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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11화 (210/407)

한국에서 (1)

'생각보다 상태가…….'

최기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상이 심하지 않으면, 근육이 수축하면서 상처가 저절로 막힌다.

그런데 환자의 가슴에는 여전히 상처가 남았다.

그 말인즉슨 흉벽까지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선배. 어떻게 할까요? 다시 지혈하고 엑스레이라도 찍을까요?"

"지혈은 이 정도면 됐어. 그리고 검사보다 처치가 우선이야. 넌 기관삽관하고 호흡 유지해. 난 상처부터 닫을 테니까."

"네!"

두 사람이 동시에 처치에 나섰다.

이영호가 호흡을 관리하는 동안, 최기석은 무균 밀봉 드레싱을 처치했다. 감염을 방지하고, 흉강 내로 필요 이상의 호흡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작업이다.

"호흡기 달았습니다."

"산소는 고농도로 줘. 동요가슴일 가능성이 커. 맥박이 아직 낮으니까 에피네프린하고 진통제 원 앰플씩, 수액에 믹스."

최기석은 인턴의 보조를 받으며 흉관삽관에 나섰다.

푸우우욱.

절개창 사이로 튜브를 집어넣자 흉막 뚫리는 느낌이 손에 생생히 전해졌다.

이이서 튜브를 배액통에 연결하고 절개부위와 튜브를 단단하게 고정했다.

긴장성 기흉을 막기 위한 처치가 끝났다.

"바이탈 돌아온다. 이제 검사해도 되겠는데?"

"그러게요."

두 사람은 환자 감시 장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흉부 엑스레이를 비롯한 각종 검사를 시행했고, 검사 결과까지 나왔다.

제때 처치가 이뤄졌기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두 사람은 환자 상태를 한 번 더 점검하고,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선배 때문에 살았네요."

이영호는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처음 환자를 본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자상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없었던 것도 문제였고, 피로 물든 붕대는 두려움을 자극했다.

"지금 의국에 아무도 없거든요. 하마터면 제 손으로 사람 한 명 죽일 뻔했어요."

"너무 자책하지 마. 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니까. 나라고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잖아?"

최기석은 고개를 떨어뜨린 이영호를 다독였다.

사실 오늘 문제는 이영호가 아니라 대한민국 의료계에 있었다.

외과 기피 현상으로 인한 의료인력 부족.

그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흉부외과다.

오죽하면 응급진료 가능한 인원이 레지던트 1년 차 한 명뿐이었겠는가.

"바보야. 괜찮다니까?"

최기석은 이영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격려 스킬을 사용했다. 그런데 스킬이 발동됨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찡긋 윙크를 발사하고 말았다.

[치명적인 격려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대상의 면역력, 재생력, 자신감이 대폭 상승합니다.]

[보너스로 특수 효과 승화가 부여됩니다.]

[승화: 후회, 자책 등의 감정이 용기와 도전정신 등의 감정으로 변합니다. 지속시간은 이 주일 입니다.]

"느끼하게 그게 뭐예요?"

이영호가 그와 거리를 벌리며 진저리쳤다. 하지만 예상 밖의 윙크가 재미있다는 듯 웃음도 보였다.

"그냥 못 본 걸로 해. 가끔 나도 모르는 미친 짓을 할 때가 있거든."

"그나저나 선배. 한국에는 갑자기 어쩐 일이에요? 메이죠에서 수련 중인 거 아니었어요?"

"말하자면 긴데."

최기석은 하이어 시스템과 그로 인해 얻은 휴가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이어 시스템이라…… 완전 신기하네요. 수련 기간을 단축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을 줄이야."

"그래. 웬만한 병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보통은 어떻게든 수련 기간을 늘려서 허드렛일을 시키려 하니까. 참고로 말하면, 하이어 시스템은 미국에서도 메이죠에만 있는 거야."

"여러모로 대단하네요."

이영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진대는 별일 없지?"

"별일 많았죠. 선배가 없었던 동안의 일을 설명하려면 밤새야 할 걸요?"

"그 정도야?"

"네. 하나하나가 스펙터클 했다니까요. 선배가 있었을 때가 오히려 얌전했는지 몰라요."

이영호는 이야기하면서 검지와 중지를 활짝 폈다.

"우선 최근에 일어난 사건, 두 가지만 알려드릴게요. 하나는 권일수 교수님이 의진대 병원을 떠나신 거예요."

"결국, 떠나셨구나."

최기석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권일수는 환자를 위하는 마음과 실력을 함께 갖춘 보기 드문 써전이다.

권일수 덕분에 소아 환자 수술요령을 배웠는데…….

"다른 병원에 스카우트 되셨어?"

"그게…… 갈 곳을 정해 놓고 나간 건 아닌 분위기였어요."

"온 김에 뵙고 싶었는데."

"저도 권 교수님 안 계시니까 아쉽더라고요."

이영호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남은 한 가지는 연애 소식이에요."

"연애?"

"네. 아주 따끈따끈한 연애 소식이죠. 저번 주부터 윤 교수님하고 김 선생님이 교재 시작했어요."

"잘됐네."

최기석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연애하면 서로 발목을 잡는 사이가 있고, 그 반대인 경우가 있는데 두 분은 후자에 가깝지."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 질문, 무슨 의미니?"

"에이. 신경 쓰지 마세요. 그건 그렇고 세이버 팀 수술 중인데 참관 가실래요? 어차피 다들 보고 가실 거잖아요."

"물론이지."

최기석은 이영호와 수술실로 향했다.

이영호와 과거 친분을 쌓았던 수술실 수간호사의 도움으로 수술용 참관실에 자리를 잡았다.

"저는 응급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있다가 봬요."

"그래. 수고하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전화해."

최기석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결과 환자는 좌심실류(좌심실벽이 얇고 늘어진 상태)를 앓고 있었다.

세이버 수술이 필요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집도의는 장혁필.

제1보조는 윤지혜

제2보조는 김태식.

제3보조는 서지훈이 맡았고 팀 스탯은 다음과 같았다.

[소속: 뉴 세이버.]

[팀 레벨: 3/5]

[단결력: 3/5]

[처치 레벨 3.5/5]

새로운 세이버 팀은 과거 세이버 팀보다 각종 레벨이 한 단계씩 높았다.

심장 클리닉이 자리 잡으면서 수술 케이스가 많아졌고, 더불어 수술 숙련도 또한 상승했으리라.

'아직 안 죽었네.'

최기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일반외과 수술만 해서 세이버 수술은 까맣게 잊어버렸을 거라 생각했다.

막상 수술을 지켜보니 수술 과정과 처치가 완벽하게 떠올랐다.

당장 보조도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술을 지켜보는 내내 가슴이 계속 뜨거웠다.

덕분에 다시금 깨달은 진실, 그것은 자신의 꿈이 바로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의라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환자의 가슴이 닫히고 인공심폐기가 꺼졌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스태프들이 하나둘 로젯을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참관실을 나온 최기석이 세이버 팀 앞에 섰다.

* * *

흉부외과 휴게실.

세이버 팀 스태프와 이영호, 그리고 최기석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의 깜짝 복귀에 스태프들이 각종 질문을 쏟아 냈고 최기석은 대답하기에 바빴다.

메이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왁자지껄함이 좋았다.

"그건 그렇고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거지?"

장혁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최기석을 응시했다.

"대략 7개월 정도 될 겁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시간 참 빨리 흐르는군."

"연락 자주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진급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장 과장님."

"네 입에서 들으니 어쩐지 낯간지러운데?"

"익숙해지셔야죠."

"그래. 맞는 말이야."

"메이죠 생활은 어때? 지금은 외과 로테이션 중이지?"

"네. 맞습니다. 얼마 전에 일반외과 수련을 마쳤고, 휴가가 끝나면 신경외과에서 수련합니다."

"우리나라 흉부외과도 미국처럼 수련하면 좋을 텐데. 기본 지식이 너무 없는 채로 들어온단 말이야."

장혁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송 교수님은 건강하시고?"

"네. 최근에는 살도 조금 찌셨습니다. 근처에 솜씨 좋은 한인 식당을 찾았거든요."

"그거 다행이군.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송 교수님은 외국에 계시는 게 맞았어."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말문을 열었다.

"오기 전에 의진대 심장 클리닉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대성대를 제치고 흉부외과 진료로는 빅5 안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부병원장님께 언론 플레이를 좀 부탁드렸지. 아무래도 환자들은 이슈되는 병원을 선호하니까."

"……."

"지금 하기에는 너무 이른 질문이지만 궁금한 게 있다."

"네. 말씀하세요."

"수련 끝나면 의진대로 돌아올 건가?"

장혁필의 질문에 다른 스태프들이 눈을 빛냈다.

그들 역시 최기석의 대답을 궁금하게 여겼다.

"솔직히 처음 떠날 때만 해도 꼭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사실 제 나름대로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이 있습니다. 돌아오면 거기에 따라서 움직이고 싶습니다."

"큰 그림이라…… 질문했다가 괜히 궁금증만 커졌군."

장혁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 의진대 복귀도 포함된 건가?"

"네."

"그럼 됐어. 일과가 남았으니 이야기는 이쯤하고, 내일 회식 있는데 참석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그래. 내일 보자고."

최기석은 장혁필을 비롯한 세이버 팀 스태프들과 휴게실을 나왔다.

동시에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스태프들을 일일이 살폈다.

다들 건강한지, 그동안 실력은 발전했는지 살피기 위함이다.

"장 과장. 여기 있었군."

귀에 익은 목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일행의 앞을 막았다.

바로 조지환이다.

최기석은 그의 가운에 박힌 부병원장이라는 글씨가 어색하기만 했다.

"전화도 안 받고 어디 있었나!"

"죄송합니다. 미국에 있던 기석이가 와서 잠깐 대화 중이었습니다."

"기석이라면 혹시 최기석?"

"안녕하십니까? 부 병원장님."

최기석은 일행 앞으로 나와 조지환에게 인사했고, 조지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오랜만이군. 복귀하기엔 시기가 이른 것 같은데. 혹시 수련하다가 쫓겨났나?"

"제가 쫓겨나기를 바라신 것 같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기 진급으로 포상휴가 나왔습니다."

"허! 외국물 먹었다고 막 나가는군. 아니면 의진대에 복귀할 생각이 없는 건가?"

"아직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맞부딪쳤다.

"미국에서 수련한다고 너무 안심하지 않는 게 좋아. 그쪽도 생각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야. 네가 아직 상대를 못 만났을 뿐이지."

"조언이라면 감사히 듣겠습니다."

"암. 조언이고말고. 가슴 깊이 새겨 두는 게 좋을 거야."

조지환의 시선이 장혁필에게 옮겨졌다.

"장 과장은 잠깐 나 좀 보자고. VIP 진료 건으로 이야기할 게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조지환과 장혁필이 자리를 떠나면서 일행을 감싸던 험악한 분위기가 사라졌다.

"선배. 그냥 액땜했다고 치세요."

"……."

"선배?"

"응? 아. 그래. 네 말이 맞다. 다들 내일 회식 때 봐요."

최기석은 동료들과 작별인사하고 순환기내과로 향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내가 잘못 봤나?'

걷는 내내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조지환의 성향.

그것은 환자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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