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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24화 (223/407)

킹메이커 (1)

"첫 번째 시험은 붕대법이야."

파커가 책상에서 붕대를 한 아름 챙겨서 다시 소파에 앉았다.

"붕대법 말씀입니까?"

"그래. 외상 환자를 처리하는데, 붕대만큼 효과적인 도구는 없지. 반대로 말하면 붕대도 제대로 감을 줄 모르면, 구조 팀에 들어올 자격도 없는 거야."

파커가 최기석을 위아래로 훑더니 말을 이었다.

"왜 자신 없나?"

파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붕대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의사는 의외로 적다.

전공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의 경우 붕대 쓸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붕대의 크기가 제법 다양할 뿐 아니라 상처 부위에 따라 감는 방법도 각기 다르다.

오늘 면접 본 의사 중 붕대법에서 떨어진 사람도 수두룩했다.

"자신 있습니다."

"대답은 마음에 드는군. 자. 내가 두부 외상을 입었다고 가정하고, 머리에 붕대를 감아 봐."

최기석은 압박 붕대를 손에 쥔 채 파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붕대를 펼친 후 파커의 이마를 가로로 감쌌다.

스으으윽.

파커의 뒤통수에서 붕대가 사선으로 교차했다.

교차한 붕대가 턱을 감싸고 정수리를 휘감았다.

같은 과정을 두 번 반복하자 두부외상 붕대법이 끝났다.

"으음…… 이만하면……."

파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붕대가 주는 압력은 적절했으며 끝맺음이 깔끔했다.

처치 도중 보여 준 침착함과 처치속도, 이 두 가지 또한 마음에 들었다.

"다음은 쇄골 골절을 가정하고 감아 봐."

"네."

최기석은 자신 있게 다음 붕대법에 나섰다.

붕대법.

다른 의사들은 다소 얕잡아 보는 처치지만, 그는 인턴 때부터 붕대법을 열심히 연습했다.

다른 동기들보다 뒤처진 자신이 혹시 붕대법을 통해서라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때의 수련이 지금에서 빛을 발하게 될 줄이야.

휘리리릭.

최기석은 붕대로 파커의 왼쪽 어깨를 둘둘 감았다.

그러던 중 붕대를 오른쪽 대각선으로 내려 파커의 오른쪽 어깨를 감았다. 그 상태에서 붕대를 왼쪽 대각선으로 내려 왼쪽 어깨로 보내자 등에 8자가 그려졌다.

쇄골 골절에 사용하는 8자 붕대법이다.

남은 붕대로 매듭을 지으면서 두 번째 처치도 끝났다.

"기대 이상이군."

"감사합니다. 인턴 때 연습해 둔 것을 잊지 않았던 덕분인 것 같습니다."

"실력은 확인했으니 이제 날 좀 살려 주게."

"아. 네."

최기석은 테이블에 놓인 가위로 붕대를 잘랐다.

"다음은 구조 활동 중 발생하는 케이스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보겠어. 음독 환자를 진료하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음독한 약물에 따라 처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선 보호자나 구급대원을 통해 음독한 물질이 무엇인지, 얼마나 마셨는지, 음독한 지 얼마나 경과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후에는?"

"환자의 기도를 유지하고, 호흡과 순환보조를 안정화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환자가 농약을 마셨다면?"

"병력 청취 후 환자를 회복 자세로 만듭니다. 그 상태에서 기도 유지 및 일반적인 처치를 시행합니다."

"실습 인형으로 회복 자세를 만들어 보고, 그 의의를 설명해 봐."

최기석은 실습 인형을 옆으로 눕힌 후 한쪽 다리를 위로 올리고, 다른 다리를 반쯤 내렸다.

"이렇게 하면 복부의 불편감을 해소하고, 구토물과 침이 기도로 넘어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좋아. 농약 환자 처치 계속해 보지."

"옷과 피부에 농약 오염이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세척해 줍니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음독한 농약의 해독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위세척을 할 수 있습니다."

"좋아. 다음 케이스."

파커와 최기석의 문답이 계속되었다.

응급환자 케이스는 총 다섯 개였는데, 최기석은 모든 질문에 척척 대답했다.

의진대 인턴 시절 지방으로 내려가 응급의학과 근무를 한 적이 있다. 환타 칭호 덕분에 한 달 동안 별의별 환자를 다 받았는데, 그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신규 레지던트 중 처음으로 조기 진급을 했다고 들었는데. 괜한 이야기가 아니군."

"과찬이십니다."

"미스터 최는 응급처치의 꽃이 뭐라고 생각하나?"

"저는…… CPR이라고 생각합니다."

"크하하하. 내가 원하는 대답이야."

파커가 호탕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무슨 일이든 기본이 가장 중요한 법이지. 그런데 파고들다 보면, 그 기본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단 말이야."

"네."

"마지막으로 자네가 CPR 하는 걸 보고 싶은데 케이스가 있을지 모르겠군. 일단 따라와."

최기석은 파커를 따라 집무실을 나왔다.

복도를 지나 출입문을 통과하자 응급실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이윽고 두 사람이 응급실을 돌았다.

환자 분류소라는 별칭에 걸맞게 다양한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입원 대기 중이다.

"안타깝지만 CPR 케이스는 없는 것 같군."

"그러면 저는……."

"합격이야."

파커가 한 박자 빠르게 대답했다.

"오늘 면접 본 사람 중에 유일한 합격자지. CPR을 못 본 건 아쉽지만, 자네라면 수준급 실력을 갖췄다고 믿네."

"감사합니다."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구조 팀에 들어가면, 다양한 응급환자 케이스를 접할 수 있을뿐더러 상점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띠링!

[부소속이 새롭게 생성되었습니다.]

[소속: 신경외과]

[부소속: 응급의학과 구조 팀(현재 팀이 구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두 사람이 대화 나누는 사이 한 남성이 급하게 응급실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품에는 중형견이 안겨 있었다.

"저기요. 우리 테디가 갑자기 숨을 안 쉬어요. 혹시 치료 가능할까요?"

남성이 발을 동동 굴렀다.

"죄송합니다. 메이죠 클리닉은 동물 진료를 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동물 병원을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너무 늦을 텐데……."

인턴의 대답에 남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강아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

"과장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재빨리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강아지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상태는 응급.

구체적인 진단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증상에 호흡곤란과 심장 통증이 있었다.

"개 내려놓으세요. 응급처치 해야 하니까."

"네?"

"빨리요!"

최기석이 다그치자 남성이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장군이를 치료하러 갔던 동물병원에서 동물 CPR 하던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처치를 따라 하면, 개를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의 레벨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각성 CPR을 사용하여 흉부압박과 인공호흡에 특수효과가 추가됩니다.]

"호흡도 없고, 맥박도 없어."

개의 활력 징후 몇 가지를 체크하고, 곧바로 CPR에 나섰다.

우선 개의 주둥아리를 손으로 붙잡고, 코로 숨을 불어넣었다.

인공호흡 2회 실시 후 개의 앞다리 관절 부근에 손을 얹었다.

퍽! 퍽! 퍽! 퍽!

가슴을 압박할 때마다 개의 몸이 들썩거렸다.

"저기서 뭐하는 거예요?"

"미스터 최가 개한테 CPR을 하는데?"

"뭐? 개한테?"

응급의학과 스태프 일부가 CPR 현장에 호기심을 비췄다.

사람이 아니라 동물에게 CPR을 하는 케이스는 메이죠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최기석은 주변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CPR에 열중했다.

목숨이 소중한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살릴 방법이 있다면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

CPR을 지속한지 대략 십 분이 지났다.

최기석의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려는 찰나, 강아지가 컹컹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더니 힘겹게 눈을 뜨고, 긴 혀를 축 늘어트렸다.

"테디!"

남성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강아지를 끌어안았다.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강아지를 살피고 활력 징후를 확인했다.

다행히 맥박과 호흡이 정상이다.

"응급상황은 넘겼지만, 병원에 한 번 가 보셔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남성이 최기석에게 연거푸 고개를 숙였고, 최기석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었다.

'동물까지 CPR로 살려 내는 건가?'

파커는 최기석을 지켜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필요한 처방을 입력하고, 외과 중환자실을 찾았다.

'방법이 없을까?'

카터를 내려다보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카터는 교통사고로 입원했으며, 경막하 출혈로 혈종 제거수술을 받았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관리 중인데 며칠째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잠깐 컴퓨터 좀 써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스테이션 간호사 자리에서 카터의 수술 후 CT 기록을 살폈다.

Brain CT를 보는 간단한 법.

그것은 머리 바깥쪽의 하얀 부분이 뼈고, 머리 안쪽에 있는 하얀 부분은 출혈 부위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카터의 경우 머리 안쪽에 하얀 부분은 없었다.

즉 응급수술로 혈종은 다 제거했다는 뜻이다.

'외상으로 인한 데미지가 컸던 걸까?'

최기석은 다른 검사 결과를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닥터 최. 여기요!"

라운딩하던 간호사가 목청을 높였다.

간호사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검지로 카터를 가리켰다. 카터가 조금씩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으으으윽."

신음을 흘리며 힘겹게 눈 뜨는 카터, 그는 얼굴을 찡그린 채 주변을 훑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카터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이곳에 실려 왔습니다."

"아…… 교통사고……."

"의식을 차리셨으니 잠시 몇 가지를 확인하겠습니다."

최기석은 라이트로 카터의 동공을 살폈다. 동공의 크기 및 반사는 이상이 없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시겠습니까?"

"병원이요."

"제가 누구인지는 알아보시겠어요?"

"의사입니다."

"제 말을 전부 이해하시면, 눈꺼풀을 깜빡거려 보세요."

그의 지시에 카터가 눈꺼풀을 깜빡거렸다.

이만하면 의식을 평가하는 GSC(Glasgow Coma Scale) 평가에서 만점인 수준이다.

최기석은 카터의 명료한 의식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여나 뇌사 상태에 빠지지는 않을까.

뇌에 데미지를 입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말이다.

"지금 제일 불편하신 게 뭐죠?"

"머리가 콕콕 쑤셔요. 누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아요."

"다른 건 없습니까?"

"네."

카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최기석은 두통약을 처방하고, 신경과에 협진을 요청했다.

"아내하고, 딸아이를 볼 수 있을까요? 나 때문에 걱정이 많았을 텐데……."

"면회시간이 아닐뿐더러 조금 더 안정을 찾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카터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당분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됐으니 콘서트는 물 건너갔군요."

"콘서트요?"

"아내에게 못 들었나 보군요. 난 피아니스트입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이쪽에서는 제법 유명하죠."

"아. 그렇군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영광까지야……. 그건 그렇고 목이 마른 데 물 좀 주시겠어요?"

"네."

최기석은 물컵에 물을 담아 카터에게 먹여 주려 했다.

"애도 아니고, 물은 혼자 마실 수 있습니다."

미소 짓던 카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어디가 아픈지 물컵을 받지 못한 채 계속 끙끙거리기만 했다.

"왜 그러시죠?"

"파…… 팔이…… 안 움직여요."

카터의 얼굴에 절망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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