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95화 (194/407)

무엇을 위해서 (4)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랜디입니다."

"병명은 어떻게 되십니까?"

"췌장암입니다."

타임아웃을 마친 조세가 스미스를 응시하자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써전들이 자리 잡는 가운데 마취의가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하게 정맥로로 마취액을 주입했다.

딱딱하게 굳었던 환자의 몸이 서서히 이완되어 갔다.

"미스터 최."

"네!"

스으으윽. 스으으윽.

최기석은 환자의 복부를 소독하고, 그 위에 방포를 덮었다.

"메스."

스미스가 메스를 손에 쥐고 환자의 복부를 갈랐다.

근막과 근층, 복막이 순서대로 갈라지면서 장기의 모습이 한눈에 드러났다.

검사대로 췌장 머리 부분에 암이 존재했다.

암 조직의 크기는 5cm.

루뻬(광학안경)를 끼지 않은 채 육안으로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림프절 전이는 예상한 대로인데 췌장 꼬리 부분에 농이 차 있군."

"어떻게 해야 할까? 토드는 대답하지 말고."

스미스의 시선이 에단에게 고정되었다.

"농양 주변을 도려낸 다음에 석션하고, 소독해 주면 될 것 같습니다."

"정답이다. 이제 좀 정신을 차린 모양이군."

"아,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에단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보이지 않는 손을 극복한 후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

최기석은 그 모습에 남몰래 미소 지었다.

스미스 앞에서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면 다른 수술에서는 더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문제는 나구나.'

마스크 안쪽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와 달리 오늘은 스미스에게 혼나는 것이 목표다. 디버프에 걸리려면 눈에 보이는 뚜렷한 실수를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우선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제3보조였다.

수술 중 처치하는 일이 많지 않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술 중 실수가 환자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스미스에게 혼나겠다는 것은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장난을 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메스."

스미스가 메스를 손에 쥐고 농양 부위를 조심스럽게 도려냈다.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진물들.

제1보조 토드가 석션기로 농양을 빨아들인 후 생리식염수로 주변부를 깔끔하게 씻어 냈다.

이후 에단이 해당 부분 소독에 나섰다.

"이제 본 처치로 들어가지."

뚜두두둑.

스미스가 목을 꺾고 메스를 손에 쥐었다.

본격적인 절제작업이 시작됐다.

스미스는 암이 위치한 췌장의 머리 부분을 넓게 절제해 나갔다.

흔들림 없는 손놀림과 정확한 절제 부위.

스미스의 절제는 마치 로봇과 같았다.

절제 중 혈관이나 신경을 건드릴 법도 하건만,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

위장관외과, 대장관외과, 간담췌외과.

일반외과의 분과 세 분야를 마스터한 괴물은 역시 무언가 달라도 달랐다.

텅!

곡반 위로 암 조직이 있는 췌장이 떨어졌다.

"바이옵시(biopsy, 생검)."

"네."

최기석이 잘라 낸 부위를 따로 챙겨 순환간호사에게 넘겼다.

"다음은 림프절이다. 스크래퍼."

스미스는 긁개를 받아 췌장의 몸통과 꼬리에 붙은 림프절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토드의 어시스트가 더해지면서 림프절 제거에 가속도가 붙었다.

'역시 안 되겠다.'

최기석은 토드와 에단을 보조하며 뜻을 접었다.

수술 중 억지로 실수하는 일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수술실 밖에서, 환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혼나는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절제술은 계속되었다.

스미스가 췌장과 맞닿은 십이지장, 총담관과 담낭의 일부를 잘라 냈다.

최기석은 보조하면서 스미스의 휘플 수술을 동영상으로 남겼다.

스크럽을 넘긴 라훌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스미스의 휘플 수술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다니…….

세 시간이 지난 후 필요한 절제가 모두 끝났다. 하지만 췌장암 수술의 복병은 아직 남았다.

잘라 낸 여러 장기들을 얼마나 잘 이어 붙이느냐.

이것이 수술의 성공을 결정짓는다.

"조세, 힘들어?"

스미스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조세를 응시했다.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까부터 몰래 하품하고 꼼지락거리고 난리가 났던데. 혹시 직접 처치하지 않는다고 느슨한 생각을 하는 건가?"

"……."

"그런 썩어 빠진 정신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써전이 못 돼! 어시스트 하나 똑바로 못하면서 무슨 수술을 하겠어!"

"죄……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조세가 고개를 조아렸다.

"자네 가족이 수술받는데 수술실에서 스태프가 하품하고 다리 떨고 있으면 기분이 참 좋겠지? 응?"

조세의 사과에도 스미스는 독설을 이어 갔다.

독설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조차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

"……."

독설을 끝낸 스미스와 최기석의 시선이 마주쳤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스미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스터 최."

"네!"

"넌 잘하고 있다. 지금처럼만 하도록."

스미스는 수술에 집중하면서 스태프들의 움직임까지 유심히 살펴왔다.

수술 중 발생하는 문제들, 거기에는 스태프의 부주의가 의외로 단단히 한몫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최기석은 교과서적인 보조를 해 왔다.

항상 빈틈없는 정자세를 유지했으며, 눈빛이 살아 있었다.

수술 중 딴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본적인 태도에 더해서 다른 스태프들 돕는 솜씨도 뛰어났다. 제3보조라서 하는 일이 복잡하거나 많지는 않았지만, 본인의 범위 안의 일은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래도 혼낼 건 혼내야지.'

스미스는 마음속 불길을 억눌렀다.

이번 수술과는 별개로 최기석에게 따끔하게 할 소리가 있었다.

"지금부터 봉합술을 시작한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특히 조세!"

"네!"

"알겠습니다."

스태프들의 대답과 함께 수술이 재개됐다.

"2-0 Nylon."

끼기기긱.

스미스가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위와 공장을 꿰맸다.

절제와 마찬가지로 봉합 역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최기석은 마치 송명진이 수술에 들어간 것처럼 든든하고 편한 느낌을 받았다.

확실히 실력 있는 써전들은 다른 스태프들이 기대고, 기대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메칠렌."

스미스의 외침에 에단이 수술 부위로 파란 용액을 흘렀다.

봉합의 누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로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이어지는 십이지장과 공장의 문합.

"교수님! SMA(상장간막 동맥)의 출혈이 심합니다."

십이지장에서 공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익.

최기석이 재빠르게 석션에 나섰지만, 빨아들이는 피보다 흘러 나가는 피가 더 많았다. 하는 수 없이 석션기를 양손에 들고 석션에 나섰다.

갑작스러운 출혈로 블러드 팩이 쭉쭉 줄어들었다.

"조세. 블러드 팩 교체."

"네!"

"출혈은 아직 안 잡혔나?"

"네. 보비(전기 소작기)를 써 보겠습니다."

최기석이 피를 빨아들이는 동안 에단이 출혈이 발생한 혈관을 찾아 전기 소작기로 지졌다.

타는 냄새와 함께 하얀 연기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응급처치 속에서도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스미스의 이마에 주름이 점차 늘어났다.

"케이슨(지혈제) 정맥으로."

"알겠습니다."

블러드 팩을 교체한 조세가 추가적인 처치에 나섰다.

10분여간 사투를 벌인 끝에 간신히 출혈을 잡았다. 스태프들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었다.

"큰일 날 뻔했어."

스미스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출혈을 잡지 못했으면 테이블 데스로 수술이 끝났을 것이다.

십이지장과 공장의 문합이 끝나고, 십이지장과 췌장의 문합이 시작되었다.

스미스가 깔끔하게 문합하기는 했지만 췌장액으로 인해 장기 양쪽이 잘 붙지 않았다.

덕분에 수술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문합 부위를 한 번 더 체크한다."

스미스의 지시로 에단이 모든 문합 부위에 누수 테스트를 실시했다.

결과는 양호.

"전쟁이 따로 없구나."

스미스가 벽시계를 바라봤다.

수술을 한 지 어느덧 8시간이 지나갔다. 예상외의 출혈과 십이지장 췌장 문합에서 애를 먹은 탓에 예상보다 수술 완료 시간이 늦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지이이잉.

로젯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D 로젯입니다."

[…….]

"네. 알겠습니다."

조세가 통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왔다.

"헤드 치프. 지금 A 로젯에서 복부 총상 환자 수술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출혈이 멈추지 않고, 도저히 탄을 뺄 수가 없다고 해서……."

"내가 필요하다는 소리지?"

"그런 것 같습니다."

"헤드 치프가 다른 로젯으로 가면 복부는 제가 닫겠습니다."

에단의 말에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뒷일을 부탁하지. 토드는 날 따라와."

스미스와 토드의 퇴장으로 에단이 집도의 자리에 최기석이 제1보조 자리에 섰다.

"휴우…… 이제 좀 살 것 같네. 미스터 최도 그렇지?"

"네. 숨통이 확 트인 기분이에요. 다른 스태프들이 헤드 치프 보조를 꺼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그래도 배울 건 많아."

에단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 수술만 해도 대단했지. 휘플 수술을 이렇게 깔끔히 끝낼 수 있는 써전도 드물 거야."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최기석은 트레이닝 룸에서 휘플 수술을 연습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실력으로 휘플 수술을 어디까지 소화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직접 수술해 보면 스미스와 자신의 격차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으리라.

끼기기기긱.

에단이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복부를 닫았다.

마무리 작업은 순탄했다.

"수술도 무사히 끝났겠다. 커피나 한잔할까?"

"저야 좋죠."

에단의 제안에 최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세, 너무 기죽지 마. 헤드 치프가 원래 깐깐한 거 알잖아."

"……."

"그리고 한 번 혼난 다음부터는 계속 잘했으니까 괜찮아. 환자 병실에 옮기고 1층으로 내려와. 알았지?"

"네."

조세가 침상을 밀려고 하는 찰나 마취의가 비보를 알렸다.

"환자 호흡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PaO2(동맥혈산소분압)과 FiO2(흡입산소분율)이 250 이하입니다!"

"뭐지? 수술은 잘 끝났는데."

에단이 당황한 표정으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마취의의 보고 후 환자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얼굴과 입술은 파랗게 질렸으며, 몸이 조금씩 들썩거렸다.

'젠장!'

최기석은 환자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진단명이 ARDS(급성 호흡곤란 증후군)다.

"선생님. 후두경 좀 주세요. 튜브는 8.0mm이요."

"네? 아, 네. 여기."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후두경을 받아 환자의 성대가 보일 때까지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나중에 받은 튜브를 환자의 기도로 밀어 넣었다.

번개 같은 기관 내 삽관!

"마취의 선생님. 동맥혈 산소포화도는 90퍼센트 이상으로 올려 주시고, 호기말 양압 0.5, T.

O(산소운반)는 600으로 맞춰 주세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의 지시에 에단과 조세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미…… 미스터 최.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이 의심돼서요. 그래서 기계 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걸 다 어떻게 알았냐고."

"이야기 안 했었나요? 저 한국에 있을 때 흉부외과 전공이었어요. 석 달 넘게 일했죠."

"아……."

"어쩐지 뭔가 다르다 했어."

두 사람이 뒤늦게 납득했다.

"근데 수술이 무사히 끝났잖아. 대체 왜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이 오는 거지?"

"급성호흡 곤란 증후군의 원인 중 급성 췌장염과 대량 수혈이 있어요. 두 가지 다 전신작용으로 폐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최기석은 설명을 끝내고 환자 감시 장치를 바라봤다.

기계 환기 중임에도 환자의 호흡은 여전히 불안정했다.

'뭐야. 아직 안 끝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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