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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86화 (185/407)

변수 (1)

일반외과 휴게실.

최기석과 모건, 조세가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환자는 어때?"

"문제없어. 바이탈도 정상이고 특별한 후유증도 안 보여."

"그거 다행이군."

모건이 한숨 쉬며 말을 이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복강경 충수 절제술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아서 말이지."

"너나 조세나 다 알 텐데? 수술은 완벽했어."

최기석은 수술을 돌이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밀히 말하면 문제의 소지 자체가 없는 수술이다.

복강경을 사용했다는 것이 특이할 뿐, 전기 소작기로 충수간막과 충수를 떼어 낸 것이 한 일의 전부다.

수술도 30분 만에 끝났다.

"중간에 쇼크는 어떻게 설명할 거지?"

"그건 수술의 문제가 아니라 돌발 상황이었어. 아마도 마이크는 수술 중 각성을 경험했을 거야?"

"수술 중 각성?"

"수술 중 각성이요?"

모건과 조세가 동시에 외쳤다.

"아. 그래서 미스터 최가 아이한테 계속 말을 걸었구나.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는데."

"허언증이 심하군."

순수하게 그의 말을 믿는 조세와 달리 모건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난 개인적으로 미스터 최를 좋게 보고 있어. 자살하려는 환자를 구했을 때는 감명까지 받았지. 그런데 방금 한 말은 터무니없어서 믿을 수가 없군."

"모건. 네가 받아드릴 수 없는 사실이 꼭 거짓은 아니야."

최기석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수술 중 실수가 없었는데도 조세는 쇼크를 겪었어. 혹시 쇼크의 종류 다 알고 있나?"

"원한다면 읊어 주지. 심장성 쇼크와 출혈성 쇼크와 신경성 쇼크, 저체액성 쇼크……."

"그만. 여기서 질문 하나 하지. 그렇게 많은 쇼크 중에 마이크가 겪은 쇼크는 뭘까?"

최기석의 질문에 휴게실이 고요해졌다.

모건과 조세는 쉬이 말문을 열지 못했다.

"모르겠군. 떠오르는 게 없어."

"당연하지. 일반적인 케이스의 쇼크가 아니니까. 마이크는 심인성 쇼크를 겪었어."

"심인성 쇼크?"

"생각해 봐. 열거한 쇼크에 포함되지 않는 건 그거 하나뿐이야. 그리고 심인성 쇼크를 일으킬 만한 요소를 거슬러보면 수술 중 각성을 의심할 수 있지."

"아직 납득이 안 가는군."

"인정하기 싫은 거 아닌가?"

최기석과 모건의 시선이 팽팽하게 충돌했다.

"두 분 다 싸우지 마세요. 어쨌든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잖아요."

조세가 중재에 나섰다.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키가 작고 얼굴이 가무잡잡한 의사가 휴게실로 들어왔다.

닥터 라훌.

인도에서 온 의사로 최기석과 모건과 함께 일반외과 수련 중인 레지던트다.

"두 사람 왜 그래? 싸우는 중이었어?"

"별거 아니야."

분위기를 읽은 라훌이 최기석의 맞은편에 앉아 화제를 돌렸다.

"미스터 최. 자살 환자를 구했다면서? 환자에게 수갑을 채운 채 설득했다는 거 사실이야?"

"맞아."

"이야 대단하네. 강심장도 보통 강심장이 아니야."

라훌이 혼자서 박수를 쳤다.

"미스터 최가 동료라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해."

"아쉽다는 건 무슨 뜻이지?"

"이번 일로 미스터 최가 하이어 시스템을 이용할 선두주자가 됐으니까. 하이어 시스템 노리고 있는 거 맞지?"

라훌의 단도직입적인 말이 가슴을 찔렀다.

동기 입에서 하이어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도, 의표를 들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맞아. 난 조기 진급해서 신경외과로 넘어갈 거야."

"그럴 줄 알았어. 아무래도 치고 나가는 게 심상치 않더라."

"너도 하이어 시스템을 노리고 있어?"

최기석의 질문에 라훌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만치 않은데?'

라훌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외과적 처치는 다른 동기와 비슷한 수준인데 정치력이 6.5로 그와 동일했다.

"괜히 껴들어서 분위기만 흐린 것 같네. 난 갈 테니까 잘들 쉬라고."

라훌이 먼저 자리를 떴다.

잠시 후 세 사람도 같이 휴게실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스테이션에서 소란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만나게 해달라고 그 모건이란 의사!"

"소란 피우지 말고 빨리 나가세요. 자꾸 이러면 보안 요원들 부릅니다."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된다고!"

세 사람은 스테이션을 지나면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과 정통으로 마주쳤다.

"너! 잘 만났다!"

백인 남성이 다짜고짜 모건에게 달려들었다.

"너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그런데 그렇게 뻔뻔하게 생활할 수 있어!"

"릭.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사람 죽여 놓고 최선을 다했다고 하면 끝이냐!"

릭이 광분하여 모건의 멱살을 잡고 흔들자 최기석은 완력으로 릭과 모건을 떼어 놓았다.

사정은 모르지만 더 이상 둘이 붙어 있는 건 위험하다.

"뻑킹!"

릭이 얼굴을 구기며 병동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리고 살짝 몸을 움츠린 채 육탄 돌격할 태세를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보안 요원들이 내렸다.

"이 사람이 병동에서 소란 피우는 사람입니까?"

"네. 빨리 데려가 주세요."

간호사의 말에 보안요원들이 릭을 사방에서 감쌌다.

릭이 몸을 뒤틀며 저항했지만 체구 좋은 요원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야! 기억해. 조만간 너희들 전부 피눈물을 흘릴 테니까."

릭의 저주와 함께 소동이 끝났다.

"모건. 괜찮아?"

최기석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모건을 응시했다. 모건은 릭을 만난 후부터 돌처럼 굳어 있었다.

"혼자 있고 싶어."

모건이 먼저 의국으로 들어갔고 최기석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와 릭 사이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채 병동의 환자들을 살폈다. 위장관외과와 대장관외과, 간담췌외과를 차례로 돌던 중 한 병실 앞에 멈췄다.

드르르륵.

"안녕하세요."

"아, 선생님이시군요. 어제는 정말 폐를 많이 끼쳤습니다."

누워있던 환자가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 다가왔다.

"몸은 좀 어떠세요?"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오후까지만 해도 정신과에서 팔다리가 묶여 있었거든요."

환자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이름은 칼, 최기석이 구했던 자살기도 환자다.

"너무 자책 마세요. 큰 충격을 받으면 누구나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요."

"맞습니다. 그때는 정말 미쳐 버리는 줄 알았죠."

칼이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그는 췌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수술에 들어갔다.

그런데 개복한 결과 위와 간에도 암이 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통스런 표정으로 소식을 전하던 주치의의 얼굴, 본인이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지금도 그때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구해 주신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환자분이 용기를 내도록 조금 거들었을 뿐입니다. 주치의와 치료 방향은 정하셨나요?"

"네. 호스피스 치료 받기로 했습니다. 이제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죠."

칼의 대답에 최기석은 침묵을 지켰다.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까지 닥친 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메이죠 클리닉에서 계속 치료받으시는 겁니까?"

"아니요. 마셜 카운티 쪽에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외곽에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어요."

"그렇군요."

최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칼에게 스킬을 사용했다.

휘이이이잉.

그의 몸에서 뻗어나간 초록빛이 칼을 휘감았다.

[페인킬러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환자의 육체적 통증을 70퍼센트 감소시킵니다.]

"전화번호 주시고 가끔 연락 주세요. 제가 힘이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말씀만으로 감사합니다. 하여간 정말 감사드려요."

두 사람이 악수를 나누었다.

띠링!

[숨겨진 임무 생사고락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랜덤 스킬북을 제공합니다.]

최기석은 병실을 나와 상태창을 열었다.

랜덤 스킬북은 소모성 아이템이다.

이것을 사용하면 무작위로 한 가지 스킬을 레벨업 할 수 있었다. 최근 스킬업이 답보 상태였건만 때마침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

'가만 보자. 히포크라테스의 눈은 만렙이고 살려야 한다나 용의 눈이 올랐으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생각 중에 스킬북을 사용했다.

위이이잉.

스킬북에서 환한 빛이 뿜어졌다.

다시 한 번 귓가를 때리는 알림.

띠링!

[폭군의 강림의 레벨이 2단계로 상승했습니다. 부속 스킬 정언명령이 추가됩니다.]

'정언명령?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최기석은 서둘러 스킬 설명을 확인했다.

* * *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침대에 누워서 팔을 허우적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몽유병을 앓는 줄 알았겠지만 엄연히 수련 중이었다.

그로부터 한참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이윽고 입가에 서서히 걸리는 미소, 다시 오프가 찾아왔다.

'오늘은 동영상 몇 개만 저장하고 편히 쉬자.'

샤워를 마치고 여자 기숙사로 향했다.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잠시 기다리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웬일이에요?"

엠마가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다 죽어 가던 어제와 달리 얼굴에 혈색이 돌았고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엠마가 걱정돼서 왔죠. 다행히 어제보다 나아 보이네요."

"미스터 최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엠마가 꽃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서 있지 말고 들어와요. 룸메이트는 오전 근무라서 나갔어요."

"그럼 실례할게요."

엠마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고, 최기석은 근처에 있던 의자를 챙겨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포도당이 얼마 안 남았네요. 이제 빼죠."

찌지지직.

주사침을 고정하던 플라스터를 제거하고 주사침 위에 알콜솜을 얹었다. 그 상태에서 주사침을 뺀 후 알콜솜으로 지그시 눌러 주었다.

"아직 아침 안 먹었죠?"

"네."

"나도 못 먹었는데. 카페테리아에서 같이 먹을 음식 좀 챙겨 올게요."

"어제부터 계속 폐만 끼치는 것 같은데……."

"글쎄요. 이건 일종의 보험이죠. 제가 아프면 엠마도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겠죠?"

최기석의 농담에 엠마가 쿡쿡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석은 식당에서 음식을 챙겨와 그녀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이후 병원을 나와서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햇살은 밝았다. 바람이 조금 쌀쌀했지만 충분히 견딜만했다.

'좋네.'

병원 근처 공원을 걷는 것만으로 온몸이 충전되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열흘간 크고 작은 사건을 여럿 겪었다.

첫 당직에 메리와 충돌했으며, 데이비드와 신경전을 벌였으며, 사기 모드인 트레이닝 모드를 얻었으며, 자살시도 환자를 구했고 복강경 충수 절제술까지 해냈다.

다른 의사들이 몇 개월에 걸쳐서 할 경험을 압축해서 통과한 기분이랄까.

시련은 계속되겠지만 능히 이겨 낼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 세계 최고의 흉부외과의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 맞다!'

최기석은 까맣게 잊었던 일을 기억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네, 선배. 오랜만에 통화네요.]

"네가 계속 전화를 안 받았잖아."

[억울해요. 시차 때문에 그런 건데.]

툴툴 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최기석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은 오프라서 괜찮지?"

[당연하죠. 근데 선배 어제 여기서 완전 대박 사건 있었던 거 아세요?]

이영호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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