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7)
찰칵!
가위 소리와 함께 봉합사가 끊어졌다.
이로써 간의 3대 혈관 문합이 모두 끝났다.
"헤드 치프. 재관류 시작할까요?"
토드의 물음에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관류란 지금까지 일시적으로 막아두었던 혈관들을 풀어 피를 통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혈관을 묶고 있던 클립을 풀자 혈관이 꿈틀거렸다.
시꺼먼 빛을 띠었던 간이 점점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호흡이 떨어지고 혈압이 감소합니다. 수축기 80mmHg에 이완기 40mmHg입니다."
"아직은 더 지켜보자."
스미스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재관류는 간이식 수술의 피할 수 없는 난관이다.
혈맥에 갑자기 피가 돌면 각종 부작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혈압저하는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이며, 약한 부작용이라 볼 수 있었다.
"헤드 치프. VF(심실세동)입니다."
"VF라고? 벌써?"
"네. 심전도를 보면 P파와 QRS파, T파의 파형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기저선이 떨리고 있습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최기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불길한 전자음이 로젯에 퍼졌다.
"심박수 분당 200까지 올라가고, 혈압은 계속 떨어집니다."
"빌어먹을. 하필 재관류 타이밍에 VF라니. 간이식은 올 스톱이다. 토드는 제세동기 준비하고, 미스터 최는 흉부압박, 라훌은 에피네프린 준비해."
"네!"
스미스의 지시에 보조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살려야 한다를 사용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각성 CPR 버프를 사용하셨습니다. 해당 처치의 종류에 따라 환자의 호전도가 상승합니다.]
퍽. 퍽. 퍽. 퍽.
최기석은 제이스의 가슴을 힘껏 압박했다.
압박할 때마다 제이스의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기를 반복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다소 과해 보일 수 있지만 각성 CPR 버프가 있는 한 갈비뼈가 부러질 염려는 없었다.
'제발. 제이스.'
최기석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제이스를 내려다보았다.
"하필 심실세동이라니 운도 지지리 없군."
"수술 시간이 길어서 문제가 된 게 아닐까요. 공여자 수술과 수혜자 수술을 같이했으면, 이러진 않았을 텐데……."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랬다면 최소한 두 시간의 여유는 벌었을 겁니다."
"제 의견은 다릅니다. 환자의 지병 아니면 나이 때문인 것 같은데요?"
수술용 참관실에서 써전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응급상황에 대한 접근법은 달랐지만 단 한 가지만큼은 일치했다. 지금이 수술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사실 말이다.
"에피네프린 IV 믹스했습니다."
"제세동기 준비했습니다."
"줘 봐."
스미스가 제세동기 패들을 손에 쥐고, 제이스의 곁에 섰다.
"헤드 치프. 제세동기는 제가 쓰고 싶습니다."
"이유는?"
"헤드 치프께서는 환자를 살피고, 지시를 내려야 하지 않습니까? 처치는 제가 하고 싶습니다."
"……좋아. 맘대로 해 봐라."
스미스가 물러서자 최기석이 제세동기 사용을 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다들 비키세요. 200j!"
"Charge!"
"Clear!"
쿵!
전기 자극으로 스미스의 몸이 꿈틀거렸다.
"한 번 더. 200j!"
"Charge!"
"Clear!"
쿵!
최기석은 제세동기를 사용하고, 다시 흉부압박에 나섰다.
그때까지도 제이스는 아무런 호전이 없었다.
"에피네프린 한 번 더 주고, 아미오다론도 같이 투여해."
"알겠습니다."
스미스의 지시에 라훌이 주사 처치에 나섰다.
흉부압박과 제세동, 주사 투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스태프들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젖었고, 눈빛에 생기가 사라졌다.
환자는 이미 죽었고, 수술은 실패했다.
대부분이 패배감에 젖었지만 최기석과 스미스만은 열정적으로 치료에 나섰다.
두 사람의 행동과 목소리에는 환자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절실함이 담겨 있었다.
"헤드 치프. CPR을 한 지 30분이 넘었습니다. 죄송하지만 이제 그만……."
토드가 조심스럽게 스미스에게 말을 걸었다.
말끝은 흐렸지만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수술 아직 안 끝났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닥치고 빨리 제세동기나 충전해. 못하겠나? 그러면 내가 직접 하지."
스미스가 토드를 밀치고 최기석의 뒤편에 자리 잡았다.
"계속 갑니다. 200j!"
"Charge!"
"Clear!"
쿵!
최기석은 제세동기를 사용하고, 순환상태를 확인한 후 흉부압박에 나섰다.
뚝. 뚝. 뚝.
얼굴에서 땀이 빗줄기처럼 쏟아졌다.
혼자서 흉부압박을 담당했기에 체력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줄 수는 없었다.
각성 CPR의 효과를 살려야 하기에.
'힘내요. 제이스.'
최기석은 거친 숨을 내쉬며 제이스를 내려다보았다.
수술 직전에 보았던 그의 미소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딸이 세상을 떠난 후 잃어버렸던 삶의 기쁨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걸, 완전한 지옥은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
'멍청아! 일어나. 일어나라고. 윌리엄의 간까지 받아 놓고 왜 이래. 당신 아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고 싶어? 아내가 평생 펑펑 울었으면 좋겠냐고. 당신이 하늘에서 보고 싶은 게 그딴 꼴이 아니라면 당장 돌아와. 원래대로 돌아오라고!'
속사포처럼 속으로 내뱉은 말이 끝났다.
흉부압박을 끝낸 최기석이 우두커니 제 자리에 섰다. 긴 시간 동안 이어졌던 CPR이 처음으로 끊어졌다.
굵은 눈물과 땀방울이 한데 엉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쩌저저적.
얼어붙은 심장 패시브가 깨졌다.
동시에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푸른 기운이 사라졌다.
CPR 도중 느꼈던 공포와 슬픔과 좌절.
갖가지 감정이 극도로 치솟으면서 얼어붙은 심장 패시브가 처음으로 작동을 멈췄다.
"이…… 이제 어떻게 하죠?"
"고생했어. 미스터 최. 이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야.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토드가 최기석을 다독였다.
지금까지 모두가 최선을 다했고, 특히 최기석은 맡은 바를 200퍼센트까지 해냈다.
신규 레지던트라는 믿기지 않는 솜씨를 뽐내면서.
"왜 병신같이 가만히 서 있어! 계속 처치하라고."
"하지만……."
"우리가 환자를 포기하면 환자 편은 아무도 없다.
스미스가 혼자서 처치에 나섰다.
그 애처로운 모습에 누구도 말을 붙이지 못했다.
최기석은 스미스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뒤늦게 다가가 처치를 도왔다.
"미스터 최, 눈 똑바로 못 떠? 네 눈은 환자가 죽었다고 인정하고 있잖아. 그런 눈으로는 환자 못 살려. 아까처럼 필사적으로 하란 말이야."
"……."
"뻑킹! 그따위로 할 거면 꺼져. 코리안 멍키! 두 시간 동안 CPR해서 살아난 환자도 있는데.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하다니. 내가 널 잘못 봤다."
스미스의 욕설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이에 흐리멍덩했던 최기석의 눈이 서서히 생기를 되찾았다.
"제가 바보 같았습니다. 계속 처치하겠습니다."
최기석과 스미스가 CPR을 이어갔고 뒤이어 토드와 라훌도 합류했다.
"미스터 최. 한국에서 흉부외과 전공이라고 했지?"
"네. 맞습니다."
"개흉 심장 마사지 할 수 있어?"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흉부압박 대신 개흉 심장 마사지로 간다. 이대로라면 호전이 없어."
"헤드 치프. 개흉 심장 마사지라니요. 그건 너무 무모합니다."
잠자코 있던 토드가 언성을 높였다.
"지금 내 말에 토를 다는 건가?"
"환자를 살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잘못하면 환자가 더 위태로워집니다. 미스터 최가 동기보다 탁월한 건 사실이지만, 신규 레지던트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환자가 죽어 가는데 나이와 경력 따위는 필요 없어. 의사로서 할 수 있는 걸 다 하는 것뿐이다."
"하…… 하지만……."
"멍청한 새끼! 책임은 내가 진다. 둘이 자리 바꿔."
스미스의 지시로 최기석이 제1보조로 올라가고, 토드가 제2보조로 내려갔다.
스으으으윽.
최기석은 포비돈 용액으로 환자의 가슴을 소독한 후 다시 방포를 덮었다. 이에 스미스가 메스로 환자의 목 아래부터 명치 부위까지의 피부를 갈랐다.
지이이잉.
최기석은 전기톱으로 흉골을 가른 후 폐를 살짝 밀어냈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심장.
제이스의 심장은 고이 잠든 듯 움직임이 없었다.
"개흉 심장 마사지 시작합니다."
제이스의 심장을 한 손에 움켜쥐고 적당한 힘을 주어 주물렀다.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최기석은 속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마사지를 이어 갔다.
휘이이이잉.
감정을 추스르자 얼어붙은 심장의 효과가 다시 발동되기 시작했다.
"마사지 일 회 끝났습니다. 제세동기 사용해 주세요."
최기석이 2선으로 물러나고 토드가 제세동기를 사용했다.
쿵!
제이스의 몸이 요동쳤다.
환자 감시 장치로 상태를 살핀 후 최기석은 재차 심장마사지에 나섰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그의 손에서 뿜어진 하얀빛이 제이스의 심장을 휘감았다.
동시에 죽은 듯이 멈췄던 심장이 미세한 박동을 보였다.
'이…… 이건!'
최기석은 놀라서 몸을 움찔거렸다.
과거 최미순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칭호에는 20퍼센트로 환자를 부활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그 부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방금 심장이 움직인 것 같은데?"
"저도 봤습니다."
스미스의 말에 라훌이 한마디 덧붙였다.
40분 가까이 이어진 응급처치, 그 속에서 처음으로 희망을 발견했다.
이어지는 심장 마사지와 제세동, 약물치료.
쿵. 쿵. 쿵. 쿵.
스태프들의 피나는 노력과 끈기로 심장이 박동을 되찾았다.
"해냈다!"
"자발순환이 돌아왔어요!"
스태프들의 함성이 로젯에 울려 퍼졌다.
오염 문제만 아니었다면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으리라.
'고마워요. 제이스.'
최기석은 제이스를 내려다보며,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다.
"다들 잊어선 안 돼. 로젯에서는 의사가 신이다. 의사가 환자를 포기하면 신이 환자를 포기하는 것과 같아."
"죄송합니다.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토드와 최기석의 대답에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이탈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으니 간이식 수술을 재개한다. 마지막까지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스미스가 환자의 담도를 장에 연결했다.
중간에 출혈이 발생했지만 현명하게 넘어갔다.
그가 한국에서 가져온 복강경 전용 출혈 조정기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담도 문합 후 마지막 과정인 간 봉합이 펼쳐졌다.
간의 전방을 12땀, 후방을 24땀으로 봉합하는 과정.
긴 수술 시간과 응급상황으로 지칠 법도 하건만, 스미스는 깔끔한 솜씨로 봉합을 마쳤다.
"휴우…… 내가 다 전쟁을 치른 것 같네."
에단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메이죠에서 최초로 시행하는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
그 열 시간에 가까운 대장정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도중에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스태프들이 피땀을 흘린 만큼 성공하리라 믿었다.
'미스터 최. 넌 대체…….'
에단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한국에서 건너온 흉부외과 지망생.
그는 항상 각종 이슈의 중심에 서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 주었다.
오늘만 해도 집도의에게 완벽한 수술 시야를 제공하고, 개흉 심장 마사지를 펼치며 그 존재를 다른 사람에게 각인시켰다.
펠로우마저 끝나면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써전이 되리라.
잠시 생각이 잠긴 사이 수술이 모두 끝났다.
스태프와 참관자의 시선이 동시에 환자 감시 장치에 쏠렸다.
* * *
지이이잉.
수술실 문이 열리고 스미스와 스태프가 나왔다.
대기실에 초조하게 떨고 있던 줄리가 뒤늦게 그들을 발견했다.
"닥터 최. 수술은 어떻게 됐나요?"
줄리는 주치의인 최기석에게 달려갔다.
"수술은…… 무사히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식 거부반응이 있을 수 있기에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고마워요. 흐흐흐흑."
최기석은 흐느껴 우는 줄리를 포옹하고,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위로하던 그는 곧 온몸으로 줄리와 울기 시작했다.
주치의가, 누구보다 제이스를 위해야 하는 자신이 한순간이나마 제이스를 포기하고 말았다.
"미안해요. 줄리. 정말 미안해요.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