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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50화 (149/407)

메이죠를 향해서 (3)

최기석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조태호와 마주하자 지난 악연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중 가장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남강준을 이용해서 근육주사를 정맥주사로 놓도록 유도한 일이다. 주사를 잘 살피지 못했다면 분명 아이에게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으리라.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하지?"

"너랑 말 섞기 싫어서."

"싱거운 자식."

조태호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협진 환자는 봤어?"

"심음하고 폐음 들어 봤고 심전도 찍어서 결과도 확인해 봤다. 특별한 문제는 없어."

"그럼 흉통의 이유는?"

"지금으로서는 심리적인 요인으로밖에 볼 수 없다. 얼굴에 화상을 입는다는 건 충격적인 일이니까. 정신과에 협진 넣어 봐."

"으음…… 레지 1년 차의 말을 믿어도 될지 모르겠네."

"그런 말을 하는 너도 레지 1년 차다. 그리고 너 환자를 제대로 보기는 했어?"

"뭐라고?"

최기석의 지적에 조태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 환자 흉부외과에 협진을 넣지 않아도 됐어. 환자에게 왜 가슴이 아픈지, 요새 기분이 어떤지만 물어봤어도 충분히 심리적인 문제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

"솔직히 넌 의사가 될 자격이 없다. 환자에 대한 관심은 손톱만큼도 없고 제 욕심만 생각하는 너 같은 인간은 말이야."

"새끼. 말은 잘하네."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부딪쳤다.

복도를 지나가던 환자 몇몇이 두 사람을 슬금슬금 피해 걷기까지 했다.

"멍청한 너는 모르겠지만 결국 성공하는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다. 금수저로 태어나서 꽃길만 걷는 인간 말이야."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걸?"

최기석이 담담하게 말을 계속했다.

"넌 반드시 쓴맛을 볼 거야. 네 사고방식, 네가 해 온 짓들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어."

"내 귀에는 못 가진 자의 악담처럼 들리는데?"

"당연하지. 네 귀가 병신이니까."

"이 새끼가. 진짜!"

조태호가 접근해서 그의 멱살을 붙잡았다. 하지만 최기석은 폭군의 강림을 사용하고 조태호의 손을 가볍게 물리쳤다.

탁!

"이이익……."

조태호가 맞은 손을 부여잡으며 눈을 부라렸다.

"너, 우리 병원에 평생 붙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건 두고 봐야겠지."

최기석은 포터블 EKG를 끌고 성형외과 병동을 나섰다.

조태호와의 만남을 액땜으로 여기며.

* * *

그날 오후.

세이버 팀이 모처럼 수술실에 모였다.

오늘은 중국에서 온 VIP 환자 장왕유의 심장 수술이 있는 날이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간단하게 브리핑하겠습니다."

장혁필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장왕유가 앓고 있는 질환은 심장종양이다.

다른 장기에서 전이 되지 않은 원발성 종양으로 종양은 양성이다. 종양은 좌심실에 위치했으며 승모판막과 폐동맥, 심실중격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세이버 수술에 비하면 난이도는 낮은 편이지만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이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과장님이 길길이 날뛸 테니까."

"네!"

"그럼 들어갑시다."

팀원들이 손을 모아 파이팅하고 스크럽에 나섰다.

박. 박. 박. 박.

최기석은 포비돈이 묻은 솔로 팔을 열심히 밀었다.

집에서 쉬었던 이틀보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좋았다.

팔의 솜털이 바짝 솟아오르는 긴장감, 환자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 팀원들 간의 유대감 등등.

갖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가자.'

최기석은 액티브 스킬을 사용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응급환자를 처치하는 경우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얼어붙은 심장의 혹한 효과와 용맹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용의 눈을 사용하셨습니다. 최적의 수술 시야를 제공하며 줌 인 모드와 줌 아웃 모드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동영상 모드 작동, 촬영에 들어갑니다.]

이어지는 스태프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바이탈 이상 없고 환자 정상적으로 마취됐습니다."

"좋아요."

신아름의 보고에 장혁필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지금부터 심장종양 제거수술을 시작한다. 메스."

스으으윽.

하얀빛의 칼날이 환자의 피부를 갈랐다.

"흉골 절개하겠습니다."

최기석은 전기톱을 들고 흉골을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이영호와 견인기 양쪽 끝을 당기며 수술 부위를 벌렸다.

"심정지액 투입하세요."

그사이 제1보조인 김태식이 동맥 캐뉼라와 정맥 캐뉼라를 연결하고 커튼 뒤를 응시했다.

"네. 지금 들어갑니다."

마취의 신아름이 낭랑하게 대답했다.

심정지액이 들어가면서 힘차게 박동하던 심장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럼. 시작해 볼까? 메스."

장혁필은 메스를 손에 쥐고 좌심방을 반으로 갈랐다.

종양은 좌심방 끝자락에 붙어 있었으며 크기가 커서 심장 바깥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종양이 영항을 끼치는 부위는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에 있는 승모판막과 좌심방 바로 위에 있는 폐정맥이다.

종양 주변에는 검붉은 혈전들이 뭉쳐 있었다.

"생각보다 심각한데요?"

김태식이 석션을 끝내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반칙 아닙니까? 검사로 확인한 것보다 몇 배나 상태가 안 좋은데요?"

"동감이다. 카테터."

장혁필이 특수 장치가 부착된 카테터를 혈전이 발생한 부위에 갖다 댔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기계음과 함께 카테터 앞에 부착된 기계가 회전했다.

동시에 딱딱하게 뭉쳐 있던 혈전들이 잘게 쪼개졌고 이를 김태식이 석션기로 흡입했다.

15분가량 작업하자 좌심방의 혈전이 모두 사라졌다.

"메스."

장혁필이 본격적인 종양절제에 나섰다.

그는 심장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며 종양만을 떼어 냈다. 섬세한 작업인 만큼 스태프 전원이 숨을 죽여 그를 도왔다.

덜컹!

잘라낸 종양 조직이 곡반에 떨어졌다.

작업이 계속될수록 장혁필의 얼굴에 식은땀이 늘어났다.

급기야 강하나가 땀을 닦아 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까지 되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최기석은 고전하는 장혁필을 보며 안타까움을 삼켰다.

그는 심장 클리닉 외래에 시달리면서 세이버 팀까지 꾸리고 있었다.

그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상상초월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상태를 살핀 결과 장혁필의 체력은 2이고 진단명에 과로가 떴다.

"휴우…… 이 정도면 60퍼센트는 끝낸 것 같은데?"

장혁필이 가쁜 숨을 토했다.

심장에 있는 종양은 전부 제거했다.

지금부터는 심장종양에 영향을 받은 심방중격과 승모판막을 재건해야 한다.

"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최기석의 말에 팀원의 시선이 쏠렸다.

"뭐지?"

"종양이 횡격막까지 침윤된 것 같습니다. 이쪽도 절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보이는데?"

김태식은 루뻬를 고쳐 만지며 횡격막을 살폈다. 그럼에도 최기석이 말한 침윤 부위는 보이지 않았다.

장혁필 역시 침윤 부위를 찾지 못했다.

"그럼 제가 한 번……."

최기석은 포셉을 손에 쥐고 횡격막의 가장자리를 살짝 뒤집었다.

그러자 좁쌀만 한 크기의 종양 몇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수술실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최기석이 침윤된 부위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리라.

"너 투시라도 하니?"

"아닙니다. 오늘은 도와드릴 게 별로 없어서 수술 부위를 유심히 살폈는데 운 좋게 걸렸습니다."

"하여간 잘했다. 계속 잡고 있어."

장혁필은 새롭게 발견한 종양을 떼어 내고 단순 단속 봉합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갑작스레 전화가 울렸다.

최기석이 견인기 양쪽을 벌리는 사이 이영호가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지금 응급실에 응급환자가 왔다고 합니다. 복부 대동맥 파열이 의심된다고……."

"복부 대동맥 파열?"

장혁필의 얼굴이 구겨졌다.

복부 대동맥 파열이라면 응급 중의 응급이다.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환자가 죽는다.

"응급실에서 흉부외과에 전화를 해봤는데 현재 수술 가능한 써전이 없다고 들었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로젯으로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이영호가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교수님. 그러면 제가 응급실로 내려가겠습니다."

"태식이 네가?"

"지금은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기석이라면……."

김태식이 최기석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충분히 교수님을 어시스트 할 수 있을 겁니다."

"알았다. 태식이는 응급실로 내려가고 기석이가 퍼스트 선다. 영호는 병동에 전화해서 인턴 한 명만 내려오라고 해."

장혁필이 재빠르게 교통정리에 나섰다.

이윽고 병동 일을 하던 황지영이 로젯으로 들어왔다. 인턴 두 명이 견인기를 당기면서 수술이 재개되었다.

'후우…….'

최기석은 심호흡하며 김태석이 섰던 자리에 위치했다.

그의 맞은편에는 장혁필이 서 있었고 시선을 조금 내리면 환자의 수술 부위가 똑바로 보였다.

이것이 바로 제1보조의 시선.

"긴장할 필요 없어. 남은 처치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우선 심방중격 결손을 처리하고 그 다음은 승모판 재건이다."

"네!"

"5-0 prolene. 패치."

장혁필이 손상된 심방중격에 패치를 덧대고 봉합에 나섰다.

최기석은 포셉으로 심방중격을 단단히 잡아 주었으며 때로는 장혁필의 운침(봉합침을 조직에 통과시켜 봉합사를 남기는 일)을 도왔다.

봉합사를 자르는 길이나 타이밍도 완벽.

김태식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강하나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흉부외과 스태프 중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건 그렇지만…… 오늘은 유독 심하신 것 같아서……."

강하나가 말끝을 흐렸다.

오랫동안 장혁필을 지켜봤지만 오늘만큼 봉합이 더딘 것은 처음이다. 운침조차 애를 먹고 있으며 매듭을 짓는 손은 헛돌기 일쑤다.

최기석이 꼼꼼하게 도와주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수술이 더욱 길어졌을 것이다.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그래도 수술이 다 끝나 가니까 괜찮아요."

장혁필이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심방중격 결손 처치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승모판뿐인가? 이 상태라면…… 치환술을 해야겠지? 메스."

장혁필이 강하나에게 건네받았다.

"교수님. 치환술이 아니라 성형술을 할 수는 없을까요?"

"이 환자에게 성형술을? 그건 무리야. 판막엽과 판막륜이 엉망이라서 인공판막을 씌워 주는 게 더 좋아."

장혁필은 휘휘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치환술보다 성형술을 선호하지만 지금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판막륜과 판막엽의 상태는 불량하지만 유두근육과 건삭은 의외로 멀쩡합니다. 교수님의 솜씨와 제 보조가 더해지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기석은 당당하게 제 의견을 드러냈다.

수술 부위를 본 순간 바로 느낌이 왔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분명 치환술을 택할 것임을, 더불어 자신은 성형술을 성공시킬 수 있음을.

처음 느껴보는 확신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여간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알았다. 일단 성형술을 해 보겠지만 실패하면 치환술이야."

"감사합니다."

"5-0 prolene."

끼기기긱.

니들홀더 조이는 소리가 로젯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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