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팀에서 (2)
그날 저녁.
구급 1팀의 앰뷸런스가 클리닉으로 복귀 중이다.
최기석은 석양이 지는 도시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구조 팀 업무 첫날.
일하는 동안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환타 칭호 때문인지, 아니면 응급 출동하는 일이 원래 많은 건지 쉴 시간이 없었다. 출동하고 복귀해서 한숨 돌리면, 다시 출동하는 방식이 반복되었다.
교통사고 처치, 화재사고 처치, 목매단 환자 처치 등등.
그동안 다양한 응급 케이스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오늘은 처치한 환자들 중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최종 복귀하는 길이 가볍기만 했다.
최기석은 상태창을 띄우며 오늘 얻은 보상을 살폈다.
우선 500 P.
P를 획득했고, 한계의 돌이라는 재료 아이템을 다섯 개 모았다.
[한계의 돌 : 출처를 알 수 없는 신비한 돌. 재료 아이템 및 합성 아이템으로 쓰이는 듯하다.]
한계의 돌은 오늘 최초로 얻은 아이템이다.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모아 두면 쓸모가 있을 듯했다.
두 번째로 얻은 수확은 바로 페인킬러다.
기존 페인킬러 스킬은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후에 얻은 보상으로 사용 횟수가 2회로 늘었다.
구조 팀에서 처치하다 보니 그 횟수가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잘된 일이다.
마지막 보상은 팀에 관한 부분이다.
팀원 전원과 라포 1단계를 형성했으며, 팀 스탯 중 단결력이 한 단계 올랐다.
"무슨 생각하세요?"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요."
최기석의 대답에 스칼렛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닥터 최는 철인인 것 같아요. CPR을 비롯해서 수많은 처치를 하고서도 그다지 피곤해 보이지 않는 걸요."
"……."
"스태프들 앞이라서 참는 건가요? 아니면 정말 힘들지 않은 건가요?"
"둘 다라고 해 두죠."
"칫. 애매한 대답이네요."
스칼렛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머물렀다.
오늘 최기석은 신규 레지던트라고는 믿기지 않는 활약을 펼쳤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몇 시간 전 밧줄로 목매단 환자를 처치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정신이 나가서 아무것도 못 할 때.
그만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확한 지시를 내렸다.
'맞아. 응급의학과 펠로우 같았지.'
스칼렛은 최기석의 행동들을 돌이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칼렛은 무슨 생각해요?"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요."
"하하아. 당했네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구급차가 클리닉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다른 구급차들이 주차되었으며, 구조 팀 스태프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전원이 퇴근한 상태다.
일과 끝나기 직전에 출동한 구조 1팀이 꼴찌로 들어온 셈이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다음 주에 봬요."
최기석은 스태프들과 인사를 주고받은 후 병동으로 올라갔다.
드르르륵.
소아신경외과의 한 병실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윌리라고 합니다."
베라의 부모가 인사를 건넸다.
베라의 어머니인 티나는 자주 봤지만, 아버지인 윌리는 오늘이 처음 봤다.
"네. 반갑습니다."
"무수혈 수술을 허락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윌리가 연신 몸을 숙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무수혈이 아니면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하셨으니까요. 이렇게 두 분이 함께 오셨으니 딱 한마디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기억하세요. 두 분의 고집이 베라를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요."
최기석의 날카로운 말에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베라를 바라볼 뿐.
"그건 그렇고 이것 받으시죠."
"이게 뭡니까?"
"작은 성의 표시입니다."
윌리가 양복주머니에서 봉투를 내밀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을 확인하자 상당한 금액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아이가 수술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여기저기서 정보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무수혈 소아 뇌수술은 무척 어려워서 대부분의 병원이 거절한다는 사실을요. 이렇게 용기를 내주신 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전 이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닥터 최. 빨리 받으세요. 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돈 때문에 무수혈 수술을 택한 게 아니니까요."
"다른 의사분들은 챙겨 드리면 받던데……."
윌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기석이 돌려주는 봉투를 받았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은 침상에 다가가 베라의 상태를 살폈다.
이에 베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던 중 얼굴을 찡그리며 울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오른쪽 발과 오른쪽 팔만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는 점이다.
"서…… 선생님! 우리 베라가 왜 이러죠?"
티나가 겁먹은 얼굴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모야모야병으로 인한 일과성 허혈 발작입니다. 침착하세요."
최기석은 간호사를 콜해서 베라에게 항경련제를 먹였다.
항경련제를 먹고 시간이 지나자 베라의 떨림이 멎었다.
허혈성 발작이 일어났다는 건 베라의 상태가 악화하고 있다는 증거.
어쩌면 수술 스케줄을 앞당겨야 할지도 몰랐다.
최기석은 부부와 대화를 나누다가 병실을 나왔다.
다음으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해리슨의 병실을 찾았다.
해리슨은 딸 에이미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안녕하세요."
최기석은 반갑게 인사하며 침상에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해리슨의 목소리는 저번과 달리 분명했으며 눈동자에는 생기가 감돌았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기……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식사도 잘했고, 모…… 몸도 무겁지 않아요."
"그거 다행이네요."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의…… 의사 선생님 아닙니까. 그리고 이쪽은 내 따, 딸…… 에이미."
해리슨의 말에 에이미가 방긋 웃었다.
입원 당시에는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름을 물어봤으니까 말이다. 어눌한 말투는 그대로라고 해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건 사실이다.
"아빠가 입원하고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렇죠?"
"죄송합니다만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최기석은 추가로 몇 가지 질문을 더 했고, 해리슨은 더듬거리면서 나름대로 제대로 된 답변을 했다.
"그…… 그런데 아까부터 저기 있는 사람은 대체 누구입니까?"
해리슨이 검지로 병실 문 근처를 가리켰다.
"아빠. 누구요? 혹시 사람 지나갔어요?"
"지나간 게 아니라 아직 저기 있잖아. 저기. 정장 입은 남자 안 보이니?"
해리슨이 답답하다는 듯 검지로 한 장소를 가리켰다.
물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최기석은 문득 마주친 에이미의 눈에서 절망감이 스치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버지가 기껏 정신 차렸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환각을 보고 있다니…….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힘 빠질 수밖에 없다.
"참나. 다들 안 보여요? 내 눈에는 똑똑히 보이는데."
"해리슨. 우리 다른 이야기를 해 보죠."
최기석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대화가 끝난 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쪽도 만만치 않네.'
최기석은 난감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 종종 환각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해리슨이 그러는 것처럼.
지금 상황으로는 신경정신과에 협진을 요청할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 내가 답답해서 그러는데 조금 걸어도 될까요?"
"아니요. 침상에 누워 계세요. 지금은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입니다."
"뭐야! 이 병원은 내 발로 걷지도 못하나!"
해리슨이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화를 이기지 못해 손으로 침상을 내리쳤다.
"해리슨. 진정하세요."
"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걷는 건 무리니까 휠체어를 타고 병동을 한 바퀴 도는 건 어떻습니까?"
"……. 그…… 그렇게 합시다."
그의 제안에 해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석은 스테이션에서 휠체어를 가지고 와서 해리슨이 앉는 것을 도왔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인데요."
"아빠. 이제 가요."
티나가 휠체어를 밀며 복도를 걸었고, 최기석은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가족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기분이 수시로 바뀌는 데다가 가끔은 환각을 보는 알츠하이머 환자.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최기석은 안타까움을 삼키며 복도를 걸었다.
습관적으로 병실을 살피는데, 2인실에 있는 한 환자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병실로 들어가서 환자의 팔을 살폈다.
뚝. 뚝. 뚝. 뚝.
환자 팔에 연결되어 있던 수액줄이 빠지면서 수액이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환자분."
"으음…… 왜요?"
잠들어 있던 환자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환자분이 수액줄 빼셨습니까?"
간혹 수액줄이 불편해서 자는 도중 스스로 빼 버리는 케이스가 있었다.
"네? 뭐…… 뭐야! 이게 왜 빠져 있지?"
환자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놀라지 말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최기석은 스테이션으로 이동해서 수액 세트와 수액을 챙겼다.
"리사. 510호실에 있는 루크 환자 수액줄이 빠져 있던데, 혹시 왜 그런지 아세요?"
"또예요?"
"또라니요?"
"거의 한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웬 이상한 인간이 병실에서 장난을 치더라고요. 자고 있는 환자의 수액줄 빼기도 하고, 때리고 도망치기도 하는 걸요. CCTV를 확인해 봤는데 아직까지 범인을 못 잡았어요."
리사가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그 인간 빨리 잡아야 하는데. 내버려 두면 더 큰 일이 터질 것 같아요."
"확실히 가만두면 안 되겠네요."
최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5년 가까이 일했지만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에요. 다른 간호사들도 무서워하고 있고."
"알겠습니다. 수액은 제가 놓고 갈게요."
최기석은 병실로 돌아가 루크의 수액을 연결했다.
띠링!
[신규 임무, '병동의 무법자'가 생성되었습니다. 병실에서 남몰래 소란 피우는 사람을 잡아낼 경우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알림이 머리를 스쳤다.
* * *
응급의학과 과장 집무실.
파커는 의자에 기댄 채 구조 팀 의사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의사들이 진료한 환자의 숫자와 진단명, 처치에 대한 부분이 상세하게 적혔다.
"뭐. 이만하면 나쁘지 않아."
파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주의 지원을 받아서 구조 팀을 설립한 이유는 한 가지다.
의사가 필요한 도구를 충분히 챙겨서 직접 현장에 출동한다면,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비록 프로젝트 첫날이지만 의미 있는 데이터를 제법 뽑아냈다.
파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보고서를 계속 읽어나갔다.
시간이 흘러 탁자에는 한 장의 파일철만 남았다.
나중에 보고 싶어서 남겨둔 최기석의 보고서다.
"말도 안 돼."
파커는 그의 보고서를 훑으며 연신 감탄했다.
환자에 대한 진단과 처치, 이 두 가지 모두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본 환자들의 상태가 양호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자살시도 환자, 환재사고 환자, 교통사고 환자…….
최기석이 진료한 환자는 다른 의사들이 진료한 환자에 비해 오히려 중증도가 높았다.
처치 중 정점을 찍은 것은 기관절개술을 펼친 일이다.
외과 로테이션 중인 레지던트가 사건 현장에서 기관절개술을 성공시키다니…….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도 이런 전례는 없었다.
"보면 볼수록 탐나는군."
파커는 최기석을 떠올리며 턱을 쓸어내렸다.
똑. 똑. 똑.
생각에 빠진 사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라는 말을 하자 낯익은 얼굴이 집무실을 찾았다. 뇌종양외과 과장 매튜다.
"자네. 바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