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팀에서 (1)
"메이죠에서 오셨군요. 저희도 이제 막 도착했습니다."
한 소방관이 최기석에게 다가왔다.
"환자들은 저쪽에 있습니다. 우리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처치는 했습니다만……."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소방관이 가리킨 곳으로 달려갔다.
구조용 들것에 환자 다섯 명이 누워 있었다.
소방관의 말대로 붕대를 감거나 부목을 대는 간단한 처치만 끝난 상태다.
타다다다닥.
최기석보다 조금 늦게 구조 팀 스태프들이 도착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찰리가 환자를 고갯짓하며 물었고,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폈다.
진단명과 증상, 응급 여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찰리하고 그렉은 왼쪽에 있는 환자 두 분을 처지해 주세요. 남자 환자는 경추와 척추를 고정하고, 여자 환자는 옆구리 출혈이 계속되니까 붕대 위에 붕대를 감아요. 여자 환자는 호흡부전까지 있으니 앰부백 사용하고요."
"……."
"찰리. 제 말 못 들었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럼 뭐해요! 빨리 처치해요!"
그의 호통에 찰리와 그렉이 쏜살같이 환자에게 달려갔다.
"생각보다 지시가 빠릿빠릿한데?"
"동감이야."
그렉의 말에 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급구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
그것은 바로 환자 분류다.
환자 분류는 주로 트리아제의 4단 분류를 사용하는데 긴급, 응급, 비응급, 지연의 순서다.
그런데 최기석은 신규답지 않은 노련한 모습으로 환자를 나누고, 정확한 지시를 내렸다.
'아직 더 지켜봐야지.'
찰리는 처치에 나선 최기석을 힐끔 응시하고 제 할 일에 나섰다.
한편 최기석은 가장 우측에 있는 환자를 먼저 살폈다.
환자는 극심한 호흡곤란을 겪고 있었다.
"이런……."
후두경으로 시야를 확보하고 튜브를 넣으려 했지만, 튜브가 무언가가 막힌 듯 전진하지 못했다.
진땀 흘리며 몇 번 더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최기석은 냉정하게 처치를 돌아봤다.
기관을 삽관하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화상으로 기도손상과 기도폐쇄가 함께 찾아왔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스칼렛. 기관절개술 준비해 주세요."
"여기서 하게요?"
스칼렛의 눈빛이 요동쳤다.
기관절개술은 보통 전신마취하에 수술실에서 행해진다.
현장에서 할 만한 처치가 아니다.
"서둘러요? 숨넘어가는 환자 안 보입니까?"
최기석이 언성을 높였다.
기도 확보가 지연되면서 환자의 얼굴이 점점 파란 빛을 띠었다.
"알았어요."
스칼렛은 외과 처치 세트를 펼쳐놓고, 수술용 장갑을 착용했다. 그리고 최기석이 장갑 착용한 것을 확인한 후 포셉으로 포비돈 솜을 들었다.
스으으으윽.
환자의 목 주변에 빨간 소독약이 묻었다.
[폐인킬러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환자의 육체적 통증이 70퍼센트 감소합니다.]
"메스."
최기석은 스킬을 사용하고 메스를 손에 쥐었다.
호흡부전 환자를 많이 겪었지만, 기관절개술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기관삽관이 불가능한 케이스가 실제로 많지 않으며, 설령 있다고 해도 이비인후과에서 처치했다.
'난 CABG(관상동맥 우회술)도 하잖아. 이 정도쯤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고 메스로 환자의 목을 그었다.
푸우우욱.
피부가 갈라지는 느낌이 손끝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가로로 피부를 가르고 나자 드러나는 기관.
최기석은 적당한 힘을 주어 기관을 절개하고, 그 사이로 튜브를 집어넣었다.
튜브를 삽입한 후 외부로 나온 튜브를 끈으로 고정하고, Y자 거즈를 끼워서 드레싱으로 마무리했다.
"우와. 해냈어요!"
"아직 기뻐하긴 일러요."
최기석은 환자의 호흡을 확인한 후 스칼렛에게 가래 등의 이물질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찰칵. 찰칵.
가위질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환자 상의를 가위로 자르자 가슴 부위에 3도 화상이 보였다.
가슴 피부가 시뻘겋게 익었으며, 주변 주직에 두꺼운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최기석은 생리식염수로 환자의 상처를 씻어 냈다.
텅!
생리식염수 빈 통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세척을 끝낸 후 수건에 적당히 차가운 물을 적셔 환부를 덮었다. 화상이 심할 경우 냉찜질이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급한 불은 껐고.'
최기석의 시선이 한 중년 환자에게 향했다. 남자의 복부에는 작은 철근이 박혀 있었으며, 머리에는 피로 물든 붕대가 감겨 있었다.
"으으으으윽. 으으으윽."
남자의 입에서 애타는 신음이 흘렀다.
"스칼렛. 절개술 환자 상태는 어때요?"
"지금은 많이 안정됐습니다."
"그럼 N/S와 수액 세트, 데메롤 이쪽으로 챙겨 주세요."
최기석은 지시를 내리고 붕대를 손에 쥐었다.
휘리리릭.
붕대로 복부에 꽂혀 있는 철근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철근이 움직이며 발생하는 2차 손상을 막기 위함이다.
복부 고정을 끝낸 후 삼각건으로 환자의 머리를 다시 한 번 동여맸다.
때마침 스칼렛이 처치 도구를 챙겨서 돌아왔다.
"환자 수액 라인 잡고, 데메롤 믹스해 주세요."
"네. 알았어요."
"찰리. 환자 케어 끝났으면 경추 고정기 가져다주세요. N/S와 시안 해독제도요."
최기석은 곧바로 다음 환자를 살폈다.
다소 앳되어 보이는 여자 환자인데 다리 골절과 호흡곤란을 앓고 있었다.
환자의 기도를 확보한 후 앰부백을 쥐어짰다.
환자를 연달아 살피느라 온몸이 땀에 절었지만 피곤하지는 않았다. 환자바라기의 체력회복 효과는 수술뿐 아니라 현장 처치에서도 빛을 발했다.
"찰리는 앰부백 짜고 있어요."
최기석은 찰리에게 처치를 맡기고 정맥 라인을 잡았다.
푸우우욱.
카테터가 피부를 꿰뚫으면서 주사침 부위에 피가 고였다. 이에 수액 세트를 연결하고 시안중독 해독제를 섞었다.
마지막으로 부목을 이용해 골절 부위를 고정하면서 모든 환자에 대한 처치가 끝났다.
"빨리 이송하죠. 복부 관통상이 있는 환자와 마지막에 처치한 환자는 수술이 필요해요."
"네."
찰리와 그렉, 스칼렛이 환자를 들것에 눕혀 구급차에 실기 시작했다.
구급차 후방이 특별히 개조된 만큼 최대 다섯 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다.
그사이 최기석은 환자의 상태와 처치 내용을 간략하게 종이에 적었다.
지이이이잉.
한숨 돌리려는 찰나 가운에 넣어 둔 콜폰이 울렸다.
"네. 구조 1팀 기석 최입니다."
[구조 팀 상황실 실비아예요. 혹시 화재현장 처치는 다 끝나셨나요?]
"이제 복귀하려던 참입니다."
[근처에 추락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혹시 봐주실 수 있나요? 현장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진 곳인데.]
"하아…… 그게……."
최기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구급차를 응시했다.
구급차 후방은 이미 환자들로 꽉 찼다. 구조 팀 스태프 한 명이 들어가기도 벅찰 정도다.
"일단 가 볼게요. 처치는 가능하지만, 이송은 불가능하니까 다른 구조 팀 호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소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스태프들에게 다가갔다.
"세 분은 먼저 출발하시죠. 저는 근처에 있는 다른 환자를 보러 가야겠습니다."
"또 다른 환자요?"
"네. 방금 상황실에서 전화 받았어요. 현장에서 가까운 곳이라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복귀는 어떻게 하게요?"
"다른 팀 앰뷸런스 신세 져야죠."
최기석은 대답하면서 구급함을 비롯해 필요한 처치 도구를 챙겼다.
"병원에서 봐요."
팀원들과 헤어진 후 거리를 질주했다.
폭군의 강림 스킬을 사용하자 달리기가 점점 빨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곳을 중심으로 행인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그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최기석의 외침에 행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의사가 왔네?"
"왜 그러죠? 이 사람 옮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 절대 안 됩니다! 가만히 두세요."
최기석은 환자의 곁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환자를 옮기는 것보다, 하아…… 다친 부위를 고정하는 게 훨씬 중요해요."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환자는 추락으로 인해 경추와 척추에 손상이 있었다.
이런 외상 환자를 업거나 팔다리를 들어 옮기면 추가적인 손상이 발생한다.
목이 꺾이면서 추가적인 경추 손상이 오는 것이 대표적.
그래서 외상 환자 처치의 1순위는 몸을 고정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만만치 않네.'
최기석은 구급함을 펼치며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함몰된 측두부에서 피가 흘렀으며, 귀와 코에서는 뇌척수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휘리리릭.
붕대로 환자의 출혈 부위를 감쌌다.
이후 챙겨온 두 장의 모포로 각각 환자의 머리를 높이고, 다리 부분을 살짝 들어 주었다.
환자의 순환을 돕기 위한 자세다.
경추고정용 부목으로 환자의 허리를 받치면서 일차적인 처치는 끝났다.
'아직인가?'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재차 살피고 눈썹을 찌푸렸다.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고 호흡이 점점 불안정해졌다.
그래서 승압제를 IV로 주사하고, 앰부백을 짜기 시작했다.
뚝. 뚝. 뚝. 뚝.
얼굴에서 비 오듯 땀이 흘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 땀으로 환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온몸의 땀을 쏟아 내도 좋았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메이죠 구급차에서 스태프들이 내렸다.
"먼저 처치한다던 의사가 너였어?"
니콜라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응급처치는 끝났으니까 이송만 하면 돼. 환자 옮기는 것 좀 도와줘."
"알았어."
최기석은 니콜라이와 함께 조심스럽게 환자를 들것에 옮겼다. 그리고 환자를 구급차 후방에 실은 후 메이죠 클리닉으로 복귀했다.
"너 꼭 전쟁 치른 것 같다?"
"그래. 전쟁이었지."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꼴을 살폈다.
가운이 환자의 피와 흙먼지로 범벅이 되었고, 땀에 젖은 앞머리는 미역 줄기처럼 늘어졌다.
가운만 입었다 뿐이지 상거지 꼴이 따로 없었다.
'나쁘지 않네. 이 느낌.'
구조 팀 소속으로 고작 두 번 출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병동에서 일할 때와는 180도 다른 느낌을 받았다.
급박하고 생생한 현장이 주는 긴장감이랄까.
화상으로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른 환자, 코앞에서 숨이 넘어가는 환자, 추락사고로 머리가 깨진 환자 등등.
오늘 진료한 환자들 대부분이 응급을 다퉜다.
골든타임 속에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치료, 그 속에 의사로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넌 이번이 첫 출동이었지?"
"맞아. 너한테 선수를 빼앗겨서 의미가 없어졌지만."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아. 구조 팀 만만치 않으니까."
니콜라이와 대화하는 사이 구급차가 메이죠 클리닉으로 들어섰다.
"닥터 최. 고생 많았어요."
스칼렛이 그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으며, 곁에 있던 찰리와 그렉은 고개 인사를 했다.
"환자는 어떻게 됐죠?"
"오자마자 환자부터 찾으시네요. 두 명은 응급수술 들어갔고, 나머지는 응급실에서 경과 관찰 중이에요."
"그렇군요."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응급의학과 과장님이 엄청 놀라시던데요?"
"네? 왜요?"
"현장에서 기관절개술 하는 레지던트는 처음 봤다고요. 실패했으면 닥터 최의 가운 벗기려 했다는 농담도 덧붙이셨고요."
"그거 농담 아닐 겁니다."
최기석은 파커를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저는 가운 좀 갈아입고, 씻고 올게요."
"네. 그러세요."
응급실로 들어가서 개인정비를 마치고 다시 구급차로 향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콜폰이 울렸다.
[상황실 실비아에요. 지금 케인 스트리트에서 삼중 추돌사고 발생했어요. 구조 1팀과 구조 8팀이 함께 현장으로 출동하면 됩니다.]
"네. 바로 가겠습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스태프에게 상황을 알렸다.
또다시 병원을 벗어나는 구급차.
"찰리. 아직도 내가 못 미덥습니까?"
그의 질문에 찰리는 한참 침묵을 지켰다. 그러던 중 불쑥 한마디를 뱉었다.
"내가 만난 의사 중에서는 제일 괜찮군요. 적어도 지금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