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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19화 (218/407)

리턴 (2)

"직접 하겠다고요?"

레온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뇌실천자가 수련 첫날부터 할 처치는 아닌 것 같은데."

"어차피 배워야 하는 거니까, 이번 기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레온이 봐주면 더 든든할 것 같고요."

"천자 방법은 알아요?"

"네."

"좋아요. 그럼 같이 해 보죠."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병실로 이동해 환자와 대화를 나눴다.

'역시 그 자식이…….'

최기석은 환자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써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환자는 뇌경색과 뇌실염을 함께 앓았다.

그로 인해 두개내압이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바이탈에도 이상 신호가 있었다.

니콜라이가 뇌실염을 의도적으로 숨긴 증거라고 할까.

"반갑습니다. 환자분의 주치의를 맡게 된 기석 최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지금 환자분은 뇌실천자라는 처치가 필요합니다. 뇌실천자란 작은 침을 환자의 머리 안쪽으로 넣는 것인데 이를 통해 두강 내 압력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

최기석이 뇌실천자의 필요성을 설명하자 올리버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세 사람이 처치실로 이동했다.

뇌실천자는 일반천자와 달리 필요한 도구들이 더 많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환자가 처치실 수술대에 몸을 뉘었다.

"레온.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요."

두 사람이 수술용 장갑을 착용하고 자리를 잡았다.

최기석은 드레싱 카트와 환자 사이에 있었고, 레온은 드레싱 카트 뒤쪽에서 환자와 최기석을 살폈다.

사각. 사각.

최기석은 천자할 부위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그리고 레온이 건넨 국소 마취제 주사를 피하로 주입했다.

'잘할 수 있을까?'

레온의 시선이 처치 중인 최기석에게 머물렀다.

그가 보통 레지던트가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았다.

일반외과에 있는 동기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고, 다른 사람을 통해 들은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뇌실천자는 다른 천자에 비해 위험성이 훨씬 높았다.

천자가 잘못되면 환자에게 마비가 올 수 있다.

뇌출혈, 뇌손상, 감염의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신경외과에 먼저 온 그의 동기들도 한 달이 지난 후에야 간신히 배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최기석은 달랐다.

신경외과에 오자마자 천자를 하고 싶다며 배짱을 부렸다.

'실패하지 말아야 할 텐데.'

레온은 걱정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명성을 쌓는 건 힘들고 어렵지만, 그 명성을 날려 버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최기석의 경우도 마찬가지.

지원자 수석, 올해 최초의 하이어 시스템 이용자 등등.

이번 천자에 실패하고 환자에게 후유증이 남는다면, 그 많은 성과들은 물거품이 되리라.

"레온."

"어. 음. 네?"

"처치하는 건 저잖아요. 그런데 저보다 더 긴장한 거 아닌가요?"

"그거야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천자도 못할 거면, 신경외과에 오지도 않았으니까. 메스 주세요."

최기석은 레온에게 받은 메스로 천자 부위에 절개창을 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Kocher's point에 머물렀다.

Kocher's point는 뇌실천자를 시행하는 가장 안전한 장소다.

정중선에서 외측으로 2.5센티미터, 관상 봉합면에서 1센티미터가 되는 곳에 있었다.

최기석이 검지로 Kocher's point를 가리키자 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릴이요."

최기석은 드릴을 손에 쥐고 심호흡했다.

드릴로 환자의 두개골에 구멍을 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늘.

부담감이 살짝 밀려왔지만, 곧 먼지처럼 사라졌다.

얼어붙은 심장의 패시브 효과가 그를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이이잉.

요란한 소리와 함께 환자의 두개골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

"16게이지 니들."

니들을 받아서 구멍 안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정중선과 외이도 방향을 향해서 약 4센티미터가량 전진하면 된다.

푸우우욱.

천자를 진행하는 가운데 손끝에 무언가가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바늘이 뇌실로 들어간 것이다.

띠링!

[뇌실천자에 성공하셨습니다.]

[특별 임무, 신경외과 최초의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500 P.

P와 펫 사료 10회분을 제공합니다.]

"잘했어요. 흠잡을 데가 없네."

레온이 천자 부위를 확인하고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개내압도 떨어지고 있습니다."

"처치가 잘 끝났으니까요."

"뇌실염이 의심되니 항생제 병용해서 케어하겠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레온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참나. 이래도 되는 건가?'

그는 환자의 침상을 옮기는 최기석을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려와 달리 최기석은 뇌실천자를 단박에 성공했다.

그를 지켜보며, 가슴을 졸이고 식은땀을 흘렸던 스스로가 민망할 정도로 말이다.

'나보다 성장이 빠를지도 모르겠군. 긴장 좀 해야겠는데?'

레온은 목을 꺾으며 최기석의 뒤를 따랐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의국에서 신경외과 매뉴얼을 살피고 있었다.

맡은 환자는 아직 한 명뿐이고, 스크럽 일정은 내일부터 잡혔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래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고생했다. 스크럽 힘들었지?"

"죽겠다, 죽겠어.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안 아픈 데가 없네."

래리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전 스크럽에 들어갔던 그는 일곱 시간짜리 수술을 돕고 막 의국에 돌아왔다.

"무슨 수술 스크럽 들어갔어?"

"척추신경 수술. 정형외과 써전이랑 합동수술 했는데 난리도 아니었다. 듣자 하니 미스터 최는 오전에 뇌실천자 했다며?"

"맞아."

최기석의 담담한 반응에 래리가 뜨억 하는 표정을 지었다.

"조기 진급자에게 뇌실천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나랑 자넷은 천자 성공하고, 기뻐서 날뛰었는데."

"레온이 워낙 잘 가르쳐줘서."

"나도 레온한테 배웠는데?"

래리의 대답에 최기석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이이잉.

어색한 침묵 속에 전화가 울렸다.

"신경외과 기석 최입니다."

[여기 응급실인데요. 환자 한 명만 봐주세요. 검사상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환자가 계속 두통을 호소해서요.]

"네. 지금 내려갑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급실 콜?"

"맞아. 내가 보고 올게."

"넌 여기서 매뉴얼 공부하고 있어. 아무래도 먼저 온 내가 가는 게 낫지."

"일단 내가 환자 보고 감당 못하겠으면, 전화할게. 피곤한 건 내가 아니라 너잖아."

최기석은 래리의 어깨를 두드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환자의 이름은 브라운.

나이는 열 살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는 어머니인 실비아가 발을 동동 굴렀다.

"이 환자에요?"

"네. 침대 위에서 놀다가 실수로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대요. 엑스레이랑 피 검사는 해 봤는데, 딱히 의심되는 질병이 없어서요."

응급의학의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선생님. 우리 아이 뇌출혈 아닌가요? CT나 MRI를 찍어야 하는 건 아닌가요?"

실비아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을 알겠지만, 일단 문진부터 하겠습니다. 브라운?"

"……네."

"어디가 제일 불편하니?"

"누가 여기를 바늘로 쿡쿡 쑤시는 것 같아요. 너무 아파요."

브라운이 검지로 측두부를 가리켰다.

"또 다른 건?"

"속이 울렁거려요. 토하고 싶어요."

"자. 선생님. 손가락을 똑바로 바라볼래?"

최기석은 검지를 내밀자 브라운이 그의 검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혹시 선생님 손가락 보는 게 힘드니? 손가락이 두 개로 보인다든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선생님. 그냥 CT나 MRI 찍어 주세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실비아가 나섰다.

"그냥 물어보는 걸로 머릿속을 알 수는 없잖아요."

"보호자분. 지금 진료 중입니다. 더 이상 진료에 간섭하지 마세요."

최기석이 강하게 나오자 실비아가 입을 다물었다.

'뭐지? 이 사람?'

동양 사람이라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보다 어린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조금 전 말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담겼다.

신기한 일이다.

'증상은 전형적인 지주막하 출혈인데…….'

최기석은 라이트로 브라운의 눈을 살피던 중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떠오르는 진단명을 확인한 순간 실소가 터질 뻔했다.

이제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깐 브라운하고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아이를 데리고 구석에 있는 침상으로 이동했다.

"브라운. 머리 많이 아프니?"

"네. 망치를 맞은 것처럼 아파요."

"이상하네? 아까는 분명 바늘로 쑤시는 것 같다고 했는데."

최기석의 말에 브라운이 몸을 들썩거렸다.

"바늘로 쑤시는 것 같기도 하고, 망치로 맞은 것 같기도 해요. 하여간 너무 아파요."

"선생님한테만 솔직히 말해."

"네? 뭐를요?"

"머리 안 다쳤잖아. 지금 꾀병 부리는 거지?"

최기석의 말에 브라운의 눈은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아이라서 그런지 거짓말을 완벽하게 숨기지는 못한 모습이다.

"아…… 아니에요. 저 머리가 너무 아파요."

"의사 선생님 속이려고 하면 못쓴다. 그리고 계속 아픈 척하면 검사받고 수술도 해야 돼."

"수…… 수술이요?"

"머리에 하는 수술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칼로 머리를 열고 드릴로 머리뼈를 뚫는다고."

최기석의 과장된 연기에 브라운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지…… 진짜요?"

"선생님은 누구처럼 거짓말 안 해. 그러니까 왜 아픈 척을 했는지 말해 줄래?"

"그게 사실은요. 동생이랑 놀다가 엄마가 아끼는 화분을 깨트렸어요. 들키면 혼날 것 같아서 아프다고 했어요."

최기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아프다고 하면, 화분 깬 것도 그냥 넘어갈 것 같아서?"

"……네."

"다른 건 몰라도 꾀병은 함부로 부리면 안 돼.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봤지?"

브라운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선생님하고 다시는 꾀병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러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게 해줄 게."

"정말요?"

"그래. 딱 오늘만이야."

최기석은 브라운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후 실비아를 불렀다.

그 사이 브라운은 화장실로 향했다.

"선생님. 우리 브라운 많이 심각한 거죠?"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검사도 필요 없고요."

"왜죠? 증상을 찾아보니까 지주막하 출혈이랑 완전히 똑같은데요?"

실비아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증상만 똑같아 보이는 것뿐입니다."

최기석은 브라운과 나눴던 이야기를 실비아에게 그대로 전해 주었다. 그러자 실비아가 김빠진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한마디로 꾀병 때문에 병원에 온 거네요."

"결론은 그런 셈이죠. 화병을 깬 게 얼마나 무서웠으면, 아픈 척을 했겠습니까? 오늘 일은 잘 넘기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휴우…… 그래야죠. 진짜 아픈 것보다는 꾀병이 백배는 나으니까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브라운이 두 사람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둘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브라운. 선생님이 너 수술해야 한다고 하던데? 머리를 완전히 열어야 한데?"

"네?"

실비아의 말에 브라운이 입을 쩍 벌렸다.

그사이 실비아는 주먹으로 브라운을 머리를 꽁 내리찍었다.

"너 엄마가 걱정했는지 알지?"

"……죄송해요."

"오늘은 선생님을 봐서 그냥 넘어갈 게. 하지만 또 이러면 진짜 혼난다."

"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이참에 브라운을 배우로 키울까요? 아픈 연기 하나는 실감 나게 잘하던데."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최기석과 실비아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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