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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64화 (163/407)

입성 (4)

기관지와 폐동맥, 폐정맥이 차례대로 봉합되었다.

난이도가 높은 양측 폐이식술이지만 야사다는 피부 봉합하듯 집도를 이어 갔다.

'대단해.'

최기석은 야사다의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식 수술이 어려운 이유.

그것은 수술 시야가 좁고 이식 중 신경을 건드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사다는 수술 부위를 전부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과거 최기석은 의진대에서 송명진의 폐이식술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송명진보다 야사다가 훨씬 깔끔한 실력을 뽐내고 있다.

"교수님. 야사다 선생님은 폐식도 쪽만 진료 보나요?"

"그래요. 폐식도와 로봇 수술이 전공이죠."

"어쩐지."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송명진은 심장외과와 폐식도외과, 펠로우 자격증 모두 가진 반면 야사다는 폐식도외과 자격증만 가졌다. 그래서 수술의 차이가 난 것이리라.

문답이 한 차례 오가고 두 사람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수술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가 불길한 전자음을 흘렸다.

"야사다. 혈압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승압제 투여하고 윌리엄은 좌상 폐동맥에 출혈점이 있는지 살펴."

"알겠습니다."

윌리엄은 폐동맥을 살피던 중 미간을 찌푸렸다.

폐동맥과 기관이 연결되는 부위에 출혈이 있었다.

봉합의 문제는 아니었고 제1보조가 실수로 상처를 낸 듯한 모습이다.

치이이이익.

전기 소작기로 출혈 부위를 잡자 바이탈이 안정되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윌리엄은 야사다를 힐끔 응시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야사다는 폐를 직접 살피지 않고 출혈 부위를 족집게처럼 찾아냈다. 그 말인즉 모든 수술 과정과 스태프의 움직임까지 꿰차고 있다는 뜻이다.

실로 무서운 능력.

'칫. 동양인 두 명이 흉부외과를 꽉 잡고 있을 건 뭐람.'

윌리엄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윽고 폐정맥 문합을 끝으로 이식수술이 끝났다.

드르르르륵.

인공심폐기가 이탈되자 모두의 시선이 환자 감시 장치로 향했다.

잠들었던 심장이 박동하면서 혈압과 맥박이 서서히 올랐다.

산소포화도 역시 정상을 가리켰다.

9시간 이상 소요되는 심장 - 폐 동시 이식 수술이 무려 5시간 만에 끝났다.

최기석은 동영상 촬영을 종료했음에도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슴에서 무언가가 샘솟고 있었다.

"그럼 슬슬 일어날까요?"

"……."

"최 선생?"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

최기석은 송명진과 수술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윽고 승용차가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렸다.

"오늘 여러모로 배운 게 많았죠?"

"네. 메이죠 병원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고 동기 부여도 확실하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교수님과 야사다 선생님을 합쳐 놓은 듯한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하하하. 포부가 아주 큰데요?"

송명진이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최 선생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나는 믿습니다."

"그 믿음, 꼭 보답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자신 있게 대답하고 창밖을 응시했다. 저물어 가는 하늘이 석양빛으로 물들어 갔다.

미네소타와 한국의 시차는 15시간.

의진대 스태프들은 한창 일과를 보내고 있으리라.

"다 왔어요. 저기입니다."

차가 신호에 멈췄을 때 송명진이 검지로 한 연립 주택을 가리켰다.

건물의 외관은 생각보다 깔끔하고 현대적이다.

외국 드라마에 나오는 연립 주택은 대부분 허름해 보였는데 송명진이 사는 곳은 그렇지 않았다.

"실망했죠?"

"아닙니다. 교수님. 충분히 멋있는데요."

"집에 있을 일이 거의 없는데 좋은 곳에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적당한 가격에 병원과 가까운 곳을 택했죠."

송명진이 주차장에 차를 댔고 최기석은 내려서 캐리어를 꺼냈다.

'어?'

최기석은 주택 입구를 바라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시아계 모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니 쪽은 서른 초반 정도, 딸아이 쪽은 유치원생 정도로 보였다.

중국 사람? 일본 사람? 그것도 아니면 한국 사람일까?

"안녕하세요."

최기석이 혼자 머리 굴리는 사이 송명진이 모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모녀가 익숙한 한국어로 인사를 받았다.

"장 보러 나가십니까?"

"네. 냉장고가 텅텅 비어서요.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안녕하세요. 최기석이라고 합니다. 의진대 병원 의사인데 교수님을 따라 미네소타로 왔습니다."

"반가워요. 최 선생님. 저는 김혜진이고 우리 딸은 진혜연이에요."

"반갑습니다. 혜연이도 안녕."

"안녕하세요."

전혜빈의 배꼽 인사에 최기석은 아빠 미소를 지었다.

"하루 종일 영어만 쓰다가 이렇게 한국어를 쓰니까 기분이 색다르네요."

"그렇죠? 혜진 씨 가족을 만난 건 행운이에요."

송명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손님까지 오셨으니 오늘 저녁은 전이라도 부쳐야겠네요."

"주시면 사양 않겠습니다."

김혜진과 대화를 나누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301호 문이 열리고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방은 15평 정도 됐으며 방이 2칸이고 다소 좁은 거실이 있었다.

"흠흠…… 며칠 못 들어왔더니 엉망이네."

송명진이 집을 훑으며 헛기침을 연발했다.

방 상태가 말이 아니다.

빨래거리가 지천으로 널렸으며 싱크대에는 설거지를 기다리는 식기들이 줄을 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텁텁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저쪽 방에서 짐 정리하고 있어요. 나는 청소를 할 테니까."

"네."

최기석은 방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기 시작했다.

옷가지를 정리해서 장롱에 넣는 것으로 할 일이 거의 끝났다.

생필품은 미네소타에서 살 거라서 따로 챙기지 않았다.

"좋네."

최기석은 마지막으로 소형 액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액자 속에는 정설화와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커플링으로 시선을 옮겼다.

정설화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졌지만 억누르고 방을 나섰다.

"교수님. 도와드릴 거 없나요?"

"여유 있으면 설거지 좀 해 줄래요?"

"네."

잠시 후 청소와 설거지가 끝났다.

거실 중앙에 작은 상이 놓였고 그 위로 맥주와 안주들이 자리 잡았다.

스승과 두 번째 가지는 술자리.

다만 이번에는 물이 아니라 진짜 술을 마시게 되었다.

최기석은 송명진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미네소타에서의 첫째 날이 지나고 있었다.

* * *

한국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났다.

최기석의 일과는 단순했다.

일과 시간에는 메이죠 클리닉 매뉴얼을 읽다가 끼니를 챙겨 먹었다.

저녁에는 지원서를 고치고 인터뷰 준비를 했다.

답답한 마음이 들 때는 틈틈이 산책에 나섰다.

단순하지만 지옥 같은 생활이었다.

마음은 이미 메이죠 클리닉에 있는데 몸은 꼼짝없이 집에 묶였기에.

미네소타에 온 지 나흘째로 접어들던 날.

최기석은 어김없이 메이죠 클리닉의 외과 매뉴얼을 보고 있었다.

'확실히…….'

손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그동안 매뉴얼을 보면서 느낀 게 있다.

메이죠와 의진대는 환자에게 접근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의진대가 해당 질환에 집중한다면 메이죠는 다른 과나 다른 병과의 연계성을 꼼꼼히 따졌다.

예를 들어 환자에게 관상동맥 질환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메이죠는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진료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서 신경정신과나 위장관외과에까지 협진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병인을 다방면으로 살피는 셈이다.

메이죠가 환자들에게 찬사받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이리라.

탁!

최기석은 매뉴얼을 덮고 노트북을 켰다.

키보드를 치는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오늘은 USMLE와 토플 점수가 나오는 날이다.

점수가 좋을 거라는 건 알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딸칵. 딸칵.

마우스를 클릭하고 감았던 눈을 떴다.

"그렇지!"

점수를 확인하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USMLE 시험에서 만점을 맞았다.

기세를 몰아 토플 점수를 확인하니 115점이 나왔다.

이 역시 만점에 가까운 수치, 인터뷰 준비만 잘한다면 메이죠 행은 확정이다.

최기석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거실에서 찬물을 마시려 했다.

그런데 생수가 없었다.

심지어 냉장고가 텅 비어 대신 마실 것도 없었다.

최기석은 큰마음 먹고 바깥으로 나가 송명진의 차에 올랐다. 송명진이 차를 두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을 찍고 한 시간을 달리자 마트가 보였다.

'이것도 일이네.'

차에서 내려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에는 걸어서 5분 거리 안에 편의점을 비롯한 다양한 가게들이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차를 몰고 나가야 한다.

드르르륵.

카트를 밀며 생필품을 구입했다.

마트가 워낙 넓고 물건이 많아서 내부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마트를 돌던 중 메디컬 섹션에 도착했다.

각종 약에서부터 치과용 충전제까지, 약국을 넘어서 작은 병원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은 의료보험이 없기에 살인적인 진료비를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웬만한 치료는 본인이 직접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곳을 보니 그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짜증 나네. 옐로우 멍키가 왜 마트에 있는 거야?"

"그러게. 빨리 꺼졌으면 좋겠다."

등 뒤에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백인 남성 두 명이 그를 보며 쑥덕거리고 있었다.

'하아…… 이것들이 진짜.'

머리 뚜껑에서 김이 샘솟았다.

원숭이 대접을 받고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누구라도 불가능하다.

"뭘 봐! 문제 있어?"

"걍. 놔둬. 원숭이가 우리말을 알아듣겠냐?"

최기석과 두 백인의 시선이 충돌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에 주변에 있던 몇몇이 두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미국은 돼지들도 말을 하나?"

최기석은 두 사람이 다 듣도록 말하고서 섹션을 벗어났다. 그런데 통로를 다 지날 때쯤 아까 그 백인들이 카트로 앞을 가로막았다.

"헤이. 방금 우리 보고 돼지라고 했냐?"

키 큰 뚱뚱보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희들은 나보고 원숭이라고 했잖아.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

"넌 진짜 원숭이 맞잖아."

"맞아. 맞아. 우끼끼끼끼."

옆에 있는 키 작은 뚱뚱보가 원숭이 흉내를 냈다.

"꺼져. 돼지 멱따는 소리 하지 말고."

"이 새끼가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키 큰 뚱뚱보가 성큼성큼 거리를 좁혔고 최기석은 폭군의 강림을 사용했다.

[제압할 환자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민첩성과 근력이 일시적으로 상승합니다.]

"원숭이 새끼가.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키 큰 뚱뚱보가 멱살을 잡았다.

탁!

최기석은 뚱뚱보의 손을 쳐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설치지 말라고 했다?"

"어쭈. 눈 부라리는 거 봐?"

뚱뚱보가 안면에 주먹을 날렸지만 가뿐하게 피하며 거리를 벌렸다. 그러자 뚱뚱보가 얼굴을 붉히며 불도저처럼 달려들었다.

최기석은 그와 상대할 것처럼 연기하다가 옆으로 슬쩍 피했다.

"어? 어?"

쿵!

키 큰 뚱뚱보가 진열대에 충돌해 넘어졌고 그 위로 각종 물건들이 쏟아졌다.

"뭐…… 뭐야!"

뜻밖의 결과에 키 작은 뚱뚱보가 발을 동동 굴렀다.

키 큰 뚱뚱보는 신음을 흘리며 일어날 줄 몰랐다.

그사이 직원 몇몇이 메디컬 섹션으로 황급하게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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