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죠를 향해서 (1)
'설마…….'
최기석은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며 긴장감을 일깨웠다.
시비조의 말투가 거슬렸다.
잘못하면 조폭 간의 싸움에 휘말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한승우의 말에 긴장감이 탁 풀렸다.
"작은 형님. 오셨습니까?"
한승우가 고개를 숙이자 눈 찢어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옆에 있는 아가는 누구냐?"
"예전에 신세진 친구입니다."
"우리 승우가 신세를 졌다고?"
거리를 좁힌 사내가 최기석을 위 아래로 훑었다.
"안녕하세요. 최기석입니다."
"난 고필수여. 승우랑 할 말이 있는데 자리를 피해 주겠어?"
고필수의 말에 최기석은 순순히 두 사람과 거리를 두었다.
"승우야. 요새 말죽거리 파가 심상치 않다."
"그 새끼들, 우리한테 박살 나지 않았습니까?"
"그게 말이다."
고필수가 담배를 꼬나물며 말을 이었다.
"2주 전인가? 행동대장 하던 놈이 출소했는데 다시 우리 구역을 넘본다는 소문이 있다. 요새 우리 애들 후리고 다니는 게 그 호로 새끼들인 것 같아."
"이 새끼들을 당장!"
한승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워워. 지금은 가만히 있어. 섣불리 건드리면 우리도 재미없으니까. 웬만하면 혼자 다니지 말고. 알았지?"
"네, 형님!"
"아. 그리고 어디 용팔이 구할 때 없냐?"
고필수가 발로 꽁초를 비벼 끄고 새 담배를 물었다.
"안 그래도 찾는 중인데 마땅한 놈이 없습니다."
"창식이 새끼는 더 못 써먹겠다.
"저도 형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현재 캔 커피 파의 용팔이는 유창식이다.
유창식의 치료 능력은 다른 용팔이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그리고 위급한 일이 있을 때 호출해도 좀처럼 현장에 오지 않았다.
거의 무용지물인 셈이다.
'급해도 안 될 일이지.'
한승우는 최기석을 힐끔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학병원 의사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
이 바닥이 어디 좀 위험하던가.
"어쨌거나 내 말 알아들었지?"
"네. 형님."
"난 구역 한 바퀴 돌아가 들어갈 테니까. 네 일 봐."
고필수가 손을 흔들며 멀어졌고 한승우는 그를 향해 90도로 몸을 접었다.
'이제 괜찮겠지?'
최기석이 대화가 끝난 것을 보고 한승우에게 다가갔다.
비싼 음식 잘 얻어먹었으니 집에서 푹 쉬는 일만 남았다.
"어……."
"뭐…… 뭐야?"
최기석과 한승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멀리서 걷던 고필수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
"이 씨발 새끼가!"
"뒈져라!"
고필수를 호위하던 사내들이 모자와 마스크를 쓴 한 사내를 일방적으로 구타했다.
"최 선생. 가 보자."
한승우가 먼저 달렸고 그 뒤를 최기석이 쫓았다.
"아, 씨……."
고필수는 바닥에 힘없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복부에는 한 자루 칼이 박혀 있었으며 그 자리 주변으로 검붉은 피가 번져갔다.
"형님.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저 새끼가 갑자기 칼빵을....."
고필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갯짓으로 얻어맞는 남자를 가리켰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빨리 병원으로 가시죠."
잠자코 있던 최기석이 한마디 했다.
"병원은 못 가."
"네?"
"나…… 수배 중이야. 병원에 갔다간 곧바로 감방행이라고."
"그럼 이대로 죽을 겁니까?"
"감방에서 사느니 여기서 죽지. 뭐."
고필수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숨겨진 임무, '용팔이, 암흑의사' 임무를 획득하셨습니다. 고필수 치료에 성공할 경우 특별한 보상을 드립니다.]
최기석은 알림을 확인하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조폭하고 엮이는 건 사양이지만, 보상에 목을 매고 싶지 않지만, 사람은 구하고 볼 일이다.
"일단 누워 보세요."
"네가 뭔데?"
"누우라고요! 진짜 죽고 싶어요?"
최기석의 다급한 외침에 고필수는 하는 수 없이 바닥에 누웠다.
이상한 일이다.
조직 서열 넘버 투인 자신이 일반인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다니.
하지만 최기석의 말에는 거부할 수 없는 박력이 있었다.
찌지지지직.
최기석은 본인의 셔츠 자락을 찢어서 고필수의 복부를 감았다. 지금은 복부에 꽂힌 단도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다.
"최 선생.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이 상황에서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요. 혹시 치료 도구 같은 건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돼."
"빨리 가죠."
"알았다. 너희는 이 새끼 조져서 어디 소속인지 알아내. 못하면 니네가 뒤진다."
"네! 형님."
최기석과 한승우는 고필수를 부축한 채 걷기 시작했다.
일행은 두 블록 정도 지나서 위치한 1층 카페의 지하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는 상당히 넓었다.
중앙에 수술대와 비슷한 크기의 소파가 놓여 있었으며 양 옆으로 철제 캐비닛이 줄지어 서 있었다.
"너…… 넌 대체 뭔데?"
소파에 누운 고필수가 힘겹게 한마디 했다.
"의사입니다."
최기석은 짧게 대답하고 캐비닛 앞에 섰다.
캐비닛을 열자 각종 처치 도구와 소모품이 눈에 들어왔다.
붕대와 거즈, 포비돈과 과산화수소, 메스와 봉합사 등등.
웬만한 치료 물품은 대부분 구비가 되었다.
필요한 물건을 한 아름 챙겨 소파 앞에 자리 잡았다.
"최 선생. 우리 형님, 살 수 있겠어?"
곁에 있는 한승우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네. 살 수 있습니다."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결과, 고필수의 상태는 응급이지만 최악은 면했다. 만약 칼이 장기를 손상시켰거나 동맥을 건드렸다면 이렇게 혼자서 처치할 생각도 못했으리라.
"시작합니다."
스으으윽.
최기석은 포셉으로 알콜솜을 집어 본인의 손을 닦았다. 그리고 노말 샐라인을 수액 걸이에 걸고 수액 세트에 연결시켰다. 이후 고필수의 팔 하완부를 소독하고 라인을 잡았다.
푸우우욱!
바늘이 피부를 통과하면서 카테터 끝에 피가 맺혔다.
이후 플라스틱 관을 빼내며 수액을 연결했다.
"너, 지…… 진짜 의사였어?"
"그럼 가짜인 줄 알았습니까?"
"승우야. 대체……."
"저도 예전에 최 선생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따로 불러서 식사했고요."
"그런 건 진작 말했어야지."
"둘 다 조용하세요."
최기석의 말에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사각. 사각.
최기석은 고필수의 상의와 단도를 고정하고 있던 셔츠를 가위로 잘랐다. 그리고 두 손으로 단도 손잡이를 잡았다.
"뭐…… 뭐하려고?"
"칼 뽑아야죠. 평생 이러고 살 거 아니잖아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그럼 딱 셋까지만 세고 뺄게요. 하나…… 둘……."
최기석은 둘까지만 세고 곧바로 단도를 뽑았다.
단도를 뽑자 검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미리 준비한 거즈로 상처를 막은 후 직접 압박에 나섰다.
순식간에 피로 물드는 거즈.
최기석은 거즈 몇 장을 더 겹친 채 힘을 주어 상처를 눌렀다. 장기 손상과 내출혈이 없는 경우 병원에 방문해도 이 이상의 처치는 받을 수 없다.
검사 결과 확인 후 경과관찰이 치료의 정석이다.
개복술을 하는 것은 옛일이고 말이다.
직접 압박에 나선 지 어느덧 30분이 지났다.
최기석은 거즈를 떼고 상처를 살폈다.
꾸역꾸역 쏟아지던 피가 멈추고 복부에 칼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잘 참았습니다. 소독하고 몇 바늘만 꿰매면 되겠네요."
최기석은 포비돈으로 상처를 소독하고 리도카인으로 주변 부위를 부분 마취했다.
끼기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봉합에 나섰다.
그야말로 신들린 손놀림, 눈 깜짝할 사이에 고필수의 상처가 꿰매졌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고필수가 가볍게 몸을 일으키며 감사를 표했다.
칼이 복부에 찔릴 때만 해도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최기석의 응급처치로 목숨을 건졌다. 병원으로 가는 위험도 무릅쓰지 않았고 말이다.
"일어나지 말고 누워 계세요. 수액 다 떨어질 때까지는 ABR이니까요."
"ABR?"
"아…… ABR(Absolute Bed Rest)은 꼼짝 말고 침대에서 쉬라는 이야기입니다."
최기석이 설명을 덧붙였다.
"최 선생.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어."
"맛있는 것도 얻어먹었는데 이 정도는 해야죠."
최기석과 한승우가 대화를 나누는데, 갑자기 창고 문이 벌컥 열렸다.
옷과 피부가 찢어지고 얼굴에 멍이 든 사람들이다.
"새끼들 뭐야? 꼴이 왜 그래?"
"죄송합니다. 사이다 파 놈들이랑 시비가 붙어서 밑에 애들이 다쳤습니다. 새로운 용팔이가 왔다는 소문이 들리길래…… 치료를 받으려고……."
한 남자가 대표로 말했다.
그러자 한승우가 한숨 쉬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물론 최기석이 그 뜻을 모를 리 없었다.
"휴우…… 용팔이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네요."
"그럼 다시 도와주는 건가?"
"다시는 이런 일로 저를 엮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도와드리겠습니다."
"알았어. 오늘만 부탁해."
한승우가 눈짓을 보내자 부상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부상자들을 재빠르게 훑었다.
"거기 나비 문신한 사람하고 얼굴에 칼자국 있는 분은 당장 병원으로 가세요."
"네? 저희가 왜요?"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다른 사람들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기석이 지적한 두 명이 가장 멀쩡했다.
"나비 문신한 분은 머리를 다쳤죠? 급성 경막하출혈…… 쉽게 말해서 머리 안에 출혈이 의심됩니다. 칼자국 있는 분은 복부내출혈이 의심되고요. 당장은 괜찮은 것 같지만 조금 있으면 상태가 악화될 겁니다."
"새끼들. 못 들어? 당장 병원으로 튀어 가!"
"아…… 알겠습니다."
"오른쪽에 뭉쳐 있는 분들은 잠시 대기하고 거기 있는 두 분은 저한테 오세요."
최기석은 응급환자 두 명부터 치료했다.
한 명은 옆구리 출혈이 심했으며 다른 한 명은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 징후가 있었다. 두 사람에게 서둘러 응급처치를 한 후 나머지 부상자를 살폈다.
나머지는 대부분 가벼운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었다.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는 것으로 처치가 끝났다.
'휴우…… 이게 환타의 숙명인가?'
최기석은 치료한 환자들을 살피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 * *
덜컹!
카페 문이 열리고 최기석과 한승우가 바깥으로 나왔다.
"고생 많았어. 이럴 생각으로 만나자고 한 건 아닌데."
한승우는 머쓱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고필수부터 조직원의 치료까지, 이래서는 치료를 시키기 위해 최기석을 불러낸 것 같다.
"그건 저도 알아요. 대신 약속한 것만 꼭 지켜주세요."
"암. 그렇고말고. 앞으로 최 선생을 우리 일과 엮는 일은 없을 거야. 대학병원 의사가 용팔이를 한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건 그렇고…… 이거 받아."
한승우가 품에서 종이봉투를 꺼냈다.
"이게 뭐죠?"
"확인해 봐."
"이…… 이건?"
최기석은 봉투 안에 든 것을 보고 몸을 들썩거렸다.
"가볍게 다섯 장 정도 넣었어. 작은 형님이 고맙다는 말을 다시 전해 달라고 하더군."
"네. 그럼 잘 받겠습니다."
빼지 않고 돈 봉투를 챙겼다.
잠깐 처치를 하고서 레지던트 월급 이상을 받을 줄이야.
"다음에 또 보자고. 그때는 이런 일 없는 조용한 데서 말이야."
"형님도 건강하시고 몸조심하세요."
최기석은 한승우와 헤어져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상태창을 열었다.
임무 보상을 확인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