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팀에서 (6)
"전신마취 끝났습니다."
마취의의 말에 매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금부터 뇌종양 절제 수술을 시작한다."
"네."
제2보조인 칼이 환자의 먼저 정리해 둔 환자의 머리를 소독하고 방포를 씌었다.
"메스."
매튜는 소독간호사가 건넨 메스로 환자의 두피를 조심스럽게 절개했다.
이후 최기석이 드릴로 절개 부위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득.
기계음이 로젯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절개 부위 인근에 세 개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이 구멍은 두개골 판을 들어낼 지도라고 할 수 있었다.
"계속 가지."
매튜가 구멍을 따라서 두개골을 절제하는 사이 최기석은 미세 현미경을 세팅했다.
'흠 잡힐 짓은 하지 않아.'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매튜가 수술 스케줄까지 조작하며 함정을 팠지만, 정신만 바짝 차리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뇌종양 수술은 처음이지만 비슷한 느낌의 뇌동맥류 수술은 이미 혼자 집도가 가능한 수준이니까 말이다.
"두개골 들어내겠습니다."
칼이 잘라 낸 두개골을 따로 보관하면서 환자의 머릿속이 한눈에 보였다.
"미스터 최. 아까 브리핑 중에 뇌종양이 어느 부위에 있다고 했지?"
"종양의 크기는 3센티미터이고, 뇌간에 위치했습니다."
"그럼 뇌간의 위치는?"
"뇌의 가운데에 있으며, 뇌의 가장 아랫부분에 위치해 있습니다. 더불어 뇌와 척수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며 중간뇌, 다리뇌, 숨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해부학 공부는 열심히 한 모양이군. 그럼 지금부터가 본 게임이라는 건 잘 알겠지?"
"네."
최기석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뇌간 부위의 수술은 다른 뇌 부위 수술보다 몇 배는 어렵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 뇌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원활하지 못하면 신경마비, 뇌출혈 등의 후유증이 발생한다.
"좋아. 그럼 가 볼까? 포셉."
매튜가 처치 도구를 들고, 뇌를 헤집기 시작했다.
최기석은 미세 현미경으로 보는 척하며 용의 눈을 사용했다. 그리고 줌 인 모드로 환자의 뇌를 유심히 살폈다.
용의 눈의 줌 인 모드를 사용하면 미세 현미경보다 훨씬 좋은 시야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자.'
포셉을 양손에 쥐고, 뇌의 신경과 혈관들을 헤쳐 나갔다.
매튜와 함께 수술 시야를 확보하는 작업.
그의 손놀림은 거침없었고, 때로는 매튜를 앞서 나가기도 했다.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를 번갈아 사용하며 완벽한 시야를 확보했던 덕분이다.
시야가 수시로 변해서 어지러웠지만, 꾹 참았다.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매튜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것도 참을 수 있었다.
'뭐지? 이 녀석은?'
매튜는 잠시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최기석을 응시했다.
신경외과에 온 지 채 한 달도 안 된 최기석이다.
그런 그가 펠로우와 맞먹는 수준으로 보조하는 중이다.
아직 시야 확보하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 수준은 상식을 벗어났다.
뇌수술을 하면, 그 누구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신경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환자에게 마비가 올 수 있기에.
그런데도 최기석은 수술을 시작한 후부터 망설임 없는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응급의학과 과장 파커가 그를 탐내는 이유.
그것을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복잡한 뇌 속을 헤치며 수술 부위인 뇌간에 접근할 수 있었다.
종양은 뇌실 부근에 위치했는데, 다행히 전체 절제가 가능한 자리다.
"지금부터 절제를 시작한다. 메스."
메튜는 현미경을 보며 종양 절제에 나섰다.
주변 부위의 전이를 막기 위해서 종양 주변을 넓게 잘라 내는 작업이다.
한편 최기석은 매튜를 위해서 시야를 확보하고, 종양 주변 조직을 꽉 붙잡아 주었다.
다른 써전들과 달리 양손에 능한 그의 깔끔한 보조.
그 덕분에 매튜의 처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런데 절제가 막바지로 향하던 도중 제3뇌실 부근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수술 부위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매튜가 아직 손대지 않은 곳이다.
"과장님! 출혈입니다."
"석션! 난 지금 여유가 없어!"
"네!"
최기석은 석션기로 제3뇌실에서 흐르는 피를 빨아들였다.
출혈량은 많지 않았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불안했다.
"출혈이 멈추지 않습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계속 석션해 봐. 정 안 되면, 보비(전기 소작기) 사용하고."
그의 보고에 매튜가 언성을 높였다.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지시대로 전기 소작기를 사용했지만,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지진 부위에서 슬금슬금 피가 흘러나왔다.
"이제 어쩌죠? 전기 소작기도 소용없는데."
곁에 있던 칼이 매튜의 눈치를 보며 속삭였다.
최기석은 출혈 부위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포셉으로 실솜을 집었다.
그리고 솜으로 출혈 부위를 압박했다.
출혈로 인해 솜이 빨갛게 물들어 갔다.
'대체 왜 이러지?'
솜을 이용한 기초적인 압박법에 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보비를 한 번 더 쓰는 게 좋아 보였다.
텅!
최기석이 솜으로 압박을 계속하는 가운데, 잘린 뇌종양이 곡반에 떨어졌다.
"휴우…… 출혈은 잡았나?"
"네."
"뭐야? 내가 분명 보비를 쓰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매튜는 최기석이 솜 제거하는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보비로 지혈이 멈추지 않아 직접 압박법을 사용했습니다."
"그건 누구한테 배웠지?"
"루카스 과장님이 공부하라고 주신 논문에 나온 방법입니다. 종양 절제가 덜 끝난 상황에서 출혈이 발생하면, 보비보다 직접 압박법이 좋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최기석이 포셉으로 한 부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과장님. 이쪽에 있는 종양도 절제해야 하지 않습니까?"
"제법이군. 숨은 종양까지 확인했을 줄이야. 하지만 이건 절제할 필요 없다. 종양 중에는 절제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도 존재하지."
"그럼 이대로 놔두면 되는 겁니까?"
"방치가 아니라 절제를 하지 않는 것뿐이다. 이건 방사선 치료로 해결할 수 있어."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매튜가 실력 있는 써전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메이죠에서 과장까지 올라오지도 못했겠지만 말이다.
"그럼 마무리 들어간다."
"네!"
매튜의 말에 스태프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윽고 두개골을 덮고, 두피를 봉합하면서 뇌종양 수술이 끝났다.
띠링!
[기초 뇌수술 마스터리가 생성되었습니다(1/1)]
[기초 뇌수술 마스터리는 뇌수술에 관련된 모든 수술에 숙련도를 상승시킵니다.]
[영혼의 눈물 스택이 상승하였습니다(170/700)]
[환자바라기의 효과로 대폭으로 체력을 회복합니다.]
[추가 보너스로 300 P.
P를 제공합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
최기석은 이를 뒤로하고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돌처럼 딱딱했다.
지이이이잉.
수술이 끝나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수술실을 나왔다.
"미스터 최. 나랑 이야기 좀 할까?"
"과장님. 죄송합니다만 환자 상태를 조금 더 확인하고 싶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어. 그런데 아직 확인할 게 있다고?"
"네."
"좋을 대로 해."
매튜가 찬바람을 휘날리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최기석은 미카엘에게 응급 뇌 CT를 부탁하고 의국으로 복귀했다.
잠시 후 모니터에 검사 결과가 떠올랐다.
중대뇌동맥 부근에 혈전이 발생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한 수준은 아니지만, 방치했다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환자가 VIP라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말이다.
타다다다닥.
최기석은 혈전을 방지하기 위해 항응고제 와파린과 몇 가지 처방을 함께 내렸다.
그제야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 * *
그날 오후.
매튜는 집무실에서 밀린 잡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고 말하자 루카스가 나타났다.
"매튜. 대체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다짜고짜 들이닥쳐서 화부터 내는 건가?"
"내가 안 그러게 생겼어? 오늘 있었던 뇌종양 수술, 제1보조로 미스터 최를 썼다면서?"
"아, 그 이야기로군. 일단 앉아서 하자고."
두 사람이 소파에 앉아서 서로를 응시했다. 상대를 향한 시선에 날카로움이 묻어났다.
"자네도 수술 스케줄을 봤으면 날 이해할 거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이해? 어쩔 수 없어?"
루카스가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자네. 지금 나를 바보로 생각하는 건가? 혈관종 수술에 갑자기 레온을 넣었잖아. 오늘 있었던 수술의 수준이라면, 레온이 보조하는 게 옳았어."
"……."
"즉 자네의 행동은 미스터 최를 골탕 먹이려고 했다는 것밖에 안 된다는 거지. 내 말이 틀렸는가?"
"그래. 틀렸어."
매튜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난 그저 미스터 최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레온이 레지던트 1년 차에 했던 것처럼 말이야."
"레온 때는 미리 보조 사실을 알리기라도 했지만, 이번은 아니었어."
"루카스. 진정해. 수술은 무사히 끝났어, 아무 일도 없었다고. 거기다가 미스터 최의 잠재력까지 확인할 수 있었지."
"결과가 좋다고 모든 게 좋은 건 아니야. 만약에 VIP 환자가 죽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야,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쾅!
루카스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매튜. 난 지금 농담 따먹기를 할 기분이 아니야. 이번 일은 미스터 최, 더 나아가서 나를 겨냥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으니까. 내가 무수혈 수술에 실패하길 바라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어. 우린 헤드 치프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잖나?"
매튜의 고백에 루카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헤드 치프가 그렇게 중요한가? 환자의 목숨보다? 자네와 나의 우정보다?"
"그래, 중요해. 난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걸 보고 싶어."
"자네를 평생 함께할 친구라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군."
루카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 자네와 나는 적일세. 헤드 치프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겠어."
"바라던 바야. 헤드 치프쯤 되는 자리를 손쉽게 얻는 것도 재미없는 일이지."
"그래. 두고 보라고."
쾅!
루카스가 세차게 문을 닫고 집무실을 떠났다.
"저 친구를 너무 무시했군."
매튜는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최기석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 정도 이유만 대면 오늘 일을 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루카스는 그 속에 감춰진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찔렀다.
"뭐, 그래 봤자 내 상대는 안 되겠지만."
커피를 마신 후 자리로 돌아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막 수술을 끝내 VIP 뇌종양 환자의 차트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수술 후 환자는 뇌 CT를 촬영했으며 뇌혈전증에 관한 처방을 받았다.
최기석이 먼저 손을 쓴 것이다.
"진짜 여우는 따로 있어."
매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뇌종양 환자의 경우 수술 후 뇌혈전증을 앓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수술 중 발생한 출혈이 딱딱하게 굳어서 뇌혈관을 막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기석은 이미 환자 케어를 완벽하게 끝냈다.
그를 응급의학과로 보낼 작전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셈이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매튜는 손에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