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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74화 (173/407)

경쟁 (2)

"그게 뭔데?"

"코리안 누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뭐야. 괜히 걱정했잖아."

최기석의 대답에 제니퍼가 얼굴을 폈다.

"미스터 최가 왔으니 인수인계 시작한다."

모건이 모니터를 보면 설명을 시작했다.

그가 어제 진료한 환자는 총 다섯 명이었다.

그중 네 명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충수돌기염 진단을 받아 입원 중이다.

"충수돌기염 환자가 있었구나. 그것도 소아네?"

"덕분에 애 좀 먹었지."

모건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소아의 경우 충수돌기염과 장간막 림프절염, 장중첩증을 감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모건은 이를 현명하게 넘겼다.

"마이크는 염증 때문에 농양이 생겼어. 바로 수술하면 복막염의 위험이 있어서 배액관으로 고름을 빼는 중이야. 항생제 투여 후 며칠 있다가 수술할 거다."

"입원환자는 마이크밖에 없지? 그럼 내가 받을게."

최기석의 말에 모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죠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받은 환자.

그 의미는 남달랐다.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마이크의 차트를 물끄러미 살폈다.

"첫 당직을 선 소감은 어때?"

"딱히 감흥은 없어. 메이죠하고 인턴 생활했던 병원의 차이도 모르겠고. 스크럽을 서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은데?"

"스크럽이라…… 그것도 그러네."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 퇴근해."

"내일 봐. 모건."

모건이 두 사람의 인사를 받으며 당직실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미스터 최 케이스 발표 있지? 준비는 잘했어?"

"기대해도 좋아."

최기석이 엄지를 지켜들자 제니퍼가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가 시간에 맞춰 컨퍼런스 룸으로 향했다.

촤라라락.

최기석은 자리에 앉아서 자료를 재빠르게 훑었다. 이에 흐릿했던 내용들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러졌다. 논문이 제일 쉬웠어요 칭호의 효과다.

'이만하면 충분해.'

자신감을 가지고 자료를 덮었다.

"좋은 아침."

회의를 기다리는데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고개를 돌리니 엠마가 씽긋 웃고 있었다.

"아, 엠마. 좋은 아침이에요."

"미스터 최. 얼굴이 엄청 부었는데 괜찮아요?"

엠마마저 부은 얼굴을 보고 염려했다.

최기석은 피식 웃으며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했다.

시간이 흘러 오전 회의가 찾아왔다.

입원환자 브리핑, 수술 스케줄 정리 등이 끝나고 케이스 발표 시간이 됐다.

케이스 발표의 첫 주자는 알랑, 대장관외과의 펠로우다.

'메이죠는 빡세네.'

최기석은 단상에 선 알랑을 보며 혀를 찼다.

의진대병원에서는 인턴과 레지던트만 케이스 발표를 했다. 아직 실력이 모자라니 더 수련하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런데 메이죠는 전문의까지 케이스 발표를 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하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지금부터 대장암 최신치료에 대한 지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알랑이 입을 열었다

이어진 8분의 발표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벽했다.

발표가 끝나고 박수세례가 터졌으며 추가적인 질문조차 없었다.

"다음은 미스터 최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컨퍼런스를 진행하는 위장관외과 치프가 최기석을 호명했다.

최기석은 주변 동료들의 파이팅을 받으며 단상에 섰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메이죠의 석학들의 시선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준비는 충분했고 듣는 이에게 유익한 주제를 선택했으니까.

"뭐해? 시작 안 하고."

최기석이 잠자코 있자 스미스가 나섰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다리를 꼬고 주먹에 턱을 괸 자세로 말이다.

"그럼 지금부터 복강경을 이용한 생체 간이식 수술에 대한 발표하겠습니다."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복강경으로 간이식 수술을 한다고?"

주제를 이야기한 것만으로 몇몇 의사들이 술렁거렸다.

그만큼 최기석의 주제는 파격적이다.

"지금까지 생체 간이식 수술에서는 기증자와 공여자에게 50센티미터 이상의 큰 절제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복강경을 이용한 새로운 수술법이 개발되어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최기석은 차근차근 설명에 나섰다.

심플한 파워포인트에 본인의 해석을 곁들이는 방식이다.

'좋아. 먹힌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피부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청중들이 본인에게 빠져들고 있음을.

특히 스미스는 발표하는 내내 단 한 번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질문 있는 분은 손을 들어주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엠마가 손을 들었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지금 발표한 복강경 간이식 수술이 실제로 가능한지 의문스럽습니다."

"……."

"간암 수술까지는 복강경으로 시도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간이식 수술을 복강경으로 한다는 케이스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검증되지 않은 단순한 이론 아닙니까?"

"맞아. 말도 안 되지."

"어디서 이상한 논문을 주워 가지고."

엠마의 지적에 몇몇 의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강경 간암 수술의 경우 암 조직만 잘 떼어 내면 된다.

하지만 복강경 간이식술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간 기증자의 멀쩡한 간과 기능이 떨어진 환자의 간을 아무런 손상 없이 떼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저도 복강경 간이식 수술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술 시야도 너무 좁고 출혈이 일어났을 때 지혈할 방법도 마땅치 않습니다."

이전에 발표했던 알랑이 말을 계속했다.

최기석을 향한 그의 시선에는 경멸의 빛이 감돌았다.

"미스터 최. 케이스 발표는 장난이 아닙니다. 그저 신기해 보이는 논문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아니에요. 앞으로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알랑의 일침에 몇몇 의사들이 박수를 쳤다.

하지만 최기석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더불어 그처럼 무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스미스와 간담췌외과 의사들이다.

"두 분의 질문 잘 들었습니다.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복강경 간이식 수술을 실제로 성공시킨 나라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10건의 케이스를 전부 성공했고 수술 후 경과도 무척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이 대체 어디입니까?"

알랑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

"알랑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생체 간이식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습니다. 특히 서울자산병원은 전 세계에서 생체 간이식, 2대1 간이식, 혈액형 부적합 간이식 수술 등의 최다 집도건수를 자랑하고 있죠."

최기석은 복강경 간이식 수술이 가능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혈을 막는 초음파 지혈기의 개발.

비좁은 수술 시야를 극복한 한국 써전들의 솜씨.

이 두 가지 바로 수술 성공의 키포인트다.

"……."

"……."

설명이 끝나고 긴 침묵이 감돌았다.

최기석의 발표가 헛소리가 아님을 모두가 조금씩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알랑 선생님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술에 대한 지극히 좁은 편견은 의료발전과 환자 건강에 장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점 주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최기석은 알랑이 했던 말을 받아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다른 과 닥터들은 잘 모르나 봐요? 한국이 간암 수술의 메카라는 걸."

"그러게요. 우리도 얼마 전에 연수 갔다 왔는데."

간담췌외과 의사 몇몇이 대화를 나눴다.

다른 수술은 몰라도 간암 수술만큼은 메이죠조차 한국에 한 수 접고 들어간다.

그동안 간암 수술에서 눈부신 업적을 보여 왔기에.

"흠흠. 그럼 다음은 간담췌외과 시드니의 케이스 발표가 있겠습니다."

외장관외과 치프가 다시 회의를 이끌었다.

"이야. 미스터 최, 완전 멋있다. 다들 한 방 먹은 얼굴인데?"

최기석이 돌아오자 제니퍼가 씽긋 미소를 지었다.

최기석도 미소로 화답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반대편 테이블을 응시하는데 문득 알랑과 눈이 마주쳤다.

알랑의 두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오전 회의에 이어 회진까지 끝났다.

최기석은 시간을 확인하고 한 병실로 들어갔다.

첫 환자인 마이크는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이게 외국 애들인가?'

실소가 터졌다.

9살이라고 해서 파릇파릇한 아이일 줄 알았건만 마이크는 한국 중학생 같은 포스를 풍겼다.

또래에 비해 큰 체구가 그를 더욱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마이크, 안녕. 너를 담당하게 된 의사 선생님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근데 선생님 혹시 일본 사람이에요?"

뜬금없는 질문에 최기석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아니. 한국에서 왔는데?"

"아. 그렇구나."

마이크가 다소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왜 선생님이 일본 사람이면 달라질 게 있어?"

"딱히 그런 건 아니고 일본만화를 좋아해서요."

"무슨 만화를 좋아하는데?"

"나루트요."

"아. 그 닌자 만화?"

최기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화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나루트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들었다. 노력하는 자는 금수저를 이길 수 없고, 금수저는 노력하는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는 내용이었던가.

"선생님도 나루트 아세요?"

"보지는 않고 얘기만 들었어. 재미있다고 하더라."

"네. 완전 재미있어요! 선생님도 꼭 보세요."

마이크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겉은 늙어 보여도 속은 역시 아이다.

"몸은 좀 어때?"

"여기가 조금 욱씬거리는데 참을 만해요."

"선생님이 잠깐 볼게."

최기석이 배액관을 살폈다.

배액관의 상태는 양호했으며 배액량은 많지 않았다. 오후에 제거하면 될 듯싶었다.

"어때요? 선생님?"

"아주 좋아. 걱정할 필요 없어."

"근데 저 나중에 수술받아야 하지 않나요?"

마이크가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건강해지려면 당연히 받아야지. 그런데 선생님 생각에 마이크라면 잘 이겨 낼 수 있을 거야. 나루트에 나오는 친구들처럼 말이야."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푹 쉬고 불편하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렴."

최기석은 마이크에게 격려를 걸어 주고 병실을 나왔다.

터벅. 터벅.

시간을 확인한 후 발걸음이 빨라졌다.

서둘러 수술실로 향하자 A 로젯 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교수님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

"조금 늦는데요."

엠마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오늘 케이스 발표 멋졌어요. 사실 나도 알랑처럼 미스터 최가 이상한 논문을 들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 자리에서 사과할게요."

"그게 뭐 사과할 일인가요."

최기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짤막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폴이 로젯에 도착했다.

폴은 중년 흑인으로 위장관외과 교수직을 맡고 있었다.

"둘 다 왔군.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브리핑하지."

폴이 말을 이었다.

오늘 수술할 환자는 진행성 위암을 앓고 있었다.

병기는 TNM 분류로 T3 N2 M0로 위암 3기 A타입이다.

수술은 위 상부의 일부를 남기고 나머지를 부위를 잘라 내는 위아전 절제술과 위와 공장을 이어 주는 빌로스 2형 수술을 펼치기로 되어 있었다.

집도의는 폴.

제1보조 엠마.

제2보조 최기석.

제3보조는 조세가 맡기로 되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급한 처치가 생겨……."

조세가 환자가 누운 베드를 끌고 세 사람 앞에 섰다.

"변명은 됐으니까 빨리 로젯으로 들어와."

폴이 말을 끊고 스크럽을 시작했고 다른 세 사람도 스크럽에 나섰다.

"첫 스크럽인데 긴장 안 돼요?"

엠마가 솔을 문지르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긴장이요?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하여간 농담도 잘 해. 스크럽도 기대할게요."

"네."

뚜두두둑.

최기석은 고개를 꺾으며 로젯으로 들어갔다.

자. 그럼 이번에도 실력발휘를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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