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22화 (221/407)

리턴 (5)

최기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PVP 모드를 실행했다.

[PVP 모드에 입장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PVP 모드는 기존에 촬영한 동영상 속 써전들과 실력을 겨루는 모드입니다. 트레이닝 모드와 달리 1일 1회 입장 가능합니다. PVP 모드에서 승리할 경우 특별한 젬을 보상으로 드립니다.]

[상대 써전을 선택해 주세요.]

[대결 수술을 선택해 주세요.]

휘이이이잉.

선택사항을 체크하자 눈부신 빛이 주변을 휘감았다.

이윽고 최기석은 수술대 앞에 자리 잡았다.

수술대에는 환자가 누워 있었고, 주변에는 가상의 스태프가 곁을 지켰다.

PVP 모드가 트레이닝 모드와 다른 점.

그것은 바로 옆에서 상대 써전이 수술 준비 중이라는 점이다.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 레온이 있었는데, 그의 머리 위로 노란색 바가 떠올랐다.

바는 마치 격투 게임의 체력 게이지 같은 느낌을 풍겼다.

[PVP 모드에서는 Surgery Progress Bar, 통칭 S.

P.

B를 통해서 진행 과정을 살필 수 있습니다.]

'나한테도 있네.'

최기석은 자신의 머리 위를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확실히 PVP 모드는 트레이닝 모드와 느낌이 달랐다. 상대가 곁에 있고 양쪽의 경과를 알 수 있었기에.

실제로 써전끼리 진검승부를 하는 기분이랄까.

[뇌동맥류 수술 5초 전입니다. 수술을 준비해 주세요. 5, 4, 3, 2, 1. 뇌동맥류 수술, 시작합니다.]

알림이 로젯에 울려 퍼졌다.

뚜두두둑.

최기석은 목을 꺾으며, 가상 스태프들을 응시했다.

그의 뜻을 읽었는지 제2보조가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그 위로 방포를 덮었다.

"메스."

최기석은 메스로 환자의 두피를 조심스럽게 절개했다. 그러자 제2보조가 드릴로 절개 부위에 구멍을 뚫었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보조를 받는 동안 레온과 자신의 바를 살폈다.

양쪽의 바가 동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술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써전의 실력이 크게 영향을 끼치기 않았다.

드르르르륵.

요란하던 드릴 소리가 멈추고, 절개 부위 인근에 구멍이 만들어졌다.

"절제를 계속한다."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아 구멍을 따라서 두개골을 잘라 나갔다.

뇌동맥류 수술 동영상을 열 번 이상 돌려보고, 트레이닝 룸에서 몇 차례 연습까지 했다.

내심 쉽게 지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윽고 절제한 두개골을 드러내자 머릿속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최기석은 의자를 바짝 끌어당기고, 마이크로 현미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뷰(view, 수술 시야) 더 깊숙이."

그의 지시에 수술 스태프가 현미경을 조작했다.

몇 번의 작업 끝에 만족스러운 시야가 확보되었다.

최기석은 가상 스태프의 도움 속에 머리 깊숙한 쪽으로 파고들었다. 힘든 과정에 대뇌동맥륜이라고 불리는 윌리스 써클에 도달했다.

'뭐야? 이건?'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수술 동영상으로 촬영했던 때와 뇌동맥류의 위치와 크기가 달랐다.

뇌동맥류는 중대 뇌동맥에 있었으며, 크기는 10mm로 그때보다 작았다.

최기석은 낯선 상황에 부딪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몰랐다.

초조한 마음으로 레온의 수술 경과 바를 응시하자 바는 고작 20퍼센트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반면 자신의 바는 아직 절반이 넘게 남았다.

'침작하자.'

심호흡하고 다시 현미경에 집중했다.

"13번 클립."

소독간호사에게 클립을 받아 뇌동맥류를 조심스럽게 묶었다.

찰칵!

소리는 경쾌했지만, 클립이 커서 뇌동맥류가 단단하게 묶이지 않았다.

"12번 클립."

"11번 클립."

"10번 클립."

최기석은 계속해서 클립의 크기를 낮춰갔다. 번호를 건너뛸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 오히려 시간이 더 오래 걸릴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뇌동맥류 결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갑자기 알림이 울렸다.

[레온이 수술을 먼저 완료하였습니다. 최종 수술 랭크 A+. 당신은 레온과의 뇌동맥류 수술에서 패배하셨습니다.]

알림이 끝나면서 광채가 뿜어졌다.

최기석은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레온에게 진 것은 억울하지 않았다.

신경외과에 온 지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레온보다 집도를 더 잘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억울한 것은 집도를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PVP 모드라서 그런 건가?"

최기석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새로 생긴 PVP 모드는 생각보다 유용했다. 그중 하나는 승리욕을 활활 타오르게 만든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수술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트레이닝 모드의 경우 병의 경과가 촬영한 동영상과 일치했다. 그래서 수술을 통째로 외워 두고, 그대로 따라 하면 그만이었다.

반면 PVP 모드는 같은 질환이라도 병의 경과가 달랐다.

PVP 모드 시 뇌동맥류가 예측했던 것과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잘 사용하면, 수술의 응용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띠링!

[신규 임무, '승리에 목마른 자'가 생성되었습니다. PVP 모드에서 5회 승리 시 랜덤 스킬업 북을 제공합니다.]

최기석은 알림을 확인하고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쉽지 않은 임무다.

그동안 촬영해 둔 수술의 집도의들은 하나같이 그보다 실력이 뛰어났다.

'내일은 송 교수님하고 CABG(관상동맥 우회술)로 붙어 볼까?'

* * *

다음 날 오전.

회진이 끝난 후 최기석은 소아신경외과 병동을 찾았다.

드르르륵.

문을 열고 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닥터 최."

"좋은 아침입니다."

최기석은 티나에게 인사하고 베라의 침상 곁에 섰다.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베라는 여전히 차도가 없었다.

"오전 회의 때 교수님들과 베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술 스케줄을 잡는 게 좋다고 하셨습니다. 알아보니 사흘 후 오전이 가능 빠른 시간이더군요."

"네. 수술해 주세요. 우리가 베라가 나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해야죠."

"그럼 수술 동의서를 작성해 주세요."

최기석은 티나에게 수술 동의서를 내밀고, 수술에 대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 베라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닥터 최. 궁금한 게 있어요."

"말씀하세요."

"이 수술 할 때 피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피라니요? 무슨 뜻이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받아서 수술하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수혈 없이 진행하는 수술은 보통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환자가 소아라면 더더욱 그렇죠."

"저기……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 베라 수술에서는 수혈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베라의 말이 뒤통수를 강타했다.

최기석은 넋 나간 표정으로 티나를 응시했다.

이건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와 다를 바는 수준이다.

가뜩이나 난이도 높은 게 소아 뇌수술이 아닌가.

그런데 수혈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니.

포와 차를 떼고, 장기를 두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혈을 거부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건 말씀드리기 불편하네요. 중요한 건 저와 남편의 의견이 완전히 똑같다는 거예요. 베라에게는 무수혈 수술이 꼭 필요해요."

"……."

"작은 병원도 아니고 메이죠 클리닉이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수혈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쩔 수 없죠. 다른 병원을 찾아보는 수밖에."

"메이죠에서 불가능한 수술을 다른 병원에서 순순히 받아 줄 거라 생각하나요?"

최기석이 정곡을 찌르자 티나가 입을 다물었다.

"티나. 이건 베라의 목숨이 달린 수술입니다. 부디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주세요."

"네?"

"무조건 무수혈 수술로 해 주세요. 그게 안 된다면 다른 병원에 갈 거예요."

"여러 병원을 떠돌다가 베라의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충분히 알고 계십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티나는 의견을 단 한 걸음도 무르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그녀가 탁자에 놓인 수술동의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돌려 드릴게요. 내일까지 답변해 주시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병실을 나와서 거칠게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설마 티나가 이런 방식으로 수술을 복잡하게 만들 줄이야.

복도에 서서 감정을 누그러트리다가 의국으로 들어갔다.

마침 레온이 처방을 입력 중이다.

"레온, 혹시 바쁘세요?"

"잠깐만요. 처방 몇 개랑 감마나이프 오더 하나만 넣으면 돼요."

"뇌종양 환자 받으셨어요?"

"빙고."

레온이 피식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감마나이프는 뇌종양 또는 혈관 기형이 있는 환자에게 시행하는 치료다. 이름만 들으면 외과적으로 수술하는 치료 같지만 실은 방사선 치료다.

"무슨 일이에요? 얼굴이 완전 흙빛인데."

"제 환자 중에 모야모야병을 앓는 아이가 있거든요. 그런데 부모가 무수혈 수술을 원해서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상의 드리려고요."

"모야모야병 수술에 무수혈이라……."

레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이건 루카스 과장님이라고 해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저도 동감입니다."

"환자는 설득해 봤어요?"

"귀가 완전히 막혔습니다. 메이죠에서 수술 못 하면 다른 병원에 가겠다고 하네요."

"으음…… 종교적인 신념 때문인가?"

레온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과도 무수혈 수술 경험이 많은 편이에요. 하지만 그건 대부분 성인이었죠. 적어도 내가 알기로 소아를 무수혈로 수술한 적은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죠?"

"루카스 과장님께 상의해 봐요. 아직 집무실에 계실 테니까.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요. 미스터 최."

"아닙니다. 레온이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최기석은 곧바로 루카스의 집무실을 찾았다.

루카스는 저번처럼 소파에 앉아 매튜와 대화 중이다.

"무슨 일이지?"

"오전 회진 때 브리핑했던 환자에 대해 상의 드리고 싶습니다."

최기석이 베라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집무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문제로 골머리 썩을 필요 없지. 안 그런가?"

매튜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루카스를 응시했다.

"이 환자 다른 병원으로 보내 버려. 기왕이면 우리 병원의 라이벌인 제임스 홉킨스 병원이 좋겠군."

"전원은 안 돼. 제임스 홉킨스 병원에 신경외과 과장이 누군지 잘 알잖아. 이 환자 백 퍼센트 거절당할 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거절할 명분이 있으니까."

"거절당할 걸 알면서도 보내라는 건가?"

"암. 그렇고말고."

매튜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제 살 깎아 먹는 수술을 할 필요 있나 싶군. 수술이 성공하면 당연한 거고, 실패하면 소송당할지 몰라. 내 말이 틀렸나?"

"……."

"엉뚱한 생각 말고 당분간은 몸 사려. 자네는 헤드 치프가 되고 싶지 않은 건가?"

"그 이야기는 이번 수술 건과 상관없네."

"왜 상관없지? 이번 수술로 환자가 죽으면, 자네는 헤드 치프에서 밀릴지 몰라."

"내 승진은 단지 내 문제일 뿐이야. 환자와 연관시킬 성질의 것이 아니지."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맞부딪쳤다.

"그래. 자네 좋을 대로 하라고.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매튜가 얼굴을 찌푸리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무거운 침묵 속에 루카스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미스터 최. 자네가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나? 모야모야병의 무수혈 수술, 하는 게 옳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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