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201화 (200/407)

도전 (4)

"알았어."

제니퍼가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어제 저녁 그녀가 응급실을 찾은 일반외과 환자는 총 일곱 명이었다. 그중 단 한 사람만이 장 폐색증으로 응급수술을 받고 입원했다.

"그 환자 내가 받을게."

"노노노. 미스터 최는 이미 cap(의사 일 인당 관리하는 환자의 수)이 꽉 찼잖아."

"잘못 아는 것 같은데. 난 두 명 더 받을 수 있어."

최기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알아. 하지만 이 환자가 아니라 다른 환자들을 받아야 하거든."

"다른 환자?"

"일단 모건이 관리하는 환자 한 명 받아."

제니퍼가 해당 환자의 차트를 모니터에 뛰었다.

환자 이름은 미키, 나이는 27세로 특별한 질병 없이 고도비만으로 입원했다.

"어제 오전 회의 때 결정 났어. 이 환자에게 루와이 수술하기로."

루와이 수술.

고도 비만 환자의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수술이다.

한국에서는 위 밴드 수술과 위 소매 모양 절제술을 시행하지만, 미국에서는 루와이 위 우회술이 표준수술로 자리 잡았다.

"루와이 수술, 미스터 최가 집도할 거야."

"정말?"

"당연하지. 설마 인수인계 시간에 장난치겠어?"

"와우. 이런 기회가 올 줄이야."

최기석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집도한다면 동기들처럼 충수 절제술을 다시 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보다 난이도가 몇 배는 높은 루와이 수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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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으로 즐거움이 두 배가 되었다.

"집도는 에단이 봐줄 거고, 보조로는 엠마랑 내가 들어갈 거야."

"좋기는 좋은데, 너무 빠른 것 같기도 하고."

"동감. 미스터 최가 솜씨 좋은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과속이 아닌가 싶어."

"최종 결정은 미스터 최의 몫이야."

잠자코 있던 모건이 껴들었다.

"정 부담스럽다면 안 해도 되고, 물론 네가 이 기회를 놓칠 거라는 생각은 안 하지만."

"정답!"

최기석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메이죠도 참 대단하다. 신규 레지던트에게 루와이 수술을 맡기다니. 두 시간은 넘게 걸리는 수술인데. 봉합까지 해야 하고."

"그게 메이죠 스타일이지. 실력 있는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고속성장하고 못난 사람은 사다리로 엉금엉금 올라가는 거."

제니퍼와 모건이 한마디씩 했다.

"너희 둘이 나라면 루와이 수술할 거야?"

"난 절대 안 해. 괜히 위험을 무릅쓸 필요 없잖아. 수술은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

"나라면 하겠어. 동기들보다 빨리 치고 나가야 하니까."

두 사람의 성향이 명확하게 갈렸다.

"에단에게는 내가 말해 둘게, 미스터 최가 루와이 수술 집도하겠다고 한 거."

"고마워."

"천만의 말씀. 두 번째 전달사항도 미스터 최에 관한 거야. 어제 일반외과 클리닉에 라빈 윌리엄스가 왔다 갔거든? 어제 검사 결과 들었고, 오늘 오후에 입원하러 온데."

"혹시 내가 주치의?"

"맞아."

최기석은 한숨 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제 로비에서 그를 본 후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그런데 정말 그 느낌대로 되었다.

"왜? 좋지 않아? 다들 라빈의 주치의가 되고 싶어서 난리인데. 아니면 라빈을 몰라?"

"알아. 한국에서도 유명한 배우야."

"그럼 왜 싫어해?"

"부담스러워서. 일반적인 상황에서 만나는 거랑 의사 대 환자로 만나는 건 또 다르잖아."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진단명은 뭔데?"

최기석이 화제를 돌렸다.

"크론병. 다른 병원 내과에서 치료받다가 호전이 안 돼서 우리 병원에 왔대."

크론병.

모든 소화기관에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라빈의 경우 소장에 심각한 염증과 누공이 존재하여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어지는 제니퍼의 설명을 최기석은 주의 깊게 들었다.

이윽고 인수인계가 끝났다.

"고생했다. 들어가서 푹 쉬어."

"너희 둘도 일 잘하고."

제니퍼와 작별 인사하고 모건과 회의 준비에 나섰다.

"긴장 안 돼?"

"뭐가?"

"오늘이 그 날이잖아."

모건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은 메이죠에서 처음으로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을 하는 날이다.

메이죠에서 처음이라는 뜻은 미국에서 처음 시도된다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

수많은 간담췌외과 써전들이 수술참관을 요청했다.

과의 재량으로 거절할 수도 있지만, 집도의이자 헤드 치프인 스미스는 참관을 허락했다.

실로 파격적인 결정.

익숙하고 자신 있는 수술을 공개하는 것이 보통이거늘, 스미스는 그 룰을 산산이 부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수술에 최기석이 제2보조로 뽑혔다는 점이다.

"아…… 난 또 무슨 소리인가 했네."

최기석이 뒤늦게 손가락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복강경 간이식 수술 이야기지? 딱히 긴장은 안 되는데? 이런 쪽으로는 워낙 겁이 없어서."

"내 앞에서 허세 부릴 필요 없어."

"허세 아닌데?"

"헤드 치프 수술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까무러칠 지경 아니야? 거기다 이건 메이죠 최초의 수술이고, 외부에서 참관까지 온다고!"

"네가 말한 건 나랑 아무 상관도 없어."

"……."

"그래도 걱정해 줘서 고맙다."

최기석이 모건의 어깨에 손을 얹었고, 모건은 혼란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스터 최는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어."

"나도 나를 모르겠어."

최기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남들 눈에 비정상적으로 태연해 보일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얼어붙은 심장의 패시브 효과 때문이다. 얼어붙은 심장이 없었다면 며칠 전부터 잠도 제대로 못 잤으리라.

'태식 선배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문득 스킬을 전수받은 김태식이 떠올랐다.

잠시 후 스태프들이 컨퍼런스 룸으로 몰려들었다.

입원환자 보고와 케이스 발표 등이 순조롭게 끝났다.

"회의 마치기 전에 전달사항 말씀드리겠습니다."

위장관 외과 레지던트 치프가 입을 열었다.

"월례 정기 의료봉사가 다음 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은 제게 말씀하시거나 게시판에 있는 명단에 이름을 적어 주세요."

"……."

"아울러 다음 달 초에는 2박 3일로 하반기 멤버십 트레이닝이 잡혀 있습니다. 장소와 인원은 조만간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지던트 치프의 말과 함께 오전 회의가 끝났다.

최기석은 컨퍼런스 룸을 나와 오전 회진을 위한 줄을 섰다.

"……."

"……."

우연히 스미스와 시선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침묵 속에 서로를 응시했다.

"복강경 생체 간이식 수술을 발표한 게 미스터 최였어. 공교롭게 미스터 최는 한국 사람이고."

"……."

"이번 수술, 자신 있나?"

"네!"

"기대해 보지."

스미스가 행렬 앞에 서서 걷자 수많은 스태프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오전 회진 시작이다.

* * *

그날 오전.

최기석은 의국에서 환자 오더를 입력하고 있었다.

작업을 끝내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시다. 대망의 간이식 수술이 2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미스터 최. 나 부탁할 게 있는데."

모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데?"

"내 환자 중에 론이라는 환자가 있어. 터널 증후군이 의심돼서 신경외과에 협진을 요청했는데 도무지 내려오질 않아. 나 대신 연락 좀 해 줬으면 좋겠어. 이제 스크럽에 들어가야 돼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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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걱정 말고 가 봐."

"고마워."

모건이 떠난 후 최기석은 신경외과에 전화를 걸었다.

몇 분 간격으로 전화했지만 계속 통화 중, 아무래도 직접 가 봐야 할 듯싶었다.

'그럼 겸사겸사 일어나 볼까?'

최기석은 의국을 나와 제이스가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닥터 최."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뭐. 특별히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습니다."

제이스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뭐. 한숨 자고 있으면 선생님들이 알아서 잘 치료해 주시겠죠."

"다른 환자들도 제이스를 본받았으면 좋겠네요."

"그런가요?"

제이스가 딸 사진이 들어있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어젯밤 꿈에 딸이 나왔어요. 어찌나 반가웠던지 눈물을 참느라 혼났죠. 그런데 이상하게 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더군요. 입만 벙긋거리는데 대체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전 뭔지 알 것 같습니다."

"닥터 최가요?"

제이스의 눈썹이 올라갔다.

"분명 수술 무사히 받고, 건강하게 지내달라고 부탁했을 겁니다. 따님 성격이라면 그렇지 않았을까요?"

"듣고 보니까 정말 그랬을 것 같군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화제를 돌렸다.

"윌리엄이 안 보이는데…… 혹시 어디로 갔죠?

"긴장했는지 계속 이 병실, 저 병실을 기웃거리더군요."

제이스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윌리엄이 병실로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윌리엄. 수술이 가까워지니 많이 긴장되나 보죠?"

"네. 수술받는 건 처음이라서요."

윌리엄이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떨었다. 그리고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초조해하는 모습이다.

"누워서 숨을 천천히 쉬어 봐요. 호흡에 집중하면 걱정이 어느 정도 사라질 테니까."

최기석은 윌리엄을 다독이며 격려를 사용했다.

[격려 스킬 사용에 실패하셨습니다. 대상이 격려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소용없는데요?"

윌리엄은 그가 시킨 대로 따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병실을 돌아다녔다.

그 산만한 모습에 최기석은 얼굴을 찌푸리며 이마에 손을 얹었다.

윌리엄과 라포가 쌓이지 않아 정언명령도 사용할 수 없다.

이래저래 곤란한 상황.

부디 수술 전까지 사고 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최기석은 병실을 돌아다니며 환자를 살핀 후 신경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미스터 최. 오랜만이에요."

복도 맞은편에서 레온이 손을 흔들었다.

레온은 과거 수술용 참관실에서 마주친 사이로 과잉기억 증후군을 않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신경외과는 웬일이에요?"

"협진 요청 때문에 전화했는데 계속 통화 중이라서요."

"그래요? 따라와요."

최기석은 레온을 따라 의국으로 들어갔다.

신경외과 의국 내부는 일반외과와 달리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모든 물건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제 위치에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또 버니 짓이네."

레온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전화기를 가리켰다.

전화기가 삐뚤어지게 잘못 놓여 있었다.

"이래서 계속 통화 중이었구나."

"미안해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실수할 수도 있죠, 뭐."

"환자 번호 불러 볼래요? 협진 환자 진료, 내가 볼 테니까."

레온은 최기석이 부른 환자 번호를 입력하고, 차트를 유심히 살폈다.

"자세한 건 확인해 봐야겠지만 증상은 전형적인 손목터널 증후군이네요. 지금은 볼일이 있어서 그런데, 삼십 분 정도 후에 환자를 봐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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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석은 레온과 인사를 나눈 후 일반외과 병동으로 돌아왔다. 응급실 환자를 진료하고, 잡무를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그렇게 찾아온 오후 1시 30분.

대망의 복강경 생체 간이식술이 코앞이다.

"가자."

최기석은 볼을 가볍게 두드리며 수술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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