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것 (6)
아침과 달리 마이크의 상태가 응급이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일단 채혈하고 복부 CT 촬영하고 와요."
"알겠습니다."
최기석의 지시에 조세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최기석은 수술이 가능한 써전들을 알아봤다.
결과는 모두 실패.
세미나 참석으로 레지던트 숫자가 줄었으며 그나마 있는 인원도 오프거나 응급수술 중이다.
그래서 최후의 보루인 에단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스터 최. 무슨 일이야?]
"선생님. 마이크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열도 조금씩 오르고 있고요."
[흐흠…… 마이크 내일 수술 아니야? 그때까지 못 버티겠어?]
"지금 상태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필 다들 세미나 간 사이에…….]
에단이 혀를 찼다.
"혹시 세미나 끝나고 언제쯤 복귀하세요?"
[아무리 빨라도 2시간은 더 걸릴 것 같은데. 아 참. 엠마 오늘 오프라고 했지? 엠마에게 부탁해 봐. 엠마는 충수 절제술 집도 경험이 있으니까.]
"엠마는 몸살에 걸려서 누워 있습니다. 집도할 여력이 안 돼요."
[휴우……. 피곤하네.]
에단의 한숨이 귓가에 울렸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최기석은 의국으로 들어가 모니터를 응시했다.
"지금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백혈구 수치가 증가했고 충수는 농양 제거한 이후 가장 크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수술하지 않으면 천공이 생길 겁니다."
[잠깐만, 과장님 바꿔 줄게.]
"알겠습니다."
[미스터 최, 위장관외과 과장이다.]
"네, 과장님."
[수술 가능한 써전들은 다 알아봤어?]
"한 명도 없습니다."
최기석은 병원에 남은 써전들과 그들의 상태를 일일이 보고했다. 그의 말이 끝났음에도 위장관외과 과장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조차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과장님. 마이크 수술 제가 집도하겠습니다."
[미스터 최, 자네가?]
과장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혹시 충수 절제술 경험이 있나?]
"한 번뿐이지만 집도한 적 있습니다."
[마이크는 일반적인 케이스와 조금 달라. 소아인데다가 이미 배액관으로 농양을 제거한 적도 있지. 접근이 까다로울 거야. 내가 지금 갈 테니까 바이탈만 잘 잡고 있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조세와 마이크가 병실로 돌아왔다.
최기석은 다시 병실로 향했다.
"배가 너무 아파요. 더 못 참겠어요."
마이크가 몸을 뒤척거리며 울부짖었다.
찡그린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선생님. 우리 마이크가 왜 이런 거죠?"
때마침 마이크의 어머니 줄리아가 일을 마치고 병실에 들이닥쳤다.
"우리 아이 빨리 치료해 주세요. 이런 대접 받으려고 메이죠 클리닉에 온 줄 알아요?"
그녀의 앙칼진 태도에 조세가 어쩔 줄 몰랐다. 그러더니 도와달라는 듯 병실 밖의 최기석을 응시했다.
"교수님. 방금 대화 들으셨습니까?"
[하아……. 들었다.]
"교수님을 기다렸다가는 수술 지연으로 꼼짝없이 소송 당할 판입니다."
[…….]
"마이크의 집도, 제가 하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세요."
[지금은 그 방법밖에 없겠군. 혹시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전화해. 설령 수술 중이라고 해도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행운을 빌지(God bless you).]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수술에 필요한 건 행운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이런 응급상황을 대비해 그동안 수없이 실력을 갈고 닦지 않았던가.
드르르륵.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갔다.
"마이크의 주치의 최기석입니다. 죄송합니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오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닥터 최! 우리 마이크가 너무 아파해요. 빨리 조치를 취해 주세요."
"줄리아. 마이크는 당장 수술이 필요합니다."
최기석이 구체적인 설명에 나서자 줄리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충수 절제술은 보통 30분에서 1시간 안에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니까요."
"그래도 만약은 모르는 거잖아요."
"원래 한 번 하면 끝이 없는 게 걱정입니다. 지금은 메이죠의 써전들을 믿어 주세요."
최기석은 줄리아를 달래며 조세를 응시했다.
눈치 빠른 조세가 그 뜻을 읽고 수술 동의서를 챙겨 왔다.
이윽고 수술 설명과 보호자 서명까지 끝났다.
최기석은 조세와 침상을 끌며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 가능한 써전을 구하셨나 봐요? 없을 줄 알았는데."
"없긴 왜 없어요. 사실 처음부터 있었는데."
최기석이 검지로 본인을 가리키자 조세가 놀란 토끼눈을 했다.
"미스터 최가 집도의예요?"
"네. 다른 사람은 없어요. 적어도 지금은."
최기석은 말하면서 마이크를 내려다보았다. 신음을 흘리며 뒤척이는 모습이 가슴을 찔렀다.
"마이크. 선생님, 믿지?"
"……네."
"조금만 더 씩씩하게 참아. 선생님이 금방 안 아프게 해 줄 테니까."
그의 말에 마이크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위이이잉.
마침내 도착한 수술실.
조세는 수술실 간호사와 대화하며 로젯을 확보했고 최기석은 휴식 중인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모건이 스크럽을 설 수 있었다.
"미스터 최의 일과는 정말 버라이어티 해."
수술실에 도착한 모건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뜻인데?"
"오후에는 자살 환자를 구하더니 저녁에는 충수 절제술 집도를 하게 됐잖아. 어쩐지 자네 주변에서 박진감 넘치는 일이 끊이지 않는 것 같군."
"아니라고는 못하겠네."
"충수 절제술 집도한 적 있어?"
모건이 화제를 돌렸다.
"있으니까 걱정 마."
"한국 써전들은 첫 집도 시기가 상당히 늦는 걸로 알고 있는데. 별일이군."
"내 의사 생활은 원래 별일의 연속이었어. 빨리 가자."
박. 박. 박. 박.
최기석은 포비돈 용액이 묻은 솔로 손과 팔을 문질렀다.
그러면서 충수 절제술의 과정을 머릿속으로 훑었다.
수술 자체는 지극히 간단하지만 혹시나 모를 실수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고아원의 김정혁도 충수 절제술의 오집도로 후유증을 얻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최기석은 오늘 처음으로 충수 절제술을 집도한다.
지금까지는 주변 사람을 안심시키기 위해 하얀 거짓말을 해 왔다.
'CABG(관상동맥 우회술)를 해 봤으니까 충수절제술도 한 거나 마찬가지지.'
최기석은 각오를 다지며 동료들과 로젯으로 들어갔다.
마취의가 마취를 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고통을 호소하던 마이크는 어느새 곤히 잠들었다.
"지금부터 복강경을 이용한 충수 절제술을 시작한다."
최기석의 외침이 로젯에 퍼져나갔다.
"복강경 수술? 미스터 최, 미쳤어?"
"아니. 지극히 정상이야."
"그런데 복강경 수술을 하겠다고? 우리 수준에서는 개복술을 하는 게 옳아."
모건이 목소리를 높였다.
복강경 수술은 수술 시야가 좁을뿐더러 손에 익지 않은 복강경 전용 기구로 집도해야 한다. 전공조차 정해지지 않은 레지던트가 할 수술이 아니다.
"환자를 생각하면 복강경이 옳아. 이렇게 어린아이의 복부를 째고 싶어?"
"그거야 연차가 쌓인 써전들의 이야기고."
"난 할 수 있어."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충돌했다.
"……집도의가 고집 부리니 어쩔 수 없군. 하지만 이 수술은 백 퍼센트 미스터 최의 책임이라는 걸 알아 둬."
"책임감 없이 집도하는 써전은 없어, 조세."
최기석의 시선에 조세가 환자의 복부를 소독하고 방포를 씌웠다.
"메스."
최기석은 소독간호사에게 메스를 받아 환자의 배꼽아래, 치골상부, 우하복부에 작은 절개창을 냈다. 이후 절개 부위에 투관침을 꽂아 넣었다.
투관침은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하는데 이 안으로 복강경 수술 전용 도구를 삽입하여 수술을 진행한다.
"카메라 포트, 포셉, 보비."
필요한 도구를 차례대로 투관침 안으로 넣었다.
이윽고 정면에 있는 모니터에 복강 내 모습이 떠올랐다.
최기석은 조심스럽게 카메라 포트를 움직여 부풀어 오른 충수를 찾아냈다.
역시 수술에 나서길 잘했다.
위장관외과 과장을 기다렸다면 충수가 터져서 복막으로 번졌으리라.
"충수간막부터 떼어 내자. 모건, 포셉으로 간막을 잡아 줘."
"알았어."
모건이 모니터를 보며 복강경 포셉으로 충수간막을 붙잡았다. 그동안 최기석은 전기 소작기를 작동시키고 충수간막을 지졌다.
치이이익.
타는 소리와 함께 간막이 서서히 떨어져 나갔다.
두 사람은 호흡을 맞춰 충수돌기 절제술까지 진행했다.
모건이 충수의 끝부분을 잡아 주면 최기석이 전기 소작기로 그곳을 자르는 작업이었다.
처치는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끝났다.
"뭐해? 꺼내지 않고?"
"그냥 잡고 꺼내면 되는 거야?"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건은 절제한 충수를 포셉으로 잡고서 투관침 바깥으로 꺼냈다.
텅!
잘 익은 충수가 곡반에 떨어졌다.
"수술 전에는 자신 없어 하더니 잘하잖아."
"해 보니까 할 만한데?"
최기석과 모건이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투관침을 제거하고 마무리 봉합까지 하면서 수술은 무사히 끝나는 듯싶었다.
그런데 소독간호사가 소모품 카운팅을 하는 동안 마취의가 비보를 알려왔다.
"환자 바이탈 떨어집니다. 호흡수 8회, 혈압 80mmHg에 40mmHg. 맥박은 50."
"왜지? 수술은 무사히 끝났는데?"
"미스터 최, 이제 어떻게 하죠?"
모건과 조세가 최기석을 응시했다.
최기석은 가만히 있으라는 손짓을 한 후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체력: 3/10
주 증상: 호흡곤란 / 빈맥
아픈 부위: 전신
진단명: 심인성 쇼크
현재 상태: 응급
경과: 불량
과거력: 충수돌기 절제술
가족력: 없음
주의 요소: 수술 중 각성 상태입니다!
'미친!'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수술 중 각성.
이것은 전신마취를 했음에도 환자의 의식이 깨어 외부의 자극을 느끼는 것이다. 상당히 드문 케이스로 그조차 처음 겪는 중이다.
[격려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환자의 면역력, 재생력, 자신감이 대폭 상승합니다.]
[페인킬러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환자의 육체적 통증을 70퍼센트 감소시킵니다.]
"모포랑 다리 받칠 것 좀 챙겨 줘."
최기석은 번개처럼 스킬을 쏟아붓고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조세가 수술실로 돌아와 마이크에게 모포를 덮어주고 아이스박스로 다리를 올려주었다.
"모건은 산소마스크 좀 씌워 줄래?"
"오케이."
모건이 처치하는 동안 최기석은 마이크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수술 중 각성 상태라면 분명 지금 하는 말을 듣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마이크.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마취가 풀리면 금방 움직일 수 있을 거야."
"……."
"그리고 수술을 용감히 이겨 냈으니까 선생님이 선물을 줄게. 마이크가 좋아하는 장난감 사 줄까?"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
최기석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며 조세가 나서는 것을 막았다.
지금은 마이크를 안정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볼지라도 말이다.
초조하게 흘러가는 시간, 마취의의 말이 로젯에 울렸다.
"선생님! 환자 바이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알았어요."
최기석은 그제야 한숨 쉬며 마이크에게 달린 산소마스크를 떼어 냈다.
불행 중 다행이다.
수술이 다 끝났을 때 각성 상태가 찾아와서.
수술 도중에 각성이 일어났다면 제아무리 그라도 제대로 된 대처를 못했으리라.
위이이이잉.
로젯과 수술실 문이 연달아 열렸다.
"닥터 최! 우리 마이크는요?"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오늘은 SICU(외과 중환자실)에서 지켜보고 내일 일반 병실로 옳기겠습니다."
"감사해요. 만약에 마이크가 잘못됐으면……."
최기석은 울먹거리는 그녀를 다독거렸다. 그리고 직접 침상을 끌어 중환자실로 향했다.
"마이크, 잘 참았어."
그는 부드럽게 마이크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착각인지 몰라도 마이크가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