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3)

최기석이 전측방 개흉술로 시야를 확보했다.

"이대로 괜찮겠어?"

곁에 있던 서지훈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전측방 개흉술은 가슴 근육을 절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술 시야가 좁다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만약 그가 집도의였다면 후측방 절개술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최기석은 담담하게 대답하고 용의 눈을 사용했다.

줌 인 모드를 사용하자 절제된 틈 사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문제가 되는 곳은 흉부 상행대동맥.

이곳에서 뻗은 한 혈관이 외상으로 터져서 출혈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스키토."

강하나에게 혈관겸자를 받아 출혈 부위 위쪽을 잡아 주었다.

딸칵!

경쾌한 소리와 더불어 출혈이 멈춰 갔다.

일단 시급한 응급처치는 끝났다.

"지금부터 횡격막 재건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최기석은 폐 하단부에 위치한 늑막과 횡격막을 응시했다.

상태를 확인한 순간 저절로 눈썹이 꿈틀거렸다.

검사에서 나타난 것보다 상황이 더 나빴다.

우선 횡격막이 전체적으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늑막의 일부는 함몰되었으며 횡격막 신경이 늑막에 깔려 있었다.

과거 송명진에게 횡격막 재건술 수업을 받았을 때보다 상태가 더 나빴다.

"2-0 prolene(비흡수성 봉합사)."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며 각오를 다잡았다.

횡격막을 처치하지 않으면 폐 눌림 현상과 탈장 현상들이 발생한다.

응급처치만 끝내고 환자를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선배. 아직 미세한 출혈이 남았는데 석션 좀 해 주실래요?"

"어? 어. 그래."

치이이이익.

서지훈이 뒤늦게 석션에 나섰다.

최기석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느라 본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최기석은 횡격막의 늘어진 첫 부분에 운침한 후 연속 봉합을 시도했다.

연속 봉합이란 봉합 부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봉합하되 처음과 끝에만 매듭을 짓는 방법이다.

'대단한데?'

서지훈은 마른침을 삼키며 최기석을 지켜보았다.

연속 봉합은 봉합 속도가 빠르며 봉합사가 봉합 부위에 균일한 힘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마디로 지금 상황에 어울리는 봉합이다.

레지던트 1년 차가 상황에 맞는 봉합법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본인이 집도했으면 연속 봉합 대신 단순 단속 봉합을 했을 테니까.

서지훈이 감탄하는 사이 최기석은 횡격막 봉합을 거의 끝냈다. 실을 살짝 잡아당기자 너무 느슨하지 않은, 너무 팽팽하지 않은 장력이 느껴졌다.

찰칵!

엄지 매듭법이 끝나자 서지훈이 봉합사를 잘랐다.

"곧바로 주름 성형술 가겠습니다."

주름 성형술은 횡격막 신경의 마비가 있을 때 펼치는 수술이다.

논문으로만 확인하고 동영상은 아직 확보하지 못했지만 과감하게 진행했다.

장혁필이 말하지 않았던가.

모든 수술은 결론적으로 자르고 꿰매고 이어붙이는 것이라고 말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횡격막과 늑막에 대한 처치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최기석은 출혈 부위를 억누르고 있던 혈관겸자를 풀었다.

고여 있던 핏물이 살짝 흐를 뿐, 출혈은 완벽하게 멎었다.

치이이이익.

전기 소작기로 혈관을 지지면서 수술의 막이 내렸다.

'해냈다!'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환자를 살핀 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짜릿함과 뿌듯함.

강렬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수술 부위를 닫자 알림이 귓가를 스쳤다.

띠링!

[특수 임무,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에 성공하셨습니다. 2,000P.

P와 강화석 20개를 보상으로 드립니다.]

[영혼의 활성 스택이 상승하였습니다.]

[영혼 활성(20/700).]

[카리스마 스탯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7/10)]

* * *

수술이 끝난 후 최기석, 서지훈, 이영호는 회의실에 자리 잡았다.

한바탕 수술을 끝내고 야식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선배. 진짜 멋있었어요!"

이영호가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장 교수님이 집도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갈수록 선배 집도에 빠져 들더라고요."

이영호가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오늘 최기석은 흉부외과 집도의 그 자체였다.

수술하는 동안 당황하거나 실수하는 모습은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역시 스승님이세요. 존경합니다."

"인마. 오버하지 마."

최기석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이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지훈은 웃을 수 없었다.

충격이었다.

같은 레지던트 1년 차인 최기석이 집도를 성공시켰다는 사실이.

천재 소리를 들으며 처치나 술기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그 자부심은 오늘로 산산조각 났다.

'확실히 이유가 있었어.'

서지훈은 턱을 쓸어내리며 최기석을 응시했다.

[선배보다 훨씬 능력 있는 녀석이 흉부외과로 왔어요. 직접 보면 깜짝 놀랄 걸요?]

처음 민주혁의 말을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최기석이 그보다 탁월한 솜씨를 지녔음을.

하지만 서지훈은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기석을 꺾고 싶다는 열망으로 몸이 뜨거워졌다.

이제야 제 상대를 만났다.

"선배. 왜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세요?"

"아니. 모기가 있는 것 같아서."

서지훈이 헛기침하며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지이이잉.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데 콜폰이 울렸다.

"아. 교수님께 전화 드린다는 걸 깜빡했네?"

최기석은 번호를 확인하고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네. 교수님."

[아직 수술 중이야?]

"30분 전쯤에 끝났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환자 바이탈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먼저 연락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됐어. 수술만 잘 끝났으면.]

장혁필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뭐랬어. 할 수 있다고 했지?]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그럴 만하니까 시키는 거다. 그리고 네가 수술한 게 걸리면 안 되니까 관련된 사람들 입단속 시켜. 수술은 내가 한 걸로 하고. 아. 그리고 내 사번 알지?]

"네."

[수술기록지도 내 아이디로 접속해서 작성해라.]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통화를 끊고 두 사람에게 오늘 일을 비밀에 부쳐달라고 말했다. 강하나와 신아름은 세이버 팀원이었고 먼저 상황을 설명했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하죠. 선배."

"알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잠시 후 야식시간이 끝나고 두 사람이 병동을 떠났다.

최기석은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한 채 환자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병실 앞에 걸음이 멈췄다.

세이버 수술 대기자인 황기정의 1인실이다. 황기정은 침상 등받이에 기대서 TV를 보고 있었다.

육상의 영웅을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최기석은 병실로 들어가서 황기정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디 불편하신 건 없습니까?"

"가슴이 조금 아프지만 이 정도면 문제없습니다."

황기정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보호자분이 같이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머님은 잠깐 나갔어요. 그런데 선생님 저 수술 받으면 나을 수 있는 겁니까?"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몸 관리까지 잘하신다면 병원 신세를 질 일은 거의 없으실 거고요."

"꼭 그래야 합니다."

황기정이 창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까 주치의 선생님께 말을 못 드렸는데 저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어요. 이대로 시름시름 앓다 죽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황기정의 갑작스런 고백에 최기석은 눈을 깜박거렸다.

황기정에게 약혼자가 있다니, 연예부 기자가 알면 특종감이다.

"솔직히 수술이 쉽지는 않습니다. 좌심실에 딱딱하고 비대해진 근육이 워낙 많은데다가 다른 심장 질환까지 앓고 계셔서요. 하지만 모든 스태프들이 최선을 다해 황 선수를 도울 겁니다."

"……제발 그래 주세요. 전 그동안 운동밖에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선수 때도 그랬고 코치 때도 그랬어요. 이제 좀 세상을 알 것 같은데……."

"다 이해합니다."

최기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격려 스킬을 사용했다.

이에 황기정의 표정이 다소 풀렸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서. 병원에서 혼자 있다 보니 감정적이 돼서."

"아닙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병원에 오면 누구나 그렇게 되는 법이니까요."

최기석은 황기정과 대화를 나눈 후 본관 바깥으로 나왔다.

의사 가운에 손을 넣은 채 정처 없이 병원 내부를 돌아다녔다.

오늘이 100일 당직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민주혁에게 인수인계를 받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돌이켜보면 100일 당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여러 부류의 흉부외과 응급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사이드 미러가 가슴에 박힌 환자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오금이 저렸다.

당직기간을 추억하며 걷는데 등 뒤에서 미세한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뒤를 돌아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착각인가?"

"얍!"

말을 꺼내기 무섭게 무언가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놀라서 다시 뒤를 돌아보자 정설화가 방긋 웃고 있었다.

"설화야! 놀랐잖아."

"그럼 당연히 놀라야지. 놀래키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정설화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정원만 빙빙 돌고."

"뻔하잖아. 우리 설화 생각이지."

최기석이 웃으며 두 손으로 정설화의 볼을 꼬집었고 정설화는 얼굴은 붉힌 채 고개를 숙였다.

"잘됐네. 안 그래도 전화할 생각이었는데. 아지트로 가자."

"응."

두 사람은 아지트에 도착해서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정말 미안해. 괜히 나 때문에……."

정설화가 대뜸 사과부터 했다.

"사정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오프야 다음에 또 맞추면 그만이고."

"그거야 그렇지만."

"뭐. 미안하면 다음 오프 때 나한테 더 잘해 줘."

최기석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오늘 100일 당직이 끝나면 이틀간의 오프가 주어진다.

감격의 첫 오프이자 정설화와 함께 보내기로 한 오프.

하지만 정설화가 한국내과학회에 1박 2일로 연수를 가게 되면서 여행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응. 기대해도 좋아. 내가 화끈하게 해 줄게."

"어떤 식으로?"

"구…… 구체적으로 무…… 물어보지 마."

정설화의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혹시 코스프레 같은 거 해주는 거야? 간호사? 아니면 교복? 그것도 아니면 바니걸?"

"몰라!"

최기석의 짓궂은 장난에 정설화가 고개를 휙 돌렸다.

"미안. 장난이잖아. 화 풀어. 응?"

"……."

"설화야. 내가 잘못했어.

최기석은 두 손을 싹싹 빌었지만 정설화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야 최기석을 똑바로 응시했다.

두 볼은 여전히 터질 것처럼 빨갰다.

"너는 뭐…… 뭐가 좋은데?"

정설화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설화의 사랑스런 모습에 최기석은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바보. 너라면 다 괜찮아."

"응."

최기석은 정설화를 안은 채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그런데 문득 송명진에게 받은 메일이 생각났다. 더불어 조만간 한국을 떠나게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설화야. 사실 나……."

"왜?"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사랑한다고."

최기석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얼버무렸다.

그가 메이죠 병원에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정설화도 알았다. 문제는 정설화나 자신이나 그 시기가 레지던트 2년 차는 돼야 올 줄 알았다는 점이다.

"근데 오프 때는 뭐할 거야? 하고 싶은 거 있어?"

정설화가 화제를 돌렸다.

"글쎄…… 할 일이라……."

최기석이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