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18화 (217/407)

리턴 (1)

메이죠에서 얻은 첫 번째 휴가.

최기석은 이를 만족스럽게 보냈다.

오랜만에 의진대 동료들과 만나서 회식했고, 정설화 그리고 가족과 각각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감을 잊지 않기 트레이닝 룸에 입장했으며, 신경외과 공부를 하는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렇게 알찬 시간이 흘러 어느덧 메이죠 병원으로 복귀하는 날이 찾아왔다.

복귀 당일 아침.

최기석은 메이죠의 클리닉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보낸 시간은 행복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족한 점이 있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치열하지 않았다고 할까.

그래서 메이죠에 도착해서야 오히려 고향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잘해 보자.'

최기석은 자신의 볼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이어 시스템으로 외과 로테이션을 신속하게 돌파하고 흉부외과에 가야 한다.

이후에는 메이죠 특유의 동시 전공 시스템으로, 심장외과와 폐식도외과 펠로우를 마쳐야 한다.

그 과정이 만만치 않겠지만, 자신감은 넘쳤다.

"미스터 최!"

귀에 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모건이 손을 흔들며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좋은 아침."

"휴가 다녀오더니 얼굴이 훤해졌는데?"

"그래 보여?"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최기석은 모건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혹시 총기 사건의 여파로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특별한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사용한 정언명령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선물 사온 건 없어?"

"사 놓은 건 있는데, 깜빡하고 집에 놓고 왔어."

"으음…… 어쩐지 변명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걸?"

"진짜야. 다음에 꼭 챙겨 올게."

"그 말은 또 하이어 시스템으로 휴가를 받겠다는 거군. 욕심도 많아."

"내가 원래 한 욕심 하잖아."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걷기 시작했다.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는데, 최기석이 도중에 내리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뭐해? 여긴 5층인데?"

"나 오늘부터 신경외과에서 일하잖아."

"그걸 그새 잊어버리다니……. 신경외과에서도 잘해 봐. 가끔 우리 과에도 놀러 오고."

"당연하지."

짝!

모건과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엘리베이터에 내렸다.

과거의 삶에서는 신경외과 수련을 한 적이 없다.

새로운 삶을 얻고, 의진대에서 수련할 때도 신경외과와 인연이 닿지 않았고 말이다.

멀고 먼 길을 돌아 미국에서 신경외과 수련을 하게 되었다.

기분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띠링!

[새로운 일반 임무가 주어집니다. 래리에게 말을 거세요. 임무 완수 시 200 P.

P를 제공합니다.]

알림창이 머리를 스쳤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신경외과 수련을 시작한 기석 최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닥터 최."

"소문으로만 듣던 닥터 최를 드디어 보는구나."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들이 한마디씩 했다.

비록 신규 레지던트라고 해도 병원 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자살 환자를 구한 일과 총기사고에서 살아남은 일.

올해 처음으로 조기 진급한 일 등으로 이미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다.

"혹시 래리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닥터 래리는 환자를 보고 있어요. 506호실로 가 보세요."

"고맙습니다."

간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복도를 걸었다.

때마침 한 백인 남성 의사가 병실을 나왔다.

그의 가운 주머니에 N.

S(NeuroSurgery) 래리라는 오버로크가 새겨져 있었다.

"미스터 최 맞지? 만나서 반가워."

"반가워, 래리."

"생각보다 일찍 왔네? 6시 30분은 돼야 올 줄 알았는데."

"업무에 대해서 좀 듣고 싶어서."

"그럼 커피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해 보자고."

두 사람은 휴게실로 이동한 후 소파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혹시 신경외과에서 수련한 적 있어?"

"전혀. 그래서 솔직히 조금 긴장돼."

"세부적인 것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겠네."

래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신경외과는 크게 세 가지 분과로 나뉜다.

뇌혈관외과, 뇌종양외과, 척추신경외과다.

근무 방식은 일반외과와 같은데, 레지던트가 한 분과에 소속되어 일을 처리하지만 다른 분과의 일도 맡는 형식이다.

"일반외과는 아직 못 가 봐서 모르겠지만, 응급 케이스는 신경외과가 더 많을 거야."

"T.

A(Traffic Accident, 교통사고) 때문에?"

"빙고. T.

A 환자에게서 두부 외상을 빼놓을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응급수술도 많은 편이지."

"어떤 수술을 많이 하는데?"

최기석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글쎄. 수술 케이스가 전체적으로 많은 편이라서……. 개두술도 하고, 내시경 수술도 하고, 방사선 수술도 하고, 통증 치료 수술도 하지. 대부분 현미경을 이용한 수술이고."

"당연히 그렇겠지. 아무래도 개복술하고 개두술은 차이가 있으니까."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래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신경외과에서 첫 수련이라고 해도 너라면 잘 해낼 거야. 동기 중에 최초로 조기 진급했잖아?"

"그래도 지금은 네가 부러운걸? 난 걸음마부터 시작하는데, 넌 이미 신경외과에서 6개월 동안 있었잖아."

"너도 알겠지만, 수련 기간과 실력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니야."

래리의 얼굴에 언뜻 근심 어린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최기석은 일단 참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굳이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이제 인수인계 시간이네. 슬슬 당직실로 가 볼까?"

"네가 당직 아니었어?"

"난 환자 보려고 일찍 나온 건데?"

래리가 피식 웃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최기석이 그 뒤를 따랐다.

드르르륵.

당직실로 들어가자 두 명의 의사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말로만 듣던 미스터 최 아니야?"

"만나서 반가워."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최기석은 두 사람과 악수하며 간단한 통성명을 나눴다.

남자 의사는 러시아에서 온 니콜라이, 흑인 여자 의사는 자넷이다.

"이야. 일반외과의 영웅을 신경외과에서 보게 될 줄이야. 영광이다, 영광."

"그래. 영광으로 생각하는 게 좋은 거야."

최기석이 빈정거림을 받아치자 니콜라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방금 뭐라고 했지?"

"왜?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나?"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충돌했다.

"니콜라이. 미스터 최랑 초면인데 왜 시비를 걸고 그래."

"시비?"

"그래. 조금 전 네 말투, 누가 들어도 비꼬는 거였어."

래리의 지적에도 니콜라이는 전혀 잘못 없다는 표정을 유지했다.

"벌써 미스터 최와 한편이 된 모양이지? 하긴 그래야 너도……."

"다들 그만해. 인수인계 시간에 뭐하는 짓이야."

잠자코 있던 자넷이 대화에 껴들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니콜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인수인계 시작한다. 501호실에 있는 제시는……."

당직의인 니콜라이의 인수인계는 깔끔하고 정확했다.

군더더기 없이 다음 근무자가 꼭 알아야 하는 사실만 전달했다.

그래서 따로 메모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어제 뇌경색으로 입원한 환자는 어떻게 할래?"

"난 지금 cap(한 주치의가 맡는 최대의 환자 수)이 꽉 찼어."

"나도 아까 T.

A 환자 받아서 여유 없는데."

래리와 자넷이 난색을 표했다.

"잘됐네. 이 환자 미스터 최가 받으면 되겠네."

니콜라이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이 환자, 별로 처치할 것도 없어. 모레쯤 수술 들어갔다가 퇴원할 거고."

"벌써 미스터 최에게 환자를 주자고? 최소한 적응할 시간을 일주일 정도는 줘야지. 미스터 최는 신경외과 수련한 적도 없다고."

"그거야 그쪽 사정이고."

래리의 반대에도 니콜라이는 전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환자 미스터 최가 맡아. 왜? 싫어?"

"……."

"의사가 환자 맡기 싫어서 내빼는 건가? 뭐. 겁난다면 어쩔 수 없고."

"내가 맡을게."

최기석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조금 전 했던 말 중 하나는 수정해 줬으면 좋겠다."

"뭐를?"

"이 환자, 별로 처치할 것도 없다고 했잖아. 내가 봤을 때는 전혀 아닌데?"

최기석은 책상으로 다가가 검지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환자의 두 개강(머리 안쪽의 빈 공간) 내압이 16mmHg야. 정상 내압보다 훨씬 높은 편이지. 이거 뇌실천자가 필요한 상황 아닌가? 게다가 지금 상태라면, 추가적으로 근이완제나 삼투성 이뇨제까지 써야 할 것 같은데?"

"……."

최기석의 지적에 니콜라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다른 환자 인수인계는 정확한데, 유독 이 환자만 대충 넘어가더군. 처음부터 관리하기 힘든 환자를 나한테 넘길 생각이었지?"

"소설 쓰지 마. 우연히 그렇게 된 것뿐이니까."

"오늘은 첫날이니까 그냥 넘어가겠어. 하지만……."

최기석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니콜라이를 노려보았다.

"날 골탕 먹일 생각이라면 관두는 게 좋아. 난 당한 걸 배로 갚아 주는 타입이거든."

"날 겁주는 건가? 무서워 죽겠네."

니콜라이가 몸을 떠는 척하며 빈정거렸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은 상태에서 인수인계가 끝났다.

드르르륵.

니콜라이는 당직실을 나와 화장실로 이동했다. 찬물로 세수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스터 최라…… 재미있는 놈이네."

솔직히 놀랐다.

최기석은 자신의 의도를 간파하고, 환자의 상태까지 정확히 짚어 냈다.

신경외과에서 수련한 적이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괜히 조기 진급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 네 말대로 두고 보자고."

쿵!

니콜라이가 세면대를 내리쳤다.

* * *

그날 오전.

최기석은 동기들과 함께 오전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신경외과의 오전 회의는 일반외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뇌혈관외과, 뇌종양외과, 척추신경외과.

이 세 개의 분과가 동시에 회의를 치렀으며, 회의 순서도 비슷했다.

회의에 이어 회진이 끝나고, 일과가 시작됐다.

"래리. 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어. 말해 봐."

"헤드 치프는 부재중이야? 계속 못 본 것 같은데."

최기석은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헤드 치프가 회의에 빠지는 일은 없다. 일반외과 헤드 치프 스미스도 한국에 기술 배우러 갔을 때를 제외하면 항상 회의에 참석했다.

메이죠는 상급자일수록 회의 참석에 엄격했다.

"아. 헤드 치프?"

래리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 헤드 치프가 일주일 전에 부속병원 병원장으로 발령 났어. 지금은 공석인데, 아마 루카스 과장님이나 매튜 과장님 중 한 분이 헤드 치프가 될 거야."

"그렇구나. 고마워."

"난 스크럽 들어가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자넷이나 레온에게 물어봐. 아까 말을 못했는데 레온이 우리 T.

R(Teaching resident, 신규 교육을 맡은 레지던트) 이야."

최기석은 래리와 헤어진 후 의국으로 향했다.

처음 맡은 환자의 검사 결과를 좀 더 자세히 살피고 싶었다.

딸칵. 딸칵.

EMR을 확인하는 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미스터 최. 오랜만이에요."

의국 문이 열리고 레온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레온."

"다시 보게 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는데."

레온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최기석은 과거 수술 참관 중에 레온을 만났다.

레온은 수술 중 사용된 거즈의 수를 정확히 맞췄는데, 대화를 통해 그가 과잉기억 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알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하고 싶은 소리에요."

"저 이 환자 뇌실천자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한 번 봐주시면 안 될까요?"

"첫날부터 환자 받았어요?"

레온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모니터를 응시했다. 차트를 훑을수록 표정이 어두워졌다.

"으음…… 상태를 보니 뇌실염도 의심되는데. 지금 당장 천자 해야겠어요."

"그럼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최기석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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