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02화 (201/407)

도전 (5)

수술용 참관실.

메이죠의 간담췌외과 스태프들과 외부 인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좌석은 이미 꽉 찼으며, 나중에 온 사람들은 뒤에 서 있어야 했다.

'대단하네.'

에단은 주변을 둘러보고 모니터에 시선을 주었다.

오늘은 메이죠에서 최초로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을 하는 날이다.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펠로우. 이번 수술 괜찮을까요?"

에단은 곁에 앉은 간담췌외과 펠로우에게 물었다.

"집도의가 헤드 치프잖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저도 헤드 치프를 믿기는 하지만……."

스미스는 국내외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에 드는 일반외과 써전이다.

간담췌외과, 위장관외과, 대장관외과.

세 분과의 펠로우 자격증을 딴 트리플보드 써전이기에.

하지만 이번 수술만큼은 완전히 마음을 놓기 힘들다.

안 그래도 고난도의 생체 간이식 수술이다. 거기에 복강경이라는 장해물이 껴들었고, 연습 없이 최초의 수술을 펼치게 되었다.

다른 써전 앞에서 시연까지 하면서 말이다.

"난 헤드 치프는 걱정이 안 되는데. 미스터 최가 걱정이야."

"미스터 최요?"

"무슨 생각으로 신규 레지던트를 세컨드로 세우셨는지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나를 써도 모자랄 판에."

펠로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메이죠는 수술 스태프 선정이 자유로운 편이다.

집도의가 스태프를 결정하고, 해당 스태프가 이를 받아들이면 된다. 즉 서로의 의사만 맞는다면 인턴이라도 고난도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무리 스태프 선정이 자유로워도 이건 아니잖아."

"저는 왠지 알 것 같아요. 미스터 최가 뽑힌 이유."

"그걸 안다고?"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스터 최는 독특한 사람입니다."

"……."

"지금까지 지켜봤는데 항상 기대치를 넘는 활약을 보여 줬어요. 의외로 이번 수술에서 제 몫을 다할지 몰라요."

"지금 티칭 레지던트라고 편드는 건가?"

"그냥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에단이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한국인지 어딘지 모를 곳에서 온 동양인한테 네 자리를 빼앗기고 싶어? 너보다 한참 늦게 들어온 녀석한테?"

"저보다 실력이 좋으면, 제 앞에 있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실력 중심도 메이죠의 모토 중 하나니까요."

"넌 속도 좋다."

펠로우가 혀를 찼다.

어색한 침묵 속에 에단이 모니터를 응시했다.

오늘 수술은 다른 때보다 장기전이 될 것이다.

본래 간이식 수술은 서로 다른 로젯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한쪽에서는 공여자(이식 장기를 주는 쪽)의 간을 적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혜자(이식 장기를 받는 쪽)의 손상된 간을 절제한다.

이후 수혜자 팀이 공여자 팀의 간을 받아서 수술을 마무리 짓는다.

다만 오늘은 이 과정이 전부 복강경으로 진행된다.

복강경 수술은 스미스만 할 수 있기에, 스미스가 적출과 이식을 둘 다 하게 된다.

'교수님은 실패하길 바라겠지?'

에단은 바로 앞에 앉은 폴을 바라봤다.

폴은 스미스는 지독하게 싫어했고 호시탐탐 꼬투리를 잡으려 했다.

스미스가 수술에 실패하면 숨겨 왔던 발톱을 드러내리라.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오후 2시가 찾아왔다.

참관실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벽시계로 향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고 10분이 더 지났다.

"뭐야? 수술을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천하의 스미스도 이번 수술은 무서웠나 보지?"

"수술이 지연되면 그 이유를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메이죠씩이나 되는 병원에서 왜 이러는지. 참."

스미스와 적대적인 일부 써전들이 쓴소리를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미스터 최.'

에단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 * *

A 로젯 앞.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 스태프들이 스미스의 최종 브리핑을 듣고 있었다.

"충분히 이해했나?"

"네!"

스태프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제1보조 토드가 입을 열었다.

"헤드 치프. 지금이라도 한 번 더 재고해 주세요. 신규 레지던트를 제2보조로 쓰는 건 무모하지 않습니까?"

"지금 내 결정에 토를 다는 건가? 스태프 선택도 집도의에 고유권한인 거 몰라?"

"그…… 그건 아닙니다만……."

스미스가 뿜어내는 박력에 토드가 몸을 움찔했다.

"미스터 최가 발목을 잡으면 그때 교체하면 된다. 벌써 판단하는 건 일러."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이야기를 마친 스미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빛은 평소처럼 평온하기만 했다.

처음 해보는 수술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각지의 써전들 앞에서 라이브 시연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그런 담대한 마음가짐 때문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겠지만.

'괜찮아. 이 정도는.'

상태창을 열자 외과 레벨이 두 단계 떨어진 게 보였다.

스미스의 디버프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이다.

제2보조는 정교한 처치를 할 일이 적기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듯싶었다.

지이이잉.

수술실 문이 열리고 조세가 윌리엄이 누운 침상을 끌고 왔다.

"닥터 최. 나 오늘 수술 안 받을래요."

윌리엄의 폭탄선언에 스태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윌리엄.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너무 긴장되고 떨려요. 수술을 아예 안 받겠다는 건 아니고, 날짜를 조금 미루죠. 그래도 되죠?"

윌리엄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들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쏠렸다.

오늘 수술의 향방이 집도의인 그에게 달렸다.

"윌리엄이 수술 전부터 긴장했다는 거 충분히 알고 있어요. 당연히 무섭겠죠. 처음 받는 수술이니까."

최기석은 몸을 낮춰 윌리엄과 시선을 맞췄다.

"하지만 조금만 더 용기를 내 봐요. 지금까지 잘해 왔고 끝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제 저기까지만 가면 돼요."

그의 검지가 로젯을 가리켰다.

"하아……."

"그리고 윌리엄이 두려운 만큼, 아버님도 두려울 거예요. 윌리엄이 이 공포를 이겨 내야 아버님도 힘을 낸다고요."

"아버지가요?"

윌리엄이 처음으로 동요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럴 리가 없어요. 아버지는 강심장이라고요. 오늘도 수술이 없는 날인 것처럼 지냈는데."

"당연히 그랬겠죠. 윌리엄이 곁에 있었으니까."

최기석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윌리엄이 초조해서 병동을 돌아다닐 때 제게 털어놓으셨어요. 너무 떨리고 긴장되지만 아들 때문에 참고 있다고 말이에요."

"그럴 수가."

"수술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다들 최선을 다해 용기를 내는 것뿐이에요."

"……알았어요.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가죠."

월리엄이 다시 침상에 누웠다.

조세가 먼저 스크럽을 하고 윌리엄을 수술실로 옮겼다.

그사이 다른 스태프들이 스크럽에 나섰다.

벅. 벅. 벅.

최기석은 포비돈 용액이 묻은 솔로 손과 팔을 문질렀다.

'나중에 말을 맞춰야겠는걸?'

사실 윌리엄에게 하얀 거짓말을 했다.

윌리엄이 말한 대로 제이스는 강심장이고, 수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즉 윌리엄을 자극하기 위해 그가 꾀를 부린 것이다.

예전이라면 버벅거리며 제대로 설득을 못 했겠지만 정치력이 올라간 후 말주변이 상승했다.

"잘했다. 미스터 최."

"감사합니다."

곁에 있던 스미스가 그를 칭찬했다.

지이이잉.

스태프가 일제히 로젯 안으로 들어갔다.

조세가 타임아웃을 실시하고, 마취의가 전신 마취를 하면서 수술의 막이 올랐다.

스으으으윽.

최기석은 윌리엄의 복부를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이에 스미스가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아 환자의 배꼽 아래, 치골 상부, 우하복부에 작은 절개창을 냈다. 그리고 절개 부위에 투관침을 꽂아 넣었다.

"카메라 포트, 포셉, 보비."

필요한 도구가 차례대로 투관침 안으로 들어갔다.

카메라가 작동하면서 간과 그 주변 장기들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개복수술이 아니었기에 확실히 수술 시야가 좁았다.

"지금부터 공여자의 간을 적출한다. 모스키토(혈관겸자)."

스미스는 모니터를 보며 복강경용으로 제작된 모스키토를 투관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딸칵!

혈관겸자가 간의 우측 동맥과 간문맥을 붙잡았다.

시간이 지나자 피가 통하지 않으면서 우측 간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잘 잡고 있어."

"알겠습니다."

제1보조 토드가 포셉으로 간을 고정하고, 스미스가 전기 소작기로 간의 상당 부분을 지졌다.

치이이이익.

전기 소작기가 간을 태우면서 주변 조직이 하얀빛을 띠었다.

이윽고 우측 간에 일자 모양의 경계선이 생겼다.

절제 부위를 미리 표시한 것이다.

"본격적인 수술은 지금부터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네!"

"초음파 흡인기."

스미스는 초음파 흡인기를 이용해 간을 절제하기 시작했다.

'대단해.'

최기석은 스미스를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거 트레이닝 룸에서 간암 수술 중 초음파 흡인기를 사용해 봤는데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단순하게 간을 싹둑 베어 내는 게 아니라 주요 혈관을 피해 조심스럽게 잘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스미스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 필요한 부분만 절제하고 있었다.

"잠깐!"

스미스가 가볍게 한 손을 들었다.

반쯤 잘린 간 속에서 작은 혈관이 나타났다.

만약 절제를 계속했다면 혈관이 잘리며 출혈이 발생했으리라.

"5-0 Nylon."

스미스와 토드가 출혈 방지를 위해 혈관을 묶는 사이.

최기석은 카메라 포트를 조종해 수술에 최적화된 시야를 제공했다.

용의 눈을 쓰면 자동으로 최상의 수술 시야를 얻는데, 그 경험 덕택에 최기석은 집도의에게 수술 부위를 어떻게 비춰 줘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제법인데?'

토드는 스미스를 돕던 중 최기석을 힐끔거렸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을 줄 알았건만 의외로 나서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우선 시야 선점이 기가 막혔으며 손을 떨지 않아 모니터 화면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조금 과장하면 복강경이 아니라 개복 수술을 하는 느낌이다.

찰칵!

가위질로 결찰이 끝났다.

우연히 마주친 스미스의 눈이 웃고 있었다.

그의 눈웃음은

'거 봐 잘하잖아.'

라고 최기석을 두둔하는 것 같았다.

섬세한 작업이 계속되었다.

스태프들은 간을 자르면서 작은 혈관들을 묶어주고, 주요 혈관을 보존했다.

시간이 흘러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질 법도 했지만, 스태프 중 누구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다. 수술 도구 사용하는 소리와 의견 주고받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절제 끝났다. 꺼내자."

스미스와 토드가 포셉으로 절제된 간을 붙잡고, 투관침 밖으로 꺼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피로 가득 찬 트레이에 간을 내려놓았다.

이로써 윌리엄의 간 65퍼센트를 절제했다.

남은 부위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고, 절제된 간은 아버지인 제이스에게 이식된다.

'많이도 왔네.'

조세는 수술용 참관실을 올려다보고 피식 웃었다.

참관실은 항상 텅 비어 있었다.

수술 참관이 자유라고는 하나 실제로 참관하는 사람은 최기석 정도다. 그런데 오늘은 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메이죠 최초의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

그것이 주는 무게감은 확실히 달랐다.

"다들 긴장 늦추지 마. 이제 수술의 30퍼센트 정도가 끝났을 뿐이다."

스미스가 스태프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제 옆 로젯에서 수술을 계속한다."

"네!"

우렁찬 외침이 퍼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어! 어!"

조세는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참관용 수술실을 보던 중 발이 미끄러졌다.

그로 인해 간이 든 트레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갔고, 이를 지켜본 스태프들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했다.

탁!

최기석이 바닥을 박차며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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