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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208화 (207/407)

더 높이 (4)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최기석은 벽시계를 응시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죠에서 펼치는 두 번째 집도.

저번 집도는 응급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번 집도는 티칭 레지던트와 동행하여 정식으로 치르게 되었다.

"미스터 최라면 문제없어. 어제 연습할 때 보니까 아주 잘하던데?"

"감사합니다. 그래도 실전이 중요하죠."

"뭐. 그거야 그렇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이 펼쳐질 H 로젯 앞에 엠마가 먼저 대기 중이었다.

"두 사람이 사이좋게 왔네요. 조세도 금방 도착한대요."

"잘됐네."

"저기 에단. 의미 없는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솔직히 미스터 최,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아무리 복강경 충수 절제술에 성공했다고 해도 곧바로 루와이 수술이라니요."

엠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동기들은 아직까지 충수 절제술 하고 있잖아요. 저조차 배운 지 얼마 안 된 수술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왜……."

"헤드 치프 지시니까. 미스터 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더라고."

에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세 사람이 이야기 나누는 사이 조세가 환자가 누운 침상을 끌고 왔다.

"스크럽 시작하죠."

최기석은 담담하게 소독대 앞에 서서 솔을 문질렀다.

박. 박. 박. 박.

스크럽 도중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몸이 붕 뜬 듯한 이 감각,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것이다. 이 스킬과 함께라면 디버프라는 장해물을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지이이잉.

문이 열리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로젯으로 들어갔다.

조세가 타임아웃 하는 사이, 써전들이 자리를 잡았고, 이어서 마취의가 전신마취에 나섰다.

'케이스가 나쁘지만 어쩔 수 없지.'

최기석은 환자를 내려다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환자는 체질량 지수가 폭주한 고도비만을 앓고 있었다.

평소에는 거동조차 혼자 할 수 없었고, 온몸의 살들이 장식물처럼 치렁치렁하게 늘어졌다.

이런 고도비만 환자는 일반 환자보다 수술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지금부터 복강경 루와이 수술을 실시합니다."

최기석의 외침에 제1보조인 엠마가 환자의 복부를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메스."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아 환자의 배꼽 아래, 치골 상부, 우하복부에 작은 절개창을 냈다. 이후 절개 부위에 투관침을 꽂아 넣었다.

"카메라 포트, 포셉, 보비."

에단에게 받은 도구를 차례대로 투관침 안에 넣었다.

이윽고 정면에 있는 모니터에 복강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역시 장기가 잘 안 보이네. 엠마가 고생 좀 해야겠어."

"걱정 마세요."

엠마가 카메라 포트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곧 오늘의 수술 부위인 위가 나타났다.

"클램프(겸자)."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복강경 전용 겸자를 받아 투관침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모니터를 보면서 겸자로 위와 식도의 접합부를 조였다.

딸칵.

출혈을 막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

"바로 절제 들어갈 거지?"

"네. 잘 잡아 주세요. 메쩬(수술용 가위)."

최기석은 수술용 가위로 위의 근위부(인체의 중심에서 가까운 부분)와 원위부(인체의 중심에서 먼 부분)을 분리해 나갔다.

루와이 수술의 1단계인 위의 용적을 줄여 주는 작업이다.

사각. 사각. 사각.

섬세한 가위질이 이어졌다.

가위질이 잘못돼서 위의 용적량이 너무 늘어나도, 줄어들어도 문제가 생긴다.

"절제 끝났습니다."

"오케이."

최기석의 신호에 에단이 포셉으로 잘라낸 위를 바깥으로 빼냈다.

텅!

곡반 위로 곱게 잘린 위가 떨어졌다.

"어렸을 때 공예 같은 거 잘했나 봐? 가위질이 장난 아닌데?"

에단은 농담 섞인 말을 하며, 계속 곡반을 내려다보았다.

개복 수술이라 해도 이렇게 깔끔하게 위를 잘라내기는 어렵다. 위에 원위부에 큰 굽이와 작은 굽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기석은 그 곡선을 살리며 절제에 성공했다.

그것도 복강경 수술 중에 말이다.

"종이접기 같은 걸 좋아하기는 했죠. 5-0 vicryl(흡수성 봉합사)."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투관침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수술 전에 느꼈던 기묘한 감각이 극대화되었다.

동시에 최기석의 행동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마치 그만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미스터 최. 갑자기 왜 그래?"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괘…… 괜찮습니다. 걱정 마세요."

최기석은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며 본격적인 집도에 나섰다.

왔다!

드디어 물아일체가 왔다!

과거 동영상 촬영했던 루와이 수술, 그 수술을 집도했던 펠로우와 한 몸이 된 느낌이 들었다.

최기석은 꼼꼼하게 잘린 위를 봉합해 나갔다.

엠마의 수술 시야 확보, 에단의 빈틈없는 보조 덕분에 제 실력을 유감없이 펼칠 수 있었다.

복강경 수술을 하고 있음에도 개복 수술처럼 봉합이 빠르고 정확했다.

최초의 운침부터 잘린 부위에 봉합사를 남기는 결찰, 마지막 매듭짓는 일까지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다.

'이게 사람이야?'

'말도 안 돼. 이건 사기라고!'

에단과 엠마는 최기석을 지켜보며 혀를 내둘렀다.

예상대로라면 최기석은 더듬대며 수술에 고전해야 하고,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이 나서서 조언 또는 직접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그런데 예상과 현실이 완벽하게 뒤바뀌고 말았다.

'놀랄 만도 하지.'

최기석은 봉합을 한 차례 끝내고, 에단과 엠마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가 물아일체를 한 대상은 외과 처치 레벨 8단계에 복강경 수술 전용 스킬이 있는 펠로우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디버프로 외과 레벨이 감소했다고 해도 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나머지 작업 들어갑니다."

최기석은 거침없이 니들홀더를 손에 쥐었다.

우선 공장을 위와 식도 접합 부분에 연결했으며, 공장에 일부 구멍을 내서 십이지장과 연결했다.

기나긴 작업 후 위와 식도의 접합 부분에 Y자 모양이 생겼다. 이번 수술이 루와이 수술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누출 확인할게요. 클램프."

딸칵!

위와 공장의 문합부위를 하단을 겸자로 잡았다. 그리고 포셉으로 조심스럽게 압력을 가해 내용물이나 공기가 나오는지 살펴보았다.

"에단. 어때요?"

"누출은 없는 것 같다. 공장하고 십이지장 문합 부분은 내가 살펴볼게."

에단이 같은 방법으로 누출 확인에 나섰다.

좀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제 끝이네. 마무리만 하면 되겠네."

"네."

최기석은 에단과 엠마의 도움을 받아 수술을 끝냈다.

감시 장치와 히포크라테스로 환자를 살핀 결과, 환자 상태는 양호했다.

그제야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띠링!

[신규 미션, 공식 첫 집도에 성공 하라를 마치셨습니다. 보상으로 유니크 젬 박스와 500 P.

P를 드립니다.]

[환자 바라기(+10)의 효과로 체력의 상당 부분을 회복합니다.]

[영혼의 눈물 스택이 일부 상승하였습니다.]

[영혼의 눈물: 100/700]

"미스터 최, 최고야. 어쩌면 헤드 치프보다 더 괴물일지도 모르겠어요."

"어려운 수술인데 정말 잘했어요."

"두 분이 잘 도와주신 덕분이죠. 덕분에 수술을 잘 마쳤습니다."

최기석은 두 사람과 덕담을 나누며 로젯을 빠져나갔다.

이로써 하이어 시스템을 위한 마지막 고비를 넘겼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퇴근 전에 마지막으로 환자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던 중 라빈 윌리엄스가 있는 병실 앞에 우뚝 멈췄다.

'내일 중으로 승부를 봐야겠어.'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크론병이 아닌 또 다른 병이 라빈을 집어삼키고 있었기에.

똑. 똑. 똑.

노크하고 라빈의 병실로 들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라빈은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었다.

더불어 말투에 뚝뚝 차가움이 묻어났다.

오전에 말다툼을 아직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듯했다.

"어때요. 설문지 보니까 내가 자살할 사람이라고 나왔습니까?"

"아닙니다. 설문지 결과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물론 라빈이 제대로 작성했을 거라고 믿지는 않지만."

"참 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라빈이 혀를 차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닥터 최. 멀쩡한 사람을 정신이상자로 만드는 취미 있습니까?"

"아쉽게도 그런 취미는 없습니다."

"주치의를 바꿔 달라고 해야지. 도무지 답이 없네, 답이.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줘요."

"채혈만 하고 나가겠습니다."

최기석은 챙겨온 채혈 도구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라빈과 마주 앉아 그의 팔목을 토니켓으로 묶었다.

시간이 지나자 굵은 혈관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이건?'

최기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팔뚝에 미세한 바늘 자국이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혈관이 너무 잘 보여서 그렇습니다."

최기석은 채혈을 마치고 병실을 나왔다. 그리고 복도를 걷다가 마주친 조세에게 검사를 부탁했다.

이로써 오늘 할 일은 끝, 남은 건 인수인계뿐이다.

"닥터 최. 혹시 바빠요?"

낯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데이비드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비만 환자 채혈 중인데 쉽지가 않네요. 닥터 최가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데이비드가 공손하게 부탁해 왔다.

"몇 호실 누구죠?"

"감사합니다. 따라오세요."

데이비드를 따라 한 병실로 들어갔다.

창가 자리에 위치한 여성 환자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닥터 최라고 합니다."

"결국 의사 선생님이 직접 오셨네요. 설마 선생님도 실패하진 않겠죠? 아파 죽겠다고요."

환자가 검지로 주사 자국을 가리켰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데이비드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개자식 날 우습게 봤지? 너도 어디 한 번 당해 봐.'

데이비드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최기석이 온 이후로 되는 일이 없었다.

얕잡아 보고 있던 인턴 조세마저 자신에게 대들었으며, 얼마 전의 사건으로 해고 처분까지 받았다.

이 모든 일의 원흉 최기석.

그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릴 시간이 왔다.

"선생님. 채혈 준비하겠습니다."

"그래요."

최기석은 대답 후에도 환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기회는 바로 지금!

드레싱 카트 위에 놓인 주사기의 포장을 벗기고서 그 주사기를 호주머니에 챙겼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주사기를 손에 들었다.

일명 재사용 주사기.

이 주사기로 어제 매독 환자를 채혈했다.

"토니켓하고 알콜솜이요."

"네."

이후 채혈 준비가 끝난 최기석에게 재사용 주사기를 건넸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데이비드는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멍청한 동양 의사는 본인이 무덤으로 향하고 있음을 죽어도 모를 것이다.

"잠깐. 데이비드. 저 환자 누구죠?"

최기석이 환자와 재사용 주사기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누구 말이죠?"

데이비드도 최기석과 같이 병동 복도를 응시했다. 하지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금 목발 짚고 지나간 환자가 있었는데."

"병동에 목발 쓰는 환자는 없습니다."

"착각인가?"

최기석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사기 바늘 뚜껑을 열었다.

바로 그 순간.

데이비드는 어깨로 최기석을 툭 쳤고 최기석은 그 충격으로 바늘에 손가락을 찔렸다.

찔린 부위에서 생겨난 핏방울.

데이비드는 그것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뭐 해요! 데이비드!"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발이 엉켜서."

"앞으로 주의해요."

최기석은 알콜솜으로 상처를 닦은 후 채혈에 나섰다.

채혈이 끝난 후 두 사람은 나란히 병실을 나왔다.

"역시 미스터 최의 채혈 솜씨는 최고예요. 병원을 떠나도 잊지 못할 겁니다."

"알면 됐어요."

"그럼 저는 이만."

데이비드는 스테이션으로 돌아가며 실실 웃었다.

매독에 걸릴 최기석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한편 최기석은 데이비드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가운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넌 진짜 구제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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