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71화 (170/407)

메이죠 클리닉 (5)

전공: 위장관외과, 대장관외과, 간담췌외과 펠로우

체력: 4/10

진단력: 7/10

외과적 처치: 9/10

내과적 처치: 5/10

평판: 7

정치력: 8

카리스마: 8

'미쳤네.'

최기석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미스는 일반외과 세부분과의 펠로우 자격증을 전부 획득했다. 그뿐만 아니라 외과적 수치를 비롯한 전반적인 스탯이 압도적이다.

거기에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재미있는 스킬까지 가졌다.

과연 이름값을 한다고 해야 할까.

"헤드 치프,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스태프들이 일제히 스미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스미스는 손을 들어 인사에 화답하고 천천히 걸었다. 그러던 중 통로 가까운 쪽에 앉은 에단의 옆에 섰다.

"이 세 사람이 위장관외과로 들어온 신규 레지던트인가?"

"네. 맞습니다."

"흐음……."

스미스가 무표정한 얼굴로 세 사람을 훑었다.

컨퍼런스 룸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이제 모든 스태프들의 시선이 스미스와 신규 레지던트들에게 쏠렸다.

"그쪽이 미스터 최?"

"네. 기석 최입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이번 인터뷰에서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지?"

"운이 좋았습니다."

"동양인다운 태도로군. 하지만 앞으로 그런 화법은 자제할 필요가 있어. 자네가 운으로 수석을 차지했다고 하면 자네보다 낮은 점수로 들어온 사람들 기분은 어떨 것 같나?"

스미스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정치력이 올라간 후 이렇게 한 방 먹은 건 처음이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한국에서 흉부외과 송 과장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도 사실인가?"

"네."

"앞으로 기대하지."

스미스가 무심하게 한마디 하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최기석은 그제야 편히 숨을 내쉬었다.

잠깐 대화를 나누었음에 스미스가 주는 위압감에 온몸이 짓눌렸다.

만만치 않은 사람.

과연 그는 환자를 위하는 타입일까, 본인의 사욕을 챙기는 타입일까.

두고 보면 알게 되리라.

잠시 후 일반외과 스태프들이 컨퍼런스 룸에 모두 모였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서 신규 레지던트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위장관외과에 최기석, 제니퍼, 모건.

간담췌외과에 인도에서 온 라훌, 프랑스에서 온 줄리앙.

대장관외과에 피터와 잭슨.

총 일곱 명이 일반외과에서 수련하게 되었다.

짝. 짝. 짝. 짝.

"메이죠 클리닉에 온 걸 환영해요."

"잘해 봅시다."

박수갈채와 환영인사가 쏟아졌다.

소개가 끝난 후 최기석은 동료들과 자리로 돌아왔다.

스태프들에게 정식 인사를 하자 비로소 메이죠 식구로 거듭난 기분이 들었다.

그 누구보다 빨리 적응을 마치고 하이어 시스템으로 조기진급하리라.

각오와 함께 온몸이 뜨거워졌다.

이윽고 입원환자 보고와 케이스 발표, 협진환자 토론이 이어졌다. 각 과가 모두 모여 회의시간이 길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진행이 빨랐다.

회의에 이어서 진행된 오전 회진.

각 병실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토마스의 병실을 찾았다.

"토마스. 몸은 좀 어때요?"

"명치끝이 조금 아픈지만 다른 건 괜찮아요."

"다행이군요. 이틀 뒤에 수술 있으니까 몸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스미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토마스가 갑자기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스태프 행렬 끝에 있는 최기석을 발견한 것이다.

"닥터 최도 왔어요?"

토마스의 인사에 최기석은 슬쩍 손을 들어 아는 체했다.

"닥터 최를 아십니까?"

"어제 당직 섰던 선생님이잖아요. 늙은이의 주책맞은 소리를 어찌나 잘 들어주던지. 덕분에 스트레스도 풀고 잠도 잘 잤습니다."

"그렇군요."

스미스가 최기석과 토마스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렇게 마지막 문진이 끝나고 일반외과 스태프들이 복도에 정렬했다.

"에단이 미스터 최의 티칭 레지던트인가?"

"그렇습니다."

"미스터 최에게 스타 포인트 1점을 주도록. 항목은 환자 관리."

스미스가 먼저 걷고 몇몇 스태프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삼삼오오 흩어졌다.

오전 회의와 회진이 끝나면서 정규업무 시간이 찾아왔다.

"에단. 스타 포인트가 뭐죠?"

"일종의 상점이라고 보면 돼. 4개월 후 레지던트 중간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스타 포인트를 많이 받을수록 하이어 시스템을 이용할 확률이 커져."

"상점이 있으면 혹시 벌점도 있나요?"

최기석은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물었다.

"눈치가 빠른 걸? 당연히 벌점도 있어. 벌점이 많으면 반대로 수련기간이 늘어나."

"미스터 최. 부럽다. 내가 당직 선다고 할 걸 그랬나?"

잠자코 있던 제니퍼가 대화에 껴들었다.

"제니퍼. 이건 당직을 서고 안 서고의 문제가 아니야. 환자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지."

"그…… 그거야 그렇지만……."

모건의 지적에 제니퍼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들 고생하세요."

최기석은 작별인사를 한 뒤 수술실을 찾았다. 오전 첫 번째 타임에 간암 수술이 있었다.

C 로젯 참관실로 들어가자 그 혼자뿐이다.

송명진의 말에 따르면 수술 참관은 자유롭지만 실제로 참관하는 써전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수술이 가능한 써전들은 굳이 참관할 이유가 없고 경험 낮은 써전들은 수술 참관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다.

'나야 이득이지.'

최기석은 미소 지으며 느긋하게 수술을 기다렸다.

잠시 후 환자와 스태프들이 로젯으로 들어왔다.

[용의 눈을 사용합니다. 동영상 모드로 촬영을 시작합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겠어.'

그의 시선이 모니터에 고정되었다.

* * *

위이이잉.

참관실 문이 열리고 최기석이 나왔다.

그는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현재 시각 오후 2시.

아침부터 참관실에 죽치고 앉아서 동영상 촬영만 했다.

덕분에 위암 수술, 대장암 수술, 간암 수술 영상을 건졌다.

흉부외과 파트 이외의 수술을 참관하고 저장한 것은 무척 오랜만의 일이라서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슬슬 짐 정리를 해 볼까?'

본관을 나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송명진이 전화를 걸었다.

"네, 교수님."

[일어난 지 제법 됐나 봐요? 목소리가 쌩쌩한데요?]

"아니요. 계속 깨어 있었습니다."

[어제 당직 아니었어요?]

"맞습니다. 그런데 수술 참관이 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버텼습니다."

[근무 첫날부터 대단하군요.]

송명진이 호탕하게 웃었다.

[보아하니 점심도 안 먹었을 것 같은데 식당으로 와요. 나도 수술하느라 점심 못 먹었으니까.]

"네. 바로 가겠습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식당으로 향했다.

이후 송명진과 만나 창가 쪽에 자리 잡았다.

"첫 당직을 선 소감이 어때요?"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소화기내과 당직의랑 마찰이 있어서 조금 짜증났지만 그 이외에는 무난히 잘 넘겼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 미리 매뉴얼을 받아서 공부한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송명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힘들겠지만 당분간 흉부외과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접어 둬요. '일반외과가 내 전공이다' 하고 일해야 배울 것도 많고 실력도 빨리 늘 테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오늘 참관한 수술이 뭔지, 수술을 하면서 느낀 건 뭔지 들어 볼까요?"

최기석은 송명진의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했다.

메이죠 클리닉 써전들의 수술 방식, 환자들 관리 방법 등등.

이야기를 듣는 송명진의 얼굴에 서서히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짧은 시간에 잘 봤군요. 눈썰미가 좋은데요?"

"운이 좋았…… 아니, 집중해서 본 덕분입니다."

최기석은 스미스의 지적을 떠올리며 말을 고쳤다.

"그동안 논문을 안 보냈는데 내일부터 다시 논문을 보낼 거예요. 흉부외과가 아니라 일반외과 쪽 논문을 보내줄 테니까 예전처럼 감상문 보내요."

"안 그래도 그 말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선물."

송명진이 바닥에 내려놓았던 봉투를 내밀었다.

최기석은 안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스승이 준비한 선물은 수술 도구가 들어 있는 쌈지와 봉합사다.

봉합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물품을 챙겨준 것이다.

"벌써부터 손이 근질근질하죠?"

"역시 제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계셨군요."

"하하하. 그 정도도 못하면 선생 노릇하겠어요? 대신 봉합할 물건은 최 선생이 따로 구해야 할 겁니다. 뭐, 인형 같은 게 제일 무난하겠지만."

"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슬슬 일어납시다."

최기석은 송명진과 대화를 끝내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이후 차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낸 후 별관 기숙사를 찾았다.

레지던트 기숙사는 별관 10층부터 13층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덜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기숙사는 10평 남짓했으며 2층 침대와 옷장, 책상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불안한데?"

기숙사를 훑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먼저 온 룸메이트가 요란하게 짐을 풀었다.

그는 이미 침대 1층을 차지했으며 방 벽에 최기석이 알지 못하는 여배우들의 포스터를 잔뜩 붙였다.

아직 얼굴은 확인 못했지만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없을 듯 했다.

짐 정리를 후딱 해치운 후 책상에 앉았다.

비록 오프지만 할 일이 많았다.

촬영한 동영상을 다시 돌려 봐야 하고 내일 있을 케이스 발표도 준비해야 한다.

최기석은 정신없이 일을 시작했다.

몽롱한 느낌이 들어 문득 시계를 보니 오후 6시다.

"이런!"

최기석은 잊었던 일을 떠올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선배, 전화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어요.]

이영호가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미안. 여기 일이 워낙 바빠서. 잘 지내지?"

[네. 별일 없어요.]

"내일까지 봉합 연습하는 동영상 보내 줘. 그럼 내가 메일로 코멘트할게."

미국에 오기 전 이영호와 약속했다.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수련을 지켜봐주기로 말이다.

[논문은요?]

"논문도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보내 줄게."

[믿어도 되는 거죠?]

"당연하지. 또 약속을 어기면 그때는 내가 너를 선배라고 부를게. 어때?"

[그 정도면 나쁘지 않네요.]

이영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만만치 않구나.'

최기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송명진이 신경 써 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자신이 아랫사람을 챙겨 주는 입장이 되니 그게 쉽지 않았다. 스승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흉부외과 분위기는 어때?"

[엄청 흉흉해요. 회의 때는 숨도 못 쉴 것 같아요.]

"왜?"

[얼마 전 장 교수님이 부교수가 되셨어요. 그래서 권 교수님이 완전 뿔났거든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의진대를 나가겠다는 말씀까지 하셨어요.]

이영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장 교수님은 황기정 선수 세이버 수술 이후로 승승장구했고 권 교수님은 연달아 노우드 수술에 실패했어요. 그게 큰 영항을 끼친 것 같아요.]

"……결국 그렇게 됐구나."

최기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우선 세이버 수술과 노우드 수술의 난이도 차이가 컸다. 둘째로 권일수는 장혁필을 감당하기에 너무 우직했다.

더군다나 노우드 팀 스태프들마저 권일수와 성격이 비슷하지 않은가.

참모 역할을 해 줄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선배는 메이죠 생활 어때요?]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아. 짜증나는 인간 몇몇이 있는데 조만간 손봐 줘야지."

[누군지 몰라도 불쌍하네요. 선배한테 찍히다니…….]

"그럼 당연하지."

최기석이 피식 웃었다.

잠심 후 이영호와 대화를 끝내고 바깥으로 나왔다.

차를 타고 봉합 연습에 필요한 인형을 사러 갈 계획이다.

"안녕. 반가워요."

복도 맞은편에서 한 여성이 인사를 건넸다.

여성은 아름다웠다.

헐리우드 여배우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걸을 때마다 긴 금발이 치렁거렸으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꽃과 같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우리 구면이죠?"

여성이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네? 우리가요?"

최기석은 놀라서 반문했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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