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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29화 (228/407)

킹메이커 (6)

최기석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매튜와 적대 관계라는 알림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실 매튜와 척을 질 생각은 없었다.

매튜는 뇌종양외과 분야의 권위자다.

당연히 배울 게 많았다.

적대 관계가 만들어지면 손해를 입는 건 자신이다.

'뭐. 이제는 그러려니 해야지.'

최기석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루카스의 킹 메이커가 된 이상 루카스가 헤드 치프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매튜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그 이후에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응급실에 도착했다.

드르르르륵.

회의실로 들어가자 몇몇 의사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미스터 최. 오랜만이야."

"반가워."

모건과 라훌이 그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야. 진짜 반갑다. 둘 다 구조 팀에 지원했어?"

최기석이 모건의 옆에 앉아 말했다.

"당연하지. 과 업무 이외에 상점을 받을 수 있는 건 구조 팀밖에 없잖아."

"미스터 최. 진짜 욕심쟁이네. 조기 진급했으면서 또 상점 받으려고?"

"나 원래 욕심 많은 거 몰랐어?"

최기석이 모건의 말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겨우 일주일 만에 두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도 몇 개월 헤어진 친구들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일반외과는 어때?"

"별일 없…… 아! 폴 교수님이 병원에서 나가셨어. 총기 사건을 일으킨 보호자의 환자 수술 건 있잖아. 그 수술에서 폴 교수님의 과실이 입증됐거든."

"결국, 그렇게 됐구나."

최기석은 라훌의 말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폴에게 징계가 떨어질 거라는 점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과거 위암 수술 보조를 했을 때, 그의 집도 실력은 무척 위태로웠다. 문제가 된 수술뿐 아니라 다른 수술이라고 잘했을 리 없었다.

"모건. 넌 괜찮지?"

"난 괜찮아. 제2보조여서 징계받은 것도 없고."

"마음도 정리됐고?"

"그럭저럭."

모건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옛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의사들 몇 명이 더 회의실로 들어왔다.

개중에는 니콜라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최기석은 자신을 지나치는 니콜라이와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신경외과 분위기는 어때?"

"당분간은 안 좋을 것 같아. 차기 헤드 치프 선출 때문에 시끄럽거든."

"네가 들어가서 시끄러워진 건 아니고?"

"나랑 그런 것까지 엮지 마."

라훌의 말에 최기석이 휘휘 손을 내저었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우렁찬 발소리가 들렸다.

응급의학과 과장 파커가 테이블을 가로질러 단상 위에 자리 잡았다.

그의 카리스마에 잡담을 나누던 수련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다들 반갑다. 내 소개는 따로 안 해도 되겠지?"

파커가 수련의들을 훑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응급의학과에 신규 프로젝트가 실행된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 프로젝트의 자랑스러운 주인공들이지. 어려운 면접과 실기를 통과한 실력자들인 만큼 다들 잘해 줄 거라 믿는다."

"……."

"구조 팀 설명을 하기에 앞서, 우선 여러분들의 면접 및 실기 점수를 공개한다."

파커의 말에 몇몇 레지던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왜 불만 있나?"

"그게…… 굳이 지금 와서 점수 공개를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요……."

파커와 눈이 마주친 레지던트가 말을 더듬거렸다.

"암. 있고 말고. 난 말이야, 사람 줄 세우는 걸 아주 좋아해. 왜인 줄 알겠나?"

"잘 모르겠습니다."

"순위라는 건 인간을 자극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거든. 난 너희들이 서로에게 자극받아 구조 팀 활동에 열을 올리기를 바라고 있어."

"……."

"물론 순위에 따른 보상을 해야겠지만 말이야."

파커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구조 팀 면접 및 실기 수석은 기석 최다. 만점자에게 큰 박수를 보내도록."

짝. 짝. 짝. 짝.

동기들의 박수에 최기석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기석 최에게는 수석 혜택으로 상점 5점을 부여한다. 20점을 받으면 조기 진급할 수 있다는 건 다들 알 테지?"

"네!"

"2등은 모건, 3등은 니콜라이다."

파커의 호명에 다시 한 번 박수가 터졌다.

파커는 잔인하게도 면접 및 실기 점수의 일등부터 꼴찌를 전부 호명했다.

호명이 끝남과 동시에 회의실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확고하게 정해진 서열.

서로를 갈라놓은 그 장벽에 경쟁심과 질투, 선망의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역시 보통이 아니야.'

최기석은 파커를 보며 감탄했다.

면접 및 실기 순위를 낱낱이 공개하는 것으로 레지던트들을 흔들어 놓았다.

한마디로 사람을 다룰 줄 안다고 할까.

그다지 자신이 닮고 싶은 방식은 아니지만, 그 방법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파커의 말이 이어졌다.

구조팀의 구성과 출동방식, 케이스별 응급처치 요령, 처치 후 보고서 작성 요령 등등.

오리엔테이션은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입으로 떠드는 건 이쯤하고, 구조 팀 활동을 시작하지. 다들 응급실 밖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인사하도록. 참고로 구조활동은 아까 전 순위대로라는 걸 명심해."

파커가 최기석을 똑바로 응시했다.

수석인 그가 출동 1순위이니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네!"

최기석은 그의 눈빛을 읽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후 레지던트들이 우르르 응급실 바깥으로 나갔다.

응급실 바깥 주차장에 열 대의 구급차가 서 있었다.

주차된 구급차는 일반 구급차보다 1.5배 컸으며, 외관도 제법 달랐다.

[MaJoe Team Rescue]

옆면에 큼지막한 문구가 붙었으며, 그 앞에 메이죠를 상징하는 심볼이 새겨졌다. 메이죠 클리닉과 미네소타 주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다운 모습이다.

'하긴 이만하면…….'

최기석은 파커가 레지던트를 몰아붙인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구급차를 살피는데 구조 1팀 스태프들이 우르르 내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렉이에요."

"찰리입니다."

"스칼렛이라고 해요."

응급구조사 두 명과 간호사가 인사를 건넸다.

최기석은 새로운 스태프들과 인사하며, 그들을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폈다.

파커가 공들여 뽑은 만큼 다들 능력치가 출중했다.

개중에서 찰리의 능력치는 독보적이다.

그는 신체능력이 뛰어났으며, 인명을 구조하는데 탁월한 스킬을 몇 가지 보유하고 있었다.

띠링!

[새로운 파티가 형성되었습니다. 파티명: Team Rescue No.1]

[팀 레벨: 1]

[단결력: 1/5]

[처치 레벨: 2/5]

알림을 확인하고 실망하지 않았다.

이제 막 새로운 동료를 얻은 상황이다.

벌써부터 팀 능력치가 좋기를 바라면 도둑놈 심보다.

'그래. 지금부터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최기석은 스태프들을 훑으며 각오를 다졌다.

처음으로 자신만의 팀을 꾸리게 되었다.

비록 흉부외과 팀은 아니더라도 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더 많은 환자에게 훌륭한 처치를 하리라.

인사고 끝나고 이어진 침묵, 찰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스터 최는 레지던트 몇 년 차입니까?"

"올해 들어온 신규입니다."

"흐음…… 그러면 우리보다 실전 경험이 적겠군. 우리가 구조업무 시작한 지 얼마나 됐지?"

"십 년은 족히 넘었을걸?"

"벌써 그렇게 됐나?"

찰리가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속에는 최기석을 깔보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

"닥터 최. 서로 발목 잡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봐요. 찰리."

최기석이 차가운 눈빛으로 찰리를 응시했다.

두 사람이 시선이 충돌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초면부터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당신의 경력이 많다는 게 나를 깔볼 수 있는 근거는 되지 않으니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찰리가 지지 않고 말을 이었다.

"병원에서는 의사니 뭐니 떠들어도, 정작 현장에서는 벌벌 떨며 아무것도 못 하는 겁쟁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내가 겁쟁이라고 지레짐작하지 마세요. 나도 당신이 그동안 쌓은 경험이 똥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뭐라고요?"

찰리가 얼굴을 찌푸리며 성큼성큼 거리를 좁혔다.

그런데도 최기석의 표정은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았다.

"다들 그만하세요. 만나자마자 싸우면 어떻게 해요!"

"찰리. 이번엔 자네가 지나쳤어."

그렉과 스칼렛의 중재로 두 사람의 다툼은 간신히 끝났다.

"다들 구급차에 있는 물품은 살펴봤나요?"

"네. 대기하던 중에 다 훑었어요. 처치 도구 목록 적은 거 있는데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살필게요."

최기석은 스칼렛의 제안을 거절하고, 구급차의 후방좌석을 살폈다.

환자 감시 장치, 드레싱 세트, 붕대와 삼각건 및 고정대.

후두경과 앰부백, 설압자, 여러 종류의 수액과 주사제 등등.

처치에 필요한 대부분이 새것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응급실에 가서 몇 가지만 더 챙겨 올게요."

"더 챙길 게 있나요? 이만하면 거의 소형 응급실 수준인데."

스칼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이란 게 있을 수 있으니까요."

최기석은 응급실로 가서 필요한 처치 도구 몇 개를 더 챙겼다 위이이이잉.

응급실을 나오는데 구급차 비상등이 커졌다.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출동명령입니다."

찰리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고, 최기석은 서둘러 보조석에 올라탔다.

드디어 구조팀 첫 출동에 나섰다.

손에 쥐고 있는 처치 도구 세트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무슨 상황이죠?"

"킹 스트리트에 있는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자세한 건 가면서 이야기하겠어요."

구급차가 차도로 들어섰다.

찰리의 설명에 따르면, 도심 내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화재로 발생한 환자는 총 다섯 명.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 관계로 구급차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보다, 의사가 직접 출동해서 처치하는 게 좋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화재에 휘말린 환자를 치료해 본 적 있습니까?"

"있어요."

"불행 중 다행이군요."

찰리가 빈정거렸다.

'그 자신감이 얼마나 가는지 지켜보겠어.'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겪어온 의사들은 대부분 온실 속의 화초였다.

현장에서 응급환자를 보면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랐다.

조금 과장하자면, 할 줄 아는 건 CPR 정도라고 할까.

문제는 CPR은 응급구조사들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의사가 가지는 강점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말이다.

더군다나 구조 팀 의사가 신규 레지던트라면 더더욱 말할 나위가 없었다.

짧은 대화 후 이어지는 긴 침묵.

최기석은 이동하는 도중 처치 도구들의 위치와 환자들의 상태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편이 아무 생각 없이 현장을 마주치는 것보다 나았다.

'이런 건 배워야 하는데.'

최기석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자 주변의 차량들이 질서정연하게 좌우로 길을 비켰다.

덕분에 차는 한 번의 막힘도 없이 도로를 질주 중이다.

한국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한국도 미국처럼 구급차에게 길을 비켜 주지 않으면, 벌금을 매기는 제도가 생겼으면 좋으련만.

초조하게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목적지가 가까웠다.

인도에 인접한 한 주택이 활활 타올랐다.

창에서 새빨간 불씨가 꿈틀거렸고, 검은 연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소방관들은 화마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벌컥!

최기석은 응급차 문을 열고 인도로 달려갔다.

"구조 팀 의사 기석 최입니다.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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