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21화 (220/407)

리턴 (4)

"30번하고 4번 클립."

레온의 외침에 소독간호사가 클립을 건넸다.

레온은 두 개의 클립을 이용해 뇌동맥류를 묶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대로 된 결찰을 할 수 없었다.

"30번하고 5번 클립."

레온은 계속해서 클립을 바꿔 결찰을 시도했다.

그랬다.

클립 하나로 묶을 수 없다면, 두 개를 사용하면 된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판단.

다른 스태프가 하지 못한 발상을 레온은 해냈다.

단순히 기억력만 좋은 게 아니라 상황 대처 또한 발군이다.

딸칵! 딸칵!

몇 번의 시도 끝에 뇌동맥류 결찰이 끝났다.

"이제 됐죠?

스태프를 바라보는 레온의 눈이 웃고 있었다.

"역시 레온이네. 나는 못 따라가겠다."

제1보조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는 레지던트 3년 차로 레온보다 한 기수 위였다.

"선배님도 이제 알았으니까 응용하면 되죠. 마지막으로 미세 뇌동맥류가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레온이 분주하게 윌리스 써클을 살폈고, 제1보조와 최기석이 그를 도왔다.

레온의 꼼꼼함 덕분에 PCA(Posterior Cerebral Artery, 후대뇌동맥) 부근에 3mm 크기의 뇌동맥류를 발견했다.

미세 뇌동맥류에 예방 차원의 클립을 묶어 주면서 수술은 끝났다.

지이이이잉.

스태프들이 일제히 로젯 바깥으로 나왔다.

띠링!

[뇌동맥류 수술 스크럽 임무를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500 P.

P와 영혼의 눈물 50스택을 제공합니다.]

[연계 임무, '레온을 뛰어넘어서'가 생성되었습니다. 트레이닝 룸에서 뇌동맥류 수술 A랭크를 획득하세요. 완수 시 특별한 보상을 제공합니다.]

연달아 울리는 알람 속에서 최기석의 시선이 레온에게 고정되었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

* * *

다음 날 오전.

최기석은 의국에서 당직의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있었다.

오늘의 오전 근무는 최기석과 래리, 니콜라이.

이렇게 세 명이다.

"어젯밤 완전 지옥이었어. 환자들이 몰려와서 잠깐도 못 쉬었다니까."

당직의 클레어가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입원환자 두 명인데 누가 받을래?"

"지금 여유가 있는 건 미스터 최뿐이야."

니콜라이가 고갯짓으로 최기석을 가리켰다.

"괜찮을까? 신규인 미스터 최에게 맡겨도? 환자들 상태가 썩 좋지 않은데. 만약 관리를 잘못하면……."

"걱정 마. 잘할 수 있으니까."

"……알았어. 대신 환자한테서 이상한 게 느껴지면, 곧바로 우리나 레온에게 말해 줘."

클레어는 어제 입원한 환자를 최기석에게 넘기고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클레어의 당직은 아까 말한 대로 지옥이었다.

응급실에만 열 번이 넘게 불려갔고, 그중 두 명은 입원했다.

도중에 교통사고 환자가 있어서 응급수술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전 당직이었던 니콜라이가 환자 세 명 봤던 것을 고려하면, 비교체험 극과 극 수준이다.

'이 친구도 불쌍한 영혼이네.'

최기석은 클레어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 혀를 찼다.

그녀에게는 QOP(Queen Of Patient, 환자의 여왕) 칭호가 있었다. 칭호 명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효과는 환타와 동일했다.

천상 환자를 끌어오는 의사라는 뜻이다.

"역시 클레어답다. 환자 열 명은 기본이네."

"놀리지 마. 난 진짜 심각해."

클레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인수인계가 끝난 후 최기석과 래리, 니콜라이가 오전 회의 준비에 나섰다.

"뇌경색증 환자는 어때?"

니콜라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지금은 멀쩡해. 네가 환자를 그대로 떠넘기는 바람에 뇌실천자 연습도 했고."

"뇌실천자를 했다고? 네가?"

"왜? 하면 안 돼?"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넌 어제 막 신경외과 일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니콜라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거렸다.

"정 못 믿겠으면, 레온에게 물어보든가. 하여간 환자 잘 넘겨줘서 연습 잘했다."

최기석은 빈정거리며 회의 준비를 마쳤다.

어제 일로 니콜라이와 확실히 선을 그었다.

이제부터 니콜라이는 그의 적이다.

과거에는 자신을 적대시하는 사람에게조차 마음을 열만큼 바보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악의는 악의로 갚아 주는 것이 맞다.

애초에 모든 사람과 평화롭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잠시 후 오전 회의와 회진이 무사히 끝났다.

최기석은 의국에서 환자 차트를 살피고, 소아 신경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베라의 주치의 기석 최라고 합니다."

한 병실로 들어가 보호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티나예요."

"아침 식사는 하셨습니까?"

최기석의 질문에 티나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시선이 베라에게 고정되었다.

베라는 3세의 여아로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었다.

모야모야병이란 전대뇌동맥이나 중대뇌동맥 부근에 협착과 폐색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제때에 치료하지 못하면 지능이 떨어지거나, 신경마비, 심하면 사망까지 이를 수 있다.

"선생님. 우리 베라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죠?"

"우선 오늘 중으로 뇌혈관 조영술과 MRI를 실시할 겁니다. 검사로 혈관이 막혀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조만간 수술을 해야 합니다."

"결국, 수술을 받아야 하는군요."

티나가 울상을 지었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 베라가 몸을 뒤척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아파. 머리 아파."

"괜찮아. 우리 착한 아이. 괜찮아."

티나가 품에 안고 달랬지만, 베라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에 최기석은 페인킬러로 티나의 통증을 줄여 주었다.

"지금은 어때?"

"머리 안 아파."

베라가 훌쩍거리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희귀질환으로 고통을 받다니, 아이를 보고 있을수록 가슴이 저릿하게 아팠다.

의사인 자신이 이렇게 힘들 정도면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

"클리닉에 도서관이 있는데, 오후에 동화책을 가져오겠습니다. 아이에게 읽어 주면 좋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최기석은 티나에게 격려 스킬을 걸어 준 후 좀 더 대화를 나누다가 의국으로 돌아왔다.

타다다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빨라졌다.

"항경련제 추가 처방하고, PCO2(탄산가스분압)는 35-40mmHg로 유지하면 되겠지?"

외과 매뉴얼을 떠올리며 수술 전 관리 처방을 내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신경외과 중환자실을 찾았다.

벽 쪽 자리에 누워 있는 한 중년 남성, 카터.

그가 바로 최기석이 새로 받은 환자다.

카터는 어제 교통사고로 응급 수술을 받았는데, 진단명은 급성 경막하 출혈이다.

'역시 상태가…….'

카터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급성 경막하 출혈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사망률이 60퍼센트에 달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실제로 카터는 어제 수술 후 의식을 찾지 못했다.

가슴이 아픈 건 당장 해 줄 수 있는 처치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은 그저 경과를 살피며, 카터가 깨어나길 바라는 것밖에…….

최기석은 카터를 살피다가 중환자실을 나왔다.

새로 맡은 환자의 상태가 나빠서 그런지 그의 마음도 무겁기만 했다.

담당 환자를 모두 살핀 후 병동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의국으로 들어가려던 도중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여기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최기석은 가운을 휘날리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병실 한가운데 한 환자가 누워 있었다.

그는 눈이 뒤집혀 흰자가 드러났으며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입에서는 게거품이 흘렀다.

"다들 침착하세요."

최기석은 주변 사람들을 안정시키며, 쓰러진 환자에게 다가갔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결과 남자는 간질환자로 발작을 일으켰음을 알 수 있었다.

'대체 왜지?'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스쳤다.

간질 발작의 경우, 보이는 것과 달리 크게 위험하지 않다. 보통은 5분 이내에 발작이 멈추며, 환자는 서서히 의식을 되찾는다. 그런데 이 환자는 달랐다.

상태가 응급이다.

"미스터 최. 무슨 일이야?"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래리가 뒤늦게 병실로 들어왔다.

"발작 환자가 있어서. 스테이션에 가서 설압자랑 거즈 좀 챙겨 줘."

"그건 왜?"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게."

그의 다급한 말에 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요. 심폐 소생술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이렇게 보고만 있다가 이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책임은 어떻게 지려고."

"쓰러졌다고 무조건 CPR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최기석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아…… 하아…… 하아……. 여기 받아."

"고마워."

최기석은 래리가 건넨 도구로 환자의 기도를 확보했다.

발작이 일어났을 때 간혹 기도가 폐쇄되는데, 환자는 바로 그 케이스였다.

설압자로 기도를 확보해 주자 환자의 발작이 서서히 멎었다.

최기석은 래리와 함께 환자를 침상에 눕히고 경과를 살폈다.

"으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이렇게 주변에 사람이 많죠?"

의식을 차린 환자가 주변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자분은 발작이 일어나서 잠시 의식을 잃었습니다. 간단한 응급처치를 했고요."

"아…… 또 발작이…… 민폐를 끼쳤군요."

"아닙니다. 혹시 불편하신 데는 없나요?"

"네. 덕분에."

최기석은 환자를 문진한 후 래리와 의국으로 돌아왔다.

"미스터 최. 잘하는데? 신경외과 경험이 없다고 한 건 거짓말 아니야? 뇌실천자를 한 번에 성공한 것도 그렇고, 오늘 처치도 그렇고 말이야."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하긴 그것도 그러네."

래리가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었다.

"미스터 최를 보고 있으면, 왠지 레온이 겹쳐져. 레온도 미스터 최처럼 특별한 사람이니까."

"레온에 비하면 난 아직 멀었지."

최기석은 어제 레온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레지던트 2년 차임에도 뇌동맥류 수술을 완벽하게 집도했던 모습을 말이다.

자신도 흉부외과에서 수련하면 레온처럼 인정받고 싶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무슨 일이든지 척척 해내잖아. 내가 두 사람이 가진 재능을 절반이라도 가졌으면……."

래리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낮에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다음 달에 헤드 치프 뽑는 투표를 한대. 뭐. 우리랑은 상관없겠지만."

"너는 누가 됐으면 좋겠어?"

"나는 매튜 과장님이 더 좋더라. 스크럽 설 때 스태프를 조금 더 풀어 주시거든. 루카스 과장님은 어휴! 말도 하기 싫다. 너는 누가 나을 것 같아?"

"글쎄. 난 신경외과에 온 지 이틀밖에 안 됐잖아. 조금 더 지켜봐야지."

"그래. 맞는 말이다."

래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벽시계를 응시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냐?"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일과가 끝난 후 수술용 참관실을 돌며 수술 동영상을 저장했다.

지금까지 촬영한 신경외과 수술은 세 개.

아직 숫자가 한참 모자라지만 한 달만 지나도 웬만한 수술은 다 기록할 수 있으리라.

기숙사에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레온을 뛰어넘어서'라는 신규 임무를 진행 중이기에 곧바로 트레이닝 룸에 접속했다.

띠링!

[트레이닝 룸 입장 800회 돌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PVP 모드가 개방됩니다.]

[PVP 모드를 실행하시겠습니까?]

낯선 알람에 정신이 멍해졌다.

'PVP 모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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