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83화 (182/407)

필요한 것 (4)

'가만 보자.'

상태창을 열어 임무를 확인했다.

[신규 임무, '스미스의 인정을 받아라'를 획득하셨습니다.]

[임무 완성 조건: 스미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달성해야 합니다. 재료아이템을 얻고 일부 스탯을 상승시켜야 합니다.]

[암흑 인장: 0/1]

[평판 4단계까지 상승: 현재 수치 5/5 complete!]

[조나단의 칭찬: 1/1 complete!]

[환자의 진실한 미소: 1/2]

[임무 완수 시 하이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으며, 유니크 젬을 지급합니다.]

남은 재료 아이템은 두 개.

암흑 인장과 환자의 진실한 미소다.

'문제는 암흑 인장인데…….'

고민하며 복도를 걷는데 콜폰이 떨었다.

"일반외과 기석 최입니다."

[저 메리예요.]

"오랜만입니다."

최기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목소리에 문득 람보가 떠올랐다.

메리는 소화기 내과 레지던트로 과거, 장 폐색증 환자를 두고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의국으로 전화했더니 아무도 안 받네요?]

메리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최기석에게 통화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었다.

"동기가 스크럽에 들어갔거든요."

[응급실에서 소아 환자 진료 보는 중인데 그쪽 협진이 필요해요.]

"바로 내려갈게요."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응급실로 향했다.

메리는 침상에서 울고 있는 소아 환자를 달래고 있었다.

"이 아이예요?"

"네. 장 중첩증이 의심돼서요. 복부 엑스레이랑 초음파 촬영은 끝났고, 초음파 결과 기다리는 중이에요."

"장 중첩증이라……."

최기석은 턱을 쓸어내리며 소아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장 중첩증은 장의 한 부분이 다른 장의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현상이다. 소장의 끝부분이 막창자에 말려 들어가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끄어어어억."

대화를 주고받은 사이 아이가 구역질을 했다.

살짝 벌린 입 사이로 흐르는 맑은 색의 구토물.

최기석은 드레싱 카트에서 거즈를 꺼내 아이의 입 주변과 시트를 닦아 냈다.

"수액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요? 장 팽만과 구토를 막으려면 비위관으로 감압을 시켜야겠어요."

"준비할게요."

메리가 자리를 비웠고, 최기석은 아이의 복부 여러 부위를 지그시 눌렀다.

다른 곳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오른쪽 상복부를 압박하자 아이가 몸서리를 쳤다.

최기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종괴가 있는 부위에 청진기를 갖다 댔다.

꿀렁. 꿀렁.

정상적인 아이보다 장음이 많이 감소되었다.

'그렇다면…….'

최종 진단을 위해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진단명은 메리와 그가 예상한 대로 장 중첩증, 다만 상태는 비응급이고 경과는 불량이다.

수술이 필요한 케이스는 아니라는 뜻이다.

"비위관 챙겨 왔어요."

"고마워요."

최기석은 비위관 세트를 받아 순식간에 삽입을 끝냈다. 성인보다 소아의 삽입이 훨씬 더 어렵지만, 그에게는 오십보백보의 차이일 뿐이다.

트레이닝 룸에서 고난도 집도를 수련하는 그다.

단순 처치가 발목을 잡을 순 없었다.

"초음파 검사 결과 나왔어요?"

"방금 나왔네요."

최기석과 메리가 나란히 서서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쪽에 도넛 모양의 종괴가 있어요. 소장하고 막창자가 꼬인 게 맞아요."

그가 검지로 한 부위를 가리키자 메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정복술로 충분할 것 같은데. 어때요?"

"네. 굳이 수술은 필요 없을 것 같네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저번하고 다르네요? 순순히 제 말을 들어주는 건가요?"

"그러면 안 돼요?"

메리가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장 중첩증의 90퍼센트는 정복술로 치료가 가능해요. 미스터 최를 부른 건 만약을 대비한 거예요."

"물론 그렇겠죠. 그건 그렇고 우리 사이에 아직 정산 안 된 게 있는데."

"정산?"

메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최기석은 기관총 든 시늉을 했다.

그 의미를 알아챈 메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 언제든지 하…… 하면 되잖아요."

"정말 할 거죠?"

"……상황 봐서요."

메리의 목소리가 확 줄어들었다.

"그 날, 꼭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럼 전 갑니다."

최기석은 인사하고 병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스테이션을 지나 복도를 걷던 중 에단과 마주쳤다.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으로 여전히 표정이 어두웠다.

"미스터 최, 바빠?"

"아니요. 당장 할 일은 없습니다."

"그럼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자."

두 사람이 휴게실에 자리 잡았다.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맞죠?"

"눈치 한번 빠르네. 맞아. 상의하고 싶은 게 있어."

에단이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잖아. 그래서 고민 끝에 떠올린 게 있어."

꿀꺽.

에단의 침통한 말투에 최기석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을 극복하지 못하고 혹시 의사 생활을 접는 건 아닐까.

"그게 말이야……. 나, 이번 주 금요일하고 토요일에 오프를 붙여서 쓸까 하는데 어때?"

"……."

"미스터 최? 왜 말이 없어?"

"아. 미안해요."

최기석은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생뚱맞은 답변에 머리가 텅 비었다. 의사를 관두겠다고 했을 때 설득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건만, 모든 것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다시 말해 줄까?"

"아니에요. 다 들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푹 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혹시 헤드 치프가 날 한심한 놈으로 보지 않을까? 정신 못 차리고 쉴 궁리나 한다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마침 개인 사정으로 이번 주는 출근 안 하신다고 들었고요."

"그래? 다행이다. 빨리 과장님한테 말씀드려야지."

에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프 쓰는 걸로 눈치 볼 정도면 대체 자신감이 얼마나 떨어진 거야?'

최기석은 속으로 안타까움을 삼켰다.

"에단. 저 궁금한 게 있는데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말해."

"여기에 있는 사람들, 잘 아세요?"

최기석이 수첩을 펼쳐서 에단에게 내밀었고, 에단은 수첩을 유심히 살폈다.

"이 중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어. 나머지는 인사만 하는 사이인데?"

"그럼 친하게 지내는 분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 수 있어요?"

"다른 사람 신상 캐는 게 취미?"

"그건 아니고 중요하게 할 일이 있어서요."

수첩에 적힌 사람들은 전부 암흑 인장을 소유했다. 그들의 정보를 파악하고 공통점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정말 이상한 짓 하려는 건 아니지?"

"제가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이번만 부탁드릴게요."

"알았어."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설명은 신변잡기에 가까웠다.

해당 써전의 나이와 가족관계, 취미생활, 의국 내의 평판 등등.

특별히 도움 되는 내용은 없었다.

"근데 가만 보니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네?"

"뭐가요?"

"미스터 최가 수첩에 적은 사람들, 이 사람들 공교롭게도 전부 다 실력이 좋아. 칼리는 위장관외과에서 인정받는 펠로우고, 롤랑은 간담췌외과의 에이스 레지던트고……."

에단이 간단한 설명을 끝내고 수첩을 돌려주었다.

"고마워요, 에단. 덕분에 뭔가 알 것 같기도 해요."

"알 것 같기도 하다라…… 미스터 최답지 않은 애매한 대답이네?"

"워낙 상황이 애매해서요."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고 엠마 못 봤어?"

"어제 당직이었어요. 오늘하고 내일은 오프고요."

"그래서 하루 종일 안 보였구나. 뭐. 그거는 나중에 전해 줘야겠네."

최기석은 에단과 대화를 마치고 의국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엠마는 어제 그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피곤한 그녀 대신 논문 정리를 해 주겠다고 말했는데 말이다.

본인의 일은 본인이 처리한다.

엠마의 그런 외골수 같은 성격 또한 자신과 무척 닮았다.

의국에 돌아온 최기석은 환자 오더를 입력하고 밀렸던 잡무를 처리했다.

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을 확인하자 무려 두 시간이 지났다.

시간이 증발해 버린 기분이다.

똑. 똑. 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들어오세요."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처음 보는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N.

P(neuropsychiatry) 클래드.

최기석은 가슴에 새겨진 이니셜을 확인하고 클래드에게 악수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제이스의 주치의 기석 최입니다."

"신경정신과 클래드입니다."

클래드는 키가 크고 몸이 깡말랐다.

얼굴은 역삼각형 모양이며 찢어진 눈매가 날카로운 분위기를 뿜어냈다. 가운을 입지 않았다면 의사가 아니라 신경증 환자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진료는 보셨나요?"

"방금 막 끝내고 오는 길입니다."

클래드가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야기를 해 보니 망가진 건 간뿐만이 아니더군요. 딸이 죽은 후 심한 정서장애를 앓고 있어요. 그걸 달래기 위해 폭음을 하고 있었고요."

"……."

"치료를 일찍 받았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

클래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심리치료와 행동요법을 병행할 예정입니다. 몇 개월 동안 꾸준히 진료받아야 해요."

"혹시 약물치료도 들어가나요? 간이식 수술이 예정된 환자라서……."

"약물치료도 필요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수술해야 한다면 조금 더 미뤄도 상관없어요."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네. 환자분 잘 지켜봐 주세요. 혹시라도 수술 전에 심리적인 동요가 생기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기석은 클래드와 인사를 나눈 후 제이스의 차트를 모니터에 띄웠다.

복부 CT상에서 복수와 섬유화된 간 조직, 배꼽 주변의 늘어난 혈관이 관찰되었다. 조직 검사와 내시경 검사상에도 줄줄이 비보만 들렸다.

간이식 외에는 전혀 답이 없는 상황이다.

최기석은 의국을 벗어나 제이스의 병실을 찾았다.

제이스는 아내 줄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줄리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제이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안녕하세요. 검사 결과가 나와서 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간이식이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것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요."

"간이식 수술은 어떻게 하는 거죠? 여러 종류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줄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간이식 수술은 크게 뇌사자의 간을 이식받는 뇌사자 간이식과 살아 있는 사람의 간을 이식받는 생체 간이식이 있습니다. 제이스의 경우 후자가 필요합니다."

"그럼 제 간을 줄 수도 있나요?"

"자세한 검사를 해 봐야겠지만……."

최기석은 뜸을 들이며 줄리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줄리는 B형 간염 보균자 아닌가요?"

"어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흠흠. 일전에 아드님에게 따로 들었습니다."

최기석이 대충 둘러댔지만, 줄리는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B형 간염 보균자긴 하지만 전 멀쩡해요. 간 때문에 고생한 적도 없고요."

"간 기능이 정상인 보균자는 많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간염을 앓고 후유증을 가지는 사람도 있죠. 여기서 중요한 건 줄리 간에 있는 B형 바이러스가 사라질 확률이 무척 적다는 겁니다."

"저는 이식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죠?"

"네.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럼 윌리엄밖에 없는데……."

드르르륵.

줄리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윌리엄이 병실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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