳤는데 남은 혈액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출혈이 더도 말고, 딱 한 번만 더 발생하면 수술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귀찮은 녀석. 너만 없었으면.'

매튜의 시선의 문득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그는 제1보조인 신디가 할 일을 상당수 처리하고 있었다.

신디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최기석이 아닌 다른 이가 제2보조였다면 수술이 더디게 진행됐을 텐데…….

굳이 파커의 부탁이 아니더라도 빨리 그를 잘라 내야겠다는 생각이 굳건해졌다.

찰칵!

경쾌한 가위 소리가 로젯에 퍼졌다.

드디어 힘겨웠던 문합이 끝났다.

루카스는 포셉으로 문합 부위를 눌러보고, 메틸렌 용액으로 누수를 확인했다.

문합이 깔끔하게 끝났다.

이제 수술 부위만 닫아 주면 상황종료다.

"다들 들뜨지 말고, 천천히 마무리한다. 알았지?"

"네."

스태프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런데 수술 부위를 닫으려는 찰나 마취의가 비보를 전달했다.

"환자 두개내압 상승 중입니다. 혈압과 맥박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루카스는 입술을 깨물며 미세 현미경을 살폈다.

수술은 완벽했는데 대체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뇌를 살피는 도중에도 환자의 바이탈은 점점 떨어져만 갔다.

"과장님. 윌리스 써클에 출혈이 있습니다."

"윌리스 써클에?"

최기석의 말에 루카스는 윌리스 써클을 살폈다.

과연 윌리스 써클에 있는 한 동맥의 분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복합 혈관 문합술은 막힌 혈관에 피를 공급하는 수술이다.

갑자기 피가 통하면서 일부 혈관에 과도한 피가 몰려 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뇌압이 계속 떨어집니다. 현재 뇌압 60mm H2O, 환자가 과호흡 증상까지 보입니다."

"만니톨 투여하고, 이산화탄소 분압은 28mmHg 이상으로 유지 시켜요."

"알겠습니다."

"나는 출혈을 잡을 테니까, 미스터 최와 신디는 감압술에 들어가요."

"네!"

루카스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삐이이! 삐이이! 삐이이!

위태로운 소리가 로젯에 퍼졌다.

셀 세이버에 저장된 혈액이 다 떨어진 것이다. 아직 필요한 처치가 남았는데 말이다.

루카스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셀 세이버를 응시했다.

최후의 보루가 무너진 상황, 당장 수혈하지 않으면 환자가 위독하다.

"과장님, 감압술 끝났습니다. 출혈 부위는……."

"젠장! 석션을 해도, 소작기를 써도 지혈이 안 돼!"

루카스는 실솜으로 출혈 부위를 압박하고 있었다. 때로는 직접압박법이 지혈에 효과적인 때가 있기에.

"죄송하지만 잠깐만 바깥에 나갔다 오겠습니다."

최기석이 양해를 구하고 로젯으로 나갔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스태프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셀 세이버의 혈액 저장량이 바닥난 지금, 대체 어떤 처치가 의미가 있을까.

지이이이잉.

이윽고 로젯문이 열리고 최기석이 복귀했다.

그의 손에는 블러드 팩이 들려 있었다.

"미스터 최. 그건?"

"과장님, 이대로 환자가 죽는 걸 더 볼 수 없습니다. 곧바로 수혈에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루카스는 블러드 팩을 다는 최기석을 말리지 않았다.

어린 환자가 수술이 실패한 것도 아니고, 수혈을 못 받아서 죽어야 한다니 그건 너무 가혹하다.

이윽고 수액 세트를 타고, 붉은 피가 혈관에 흘러들었다.

이어진 응급 처치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수술은 종료되었다.

* * *

그날 오후.

매튜는 휘파람 불며 병동 복도를 걸었다.

루카스의 집무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멍청한 자식.'

풀 죽어 있을 루카스를 떠올리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전에 있었던 루카스의 수술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술 자체는 성공했지만, 수혈을 했기 때문이다.

수술 동의서에 무수혈 항목이 명시된 만큼, 이것은 명백한 집도의의 수술 실패다.

보호자가 수혈했다는 사실로 의료소송을 걸어도 할 말이 없는 셈이다.

똑. 똑. 똑.

노크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루카스는 집무실 소파에 기대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네가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긴. 자네를 위로해 주려고 왔지."

매튜는 루카스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러게 내가 진작부터 말했잖아. 괜히 무수혈 수술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자네는 스스로 무덤을 판 거야."

"뭘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군."

루카스가 차갑게 웃었다.

"수술은 성공했어.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지."

"이 봐. 참관실에 있던 수많은 스태프들이 수혈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그런데도 그렇게 자신만만한 건가?"

매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아…… 이제야 자네 생각을 알 것 같군. 자네는 보호자를 속일 생각인 거야. 수혈은 했지만 수혈한 사실을 보호자에게 숨기려는 거지."

"……."

"천하의 루카스도 여기까지 타락한 건가.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물불 안 가리던 자네가 말이야. 하지만 나는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걸세, 자네가 수혈한 사실을 숨긴다면 내가 직접 보호자에게 수혈 사실을 말하겠어."

"원한다면 해."

루카스가 배짱을 부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맞부딪치는 가운데 매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비록 얼마 전에 자네와 다퉜지만, 나는 아직 자네를 생각하고 있어. 헤드 치프 자리만 양보하게. 그럼 오늘 일은 조용히 넘어갈 테니."

"아까부터 계속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수술은 성공했고, 난 자네에게 헤드 치프를 양보할 생각이 없어. 이유가 뭔지 아나?"

"좋아. 그 잘난 입으로 설명해 보시지."

"수술 막바지에 수혈한 피는 환자의 피야. 즉 자가수혈이란 말이지."

"뭐라고? 자가수혈?"

"그래. 미스터 최가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서 전부터 환자의 피를 모아 뒀지, 이례적인 일이라 나도 생각 못 했어. 보통 무수혈을 원하는 보호자들은 자가수혈까지 거부하니까."

루카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협박은 아주 잘 들었네. 자네와 선 긋기를 한 게 옳았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지는군."

"……."

"더 할 말이 없으니 그만 꺼져 주겠나?"

루카스의 손짓에 매튜는 허망하게 집무실을 나왔다.

이윽고 그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 빌어먹을 자식. 또 나를 엿 먹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