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준비 (2)
'대단해.'
박용일은 집도의 자리에 서서 스태프들을 응시했다.
특별한 지시가 없건만 모두 바쁘게 제 위치에서 수술 준비 중이다.
덕분에 눈 깜빡할 사이에 준비가 끝났다.
그는 세이버 팀의 단결력을 새삼 피부로 느꼈다. 더불어 자신도 폐식도 분야에 팀을 가졌으면 하는 욕심을 품었다.
"교수님. 기도 유지는 후두 마스크로 하려고 합니다."
마취의 신아름이 다가와 말했다.
"후두 마스크? 기관삽관이 더 낫지 않을까요?"
"후두 마스크를 사용하면 기도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수술 중에 다른 도구를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도 후두 마스크에 대한 논문은 읽어 봤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관삽관이 일반적인데."
박용일은 미지근한 대답을 내놓았다.
기존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제게 맡겨 주시면 안 될까요? 수술 중 환자의 바이탈은 관리하는 건 마취의의 몫이니까요. 절대로 교수님 수술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감사합니다."
박용일은 커튼 뒤로 향하는 신아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결단력 있는 마취의를 본 게 얼마 만인지…….
'세이버 팀이 잘 굴러가는 이유가 있었군.'
마취의 수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른 스태프와 보조 써전의 실력이 얼마만큼 뛰어날지. 덕분에 온전히 수술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분, 긴장하지 마시고요. 베게 높이를 조절해 드릴 테니까 호흡하기 가장 편할 때 이야기해 주세요."
"네."
"지금은 어떠세요?"
신아름이 베게의 위치와 높이를 조절한 후 말했다.
"아직이요."
"지금은요?"
"베게가 조금만 더 높았으면 좋겠는데."
"이 정도는 어떠세요?"
"딱 좋습니다."
황기정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신아름이 정맥로를 통해 마취액을 투입했다. 마취액이 퍼지면서 황기정의 눈이 감기고 온몸이 늘어졌다.
"여기 있습니다."
소독간호사 강하나가 굴곡성 기관지경을 건넸다.
마치 박용일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박용일은 기관지경을 받아서 환자의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스으으윽.
손잡이로 튜브의 굴곡 정도를 조절하며 신중하게 조종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튜브가 기관이나 성대에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
"심전도 이상 없습니다. 바이탈도 아직까지 정상입니다."
마취의의 보고가 들렸다.
그사이 기관지 경에 부착된 스코프가 기관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교수님. 쉽지 않겠습니다."
"동감이다."
김태식의 말에 박용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협착 부위의 직경은 평균 1.5센티미터이며 가장 좁은 직경은 4-5센티미터다. 수술 전 검사로 협착이 심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기관지경으로 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기관 절제 들어갑니다."
"기관 내압 16 cmH2O로 조정합니다. 맥박 산소포화도는 95퍼센트 이상 유지하겠습니다."
박용일의 말에 신아름이 발 빠르게 대처했다.
본 게임이 시작되면서 수술실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늘 수술의 첫 단추인 기관절제술.
이것이 꼬이면 이후 수술에 막대한 영향이 간다.
"메스는 필요 없어요."
"방금 절제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강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용일이 그녀가 건네는 메스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리핑 때는 메스를 이용한 일반적인 절제술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수술실에 들어와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박용일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협착 부위는 내시경으로 절제합시다. 기관협착 수술 후 세 개의 수술이 더 남았잖아요. 최대한 환자 부담을 줄여 보죠."
"알겠습니다."
강하나가 메스를 거뒀고 김태식은 기관지경을 회수해서 절개가 가능하게끔 세팅을 마쳤다.
"자네는 반대하지 않나? 내시경으로 기관절제술을 펼치는 케이스가 드물다는 건 알고 있겠지?"
박용일이 김태식을 응시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술기의 난이도를 따지면 메스를 이용한 직접 절개가 훨씬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뒤에 있을 수술까지 대비하는 교수님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수술 방식은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 믿음, 보답하도록 하지."
박용일의 눈에서 이채가 떠올랐다.
스으으윽.
굴곡성 기관지경이 다시 환자의 기관으로 들어갔다.
박용일은 모니터를 살피며 광원을 조심스럽게 조종했다. 그리고 협착 부위에 광원을 고정시키고 절개에 나섰다.
순간 로젯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스태프들의 시선이 전부 모니터를 향한 가운데, 박용일은 조심스럽게 기관을 잘라 냈다.
폭탄처럼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 기관절제술이 끝났다.
박용일은 잘려 나간 기관이 있던 자리에 보강 튜브를 설치하고 청진과 바이탈 확인에 나섰다.
다행히 절제술은 별 탈이 없다.
1차 수술 완료까지 걸린 시간은 50분.
예상시간이 1시간 30분이었으니 무려 40분을 단축했다.
"좋아할 여유도 없군. 곧바로 식도재건술에 들어가지."
"네!"
박용일의 말에 스태프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2차 수술에서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서지훈이다.
서지훈은 환자가 옆으로 눕도록 만들고 팔을 올려 고정시켰다.
그리고 포비돈 용액으로 흉부와 늑골 부위를 넓게 소독했다.
"잘했다. 메스."
박용일은 메스로 환자의 전액와선부터 시작에서 제6번 늑간까지의 피부를 갈랐다. 흉부식도 질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후측방 개흉술이다.
"영호야. 스프래더(견인기의 일종)."
"네."
서지훈은 이영호에게 스프래더를 받아서 절제한 부위를 넓게 벌렸다. 이후 수술용 테이프로 스프래더를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이영호와 스패튤라로 폐를 견인했다.
"종격동 절제합니다."
김태식은 메스로 종격동을 절제했다.
종격동이란 흔히 말하는 세로칸으로 이곳을 기점으로 다양한 장기들의 위치가 나뉜다. 그래서 종격동을 절제해야 문제 부위인 식도까지 도달할 수 있다.
사아아악.
칼날이 뒤쪽 종격동을 가르면서 식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메젠(수술용 가위)."
박용일은 메젠으로 병변이 있는 식도 뒤에 붙은 대동맥을 떼어 냈다. 이 작업을 사전에 하지 않으면 나중에 식도절제를 할 때 대동맥에 문제가 생긴다.
"교수님. 식도혈관과 대동맥혈관에 출혈이 있습니다."
"이런!"
김태식의 보고에 박용일이 미간을 찌푸렸다.
"식도혈관은 자네가 처치해. 나는 대동맥혈관을 맡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김태식이 전기 소작기로 식도혈관을 지졌고 박용일은 천연 실크로 출혈이 있는 혈관을 묶어 주었다.
두 사람의 신속한 처치로 출혈은 금세 멎었다.
"메스."
박용일의 칼날이 병변이 있는 식도를 거침없이 잘라 냈다.
텅!
잘린 부위가 곡반에 떨어졌다.
이로써 식도 재건술의 흉부외과 파트가 무사히 끝났다.
"닫는 건 제가 하겠습니다."
김태식이 개흉한 부위를 봉합했고 박용일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정 교수, 장 교수. 뒷일을 부탁해요.'
* * *
로젯 앞 대기실.
스태프들이 한데 모여 수술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역시 박 교수님이네요."
최기석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박용일은 기관지경을 이용한 기관절제술로 환자의 부담을 줄였다. 그뿐만 아니라 뒤에 있는 수술을 고려해 신속하게 집도를 끝냈다.
본인의 할 일을 200퍼센트 완수한 것이다.
"그나저나 정 교수님은 왜 이렇게 안 오시지?"
장혁필이 초초하게 다리를 떨었다.
식도재건술의 흉부외과 파트가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톤을 이어받을 정명운이 감감무소식이다.
지금쯤이면 수술을 마치고 함께 수술 참관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제가 A 로젯에 가 보겠습니다."
"그래. 빨리 가 봐."
최기석은 빠른 걸음으로 수술실 끝에 있는 로젯으로 향했다.
로젯 문 위로 수술 중이라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아무래도 집도 중 돌발 상황이 발생한 모양이다.
'재수도 없지.'
최기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명운은 오늘 수술의 핵심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식도재건술을 할 수 있는 외과의가 없기 때문이다.
지이이잉.
최기석이 전화를 걸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교수님!"
"깜짝이야. 놀랐잖아."
정명운이 몸을 들썩거렸다.
"식도재건술 흉부외과 파트가 다 끝나갑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가자!"
두 사람이 나란히 수술실 복도를 걸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왜 제1보조로 저를 택하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그거야 심통이지."
"심통이라면……."
"넌 위장관 외과에 남으라는 내 제안을 뿌리치고 흉부외과에 갔잖아."
정명운은 최기석의 표정을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농담이다. 알지?"
"……진심으로 하신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실망인데? 나를 그렇게 쪼잔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
정명운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사실은 최기석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보조로 불렀다.
초턴 때 흉강천자를 한 일은 물론이요, 교통사고 현장에서 아이돌을 치료한 것, 레지 1년 차임에도 당당하게 세이버 팀 보조에 들어간 것까지.
들리는 소문만큼 실력을 갖췄는지 궁금했다.
"식도재건술 공부는 열심히 했나?"
"자신 있습니다."
"입만 살아 있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군. 보조를 제대로 못하면 평생 깨질 거야."
"절대 그럴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최기석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걷다가 로젯에 도착했다.
"수술 중 갑자기 출혈이 생겨서 늦었습니다."
"역시 오늘 수술의 주인공답습니다. 시간에 딱 맞춰서 오셨군요."
장혁필과 정명운이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그럼 저는 집도 준비하겠습니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정명운과 최기석은 소독실에서 스크럽을 하고 로젯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후측방 개흉술의 봉합이 끝났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뒤는 제게 맡겨 주시죠."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기석아, 고생해라. 이따가 보자."
"수고하셨어요. 김 선생님."
인사와 함께 스태프 교체가 이뤄졌다.
이제 집도의는 정명운, 제1보조는 최기석이다.
'아이고. 무서워라.'
최기석은 속으로 혀를 찼다.
자신을 향한 서지훈의 시선에 냉기가 폴폴 묻어났다. 후배가 제1보조를 한다는 사실에 심사가 뒤틀린 듯했다.
"바이탈에 문제가 없는 걸 보니 수술이 잘 끝난 모양이군. 기석이 너와 나는 특별히 더 조심해야 한다."
정명운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왜 그런 줄 알아?"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문제가 생기면 너랑 내 책임이기 때문이지. 정신 똑바로 차려!"
"네."
최기석은 씩씩하게 답하며 포비돈으로 복부를 소독했다.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한 단계 상승합니다.]
[얼어붙은 심장의 혹한 효과와 용맹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 혹한: 주변 스태프가 침착해지며 응급상황에도 능력치가 하락하지 않습니다.
- 용맹: 병인을 분석하고 처치 법을 떠올리는 능력이 2배로 증가합니다.
[용의 눈을 사용합니다. 최적의 수술 시야를 제공하며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차례대로 들리는 스킬 알림들이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지금부터 식도재건술을 시작한다. 메스."
정명운이 강하나에게 메스를 건네받았다.
부우우욱.
시퍼런 칼날이 황기정의 복부를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