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96화 (195/407)

무엇을 위해서 (5)

"이거 다른 대책이 필요하겠는데?"

"저도 선생님과 같은 생각이에요. 기계 환기를 하는 데도 환자 상태가 썩……."

에단과 조세가 우려를 표했고 최기석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에크모를 써야 될 것 같아요."

"에크모? 체외막 산소장치를 말하는 거지?"

"네."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의 사망률은 40퍼센트가 넘어간다.

기계 환기에만 의존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었다.

"흠흠. 미스터 최를 못 믿는 건 아닌데. 호흡기내과에 협진 요청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에단은 다른 스크럽 있으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조세는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는 것까지만 도와주고."

최기석은 순순히 에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랜디가 일반외과 환자라고 해도 현재 앓고 있는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은 호흡기내과 영역이다.

비록 자신이 한국에서 흉부외과 전공을 했다고 해도 멋대로 처치하는 건 월권이다.

최기석은 조세와 함께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긴 후 호흡기내과에 협진 요청을 했다.

이윽고 호흡기내과의 필립이 환자를 살폈다.

환자 감시 장치와 기계 환기의 용량을 확인한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뭐가 잘못됐나요?"

"아…… 아닙니다. 솔직히 놀라서요. 일반외과에서 기계 환기를 이렇게 정확하게 할 줄은 몰랐거든요."

필립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기계 환기로 호흡이 안 잡힌다면 에크모를 써야겠습니다.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어요."

"그럼 세팅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중환자실에서 보유한 에크모를 환자의 곁에 두었다. 그리고 도관의 유속과 관련된 ECMO flow, Cardiac index를 비롯한 산화기와 모니터 세팅을 맞췄다.

"혹시 일반외과 신규 레지던트 아니에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에크모 세팅을 하죠?"

필립이 놀란 토끼 눈으로 물었다.

그에게 최기석의 행동은 불가사의다.

풋내기 레지던트, 심지어 수련과가 일반외과인데, 어떻게 호흡기내과와 흉부외과의 처치 도구인 에크모를 다룬단 말인가.

"한국에서 흉부외과 전공이었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도관 삽입까지 제가 해도 되죠?"

"할 수 있으면 해 보세요."

필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기석이 움직였다.

그는 천자할 부위를 넓게 소독한 후 처치에 나섰다.

푸우우욱!

대퇴정맥에 카테터가 꽂혔다.

최기석은 혈관에 튜브를 남기고, 조심스럽게 가이드 와이어를 빼냈다.

깔끔한 셀딩거 기법.

같은 방법으로 내경정맥에도 튜브를 연결했다.

이로써 V-V(veno-venous) 에크모가 끝났다.

포터블 엑스레이로 촬영한 결과 양쪽 캐뉼러가 전부 정상적으로 삽입되었다.

'진짜 했네.'

필립은 속으로 혀를 찼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다.

드르르르륵.

펌프가 돌아가면서 최기석과 필립의 시선이 환자 감시 장치에 머물렀다.

"그러고 보니까…… 그쪽이 미스터 최 맞죠? 그 자살 시도했던 환자 구한 레지던트."

"네. 맞습니다."

"듣자 하니 인터뷰 수석까지 했다던데. 입소문 타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필립이 우회적으로 최기석을 칭찬했고, 최기석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여간 에크모를 썼다고 안심할 수 없어요.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Keep(의사가 환자에게 붙어서 계속 관찰하는 일) 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최기석은 의자를 챙겨 환자 옆에 자리 잡았다.

"혹시라도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해요."

"네."

필립이 떠나면서 환자 곁에 최기석이 남았다.

그의 시선은 환자 감시 장치와 환자에게서 떠날 줄 몰랐다.

* * *

그날 저녁.

최기석은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 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환자를 지켜봤다.

하늘이 정성을 알아준 걸까.

환자가 정상 호흡을 되찾았다.

필립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에크모는 유지하되 더 이상 킵은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이만하면…….'

최기석은 환자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 중환자실을 나왔다.

병동으로 돌아가는 도중 창밖을 응시하자 하늘이 어두웠다.

췌장암 수술과 환자 킵으로 끝난 하루.

시간이 도둑맞은 것처럼 지나갔다.

"미스터 최. 고생 많았어."

복도에서 마주친 에단이 손을 흔들었다.

"수술 끝나고 계속 환자 킵했다면서?"

"네. 상태가 워낙 안 좋았거든요."

"그럼 저녁도 못 먹었겠네?"

"당연히 못 먹었죠. 우선 환자 살펴보고 나서 먹으려고요."

"그 와중에 환자를 챙기다니…… 역시 미스터 최야."

에단이 웃으며 최기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건 그렇고 헤드 치프가 잠깐 보자니까 집무실에 가 봐."

"저를요? 왜요?"

"그건 나도 모르지. 특별히 나쁜 소리는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오늘 스크럽도 잘 끝냈잖아."

"알겠습니다. 지금 가 볼게요."

최기석은 에단과 헤어진 후 스미스의 집무실을 찾았다.

똑. 똑. 똑.

노크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스미스는 소파에 기대앉은 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저를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최기석이 스미스의 맞은편에 앉자 스미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미스터 최에게 할 말이 많아. 우선 오늘 수술한 환자 이야기부터 꺼내야겠군."

"……."

"내가 수술실을 떠난 후 환자에게 ARDS(급성 호흡곤란 증후군)가 왔다지?"

"맞습니다."

"미스터 최의 주도로 처치가 이뤄졌다고 들었어."

"한국에서 흉부외과 전공했던 경험을 살려서 처치했습니다."

최기석은 스미스의 부재 후 일어난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현재 환자 상태는?"

"호흡은 정상범위에 가까워졌으며 에크모는 아직 유지 중입니다."

"잘했어. 미스터 최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 환자는 피부과 헤드 치프의 친구야. 남이지만 동시에 남이 아닌 관계라 할 수 있지. 만약 문제가 생겼다면……."

스미스가 말끝을 흐렸지만, 최기석은 숨겨진 뜻을 읽었다.

"일반외과 전공할 생각은 아직도 없는 건가?"

"죄송하지만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습니다."

"고집하고는……."

스미스가 혀를 차며 검지로 소파 앞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 서류철이 놓여 있었다.

"이…… 이건……."

"간경변으로 입원한 환자 제이스의 수술 동의서야. 한 번 읽어 보고 내일 서명 받도록."

"네."

최기석은 서류철 안의 동의서를 훑었다.

그의 눈과 입이 점점 커졌다.

"헤드 치프. 진심이십니까?"

"왜? 내가 못 할 것 같나?"

"그건 아닙니다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최기석은 다시 동의서를 내려다보았다.

이틀 뒤로 예정된 제이스의 생체 간이식 수술.

그것이 복강경 수술로 잡혔다.

최기석이 과거 케이스 발표에 사용했던 대로 말이다.

"메이죠 클리닉은 복강경 간이식술을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니까 이번에 하자는 거야. 얼마 전 내가 자리를 비운 이유, 알겠나?"

"……혹시 한국에서 복강경 간이식술을 배워 오셨습니까?"

"정답이다."

스미스의 입가에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확실히 한국의 간이식 수술은 세계 최고야. 배운다는 느낌으로 수술 참관한 게 몇 년 만인지 모를 정도였지. 그쪽에 특별히 부탁해서 수술 도구까지 챙겨왔어. 이제 집도만 남았다."

"그렇군요."

"제2보조는 이미 미스터 최로 정했다.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명심하고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최기석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메이죠 클리닉 최초의 복강경 간이식 수술.

거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건 크나큰 영광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스미스가 다리를 꼬며 손등에 턱을 괬다.

심기가 불편할 때 나오는 특유의 제스처.

최기석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긴장감을 깨웠다.

"지금부터는 쓴소리를 좀 해야겠어. 이틀 전 병동에서 벌어진 총격사건 기억하나?"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주 골치 아픈 사건이었지. 지금도 뒤처리 때문에 진땀을 빼는 중이고."

스미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할 말이야 많지만 다른 건 빼놓고 미스터 최의 행동에 집중해 보자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총을 든 사람에게 달려든 건가?"

"그게…… 사실은……."

최기석은 더듬거리며 할 말을 찾았다.

하지만 행동의 근본이었던 불사신 칼라일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건 완전히 머저리 같은 짓이었어. 자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그건 아닙니다."

"그럼 왜 덤볐지?"

"혹시라도 총이 빗나가면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듣자 하니 거리도 가까웠다고 하던데.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당시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서……."

"바보 같은 소리!"

쾅!

스미스가 화를 내며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뿐만이 아니야. 몇몇 환자들은 자네가 릭을 도발했다고 진술했어. 릭이 자네를 죽일 거라고 말하자 자네는 자네를 죽일 수 없다고 이죽거렸다지?"

"……네."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모건에게 쏠린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려고 한 행동이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스미스의 말이 맞았다.

"혹시 저번 미팅 때 했던 말 기억하고 있나?"

"자살시도 환자를 구했을 때 하셨던 말이라면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네의 용기를 칭찬했지만, 난 의견이 달라. 다시는 그런 허튼짓하지 말라고. 다른 사람을 돕는 건 좋지만, 거기에 자신의 목숨을 걸지는 마. 다시 한 번 이런 일이 생기면 좋은 소리는 못 들어.]

당시 스미스의 조언이 머리를 스쳤다.

"그럼 더더욱 멍청한 짓을 했어. 미스터 최, 내 말이 우습나?"

스미스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아닙니다."

"그럼 왜 아닌데 그런 행동을 했지?"

스미스의 숨 막히는 압박에 최기석은 잘못했다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일어나면, 그땐 수련이고 나발이고 없을 줄 알아. 썩 꺼져!"

스미스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최기석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돌이 얹힌 것처럼 가슴이 무거웠다. 스미스가 했던 말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의 갈굼은 최기석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보이지 않는 손 디버프에 걸리셨습니다.]

[자신감이 대폭 하락하며 외과적 처치 레벨이 두 단계 감소합니다.]

[디버프 지속시간: 일주일.]

최기석은 알림을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이런 방식으로 디버프를 획득하게 될 줄이야.

"휴우……."

복도를 걷던 중 저절로 한숨이 터졌다.

스미스가 얼마나 독하게 쪼아 댔던지 허기마저 사라졌다.

디버프에 걸렸던 에단의 심정을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드르르륵.

환자를 훑던 중 한 병실로 들어갔다.

"가일. 몸은 좀 어때요?"

"……."

"가일?"

가까이서 다시 말을 걸자 변호사 가일이 비로소 그를 알아차렸다.

"아. 닥터 최. 왔어요?"

가일이 웃으며 눈가를 훔쳤다.

그는 지금까지 노트북으로 최기석이 추천한 법정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보기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완전히 몰입한 것 같은데요?"

"네. 인정하기 싫지만, 너무 재미있네요. 변호사를 다룬 드라마라서 감정이입도 잘 되고."

가일이 말을 계속했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을 보니까 옛날 제 생각이 나네요. 나도 예전에는 논리 이전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러모로 느낀 게 많습니다."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선생님이 내준 다른 숙제도 끝냈습니다. 아까 아내하고 딸과 통화했어요."

"두 분은 뭐라고 하죠?"

"약 먹은 거 아니냐고. 웬일로 전화했냐고 하더군요."

가일이 웃음을 머금었다.

"닥터 최.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잊고 있었던 걸 다시 찾은 기분이 들어요."

"네. 이제 건강만 되찾으면 되는 겁니다."

최기석도 그를 보며 웃었다.

바로 그 순간!

띠링!

[숨겨진 임무, '진심에서 진심으로, 그 세 번째'를 완수하셨습니다.]

[특별 보상으로 신규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액티브 스킬

NEW [추궁 - 이의가 있어!]

최기석은 스킬 설명을 확인하고 몸을 들썩거렸다.

'뭐야? 이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