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준비 (1)
"교수님이 이번 수술을 어떻게 진행하실지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뭐. 확실히 골치 아픈 케이스이긴 하지."
최기석의 말에 장혁필이 볼을 긁적거렸다.
"일단 팀원들 모이면 이야기하자."
"네."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머지 스태프들이 자리를 채웠다.
이윽고 4번째 세이버 수술이자 역대 최고의 난관이 될 황기정의 수술 회의가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김태식이 포인터기를 들고 스크린 앞에 섰다.
환자 황기정은 예능 프로 촬영 중 호흡곤란과 흉통을 느껴 심장 클리닉 외래를 찾았다. 그리고 각종 검사를 통해 좌심실류를 진단받았다.
이후 수술대기 기간 중 연하곤란으로 급하게 추가 검사를 실시한 결과 원발성 식도암 2기와 기관협착이 추가되었다.
"상황만 보면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인 꼴입니다."
발표를 마친 김태식이 쓰게 웃었다.
그가 자리로 돌아가고 장혁필이 단상에 올랐다.
"세이버 수술의 원칙. 기석이가 말해 볼래?"
"기존 질환이 있으면 그 질환을 먼저 치료한 후 세이버 수술을 실행합니다."
"이유는?"
"다른 질환이 심장 수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장혁필이 고개를 끄덕이고 팀원들을 훑어보았다.
"중요한 건 이번 케이스에서 원칙을 고집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겁니다. 기관협착을 제거하기 위한 기관절제술, 식도재건술, 세이버 수술을 나눠서 한다면 환자의 체력이 버티지 못합니다."
"……."
"물론 각 수술 별로 인터벌을 길게 두는 방법이 있지만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복합 질환의 영향으로 환자 심장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으니까요."
"교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김태식과 강하나가 한마디씩 덧붙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 수술, 협진수술로 갑시다. 어떻습니까?"
장혁필의 말이 메아리처럼 퍼졌다.
협진수술이란 다른 과와 합동으로 수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세이버 수술을 협진수술로 치른 적은 없었다.
"저는 반대입니다."
마취의 신아름이 손을 들었다.
"이유는요?"
"교수님의 뜻은 하루 만에 세 수술을 다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기관절제술, 식도재건술, 세이버 수술을 하루 만에 끝내는 것도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환자 심장을 케어하면서 다른 수술을 먼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신 선생님 의견에 반대합니다."
잠자코 있던 최기석이 나섰다.
"간호기록지를 보면 환자가 수시로 간호사를 불러 흉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숫자가 너무 잦아서 주치의인 김 선생님이 PRN(필요 시)으로 진통제 처방을 넣었고요."
"……."
"여기서 기관절제술 후의 회복 기간과 식도재건술 후의 회복 기간을 합쳐 보겠습니다. 그러면 세이버 수술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 최소 한 달이 필요합니다."
"생각보다 길긴 하네요."
"제 생각에 앞으로 한 달을 더 기다리면 응급상황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저도 최 선생님하고 같은 생각입니다."
인공심페기사 유병세까지 최기석과 의견을 같이했다.
잠시 후 이뤄진 다수결에서 협진수술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금부터 수술개요 설명하고 역할 분담합니다."
장혁필이 말을 계속했다.
제1수술인 기관절제술.
이 수술의 집도의는 폐식도 외과 전문의 박용일이다.
제1보조는 김태식이며 제2보조는 서지훈이다.
더불어 보조 파트인 신아름, 유병세, 강하나는 모든 수술에 참여한다.
"원래대로라면 기석이가 제2보조로 들어가야 하지만 박 교수님이 지훈이를 쓰고 싶다고 부탁하셨다. 그 정도는 이해하지?"
"네."
최기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박용일이 서지훈을 밀어주고 있다는 걸 의국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기에.
제2수술인 식도재건술.
이 수술은 흉부외과와 위장관 외과가 함께 시행한다.
흉부외과에서 식도를 절제하면 위장관 외과에서 위와 식도를 이어 준다.
흉부외과 파트에서는 앞서 기관절제술을 했던 김태식이 제1보조를 유지한다.
위장관 외과 파트가 되면 김태식이 나오고 최기석이 제1보조로 들어간다.
또한 서지훈이 제2보조를 유지한다.
"교수님. 제가 위장관 외과 보조를 하나요?"
최기석이 놀라서 되물었다.
위장관 외과 수술이면 그쪽 스태프가 보조를 서는 게 정상이다. 혹시 제2보조 정도면 모르겠지만 제1보조를 맡는 건 비상식적이다.
"낮에 정명운 교수님 만나고 왔다. 협진수술 부탁드리니까 널 보조로 세우라고 하셨어. 그게 아니면 본인이 수술 안 하신다는데?"
"아……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명운은 위장관 외과 부교수다.
약자 무시 패시브와 매의 눈 스킬을 가졌으며 초턴 시절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공이 갈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재회할 줄이야.
"위장관 외과에서 식도재건술을 끝내면 우리가 다시 모여 세이버 수술을 할 겁니다. 질문 있는 분?"
"……."
"좋습니다. 이틀 뒤에 있을 수술, 잘해 봅시다."
장혁필의 파이팅으로 회의가 끝났다.
최기석은 회의실을 나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메이죠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치르는 세이버 수술, 반드시 성공하리라.
* * *
세이버 수술이 있는 결전의 날, 새벽.
최기석은 두 눈을 감은 채 기숙사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용의 눈으로 그동안 촬영한 동영상을 살피는 중이다.
가장 먼저 재생한 것은 기관절제술.
박용일이 집도했던 동영상이 하나 저장되어 있었다.
최기석은 박용일에 빙의해서 동영상을 한 번 보고 제1보조로 빙의해서 한 번 더 봤다.
집중해서 영상을 살피자 진이 빠졌다.
'정신 차리자.'
찰싹!
뺨을 가볍게 때리고 다음 동영상을 살폈다.
박용일과 함께했던 흉부외과 파트 식도재건술, 얼마 전 촬영한 위식도 봉합술과 세이버 수술까지 복습했다.
최기석은 동영상 공부를 끝내고 아지트를 찾았다.
문 앞에 있는 스티로폼 박스를 열자 싱싱한 돼지 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수술 연습을 위해 지난 이틀 간 정육점 아저씨에게 돼지 위를 부탁했다.
아저씨는 고맙게도 군말 없이 위를 보내 주었다.
최기석은 스티로폼 박스를 챙겨서 아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재빠르게 수술 세팅을 마친 후 식도재건술의 위장관 파트 집도 연습을 시작했다.
스으으윽.
메스가 서서히 움직였다.
정교한 움직임에 위가 차차 새로운 모습을 갖춰 나갔다.
일명 디자이닝.
식도와 연결하기 좋도록 위의 일부 조직을 자르고 신경 및 혈관을 살리는 작업이다.
최기석은 디자이닝을 끝낸 위를 식도에 연결하는 시늉을 했다.
아무래도 연습은 연습.
실제 상황과 똑같을 수는 없다.
위를 가상 식도에 연결한 후 단단문합술을 펼치는 것으로 연습을 끝냈다.
"휴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 냈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용의 눈의 새로운 효과인 물아일체가 오늘은 발동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연습하는 내내 물아일체 특유의 붕 뜬 느낌을 받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뒷정리를 끝내고 흉부외과 병동을 찾았다. 그런데 복도를 걷던 중 황지연을 마주쳤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황지연의 인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협진수술 있는 날이죠? 엄청 긴장되실 것 같아요. 환자가 마라톤 영웅 황기정 선수잖아요."
황지연이 눈웃음치며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딱히 긴장은 안 되는데? 분명 성공할 거니까."
"역시 선배! 멋있어요. 저기…… 이거라도 드세요. 방금 편의점에서 사온 두유에요."
황지연이 음료 뚜껑을 따서 내밀자 최기석이 병에 입을 댔다.
"뚜껑 줘. 남은 건 있다가 마실게."
"네."
최기석은 음료를 받아들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영호가 오늘도 어김없이 봉합 연습 중이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웬 두유에요? 선배, 원래 아침에 아무 것도 안 드시잖아요."
"지연이가 주길래 받았지."
최기석은 가운에 넣어둔 음료를 서랍 속에 넣었다.
"안 드실 거면 저 주세요. 그렇게 꽁꽁 숨겨 두지 마시고요."
"안 돼. 마시지 마. 절대로!"
"왜요?"
"그런 게 있어."
최기석은 음료수를 내려다보다가 서랍을 닫았다.
* * *
수술용 참관실.
지이이잉.
문이 열리고 조지환을 비롯한 흉부외과 스태프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협진수술이 진행되는 만큼 위장관 외과 스태프 일부도 참관에 나섰다.
"괜히 내가 다 떨리는 군."
조지환은 자리에 앉아서 심장에 손을 얹었다.
오늘은 수술은 여러모로 기념비 적이다.
황기정 같은 유명인에게 수술하는 것이 처음이고, 세이버 수술 같은 고난도 수술에 협진수술이 더해진 것도 처음이다.
이번 수술이 성공하면 의진대 심장 클리닉은 일약 최고의 심장 클리닉으로 떠오를 것이다.
"권 교수는 오늘 수술 어떻게 봅니까?"
조지환의 시선이 곁에 앉은 권일수에게 향했다.
"기관절제술과 식도재건술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끝나느냐가 승패를 좌우할 것 같습니다. 세이버 팀의 세이버 수술은 완전히 자리 잡았으니까요."
"흐음…… 집도의가 박 교수와 정 교수라면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조지환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지금 걱정되는 것은 수술이 아니라 환자다.
환자가 각기 다른 세 가지 수술을 잘 견딜지, 수술 후 합병증을 앓는 건 아닌지 말이다.
"요즘 노우드 팀은 어때요?"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
"얼마 전 외래에서 네 번째 케이스 환자를 받았습니다. 다음 주 중으로 수술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권 교수 실력이야 잘 알지만 항상 긴장해요.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알죠?"
"네. 명심하겠습니다."
권일수가 고개를 숙였다.
지이이이잉.
대화를 나누는 사이 로젯 문이 열리고 환자와 스태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수술실.
세이버 수술 스태프와 박용일, 그리고 그가 데려온 서지훈이 짧은 브리핑을 가졌다.
"쉽지 않겠군요. 환자의 부담을 줄이려면 최대한 수술 시간을 단축시켜야 할 텐데……."
박용일이 미간을 찌푸렸다.
폐식도 외과, 위장관 외과, 흉부외과.
이 세 분야의 수술을 차례대로 시행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만약 한 수술이라도 꼬이면 다음 수술에 큰 영향을 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괜한 부담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수술을 한 번에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하니까요."
장혁필의 말에 박용일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정 교수님은 왜 이렇게 안 오시죠?"
"옆 로젯에서 수술 중입니다. 한 시간 안에 끝내고 합류한다고 했습니다."
"다행이군요. 혹시 펑크가 난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위장관 외과에서 오늘 수술을 성공시킬 분은 정 교수님밖에 없으니까요."
"동감입니다."
장혁필이 짧게 대답하고 스태프들을 훑었다.
"그럼 파이팅하고 제1팀부터 수술에 들어갑시다. 하나 둘 셋. 파이팅."
"파이팅!"
우렁찬 외침이 수술실에 퍼졌다.
집도의 박용일.
제1보조 김태식.
제2보조 서지훈.
제3보조 이영호.
소독간호사 강하나.
인공심폐기사 유병세.
마취의 신아름.
스크럽을 끝낸 제1팀이 로젯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