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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58화 (157/407)

이별 준비 (4)

최기석의 외침에 스태프들은 얼음이 되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말투가 너무 다급했다.

"갑자기 왜 그래?"

장혁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교수님. 수술 부위를 닫기 전에 환자를 좀 더 살펴보면 안 될까요?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이미 수술하는 내내 환자를 봤어."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기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새로 얻은 스킬 식스센스는 직관에 의존한다. 그러니 스태프에게 본인의 감을 이야기해 봐야 큰 울림은 없다.

"하지만?"

"허무맹랑하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느낌이 안 좋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환자를 한 번 더 살폈으면 좋겠습니다."

"태식이, 네 생각은?"

"잠깐이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다 같이 살펴보자."

"감사합니다."

최기석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환자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환자 상태는 비응급.

경과는 양호.

결과상 협진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그렇다면 육감은 대체 왜 발동한 걸까.

최기석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용의 눈 줌 인 모드를 사용했다.

가장 먼저 수술한 관상동맥부터 승모판막, 좌심실까지.

꼼꼼히 살폈지만 문제는 없었다.

딱히 bleeding control이 안 된 곳이 있다거나 봉합이 흐트러진 곳도 없었다.

'미치겠네.'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눈 깜짝할 사이 5분이 지났다.

장혁필과 김태식도 열심히 수술 부위를 살폈지만 특이점을 찾지는 못했다.

최기석은 초조함을 느끼며 대동맥으로 시선을 돌렸다.

줌인 모드를 유지한 채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주변을 뒤졌다.

"교수님. 이쪽입니다!"

최기석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어디?"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최기석은 포셉으로 대동맥의 한 분지를 가리켰다. 혈관 위로 볼록한 주머니가 달려 있었다.

바로 대동맥류다.

동맥류의 종류에는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방추형과 혈관 위쪽으로 낭이 생기는 동맥류가 있는데, 후자를 발견했다.

"난 잘 안 보이는데?"

"제가 루뻬(광학안경) 조절해 드릴게요."

장혁필은 강하나의 도움을 받아 최기석이 가리킨 곳을 응시했다.

순간 미간이 일그러졌다.

"진짜 대동맥류잖아."

"네. 아직 위험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대로 둔다면 언젠가 파열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설마 대동맥까지 문제가 있었을 줄이야. 잘 찾았다."

장혁필은 대견하다는 시선으로 최기석을 응시했다.

"메스."

장혁필이 주머니를 째자 피가 흘러나왔고 김태식이 재빠르게 석션에 나섰다.

대동맥류가 심할 경우 인조혈관으로 대체하지만 아직 초기라서 간단히 처치할 수 있었다.

이윽고 10분여 간의 대동맥류 처치술이 끝났다.

'이제 됐다!'

최기석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육감 특유의 감각, 송곳으로 머리와 가슴을 찌르는 듯한 아픔이 사라졌다.

마지막 세이버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아직도 걸리는 게 있어?"

"없습니다."

"그 말을 기다렸다. 이제 닫자."

김태식과 최기석의 보조로 수술 부위 재봉합이 이뤄졌다.

드르르르륵.

인공심폐기가 꺼지면서 모두의 시선이 환자 감시 장치로 향했다. 8시간 가까이 계속된 협진 세이버 수술, 그 성적표가 공개되는 순간이다.

"바이탈, 서서히 회복 중입니다."

"거즈, 봉합사, 커튼 볼 카운팅 이상 없습니다. GS 파트도 문제없습니다."

신아름과 강하나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퍼졌다.

잠시 후 황기정이 정상 바이탈을 회복하면서 스태프 전원이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우와와와와!"

"해냈어요!"

기쁨의 함성이 로젯을 뒤흔들었다.

"휴우…… 이걸로 한시름 덜었군."

참관 중인 조지환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황기정에게 세이버 수술을 시킨 것은 그로서도 큰 도박이다.

수술이 성공한다면 의진대 흉부외과가 빅5 병원에 합류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만 실패한다면 기껏 이슈가 된 심장 클리닉이 폭삭 주저앉고 만다.

다행히 도박은 성공했다.

'이제 다 끝났어. 몸 사리면서 부병원장 선거까지만 기다리면…….'

조지환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떠올랐다.

"다들 고생했어요. 나갑시다."

장혁필이 앞장서고 그 뒤를 다른 스태프들이 뒤따랐다.

띠링!

[숨겨진 임무, '육감의 올바른 사용'을 완수하셨습니다. 1000 P.

P와 강화석 50개를 보상으로 제공합니다.]

[특별 임무. '세이버 팀의 마지막 수술'을 완수하셨습니다. 2000 P.

P와 새로운 칭호 하트비트가 제공됩니다.]

쏟아지는 알림 속에 스태프와 환자가 누운 침상이 수술실 바깥으로 나갔다.

"선생님. 우리 기정이는 어떻게 됐나요?"

"수술 무사히 끝났죠?"

대기 중인 황기정의 가족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안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황기정의 어머니 진양혜가 흐느껴 울었고 장혁필은 다가가서 그녀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 모습에서 최기석은 진한 울림을 느꼈다.

그래.

흉부외과를 택한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할 일을 마치고 외과 중환자실을 찾았다.

에어 샤워를 하고 격리실에 들어가자 곤히 잠든 황기정이 보였다.

황기정을 내려다보는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장시간의 수술을 버텨준 황기정이 고마웠다.

비록 의식은 없었지만 그도 세이버 팀 스태프와 함께 병과 싸웠다.

흉부외과 환자들을 살피고 중환자실을 나오는데 맞은편에서 정명운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환자 보러 왔나?"

"네."

최기석은 뜸을 들이가다 말을 이었다.

"오늘 정말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덕분에 세이버 수술이 무사히 끝날 수 있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야. 딱히 감사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정명운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환자의 상태는?"

"수술 후 바이탈은 계속 안정적입니다. 특별한 후유증도 보이지 않고요."

"다행이군. 그나저나 넌 조만간 메이죠 병원에 간다며?"

"네. 근무는 이번 주까지고 다음 달 말일에 미네소타로 갈 예정입니다."

"메이죠 병원이라……."

정명운이 턱을 쓸어내렸다.

"송명진 교수 추천으로 가는 건가?"

"맞습니다."

"인턴 경력을 인정받는다면 외과 로테이션부터 하겠어."

미국 외과의 과정과 한국 외과의 과정은 다르다.

인턴이 끝나고 각 외과별로 따로 수련 기간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인턴이 끝나면 곧바로 흉부외과 레지던트에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5년간 외과계열 로테이션을 돈 후에야 흉부외과 레지던트를 지원할 수 있다.

"만만치 않을 텐데……. 견딜 수 있겠어?"

"자신이 없다면 미국으로 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너다운 대답이군."

정명운이 최기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늘 수술 하면서 다시 한 번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최기석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말이다.

만약 메이죠에서 살아남는다면 그때는 송명진조차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잘해 봐라. 돌아오겠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정명운과 헤어져 회식장소를 찾았다.

고깃집 룸은 이미 팀원들로 가득 찼다.

오늘은 다른 때와 달리 윤지혜와 박용일도 참석했다.

최기석은 윤지혜와 김태식, 유병세가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다 모였으니까 건배부터 합시다. 술잔 채우고."

장혁필의 제안에 팀원들이 술잔을 채웠다.

"오늘 하루 다들 고생 많았어요. 앞으로도 오늘처럼만 합시다. 세이버 팀을 위하여!"

"위하여!"

채애애앵.

팀원들이 잔을 부딪치고 술잔을 비웠다.

이윽고 술잔이 돌면서 회식 분위기가 점점 살아났다.

'크으. 좋네.'

최기석은 모처럼 술을 3잔까지 마셨다.

당직이 아니었기에 전보다 편하게 술을 마셨다. 심장이식 수술을 했기에 과음은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교수님. 이러시면 섭섭하죠."

최기석은 윤지혜가 자작하는 것을 막고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러자 윤지혜가 피식 웃으며 단번에 잔을 비웠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평소에도 말이 없지만 윤지혜는 오늘따라 유독 말이 없었다.

소주를 연거푸 들이키기 일쑤다.

"그냥. 기분이 별로네."

"불편하게 있으면 여기서 푸세요."

"글쎄."

윤지혜가 애매한 대답으로 빠져나갔다.

"아, 참. 최 선생님. 조만간 메이죠 병원으로 가신다면서요?"

잠자코 있던 유병세가 대화에 나섰다.

"네. 예전에 계시던 송 교수님의 부름을 받았어요."

"기왕 외국 병원으로 가실 거면 거기 말고 다른 병원으로 가면 안 되나요?"

"왜요?"

"이름이 불길해요. '메이'죠라니. 왠지 싸이코 같은 의사들이 잔뜩 있을 것 같아요."

유병세가 두 팔을 끌어안으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싸이코 같은 의사들이라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메이죠는 미국 최고의 병원 중 하나예요."

"그래도 어감이 별로……."

유병세가 의견을 굽히지 않았기에 최기석은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제가 유 선생님을 쭉 지켜봤는데 한조는 싫고 겐지는 좋아하고 메이는 두려워하시는 군요."

"……네. 맞아요."

"고기 한 조각!"

최기석이 명랑하게 외치며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러자 유병세가 미간을 찌푸렸다.

"겐지스 강."

두 번째 외침에 유병세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메이죠 클리닉."

세 번째 외침에 유병세가 몸을 덜덜 떨었다.

'이 인간은 대체 왜 이러지…….'

최기석 황당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교수님. 한 잔 받으시죠."

장혁필이 박용일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오늘 수술이 무사히 끝났어요."

"어디 수술한 게 저뿐인가요? 다들 노력했는데."

"앞으로는 이렇게 신세 질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협진수술이라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장혁필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수술이 성공했기에 망정이지 실패했다면 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조지환은 물론 언론에도 두들겨 맞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장 교수님이 너무 부럽습니다. 이렇게 멋진 스태프들을 팀으로 두셨으니까요."

박용일이 잔을 비웠다.

연거푸 마신 술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써전들부터 보조 스태프들까지 다들 실력이 출중하더군요. 왜 세이버 팀, 세이버 팀, 노래를 부르는지 알겠어요."

"심장 클리닉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폐식도 파트에도 변화가 있지 않겠습니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그렇게 될 겁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제가 힘을 쓰겠습니다."

"장 교수님이 힘을요?"

"네."

장혁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조 과장님이 내년에 부병원장이 된다면 우리 과 과장 자리가 공석이지 않습니까? 제가 과장이 된다면 책임지고 폐식도 파트를 키우겠습니다."

"……."

"앞으로 제게 힘을 실어주세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겁니다."

"흐음…… 고민해 볼 일이군요."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권 교수님이 과장이 된다면 소아심장 파트에 집중할 게 뻔한 데 말입니다."

대화가 잠시 멈춘 사이, 장혁필이 최기석을 응시했다.

"기석아. 이리 와서 한 잔 받아라."

"네."

장혁필의 부름에 최기석이 잔을 들고 다가왔다.

"마지막 수술까지 잘 도와줘서 고맙다. 특히 마지막에 대동맥류를 찾은 건 압권이었어."

"아닙니다. 운이 좋습니다."

"그럼 떠나기 전에 그 운 다 나한테 넘기고 가라. 이참에 복권이나 사게."

장혁필의 농담에 스태프들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한데 잠시만 나가보겠습니다. 전화가 와서."

최기석은 식당 바깥으로 나와 외진 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뜻밖에 황지연이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전화했어?"

[선배. 죄송한데 회식 끝나고 잠깐 뵐 수 있을까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알았어. 회식 끝날 때쯤 전화할게."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알아서 무덤을 파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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