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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88화 (187/407)

변수 (3)

"죄송합니다. 저는 이미 흉부외과 전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이미 알아. 닥터 송이 자네를 데리고 왔다는 것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변하기 마련이지."

스미스가 손등에 턱을 괬다.

"일반외과는 매력이 많은 과야. 위장관, 대장관, 간담췌 분야를 합치면 다루는 분야도 넓지. 혹시 내 전공을 알고 있나?"

"일반외과의 모든 분과에서 펠로우를 얻은 걸로 압니다."

"맞아. 미국에서 트리플 보드 자격증을 가진 일반외과의는 열 명도 되지 않아. 만약 자네가 일반외과 전공을 택한다면 내가 직접 수련을 도와주지."

스미스의 제안에 최기석은 침묵을 지켰다.

제안이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흉부외과에 최고봉이 송명진이라면, 일반외과의 최고봉은 스미스다. 또한 정보에 따르면 스미스는 그동안 누군가를 가르친 적이 없다.

흔히 말하는 방목형 선생이라고 할까.

그런 그가 직접 수련을 돕는다는 건 큰 의미가 있었다.

"이대로 내 제안을 물리칠 건가?"

"……죄송합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전공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유는?"

스미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저는 심장이식 수술로 새 삶을 얻었습니다. 저처럼 힘들어하고 있을 환자들을 낫게 해주고 싶다는 첫 마음을 잊을 수 없습니다."

"흐음…… 변하지 않는 것이라…….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스미스가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어. 간경변으로 입원한 제이스는 어때?"

"조직 검사와 초음파 검사 결과 하루라도 빨리 간이식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만 가족의 동의가 없어서 생체 간이식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현재 뇌사자 간이식 대기명단에 올려놓은 상태입니다."

"대기기간이 상당할 텐데…… 걱정이군."

"네. 그렇다고 가족 일에 껴들 수도 없어서 난감합니다."

"알았어. 가봐."

최기석은 스미스에게 인사하고 집무실을 나왔다.

"휴우……."

저절로 한숨이 터졌다.

스미스가 은연중에 뿜어내는 위압감은 여전했다.

설마 일반외과 전공 제안을 뿌리쳤다고 하이어 시스템에서 떨어트리지는 않겠지?

최기석은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걸었다.

지이이잉.

가운에 넣어둔 휴대폰이 몸을 떨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 전화를 받았다.

"보고 싶었어. 자기야."

[아니야. 내가 더 보고 싶었거든?]

정설화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늘 오프지?]

"맞아."

[근데 기석이 너는 쉬고 있을 것 같지 않아. 병동에서 환자 보던가 아니면 봉합 연습하고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설화 돗자리 펴도 되겠는걸?"

[당연하지. 적어도 너에 관한 거라면.]

최기석은 정설화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미국에 온 후로 최소 나흘에 한 번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통화 전에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막상 대화를 나누면 갖가지 화제들로 통화가 길어졌다.

[내가 한 달 안으로 그쪽에 갈게.]

"미네소타로 오겠다고?"

[응. 나 오프 착실하게 쌓아 두고 있어. 거기다 교수님께 잘 말씀드리면 나흘까지 붙일 수 있을걸?]

"그게 가능해?"

[안 되면 되게 해야지. 우리 둘이 만나려면.]

"마음은 정말 고마운데…… 그래도 걸린다."

[뭐가?]

"내가 미국으로 와서 우리가 못 만나게 됐잖아. 그런 상황에서 널 또 여기까지 오게 하는 것도 너무하다 싶어서."

[다음에는 기석이 네가 한국으로 오면 되지. 이런 일로 너무 신경 쓰지 마.]

"……."

정설화의 상냥한 말에 최기석은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못난 애인을 챙겨 주는 그녀가 고마울 따름이다.

[기석아? 왜 말이 없어?]

"아…… 아니 그냥 잠깐 눈에 뭐가 들어서. 괜찮으면 영상통화 할래?"

[지…… 지금? 갑자기?]

정설화가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왜? 지금은 힘들어?"

[바보. 그런 게 아니라 당직 끝나서 화장 다 지웠단 말이야. 하필이면 이런 때에…….]

"화장 안 해도 예쁜 거 다 아는데. 저번에 여행 가서 코 골면서 자는 것까지 다 봤고."

[그…… 그건 너무 피곤해서 그랬던 거야! 난 원래 코 안 골아.]

"맞아. 맞아. 확실히 그날은 피곤할 만했지."

최기석이 놀리자 정설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지금쯤 두 뺨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으리라.

"어?"

최기석은 놀라서 몸을 들썩거렸다.

갑자기 통화가 끊어졌다.

'너무 놀려서 토라졌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자. 됐어?]

휴대폰 화면에 정설화의 뾰로통한 표정이 잡혔다.

화장을 지워서 쑥스러워했지만, 그녀는 예쁘고 사랑스럽기만 했다.

"이렇게 예쁜데 대체 뭘 걱정한 거야?"

[몰라.]

"기숙사에 있네. 이제 씻고 자야지?"

[응. 너무 피곤해. 어젯밤 응급실에 환자가 엄청 많았거든. 그래서 네가 날 보러 한국에 온 줄 알았어.]

정설화의 농담에 최기석은 쿡쿡거리며 웃었다.

잠시 대화가 끊긴 사이, 그는 정설화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환자 모드를 사용한 결과 체력이 떨어진 것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역시 설화도 평범하지는 않아.'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 모드를 사용한 결과 그녀의 내과적 처치 레벨이 5단계다.

벌써 레지던트 3, 4년 차는 될 법한 경지에 오른 것이다.

"설화야. 우리 나중에 결혼하면 의원 차릴까?"

[겨…… 결혼? 의…… 의원?]

정설화가 부끄러워하며 몸을 꼬았다.

"1층에서는 설화가 내과 환자 보고, 2층에서 내가 외과 환자를 보면 좋겠다."

[나도 당연히 좋지. 그러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

"우리 돈 많이 벌어 놔야겠다. 그치?"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피곤할 텐데 빨리 자."

[응. 알았어. 자기도 오프니까 푹 쉬고.]

"사랑해."

[나도.]

정설화가 입으로 쪽 소리를 내고 통화를 끊었다.

최기석은 통화가 끝났음에도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10분 남짓 통화만으로 마음이 따뜻하고, 온몸이 충전된 기분이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최기석은 그길로 A 로젯 참관용 수술실에 자리 잡았다.

오늘은 수술 동영상 2개만 촬영하고 쉴 예정이다.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진행 중인 두 가지 임무를 확인했다.

첫 번째 임무는 트레이닝 룸과 관련됐다.

[장기 임무, '애송이 탈출' 임무를 획득하셨습니다. 임무를 완수할 경우 트레이닝 모드에 새로운 모드가 추가됩니다.]

[트레이닝 룸 수련 200회 달성(40/200)]

임무 달성을 위해 하루에 입장 가능한 최대 횟수인 세 번을 꽉꽉 채우고 있었다.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두 달 후에 새로운 모드를 얻으리라.

'문제는 이건데.'

최기석은 하이어 시스템에 관련된 임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신규 임무, '스미스의 인정을 받아라'를 획득하셨습니다.]

[임무완성 조건: 스미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달성해야 합니다. 재료아이템을 얻고 일부 스탯을 상승시켜야 합니다.]

[암흑 인장: 0/1]

[평판 4단계까지 상승: 현재 수치 5/5 complete!]

[조나단의 칭찬: 1/1 complete!]

[환자의 진실한 미소: 2/2]

[임무 완수 시 하이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으며 유니크 젬을 지급합니다.]

암흑 인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묘연했다.

인장 소유자를 찾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 간의 공통점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흐음……."

최기석은 휴대폰 메모 속에 적힌 이름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식스센스라도 발동해서 팁을 주었으면 좋으련만 불행하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지이이이잉.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그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뭐지?'

최기석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참관용 수술실에서 사람을 마주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남자는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외모는 평범했지만 길게 기른 금발이 확 눈에 띄었다.

"어? 혹시 기석 최?"

남자가 최기석을 알아보고 곁으로 다가왔다.

"날 아세요?"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얼마 전에 자살 시도한 환자를 구했잖아요. 뉴스까지 나왔는데 모를 수가 없죠."

남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N.

S(NeuroSurgery, 신경외과) 레온.

가운 주머니에 박힌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정식으로 인사하죠. 일반외과에서 수련 중이 기석 최입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 레온이에요."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레온도 이번 신규 레지던트에 합격했어요?"

"아니요. 저는 작년에 들어왔어요."

"아…… 그럼 전공이 정해지셨구나."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외과 전공의는 일반외과에서 1년 수련을 마치면, 곧바로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일할 수 있다.

흉부외과에 비하면 타 과 수련 기간은 짧은 편이다.

"근데 정말 의외네요."

"뭐가요?"

"신경외과 전공인 분이 왜 일반외과 수술 참관에 왔죠?"

"듣고 보니까 이상하게 생각할 만하네요."

레온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환자가 지인이라서요. 마침 오프라서 참관하러 왔어요."

레온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스태프들이 로젯에 들어섰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침묵 속에 모니터를 응시했다.

오늘의 수술은 췌장암 수술이다.

환자는 췌장암 2기이며 원위췌절제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원위췌절제술이란 암이 췌장의 몸통이나 꼬리 쪽에 발생했을 경우 펼치는 수술로 비장까지 함께 절제하는 수술이다.

[용의 눈을 사용하셨습니다. 동영상 모드를 통해 수술 동영상을 촬영합니다.]

최기석은 스킬을 사용하고 모니터에 집중했다.

췌장암의 악명이 높은 것처럼 췌장암 수술도 난이도가 악랄하다.

췌장은 십이지장, 담도, 담낭, 비장 등 각종 장기에 둘러싸여 있어서 암세포 절제가 무척 난해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절제를 성공적으로 끝내도 다른 장기를 문합하고 재건하는 과정 또한 까다롭다.

과연 집도의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최기석은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수술 촬영에 나섰다.

이어지는 췌장암 수술.

걱정과 달리 수술은 순조로웠다.

췌장 꼬리 부분과 비장 절제는 물론이요, 문합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원위췌절제술의 교과서라고 할까.

최기석은 촬영하는 내내 만족감을 느꼈다.

6시간의 대장정 끝에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어라? 왜 그러지?'

최기석은 동영상 촬영을 종료하던 중 미간을 찌푸렸다.

스태프들이 동요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상하다 싶어서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폈지만 역시 문제는 없었다.

환자의 상태는 비응급이며 경과는 보통이다.

수술 과정을 돌이켜 봐도 딱히 문제가 없거늘…….

"혹시나 해서 와 보길 잘했네요."

레온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아세요?"

"네. 거즈 한 장이 장기 속에 남아 있거든요."

레온의 말에 최기석은 얼음이 되었다.

6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쓴 처치재료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레온은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다는 듯한 투로 말하고 있었다.

"놀랐죠? 제가 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레온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로젯에 전화를 걸었다.

"수술 참관 중인 신경외과 수련의 레온이라고 합니다. 지금 처치재료 카운팅이 안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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