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26화 (225/407)

킹메이커 (3)

그날 오후.

최기석은 의국에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편측마비를 앓게 된 카터의 프로필과 경력을 확인하는 중이다.

카터의 말대로 그는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였다.

화려한 천재형은 아니지만, 피아노에 대한 열정과 특유의 이해력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었다.

교통사고 전에는 대형 콘서트를 준비 중이었다고 한다.

"하아……."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흘렀다.

손을 쓰는 의과의였기에 카터의 아픔에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는 분명 모든 걸 잃어버린 절망감에 빠졌으리라.

똑. 똑. 똑.

노크 소리에 들어오라고 말하자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신경외과 기석 최입니다."

"반가워요. 미스터 최. 신경과 제인이라고 해요. 카터 환자 협진 요청하셨죠?"

"네. 맞습니다."

"그 환자 방금 진료 보고 오는 길인데요."

제인이 이마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편측마비가 생각보다 심하네요. 한쪽 팔과 다리를 거의 못 움직이는 수준이에요."

"외과적인 처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경과로 전과시켜 주세요.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를 병행하면서 회복을 기대해 봐야죠."

"재활을 받으면, 다시 팔을 쓸 수 있나요?"

"회복 기간이나 회복 정도는 환자마다 다 달라요. 최악의 경우 재활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제인의 대답에 최기석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알겠습니다. 환자분이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보호자가 할 법한 이야기네요."

"저는 주치의가 보호자의 역할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믿고 기대는 사람이 보호자라면, 의사보다 든든한 보호자가 또 있을까요?"

"화제의 레지던트라서 그런지 발상까지 특별하네요. 보기 좋게 한 방 먹었어요."

제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방법을 찾아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제인이 떠난 후 최기석은 전과 신청을 하고, 카터와 그의 아내와 만나 전과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수술 실패로 후유증이 생겼다.

메이죠에서 후유증에 관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두 사람이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을 염려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과 소식과 치료계획을 듣는 부부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들의 초연한 모습에 최기석은 다시 한 번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무표정한 얼굴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대답.

부부의 모습은 마치 삶의 의욕을 놓아 버린 듯했다.

병동으로 복귀해 환자들을 살피고, 인수인계를 끝내자 일과가 끝났다.

지이이잉.

동영상 촬영을 위해 로젯으로 가던 중 콜폰이 떨렸다.

"네, 교수님. 기석입니다."

[최 선생. 일과 끝났죠? 혹시 스크럽 도와줄 수 있어요?]

"갑자기 무슨 일이시길래……."

[응급실에 흉부총상 환자가 들어왔어요.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데, 흉부외과 스태프가 부족해요.]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수술실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수술실로 달렸다.

덜컹!

수술실에 도착하자 때마침 송명진과 환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쉽지 않겠는데?'

최기석은 환자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환자는 미동조차 없었으며, 호흡이 무척 가빴다. 가슴을 칭칭 둘러싼 붕대는 피로 흥건했다.

"최 선생. 스크럽하고, 바로 수술 들어가죠. 자세한 설명은 스크럽하면서 합시다."

"네!"

최기석은 손과 팔을 소독하면서 송명진의 브리핑을 들었다.

"헤드 치프, 죄송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혹시 이 친구가 제1보조로 들어가는 겁니까?"

알프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무슨 문제라고 있어요?"

"이 친구 신경외과 소속입니다. 게다가 신규 레지던트인 것 같은데……. 이 친구보다 제가 훨씬 더 보조를 잘할 수 있습니다."

"알프레드. 미안하지만 자신감은 넣어 둬요. 지금 필요한 건 자신감이 아니라 실력이니까."

"실력이라면 더더욱 제가……."

"수술 시작하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겁니다."

송명진은 알프레드의 말을 자르고 로젯으로 들어갔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수술을 준비하는 사이 세 명의 써전이 자리를 잡았다.

응급 흉부총상 수술의 집도의는 송명진.

제1보조는 최기석, 제2보조는 알프레드. 제3보조는 흉부외과 인턴으로 정해졌다.

'맞아. 이 친구가 그 친구였군.'

알프레드는 곁에 있는 최기석을 슬쩍 훔쳐보았다.

뒤늦게 깨달았다.

헤드 치프가 한국에서 스카우트해 온 써전.

지난 몇 개월 화제의 중심에 있었던 신규 레지던트.

그가 바로 최기석이자 이번 수술의 퍼스트라는 것을.

대체 그가 얼마나 능력이 있길래, 흉부외과 정식 레지던트인 자신을 물리치고 제1보조가 된 걸까.

'두 눈으로 똑똑히 봐 주지.'

알프레드는 독기를 단단히 품었다.

"전신마취 끝났습니다."

마취의 말에 송명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셀 세이버(수술 중 흘린 환자의 피를 다시 환자에게 주입할 수 있게 세척하는 장치) 준비됐어요?"

"네."

"그럼 지금부터 수술을 시작합니다."

송명진의 외침에 알프레드가 가위를 들었다.

서걱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환자 가슴에 있던 붕대가 풀렸다.

다행히 출혈은 멎은 상황이다.

"메스."

송명진이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아 환자의 목 아래에서부터 명치까지 절개했다.

위이이이잉. 빠드드득.

전기톱으로 흉골을 세로로 가르고, 견인기를 끼워 맞춰 옆으로 넓게 벌렸다.

"……."

"……."

수술 시야 확보가 끝나자 로젯에 침묵이 감돌았다.

환자 상태는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관통한 총알은 횡격막을 찢고, 우측 기관지에 손상을 일으켰다.

그로 인해 기관지에서 심각한 출혈이 발생했다.

다른 하나의 총알은 좌하엽에 단단하게 박혀 있었다. 이 총알이 갈비뼈를 부러트리면서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최 선생. 처치를 나눠서 합시다. 최 선생은 좌측 폐를 처치해 줘요. 나는 우측 폐를 맡을 테니까. 대신 총알은 아직 빼면 안 됩니다."

"네."

최기석은 환자의 좌측 폐에 시선을 고정했다.

모처럼 스승 송명진과 함께 수술하게 되었다. 그의 앞에서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미스터 최. 이제 어떻게 할 거죠?"

알프레드가 독촉하듯 물었다.

"흉관삽관술하고 흉막유착술 준비해 주세요."

최기석은 한 손에 포셉을 쥐고, 다른 손에는 석션기를 쥐었다.

그 상태에서 포셉으로 폐를 찌르고 있는 5번 갈비뼈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갈비뼈가 폐에서 빠져나오자 폐에 난 작은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다.

치이이이익.

석션기로 피를 흡입하자 붉은 피가 딸려 들어왔다.

"준비는 멀었습니까?"

"다 됐어요."

"그럼 제 대신 석션해 주세요."

최기석은 알프레드에게 석션을 맡기고, 흉관삽관술을 준비했다. 갈비뼈가 폐를 찌르면서 생긴 외상성 기흉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손에 쥔 32프렌치의 흉관을 환자의 갈비뼈 사이로 찔러 넣었다.

푸우우우욱.

손끝에 느껴지는 익숙한 감촉.

삽관은 성공적이다.

흉관에 튜브를 연결하자 배액통으로 피가 흘러넘쳤다.

최기석이 좌측 폐를 처치하는 사이, 송명진은 우측 폐 처치에 나섰다.

"모스키토(혈관겸자)."

송명진은 혈관겸자로 손상을 입은 기관지 위쪽을 묶어 주었다.

그러자 출혈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뭐해요? 석션."

"아. 네."

송명진의 지적에 인턴이 뒤늦게 썩션에 나섰다.

"메스."

송명진은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은 후 손상된 기관지 주변을 조심스럽게 잘라 냈다.

변연절제술.

괴사된 조직을 제거하고, 그 주변에 있는 이물과 감염병소를 처리하여 상처 회복에 도움을 주는 처치다.

"irrigation(세척)."

"네!"

절제가 끝나자 인턴이 생리식염수로 상처를 씻어냈고, 송명진은 거즈로 식염수를 닦아낸 후 드레싱에 나섰다.

처치가 끝나자 환부가 깔끔하게 정리됐다.

'역시 최 선생이야.'

송명진은 최기석을 지켜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처치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자신이 직접 처치한 것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다.

부러진 갈비뼈 조각을 찾아서 이미 접합까지 해 놓았으니까 말이다.

"교수님. 탄은 어떻게 할까요?"

최기석의 질문에 모든 스태프의 시선이 송명진에게 쏠렸다.

응급처치는 끝났고, 이제 두 가지 일만 남았다.

하나는 좌하엽에 박힌 탄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횡격막을 복원시켜 주는 일이다.

"교수님. 이 환자는 탄을 제거하지 않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최기석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미스터 최. 제정신이에요? 어떻게 총알을 폐에 남겨 두자는 말을 할 수가 있죠?"

"그편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뭐라고요?"

알프레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폐는 다른 장기에 비해 민감도가 비교적 낮은 부위입니다. 총탄의 크기가 크지 않을뿐더러 현재로써는 감염의 위험성도 높지 않아요."

"……."

"게다가 무리하게 총탄을 빼려고 하면, 오히려 주변 조직을 상하게 할 수 있어요."

최기석의 설명에 알프레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최 선생 말이 맞아요. 총탄이 체내에 남았다고 해도 제거하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케이스에서 최 선생이 간과한 게 있어요."

"……."

"우선 총탄의 위치가 좋지 않아요. 잘못하면 심장 근처로 침식할 가능성이 있죠. 이번 케이스의 경우 납중독의 위험성도 빼놓을 수 없고요."

"그렇다면……."

"총탄을 제거해야 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송명진의 말이 로젯에 울려 퍼졌다.

"C - Arm 준비해요."

"네."

인턴이 로젯을 떠나 C - Arm을 챙겨서 돌아왔다.

C - Arm은 C자 모양을 한 방사선 기계로 영상 출력과 판독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송명진은 C - Arm으로 환자의 흉부를 촬영하고, 판독 영상을 모니터에 띄웠다.

"이쯤이군요."

송명진의 포셉이 폐 좌하엽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교수님. 정말 총알을 제거해도 괜찮을까요? 출혈과 패혈증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최 선생. 뭔가 착각하고 있군요. 이 작업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자세한 건 두고 보면 알 겁니다. 메스."

송명진이 메스를 손에 쥐었다. 이에 모든 스태프의 시선이 그의 손끝에 집중되었다.

스으으으윽.

메스가 총알이 박힌 부분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기석은 입을 벌린 채 감탄했다.

송명진은 총알을 빼내지 않았다.

총알이 박힌 폐 근처를 통째로 잘라내고 있었다.

총알이 폐에 박혔으니 무조건 탄을 빼야 한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다.

폐를 잘라내는 방법이 있었다.

실제로 폐암 환자는 폐의 절반을 잘라내지 않던가.

텅!

총탄이 박힌 폐가 곡반 위로 떨어졌다.

송명진의 절제가 워낙 정교했던 만큼 혈관이 손상되는 일도 없었다.

"변연절제술하고, 곧바로 횡격막 복원합시다."

"네!"

이어진 처치는 순조롭게 끝났다.

환자의 바이탈은 정상이었고, 출혈량도 많지 않아 빠른 회복이 기대됐다.

최기석은 로젯을 나가면서 앞서 걷는 송명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의 등이 오늘따라 더욱 커 보였다.

'역시 스승님이야. 빨리 흉부외과에 가고 싶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