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03화 (202/407)

도전 (6)

"대형사고 터질 뻔했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수술용 참관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간이 들어있는 트레이가 떨어지기 직전, 최기석이 몸을 날려 트레이를 받아 냈다.

하마터면 의료 외적인 실수로 수술이 실패할 뻔했다.

'처음 왔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더니.'

폴이 미간을 구겼다.

트레이가 떨어졌다면, 그 작전 없이도 스미스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거늘…….

지이이잉.

문이 열리고 스태프들이 로젯을 빠져나갔다.

수혜자가 있는 옆 로젯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현재 참관실은 이식 수술 전용으로, 참관자들이 이동하지 않아도 양쪽 로젯을 전부 살필 수 있었다.

"대단해. 역시 스미스 아닌가?"

곁에 앉은 사내가 폴을 응시했다.

폴과 스미스의 의대 동기인 버드다.

"당연한 결과야.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판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그 배짱이 대단하다는 걸세.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

"세컨드를 서고 있는 친구는 어떤 친구지?"

"기석 최. 한국에서 온 파릇파릇한 신규 레지던트지."

"저 친구가 신규 레지던트라고?"

버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렸다.

"메이죠 최초, 아니 미국에서 처음 하는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에 신규 레지던트가 들어갔다고?"

"맞아."

"스미스는 심장이 두 개라도 있는 건가?"

"난들 아나."

폴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최기석이 세컨드라는 소식에 쾌재를 불렀지만, 참관을 시작한 후로는 생각이 확 바뀌었다.

그는 수술하는 내내 귀신같이 시야를 컨트롤했다.

본래 복강경 수술이 어려운 것은 수술 시야가 좁고,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기석은 카메라 포트를 움직이며, 집도의에게 최고의 시야를 제공했다.

실로 믿기 힘든 활약이었다.

"야. 세컨트가 신규 레지던트라는데?"

"신규 레지던트가 시야를 저렇게 잡는다고?"

두 사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대화를 엿들으면서, 최기석에 대한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자네 생각은 어때? 스미스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

복강경 수술은 일반 수술 도구가 아닌 특수 도구로 진행된다.

식사로 비유하면, 일반 젓가락이 아니라 몇 배는 더 긴 젓가락으로 식사하는 셈이다.

그런데도 스미스는 일반 수술에 버금가는 뛰어난 솜씨를 보여 주었다.

"솔직히 스미스가 평생 자네 밑에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일이라는 게 참 무섭지 않나?"

"헛소리 집어치워."

"흠흠. 불쾌했다면 사과하겠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스태프들이 로젯으로 들어왔다.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에 제2막이 올랐다.

'아무리 너라도 쉽지 않을 거야.'

폴의 시선이 모니터 속 스미스에게 고정되었다.

공여자의 간은 훌륭하게 절제했지만, 남은 과정은 만만치 않으리라.

적출보다 몇 배는 어려운 게 간이식이다.

더군다나 폴에게는 오늘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그 무기와 수술 난이도가 합쳐진다면 스미스도 고꾸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건방진 놈. 어디 망신 좀 당해 봐.'

폴의 음산한 미소 속에 수술이 재개되었다.

* * *

공여자 간 적출을 끝낸 스태프들이 수술실로 나왔다.

"저는 가운 갈아입고, 재소독 후에 들어가겠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석은 바닥에 몸을 던져 트레이를 받아냈다. 오염된 상태라서 재정비가 필요했다.

"토드. 너는 트레이 들고 먼저 로젯으로 들어가."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나고, 스미스와 조세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흘렀다.

주변 스태프들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치 보기 바빴다.

"죄…… 죄송합니다."

조세가 고개를 떨어트린 채 힘겹게 한마디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짜아아아악!

차진 소리가 수술실에 퍼졌다.

스미스가 손으로 조세의 뺨을 후려쳤다.

"미친 새끼. 죄송하다고 하면 다야? 네 실수로 두 명이 죽을 뻔했다고. 사람 목숨이 장난거리로 보여?"

"아닙니다."

"아닌데 왜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했지? 미스터 최가 트레이를 받지 못했으면, 이번 수술은 끝장이었어."

"수술이 끝났다고 너무 마음을 놓은 것 같습니다. 다시는 이러지 않겠습니다."

조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로젯에서는 작은 부주의도 용납할 수 없다.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조세, 네 일반외과 인턴 평가는 무조건 최하점이니까 그렇게 알아."

"……알겠습니다."

"병동에 콜해서 다른 어시스트 올리고, 넌 썩 꺼져."

스미스가 조세의 어깨를 치고 자리를 벗어났다.

"하아…… 바보같이."

조세는 한탄하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뺨이 부풀어 올랐지만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했던 바보 같은 실수만 반복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조세. 괜찮아요?"

가운을 갈아입은 최기석이 그에게 다가왔다.

"아니요. 전혀."

"실수했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나도 비슷한 실수한 적 있으니까."

"말은 고맙지만 그래도 위로가 안 돼요."

조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최기석은 조세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쓰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조세가 보이지 않는 손에 걸렸다.

놀랍게도 이번 디버프는 지속시간이 한 달이 넘었다.

"과장님이 다른 스태프를 찾았죠?"

"……네."

"고생했고 올라가서 마음 좀 추슬러요. 자세한 이야기는 수술 끝나고 하고."

그의 말에 조세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벅. 벅. 벅. 벅.

최기석은 재차 스크럽하고 로젯으로 들어갔다. 아까와 달리 수술대에 제이스가 누워 있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닥터 최. 지금 제 이름을 묻는 겁니까?"

"타임아웃이라는 수술 절차예요. 드물지만 수술 환자가 바뀌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럼 어쩔 수 없죠. 제이스입니다."

"나이는요?"

"마흔일곱입니다."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받으러 온 거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그런데 닥터 최."

제이스가 돌아서는 최기석에게 말을 걸었다.

"윌리엄의 수술은 잘 끝났습니까? 겁이 많은 녀석인데…… 혹시 수술 전에 난리를 피우지 않았나요?"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이스의 수술을 할 수 있는 거죠."

"휴우…… 다행이군요. 그럼 저는 한숨 자고 있겠습니다."

제이스가 넉살을 부리며 편하게 누웠다.

이윽고 마취의가 전신마취에 들어갔고, 조세의 대타인 라훌이 로젯으로 들어왔다.

"지금부터 수혜자의 간이식 수술을 시작한다."

스미스의 눈짓을 받은 최기석이 복부를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이어서 제1보조 토드가 복부에 절개창을 내고, 투관침과 수술 도구를 삽입했다.

"역시 더 늦었으면 위험했어."

스미스는 모니터를 보며 혀를 찼다.

환자의 간은 올록볼록한 재생성 간 결절로 가득 찼다.

일부 부위에서는 간암 초기로 보이는 듯한 조직까지 보였다.

"전이는 없는 것 같군."

"헤드 치프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의 말에 토드가 한마디 보탰다.

드디어 막이 오른 간이식 수술.

스미스는 윌리엄의 간을 적출했던 방식으로 제이스의 간을 잘라 냈다. 수술 시간이 어느덧 네 시간을 넘어갔지만, 집도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텅!

흉측한 모습의 간이 곡반에 떨어졌다.

그동안 제이스를 괴롭혀 왔던, 제이스가 괴롭혀 왔던 간이 말이다.

"biopsy(생체 조직검사) 보내."

"네!"

새로운 어시스트 라훌이 멸균 봉투에 간을 넣고, 순환간호사에게 건넸다.

최기석에게 스미스의 수술 보조 팁을 들었던 덕분에 행동이 빠릿빠릿하고 정확했다.

간 절제가 끝난 후 윌리엄의 간이 복강경을 통해 제이스의 절제 부위에 자리 잡았다.

아버지의 몸과 아들의 간이 처음 대면하는 순간이다.

'이제 시작이야.'

최기석은 정신을 바짝 깨우며 수술 시야 비추는 데 집중했다.

지금부터 간정맥과 간문맥, 간동맥을 차례대로 잇는 수술이 진행된다.

마이크로 현미경이 필요할 만큼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

스태프들 간의 호흡이 무척 중요했다.

"5-0 Prolene."

스미스가 복강경 전용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후 이를 투관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토드의 도움을 받아 간정맥을 봉합해 나갔다.

간 내 주요 혈관을 봉합하는 과정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혈관이 터지며 대량출혈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 위험성을 모두가 잘 알았기에 스태프들 모두가 숨조차 편히 쉬지 못했다.

"끝났다. 땀 좀 닦아 줘."

"네."

곁에 있던 소독간호사가 거즈로 스미스의 목덜미와 얼굴을 닦아 주었다.

지켜보는 사람조차 살 떨리는 작업이거늘 집도의인 그는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까.

"이어서 간문맥을 봉합한다."

간문맥은 우측 상복부에 있는 혈관으로 췌장과 담낭, 비장에서 나오는 정맥이 합쳐지는 장소다.

한마디로 간 혈관의 요충지라 볼 수 있었다.

"하대정맥에서 그래프트(이식혈관 채취)를 해야겠는데."

"헤드 치프는 잠깐 숨 좀 돌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프트는 저와 미스터 최가 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스미스가 토드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윽고 토드와 최기석이 본격적인 그래프트에 나섰다.

최기석이 혈관을 단단하게 고정하자 토드가 메스로 혈관을 조심스럽게 떼어 냈다.

'시야만 잡을 줄 아는 게 아니었어?'

토드는 그래프트를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최기석은 마치 로봇 같았다.

길쭉한 복강경용 포셉으로 작은 혈관을 붙잡고 있음에도 떨림이 전혀 없었다.

미세하게 손을 떠는 것은 오히려 토드 자신이었다.

"라훌. 시야 좀 제대로 잡아 봐. 영상이 계속 좌우로 왔다 갔다 하잖아."

"아…… 죄송합니다."

토드의 지적에 라훌이 서둘러 시야를 고정했다.

그래프트 채취가 끝난 후 스미스가 본격적인 간문맥 문합에 나섰다. 이식혈관을 연결하는 작업이라 간정맥에 비해 작업속도가 더뎠다.

"이만하면 됐어."

스미스는 포셉으로 문합한 부위를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다음은 간동맥 문합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공여자에게서 떼어 낸 장골동맥은 사용 못할 것 같습니다."

"일단 확인부터 해 보자고."

투관침을 통해 장골동맥편이 들어갔다.

토드의 말대로 장골동맥은 혈관벽이 두꺼워서 간동맥과 맞지 않았다.

"장골동맥 그래프트, 아까 자네가 했지?"

"네. 그렇습니다만……."

"됐어. 신경 쓰지 마. 다른 이식편을 구하면 되니까."

"요골동맥이나 비장동맥은 어떠십니까?"

토드의 제안에 스미스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우위대망동맥이 그래프트로 적합한 것 같습니다."

"우위대망동맥?"

"네. 얼마 전 우위대망동맥이 간동맥 문합에 효과적이라는 논문을 읽었습니다. 우위대망동맥은 다른 혈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채취하기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또한, 혈관의 크기 역시 간 동맥과 적합합니다."

"한국 논문을 읽었나 보군."

"네. 맞습니다."

"좋아. 미스터 최의 말대로 해 보지."

"교수님. 그동안 우위대망동맥을 이식편으로 쓴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지금 와서 모험이 필요한지……."

토드가 스미스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자네 말대로라면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 자체를 할 필요가 없지 않나?"

"……."

"고여 있는 물은 썩는 법이야."

"알겠습니다."

스미스는 토드의 도움을 받아 이식편을 채취하고 간정맥에 대보았다.

혈관 크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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