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36화 (235/407)

첩첩산중 (1)

험난했던 일과가 끝났다.

인수인계를 마친 최기석은 곧바로 보안실을 찾았다.

병실의 무법자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CCTV를 살펴볼 계획이다.

간호사 카렌은 이미 CCTV를 확인했으며 아무 단서도 얻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현재 기댈 수 있는 건 CCTV밖에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똑. 똑. 똑.

노크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선생님이 여기는 웬일로?"

"안녕하세요. 신경외과 레지던트 기석 최입니다.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 신경외과요? 얼마 전에 간호사 한 분이 내려왔는데."

보안 요원 한 명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병동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아직 해결을 못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카메라 위치랑 보고 싶은 날짜와 시간대를 적어 주세요."

최기석이 종이를 건네자 보안요원이 이를 훑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것부터 확인해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이윽고 한 모니터에 신경외과 병동의 모습이 비쳤다.

병동에 설치된 CCTV는 총 세 대.

한 대는 스테이션을, 나머지 두 대는 병동 양쪽 끝부터 복도 중앙부를 비추고 있었다.

병실의 경우 환자의 사생활 침해 문제가 있어서 CCTV를 설치할 수 없었다.

"으음……."

최기석은 영상을 보며 턱을 쓸어내렸다.

카렌이 라운딩을 하던 도중 한 병실로 급하게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후 그녀는 스테이션에서 수액 세트를 챙겨서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수액줄이 빠진 것을 발견하고, 다시 연결하는 모습이었다.

"이거 뒤로 볼 수 있나요?"

"뒤로 감기는 안 되지만 구간 반복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가기 한 시간 전을 빨리 돌려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다시 모니터에 집중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 병실에 들어간 사람은 총 네 명.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와 다른 병실의 환자, 카렌의 동료 간호사와 미카엘이다.

수액줄을 빼려면 병실에 들어가야 하니, 이 네 명 중에 범인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됐습니다. 다른 영상 보여주세요."

최기석은 그동안 병실에서 있었던 사건들의 CCTV 영상을 전부 살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사건별로 병실에 들어간 인물들이 조금씩 달랐다.

문득 이 사건은 동일인물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영상을 휴대폰에 담아갈 수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죠.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병실에 출입한 인원들 리스트만 얻은 채 기숙사로 돌아왔다.

침대 등받이에 기댄 채 리스트를 내려다보았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벌였을까.

최기석은 사건을 근본적으로 파고들었다.

과거 우연히 읽은 범죄학책에서는 범죄의 동기를 세 가지로 나눴다.

하나는 감정에 의한 우발적인 범죄.

둘째는 본인의 이익을 얻기 위한 계산한 범죄.

셋째는 미치광이가 벌이는 끔찍한 범죄다.

이번 케이스의 경우 두 번째와는 무관할 가능성이 컸다. 수액줄을 빼고 자는 환자를 때린다고 얻을 이익은 없기에.

그렇다면 남은 건 첫 번째와 세 번째 케이스라는 소리인데…….

고민하던 중 다시 리스트를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떠올리지 못했던 접근법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맞아! 그걸 잊고 있었구나.'

최기석은 서둘러 병동으로 향했다.

* * *

그날 저녁.

미카엘은 휴게실에서 빵으로 허기를 때우고 있었다.

각종 처치와 스크럽으로 식사를 제때 챙기지 못했다.

"에휴. 아직도 9개월이 남았네."

남은 수련 기간을 손으로 세어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시간을 건너뛰어 레지던트가 되고 싶었다.

그러면 적어도 환자와 간호사에게 치이는 일은 줄어들 테니까 말이다.

식사를 마친 후 휴게실을 나왔다.

밤이 깊어지면서 병동 복도는 한산했다.

몇몇 환자들은 벌써 취침 등만 켜고 잠을 청했다.

미카엘은 주변을 살피다가 근처 2인실로 들어갔다.

환자 두 명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고 등과 TV는 켜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고 있는 한 환자에게 접근했다.

푸우우욱.

수액줄이 빠지면서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오늘도 완전범죄다.

조용히 병실을 나와 복도를 걷는데 맞은편에서 최기석과 카렌이 다가왔다.

"미카엘. 우리한테 할 말 없어요?"

"네? 무슨 할 말이요?"

"시치미 떼지 마! 이미 다 확인했으니까."

공격적으로 변한 최기석의 말투에서 미카엘은 무언가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저는 볼일이 있어서 그만 가 볼게요."

"가긴 어딜 가!"

최기석이 거칠게 그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정말 왜 이러시는 거죠? 아무리 인턴이라고 해도 너무 막 나가는 거 아닙니까?"

"막 나가는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안 그래?"

"제가 막 나간다고요? 어이가 없네요."

"환자 수액줄 빼고 도망친 거, 자는 환자 몰래 때리고 도망친 거. 이런 게 막 나가는 거 아닌가?"

그의 지적에 등줄기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머릿속은 백지가 되었다.

"저…… 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가 됐습니다. 그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를 이유가 없어요."

"아니, 있어. 왜 알면서 모른 척하실까?"

최기석이 빈정거리며 말을 이었다.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ABGA며, 관장이며, 드레싱이며 전부 네가 처치했다는 점이지. 그 과정에서 환자가 처치에 불만을 가져 컴플레인을 걸었고."

"……."

"넌 그게 못마땅해서 지금까지 환자에게 장난을 쳤어. 내 말이 틀린가?"

"이상한 소설 쓰지 마세요. 저는 절대 아니니까요."

"계속 발뺌할 줄 알았어."

최기석이 고갯짓하자 카렌이 그가 들어갔던 병실에서 휴대용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다.

카메라를 작동하자 미카엘이 수액줄 뽑는 영상이 그대로 나왔다.

"이 환자 오늘 네가 ABGA 실패했던 환자였어. 그래서 똑같은 짓을 할 거라 예상했지."

"……."

"어디, 그 잘난 입으로 다시 한 번 떠들어 봐. 네가 무죄라고."

최기석의 지적에 미카엘이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죄……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화를 못 이겨서 한 번 했는데, 그다음부터는 이런 식이 아니면 감정이 안 풀려서."

"인턴은 배우는 시기야. 지금이 오히려 실수하면서 배우기 좋은 때라고, 그런데 그걸 못 이겨서 환자에게 장난을 쳐?"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카엘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기묘한 빛에 물들어 있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그는 말을 하면서 재빨리 카렌에게 달려들었다.

영상이 담긴 카메라만 없으면 오늘 일을 묻을 수 있다.

카메라만 없으면!

뻗은 손이 카메라에 닿기 직전, 최기석이 그의 손을 쳐 내고 카렌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 같은 인간이 쉽게 사과할 리 없지."

"아…… 제발, 닥터 최. 제발…… 잘못했어요. 저 메이죠에서 쫓겨나면 안 돼요."

미카엘이 무릎을 꿇고, 최기석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하지만 그를 내려다보는 최기석의 시선은 얼음장보다 차가웠다.

"뻔뻔하군. 아직까지 용서를 구하는 건가?"

"네, 부탁드립니다. 이번 일만 눈감아 주신다면 미스터 최의 말은 뭐든지 들을게요."

미카엘이 애걸복걸하는 사이 카렌은 스테이션으로 이동해 카메라를 꼭꼭 숨긴 후 돌아왔다.

"뭐, 이렇게까지 애원한다면 구원해 주는 수밖에 없겠네."

"네? 닥터 최!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자고요?"

카렌이 놀란 토끼 눈을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래. 미카엘 내가 널 구원해 줄게. 이 지옥 같은 인턴생활에서 말이야."

최기석은 차갑게 웃으며 그를 등졌다.

* * *

그로부터 이틀 후.

미카엘은 휴대용 카메라에 담긴 영상으로 인해 메이죠 클리닉에서 쫓겨났다.

그뿐만 아니라 병원 측과 환자에게 고소를 당했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

최기석은 미카엘에게 손톱만큼의 동정심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앓던 이를 뺀 듯한 후련함을 맛보았다.

그리고 찾아온 셋째 날 오전.

최기석은 모처럼 차를 몰고 메이죠를 벗어났다.

차가 신호에 멈춘 사이, 상태창을 띄워 새로운 보상을 확인했다.

병실의 무법자 임무를 완수하면서 얻은 보상이다.

NEW [스킬 돌파]

- 스킬의 효율을 극대화하여 새로운 효과를 추가합니다.

- 스킬 돌파에 필요한 재료: 한계의 돌.

- 한계의 돌을 50개 이상 모으면, 스킬 돌파가 가능합니다. 단 스킬 돌파 전용 스킬만 스킬 돌파가 가능합니다.

- 현재 보유한 한계의 돌(2/50)

"흐음……."

최기석은 턱을 쓸어내리며 스킬들을 살폈다.

현재 스킬 돌파가 가능한 스킬은 '살려야 한다'와 '난 양손잡이야' 두 가지뿐이다.

어떤 스킬을 먼저 업그레이드시켜야 할까.

고민하던 중 상태창을 끄고, 운전에 집중했다.

필요한 재료를 다 모은 후에 돌파 스킬을 결정해도 늦지 않으리라.

한참 운전해서 도착한 곳은 외곽에 있는 주택가.

최기석은 근처에 차를 세우고, 으리으리한 집 앞에 섰다.

쿵. 쿵. 쿵.

가슴에 손을 올리자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힌 후 벨을 누르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메이죠 클리닉의 기석 최입니다."

"아, 닥터 최군요. 어서 들어와요."

최기석은 그대로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적인 2층 건물 앞으로 잘 정돈된 정원이 펼쳐졌고, 반쯤 열린 차고에는 멋진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역시 대배우가 사는 집은 차원이 다르다고 할까.

"닥터 최. 반갑습니다."

현관문이 열리고, 라빈 윌리엄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처럼의 오프, 최기석은 퇴원한 라빈 윌리엄스에게 초대를 받았다.

"네. 반갑습니다. 라빈의 초대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정말 영광입니다."

"무슨 소리를, 닥터 최를 초대할 수 있어서 내가 영광이에요.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최기석은 라빈과 1층 소파에 마주 앉았다.

때마침 라빈의 부인이 다과를 준비해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내 아내, 캐서린이에요. 예전에 병동에서 한 번 봤죠?"

"그럼요. 워낙 미인이셔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칭찬 감사해요."

캐서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간단한 소개가 끝난 후 대화가 시작되었다.

"라빈. 치료는 잘 받고 있나요?"

"얼마 전 신경정신과에서 퇴원했어요. 지금은 외래 진료를 보는 중이죠. 군말 없이 퇴원시켜주는 걸 보면, 처음보다는 멀쩡해졌나 봅니다."

라빈이 농담조로 말했다.

"다행이네요. 혹시 라빈이 치료를 못 받아들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닥터 최가 예전에 말했잖아요. 자신이 아픈 걸 깨달아야 그때부터 치료가 시작된다고, 그래서 배우라는 자존심을 다 내려놓았어요.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졌죠."

"잘하셨습니다."

최기석은 라빈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크론병은 완벽하게 나았다.

우울증 치료 역시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치료를 받으면서 코카인도 완전히 끊었습니다. 이제 내 걱정은 안 해도 돼요."

"걱정은 무슨 걱정이요. 전 처음부터 라빈을 믿고 있었는데."

"하하하.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군요."

라빈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더 좋은 소식을 말해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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