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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79화 (178/407)

경쟁 (7)

신규 임무, 스미스의 인정을 받아라.

이것의 필요조건 중 하나가 조나단의 칭찬이다.

'무난하게 끝나겠어.'

최기석은 재료 획득을 낙관했다.

오늘 아침 트레이닝 룸에 들어가 대장암 수술에 제1보조와 제2보조를 전부 서 봤다. 그뿐만 아니라 촬영해 놓은 수술 동영상까지 유심히 살폈다.

가슴이 간질간질한 것이 물아일체가 발동될 징조가 보인다.

"과장님도 너무하시네."

조세가 먼저 로젯으로 들어가는 조나단을 응시했다.

"엄밀히 따지면 미스터 최가 지각한 건 아니잖아요. 정시에 도착했는데 지각한 사람처럼 몰고 가네."

"조세는 내 편이네요."

"당연하죠."

조세와 최기석이 미소를 주고받았다.

지이이잉.

스크럽이 끝나고 모든 스태프가 제 위치에 자리 잡았다.

마취의가 전신마취를 하는 사이 최기석은 환자에게 감시 장치를 연결하고 바이탈을 살폈다.

다행히 이상 무.

남은 건 수술을 무사히 끝내는 일뿐이다.

"마취 끝났습니다."

마취의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대장암 3기에 대한 횡행결장 수술을 시작한다."

조나단의 고갯짓에 최기석이 환자의 복부를 소독하고 방포를 씌었다.

"메스."

날카로운 칼날이 환자의 피부에 닿았다.

스으으윽.

근막과 근층, 복막이 순서대로 갈라지자 내부 장기가 한눈에 보였다.

스태프들은 한동안 말없이 장기를 살폈다.

검사 결과에는 나오지 않는 원격전이 부위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특별한 전이는 없는 듯하군."

조나단이 중얼거리며 에단을 쳐다보았지만 에단은 넋 나간 모습으로 침묵을 지켰다.

"에단?"

"아, 네."

"방금 내 말 못 들었나?"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하느라……."

에단의 변명에 조나단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제 수술이 익숙해졌다고 만만하게 보는 건가? 수술 중에 딴생각을 하다니……. 수술실에 환자를 살리겠다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생각이라도 있나 보지?"

"죄송합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클립."

조나단이 에단에게 시선을 거두고 클립을 손에 쥐었다.

딸칵. 딸칵. 딸칵.

조나단과 에단이 횡행결자 주변의 혈관들을 결찰해 나갔다.

절제 전 출혈을 막기 위한 작업이다.

"메스."

조나단이 메스를 손에 쥐고 암세포가 퍼진 장간막의 일부를 잘라 냈다.

장간막은 장기의 위치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며 이곳으로 혈관과 림프절, 신경들이 지나간다.

텅! 텅! 텅!

절제된 부위들이 사정없이 곡반으로 떨어졌다.

'대단해.'

최기석은 간단한 보조를 하며 조나단을 응시했다.

그는 유능한 써전이다.

비유하자면 노련하고 솜씨 좋은 선장과 같다. 수술이라는 항해에 목표와 과정을 정확히 이해했으며 모든 처치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끝냈다.

대장관외과 과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1등 항해사의 컨디션이 나쁘다는 점이랄까.

디버프에 걸린 에단은 조나단을 제대로 받쳐 주지 못했다.

우선 보조가 한 박자씩 느렸다.

조나단이 정교한 처치를 할 때 손을 떨어 작업 난이도를 높이기도 했다.

'뭐지?'

조나단은 림프절 절제를 마치고 에단을 바라보았다.

일반외과 수련의 중 최고의 기대주가 에단이다. 그런데 지금 수술실에서 보여 주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나사가 한 개도 아니고 세 개쯤은 풀린 느낌이다.

그럼에도 수술이 정상적으로 진행됐던 이유.

그것은 최기석이 알게 모르게 조나단의 일을 거들었던 덕분이다.

치이이익.

"아……."

에단의 단발마가 퍼졌다.

전기 소작기로 출혈을 통제하던 중 멀쩡한 혈관을 건드렸다.

에단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최기석은 겸자로 혈관 윗부분을 묶고 석션기로 피를 빨아들였다.

단순하지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처치다.

딸칵!

이윽고 겸자를 풀자 출혈이 깔끔하게 멎었다.

"에단, 수술을 도와주려고 온 건가 아니면 발목을 잡으러 온 건가?"

"죄…… 죄송합니다."

조나단의 지적에 에단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어물쩍거리는 꼴은 더 이상 못 본다. 미스터 최, 제1보조 할 수 있겠나?"

"네. 할 수 있습니다."

"둘이 자리 바꿔."

조나단의 명령으로 두 사람의 자리가 바뀌었다.

'에단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최기석은 제1보조 자리에 서서 수술 도구를 확인했다.

에단이 디버프로 고생하는 것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그의 굼뜬 보조가 조나단의 발목을 잡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부터 횡행결장 절제술을 시작한다."

"네."

최기석은 포셉으로 절제 부위를 고정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의식이 살짝 몽롱해지면서 아침에 봤던 대장암 수술 동영상 속 제1보조의 처치가 뇌리를 스쳤다.

공교롭게도 당시의 제1보조가 에단이다.

최기석은 에단과 물아일체를 이룬 상태로 보조에 나섰다.

그야말로 완벽한 보조.

절제 부위를 흔들림 없이 잡아 주었으며 출혈 컨트롤도 정확한 타이밍에 이뤄졌다.

수술의 하이라이트인 결장 봉합 시에는 조나단과 한 몸인 것처럼 합을 맞췄다.

그가 제1보조로 나서면서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규 아니었나?'

조나단은 최기석의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제2보조로서도 믿음직하지 못한 게 신규 레지던트다.

그런데 최기석은 몇 년 이상 수련한 레지던트처럼 노련했다.

특히 결장 봉합을 할 때 보여 준 공격적인 보조는 에단을 연상시켰다.

"과장님. 봉합 부위 체크하겠습니다."

"어? 어, 그래."

최기석이 결장으로 식염수를 흘려보내지만 누수는 없었다.

봉합이 완벽했다는 뜻이다.

"이제 정리하지."

조나단이 수술 부위를 닫으면서 대장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띠링!

[숨겨진 임무, 메이죠 클리닉 최초의 제1보조를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0 P.

P를 지급합니다.]

[환자바라기(+10) 효과로 체력을 상당 부분 회복합니다.]

[영혼활성 스택(60/700)이 증가했습니다.]

"다들 고생했다."

조나단이 스태프들을 격려하고 먼저 로젯을 빠져나갔다.

'생각보다 깐깐하네.'

최기석은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활약에도 불구하고 목표달성에 실패했다.

재료 아이템 조나단의 칭찬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수술이 끝난 후 최기석은 에단과 휴게실을 찾았다.

"받으세요."

"고마워."

에단은 최기석이 내민 캔 커피 뚜껑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갈증은 없었지만 속이 탔다.

며칠 동안 바보 같은 짓만 하는 스스로가 너무 미웠다.

"에단, 요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최악이야. 메이죠에 들어온 지 4년이 지났는데 요즘이 제일 힘들어."

"헤드 치프와 수술한 이후부터죠?"

"정확히 말하면 지독한 갈굼을 당한 후부터지."

"이제 훌훌 떨쳐 버리고 에단의 진짜 실력을 보여 줘요. 예전 같았으면 오늘 수술 같은 건 일도 아니잖아요."

최기석은 에단을 다독이며 격려를 사용했다.

[격려 스킬 사용해 실패하셨습니다. 디버프에 걸린 대상에게 격려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저번과 똑같은 알림이 들렸다.

계속 효과가 없는 걸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이 격려보다 상위 스킬인 모양이다.

'후우…….'

최기석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에단은 티칭 레지던트이자 고마운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다.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편할 리 없었다.

"에단. 힘들겠지만 앞으로 딱 닷새만 버텨 봐요. 중간에 오프가 있으니까 정확히 따지면 나흘이네요."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질까. 계속 실수할 것 같은데?"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제가 에단을 믿고 의지하는 만큼 에단도 저를 믿어 봐요. 네?"

"알았어."

에단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어.'

최기석은 에단을 지켜보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보이지 않는 손의 지속시간이 나흘 남았다. 그 시간만 무사히 넘긴다면 에단도 본래 모습을 되찾으리라.

"조나단 과장님은 어떤 분이에요?"

최기석이 화제를 돌렸다.

"과장님이라……. 별명이 로봇인 분이지. 감정 표현을 거의 안 하셔. 웃는 모습을 본 것도 가물가물한데?"

"칭찬에도 인색한 편인가요?"

"칭찬? 잔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나도 지금까지 칭찬 한번 못 들어봤어."

에단의 대답에 최기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전 에단과 물아일체를 이룬 채 제1보조에 나섰다.

동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약했음에도 칭찬은 듣지 못했다.

그럼 대체 얼마나 더 잘해야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암초에 부딪친 기분이다.

"그만 일어나자."

"네."

두 사람은 그 길로 병동을 찾았다.

에단은 볼 일이 있다며 의국으로 향했고 최기석은 병실을 돌며 환자를 살폈다.

드르르륵.

마지막 병실에 들어가서 제이스 옆에 섰다.

제이스는 두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나 안 잡니다."

"깨어 계셨군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메이죠 클리닉이요."

"날짜는요, 8월 3일? 4일?"

제이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몸 상태는 어떠세요?"

"돌이라도 얹어놓은 것처럼 머리가 무거워요. 속도 조금 메스껍고요. 그런데 선생님이 제 주치의입니까?"

"네. 맞습니다."

"그럼 이것부터 우선 풀어 주세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요."

제이스가 팔을 묶은 압박대를 쳐다봤다.

"그 전에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하세요?"

"아니요. 전혀. 그 간호사 말로는 링거 줄을 뽑고 난리를 쳤다는군요. 뭐. 그래서 묶어 뒀겠지만."

"알겠습니다. 압박대는 제거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제이스의 속박을 풀고 그의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간경변이 후기까지 진행된 상태며 간이식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설명하는 내내 제이스는 침묵을 지켰다.

질문과 대꾸조차 없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거릴 따름이다.

"간이식은 필요 없으니까 그냥 퇴원하면 안 됩니까? 그냥 죽어도 별문제 없을 것 같은데."

그의 말에 최기석과 주변에 있던 환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반면 말을 뱉은 당사자는 평온하기만 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가족분들을 생각하셔야죠."

"가족들을 생각하면 퇴원하는 게 맞아요. 주정뱅이를 살리는데 돈을 쓸 바에는 차라리 그 돈을 가족에게 주는 게 더 이득이죠."

제이스가 딱 잘라 말했다.

냉기가 폴폴 흐르는 대꾸에 최기석은 할 말을 잃었다.

착각인지 몰라도 제이스는 스스로를 망가트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심하게 과음했던 지난 세월과 지금의 극단적인 판단까지.

대체 무엇이 그를 사지로 몰아가는 걸까.

"그건 환자 본인만의 판단입니다. 오후에 가족분들 면회가 있으니 이야기를 나눠 보세요."

"뭐. 그럽시다. 그건 그렇고 내 목걸이 못 봤어요? 안에 사진을 넣어둔 목걸이인데 간호사들은 다 모른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해서 제가 챙겼습니다."

최기석은 가운 주머니에 있던 목걸이를 제이스에게 건넸다. 그러자 제이스가 보물을 건네받듯이 목걸이를 손에 쥐고 사진을 열어 봤다.

그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갔다.

"따님이시죠?"

"그래요. 둘째 딸이에요. 웃는 얼굴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었죠. 그런데 죽었어요."

"……."

"나 때문에 죽었어요."

제이스가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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