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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20화 (219/407)

리턴 (3)

최기석은 응급실 진료를 마치고 병동으로 돌아왔다.

신경외과에 와서 처음 본 환자가 응급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미스터 최. 루카스 과장님이 보자고 하는데?"

의국으로 들어가자마자 래리가 한마디 했다.

"뇌혈관외과 과장님이? 나를?"

"오늘이 근무 첫날이잖아.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

"알았어."

최기석은 발길을 돌려 루카스의 집무실을 찾았다.

똑. 똑. 똑.

노크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루카스는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고, 맞은편에는 매튜가 앉아 있었다.

공교로운 일이다.

차기 헤드 치프를 노리는 뇌혈관외과와 뇌종양외과의 수장이 한자리에 있다니…….

"안녕하십니까."

"반가워, 미스터 최. 이쪽으로."

루카스의 손짓에 따라 매튜의 옆자리에 앉았다.

"의국에 전화해 보니까 응급실에서 진료를 봤다고 하던데. 무슨 환자였지?"

"소아 환자로 문진상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 의심되었습니다. 그런데 행동이 미심쩍어서 대화를 해 봤더니 꾀병이었습니다."

"꾀병?"

매튜의 미간이 좁아졌다.

"검사는 제대로 해 보고서 꾀병이라는 판단을 내린 건가?"

"검사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허. 이 친구 위험한데? 여기는 말이야. 단순히 문진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매튜가 자신의 측두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검사를 하지 않은 이유가 듣고 싶군."

"부모를 떼어 놓고 아이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머리를 다친 적이 없으며, 꽃병을 깬 것이 무서워 거짓말했다고 말했습니다. 아프지 않은 게 명백한데 검사가 필요할까요?"

루카스의 질문에 최기석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에 루카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지만, 매튜는 여전히 탐탁지 않다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검사는 필요해."

매튜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병원의 수익을 위해서."

"불필요한 검사까지 하라는 말씀입니까?"

"미스터 최.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검사는 병원에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말이야. 그게 왜 불필요한 일이지?"

"환자 입장에서는 불필요합니다."

최기석은 차분한 태도로 덧붙였다.

"메이죠의 핵심가치는 환자 중심입니다. 그러니 환자에게 필요 없는 검사는 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환자 중심이라는 가치를 지키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군."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부딪쳤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은 두 사람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두 사람의 외과적 처치는 9레벨이다.

최대 레벨에 근접한 수치니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루카스의 성향이 환자 중심이라면, 매튜의 성향은 성공 중심이다.

'괜히 그레이트 써전이 아니었군.'

최기석은 두 사람과 스미스를 비교했다.

스미스의 성향은 환자 중심이다.

이 두 사람과 외과적 처치 레벨은 같으나 일반외과에 세부분과(위장관외과, 대장관외과. 간담췌외과)를 전부 마스터했다.

더불어 스킬 또한 이 두 사람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루카스와 매튜를 합쳐도 스미스 한 사람을 감당 못 하는 수준이다.

"둘 다 그만. 싸우려고 이 자리에 모인 건 아니니까."

루카스가 중재에 나섰다.

"그건 그렇고, 오전에 스미스 치프가 보낸 평가서를 읽어 봤어. 평가가 아주 후하더군. 본래 신규 써전들에게 야박하기로 소문난 분인데 말이야."

"열심히 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하이어 시스템으로 조기 진급했겠지."

루카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첫날이지만 신경외과 일은 어떤 것 같나?"

"아직 정신이 없습니다. 인턴 때 신경외과 수련을 한 적도 없어서요."

"그래도 미스터 최라면 금방 적응하겠지. 난 눈을 보면 알 수 있어. 자네가 동기들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는 걸 말이야."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매튜가 입을 열었다.

"신경외과에서도 조기 진급을 노리고 있나?"

"네. 수련 기간을 단축해서 최대한 빠르게 흉부외과로 가고 싶습니다."

"흉부외과라……. 이제 기억나는군. 한국에서 송 치프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맞습니다."

"자네는 하이어 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나?"

매튜가 루카스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실력만 확실하게 갖췄다면, 수련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난 반대야. 실력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부분이지. 게다가 수련의 사이에 형평성에도 어긋나."

매튜가 최기석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말을 귀에 새겨들으라는 듯.

"미스터 최. 레온은 만나 봤나?"

루카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네. 신경외과 오기 전에도 본 적 있고, 오늘도 잠깐 봤습니다."

"알지 모르겠지만, 레온도 자네만큼 특별한 친구야. 작년 레지던트 공채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지금은 일년 차임에도 당당하게 집도하고 있지."

"……."

"레온과 함께 있으면 자극이 많이 될 거야. 그게 좋은 쪽으로 작용할지 나쁜 쪽으로 작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있다가 레온의 뇌동맥류 수술이 있지 않나? 미스터 최가 스크럽에 들어가 보는 것도 좋겠어. 안 그런가?"

"좋은 생각이군."

매튜의 제안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갑작스럽겠지만 수술 스크럽 서 보겠나?"

띠링!

[신규 임무, '뇌동맥류 수술 스크럽'을 획득하셨습니다. 스크럽을 무사히 마칠 경우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루카스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알림이 울렸다.

"뭐. 겁나면 안 해도 좋아.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최기석은 매튜의 도발을 단번에 물리쳤다.

솔직히 보고 싶었다.

두 사람이 극찬하는 레온의 집도 실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미스터 최의 스크럽 건은 내가 레온에게 미리 말해 두지. 그만 가 봐."

"네.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의국에서 외과 매뉴얼을 읽고 있었다.

삼십 분 뒤로 다가온 뇌동맥류 스크럽을 준비하는 중이다.

뇌동맥류.

이것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뇌혈관이 손상되면서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질환이다. 부풀어 오른 혈관을 방치하면, 나중에 혈관이 터지며 각종 후유증을 일으킨다.

"대단하네."

책을 덮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레온의 집도는 믿기 힘든 사실이다.

비유하자면 자신이 흉부외과에서 대동맥류를 집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레온이 뇌동맥류 집도가 가능하다는 것.

다른 스태프들이 이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

이 두 가지 모두가 충격적이었다.

메이죠가 다른 병원과 다름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고 할까.

"가자."

최기석은 볼을 가볍게 두드리고 의국을 나섰다.

그런데 걷던 도중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일반외과 때와는 달리 신경외과에서는 하이어 시스템과 연동된 임무가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신경외과에서는 조기 진급이 불가능한 걸까.

생각이 깊어지는 가운데 그럴듯한 추론이 떠올랐다.

현재 신경외과는 하이어 시스템을 주관하는 헤드 치프가 부재인 상황이다.

어쩌면 헤드 치프가 없어서 임무가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매튜가 골칫거리겠네.'

매튜는 하이어 시스템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자신에게 반감을 품었다.

그가 헤드 치프가 되면, 발목을 잡으려 할 게 뻔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술실에 도착했다.

신경외과 스태프들이 A 로젯 앞에 모여 있었다.

"미스터 최. 왔어요?"

"아, 네. 갑작스럽게 스크럽을 부탁드려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과장님이 제안한 거라고 들었으니까. 수술 공부는 많이 했죠?"

"문제없습니다."

"그래요. 제2보조는 복잡한 처치가 없으니까 긴장 안 해도 될 거예요. 그럼 마지막으로 브리핑합시다."

레온이 직접 수술개요를 설명했다.

이후 소독을 끝낸 스태프들이 로젯 안으로 들어갔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전신 마취가 끝나고 수술의 막이 올랐다.

"개두술 준비하겠습니다."

스으으윽.

최기석은 머리카락을 깎은 환자의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메스."

레온이 소독간호사가 건넨 메스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환자의 두피를 조심스럽게 절개했다.

"드릴 사용합니다."

제2보조가 드릴로 절개 부위에 구멍을 뚫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득.

기묘한 소리가 로젯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절개 부위 인근에 세 개의 구멍이 만들어졌다.

드릴 구멍은 두개골 판을 들어낼 일종의 흔적이다.

"계속 갑니다."

레온이 다시 메스를 손에 쥐고, 구멍을 따라서 두개골을 절제했다.

최기석은 집도 중인 레온을 보며 감탄했다.

그는 레지던트 2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수술을 관장하고 있었다.

아직 수술이 극초반 단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최기석은 루카스가 말한 자극이란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레온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졌기에.

"두개골 드러냅니다."

최기석이 잘라 낸 두개골을 따로 보관하자 머리 내부가 한눈에 보였다.

"잘했어요. 준비 많이 했나 본데요?"

"레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벌써부터 저랑 비교하면 안 되죠. 그럼 지금부터 동맥류를 찾아봅시다."

레온이 미세 현미경을 보며, 포셉으로 뇌의 깊숙한 부분을 헤쳐 나갔다.

동시에 제1보조와 최기석은 피를 흡수하는 거즈로 레온의 시야를 확보해 주었다.

동맥류를 찾기 위한 아슬아슬한 여정의 시작.

수술 부위로 향하는 도중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환자에게 마비가 올 수 있었다.

사소한 동작조차 신중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 속에 윌리스 써클에서 동맥류가 발견되었다.

윌리스 써클이란 대뇌동맥륜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에서 뇌동맥들이 별 모양을 이루고 있다.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은데요?"

레온이 포셉으로 뇌동맥류를 조심스럽게 건드렸다.

뇌동맥류의 타입은 방추형.

정상적인 혈관 위로 뇌동맥류 혈관이 혹이 난 것처럼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다.

방추의 크기는 대략 15mm.

크기도 클 뿐 아니라 혈관 벽이 매끄러워 파열의 위험이 컸다.

그뿐만이 아니다.

위치가 좋지 않아 처치하려면, 머리뼈 일부까지 잘라 내야 한다. 즉 검사로 예상한 것보다 수술 난이도가 두 배 이상 뛰어오른 것이다.

과연 레온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스태프들의 시선이 모두 레온에게 집중되었다.

"메스."

레온은 처치를 방해하는 머리뼈를 제거해 나갔다.

칼날이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뇌동맥과 신경이 손상을 받기에 손놀림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탕!

뼛조각이 곡반에 떨어지며 맑은소리를 냈다.

"33번 클립."

레온의 외침에 소독간호사가 클립을 건넸다.

오늘 수술은 클립 결찰술.

클립으로 동맥류를 묶어서 동맥류로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게 만들어 파열을 방지하는 수술이다.

딸칵.

레온이 클립으로 뇌동맥류를 묶었지만, 혈류의 흐름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었다.

뇌동맥류가 워낙 컸던 탓이다.

33번을 기준으로 클립의 크기를 크게 늘려 나갔지만, 뇌동맥류에 딱 맞는 클립은 없었다.

"레온, 이제 어떻게 하죠?"

최기석의 시선이 레온에게 고정되었다.

레온의 특별한 집도 능력은 과잉기억 증후군을 통한 암기 능력에서 나온다.

즉 돌발 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은 뛰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과장님께 전화라도 해 볼까요?"

"안 그래도 될 것 같아요. 좋은 방법이 떠올랐거든요."

레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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