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 (5)
"제 생각에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른 팀이라고 견제하는 거예요?"
"절대로 그런 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노우드 수술은 워낙 난이도가 높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 인터벌이 필요하고 추가 수술까지 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했습니다."
장혁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노우드 수술은 소아 좌심실 부전증의 1차 수술이다.
노우드가 끝나면 육 개월 후에 상대정맥 - 폐동맥 단락술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폰탄 수술을 한다.
이어지는 2차 수술과 3차 수술까지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노우드가 어렵긴 하지만 권 교수라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그 점에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한국소아흉부외과 협회 직원 두 명이 참관실로 들어왔다.
협회원 이만식과 고종현이다.
"아침부터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아이고. 과장님. 고생은 무슨 고생입니까? 노우드 수술을 참관할 수 있으면 땅끝 마을이라도 가야죠."
조지환의 인사에 이만식이 너스레를 떨었다.
"얼마 전 세이버 수술을 성공시키고 중국 창진대 병원과 협력체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올해는 일이 잘 풀리려는 모양입니다. 앉으시죠."
조지환은 비워 둔 옆 자리에 두 사람을 앉혔다.
'슬슬 시작하려나?'
최기석의 시선이 대형 모니터로 향했다.
오늘은 오전 스케줄이 없어서 노우드 수술을 참관할 수 있었다.
비록 수술실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모니터 영상이라도 동영상으로 떠놓을 생각이다.
지이이잉.
로젯 문이 열리고 노우드 스태프들이 입장했다.
최기석은 스태프들의 면면을 살피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민주혁 대신 서지훈이 제3보조로 들어왔다.
서지훈이 노우드 팀에 들어갔다는 사실과 민주혁이 밀렸다는 사실, 두 가지 모두 놀라웠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최기석은 당혹스러움을 접어두고 권일수에게 히포크라테스의 눈을 사용했다.
[소속: 팀 노우드]
[팀 레벨: 2.4/5]
[단결력: 2/5]
[처치레벨: 3/5]
노우드 팀의 팀 스탯을 살피며 턱을 쓸어내렸다.
노우드 팀은 팀 레벨과 처치레벨에 있어서 근소하게 세이버 팀을 앞섰다. 세이버 팀이 노우드 팀보다 높은 수치는 단결력 하나다.
노우드 스태프들의 경력이 전반적으로 세이버 팀보다 높기 때문인 듯싶었다.
'괜찮겠지.'
최기석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낙상환자를 구하고 얻은 버프를 권일수에게 써야 하는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결론은 No.
결국 버프를 가지고 있기로 했다.
본인이 권일수의 수술을 걱정하는 것은 번데기 앞에 주름잡는 것이라 다름없었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 왔을 때 본인에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스태프들이 자리 잡았다.
최기석은 용의 눈을 사용한 채 모니터를 응시했다.
"준비한 대로만 하면 된다. 다들 긴장할 필요 없어. 알았지?"
"네!"
권일수의 말에 스태프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 수술 준비가 끝났다.
"지금부터 좌심실 부전증에 대한 노우드 수술을 시작한다."
권일수의 눈짓에 제3보조인 서지훈이 환자의 가슴을 넓게 소독하고 방포를 덮었다. 이후 제2보조인 우재원이 메스로 환자의 가슴을 가르고 전기톱을 들었다.
위이이잉. 빠드드득. 위이이잉. 빠드드득.
전기톱 소리와 뼈 부서지는 소리가 앙상블을 이뤘다.
정중흉골 절개가 끝나자 서지훈과 우재원이 견인기로 환자의 가슴을 벌렸다.
"심정지액 주입하고 심폐기 돌린다."
"네!"
민병석이 동맥 캐뉼라와 정맥 캐뉼라를 꼽자 인공심폐기가 작동했다.
'반드시 해낸다!'
권일수는 수술용 참관실을 잠깐 응시하고 각오를 다졌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본인과 스태프들을 끊임없이 채찍질해 왔다.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서.
본인의 영광을 위해서.
장혁필의 콧대를 꺾기 위해서 이번 수술은 성공해야 한다.
딸칵!
민병석이 혈관겸자로 상행대동맥을 붙잡았다.
출혈을 막기 위함이다.
"메스."
권일수의 칼날이 상행대동맥을 향했다.
노우드 환자의 경우 좌심실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좌심실에서 위쪽으로 뻗어 나가는 상행대동맥 역시 가늘고 얇다.
노우드 수술의 첫 단계.
그것은 비정상인 상행대동맥을 새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스으으윽.
칼날이 상행대동맥의 옆면을 갈랐다.
혈관에 남았던 피가 흐르자 옆에 있던 서지훈이 석션에 나섰다.
'침착하면 돼.'
권일수는 상행대동맥 옆에 위치한 주폐동맥의 옆면까지 갈랐다. 두 혈관의 절개 부위가 길이가 균등했으며 다른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다.
"저희 둘이 잡고 있겠습니다."
"그래."
권일수의 대답에 민병석과 우재원이 포셉으로 두 혈관을 잡아 맞붙였다.
"5-0 prolene."
끼리리리릭.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인 후 봉합에 나섰다.
지금부터 할 일은 상행대동맥과 폐동맥을 봉합해서 부실한 상행대동맥을 보완하는 것이다.
본격적인 봉합이 시작되면서 수술실이 고요해졌다.
스태프의 신경은 전부 권일수의 손에 집중되었다. 권일수의 한 매듭, 한 땀에 수술의 성패가 갈린다.
"재원아. 손이 너무 떨린다."
"죄……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집중해. 거의 끝나가니까."
권일수는 숨까지 참아 가며 섬세하게 봉합을 이어 갔다.
찰칵!
서지훈의 커팅에 봉합사가 잘려 나갔다.
노우드 수술의 1단계인 상행대동맥 재형성이 무사히 끝났다.
민병석이 거즈로 피 묻은 자리를 닦는 사이, 권일수는 고개를 돌리며 잠깐의 여유를 가졌다.
본격적인 수술은 지금부터다.
기존의 폐동맥을 상행대동맥에 붙였기에 새로운 폐동맥 길을 만들어야 한다.
"메스."
날카로운 칼날이 움직였다.
권일수는 두 갈래로 갈라진 폐동맥의 초입부에 메스를 대고 일자로 내리그었다.
반쪽이 난 폐동맥.
한쪽 폐동맥은 상행대동맥과 붙었으며 다른 한쪽으로 따로 떨어져나갔다.
"dakron(인공혈관)."
권일수의 지시에 민병석이 인공혈관을 홀로 떨어진 폐동맥과 맞췄다.
"지금까지 잘했고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하면 돼. 알았지?"
"네!"
권일수는 차분하게 인공혈관 봉합에 나섰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손에 감각이 없어졌다. 왠지 몸이 붕 뜬 듯한 느낌도 들었다. 수술 1단계에서 지나치게 정신력을 소모한 듯싶었다.
'병신 같이 뭐해. 정신 차려!'
권일수는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과거에는 열두 시간이 넘는 수술까지 거뜬히 해냈다. 이 정도로 정신이 흐트러지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탁!
수술 도구를 내려놓고 참관실을 응시했다.
가장 앞자리에 있는 조지환과 소아흉부외과 협회원, 장혁필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계속되는 Blalock-Taussig 단락술.
수술실뿐만 아니라 참관실에도 고요함이 깃들었다.
'피곤한데?'
장혁필은 모니터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노우드 팀이 변했다.
이전 수술에서 노우드 팀은 철저하게 권일수 위주로 돌아갔다. 권일수가 핵심적인 처치를 하며 다른 스태프들은 철저하게 뒤를 받쳐 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전 스태프들이 유연하게 움직였다.
제3보조인 서지훈이 석션을 했으며 제2보조가 수술 부위를 고정시켰다. 제1보조인 민병석 역시 이전보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권일수 1인 체제가 아닌 진정한 팀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장혁필은 답답한 마음에 팔짱을 꼈다.
그가 생각한 노우드 팀의 약점이 사라졌다.
그 말인 즉 노우드 팀이 세이버 팀을 위협할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뜻이다. 슬쩍 조지환을 바라보니 그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권일수의 수술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런 식이라면 심장 클리닉이 오픈했을 때 치열한 싸움을 피할 수 없으리라.
찰칵!
가위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 퍼졌다.
노우드 수술의 중추라고 볼 수 있는 상행대동맥과 폐동맥 수술이 끝났다.
"시험해 볼까?"
"네."
제2보조 우재원이 폐동맥에 생리식염수를 부었다.
식염수가 폐동맥에서 찰랑거렸지만 봉합한 부위로 흐르지는 않았다.
단락 형성은 성공적이다.
치이이이익.
식염수를 석션기로 빨아들이고서 마지막 수술에 나섰다.
심방중격 처치술로 중격에 생긴 두꺼운 조직을 살짝 잘라 주면 된다.
텅!
조직이 떨어지면서 노우드 수술이 끝났다.
서로를 바라보는 스태프의 눈에 뿌듯함이 깃들어 있었다.
"수술 부위는 재원이가 닫아라."
"제…… 제가 말입니까? 이건 원래 과장님이 하시는 일인데……."
"괜찮아. 펠로우 2년 차인데 이 정도를 못 맡기겠니?"
"알겠습니다."
우재원이 수술 부위를 닫았으며 곧 인공심폐기가 꺼졌다.
"환자 바이탈 정상입니다."
"봉합사, 거즈, 커튼볼 카운팅 이상 없습니다."
마취의와 소독간호사의 말이 짜릿하게 등줄기를 훑고 지나갔다.
권일수는 울컥하는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고맙다. 다들 고생했어."
* * *
그날 오후.
병동 업무 중이었던 최기석은 전화를 받고 1층으로 내려갔다.
카페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입니다. 최 선생님."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하나도 안 바쁘니까 자주 불러 주세요."
박광수 기자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뭐라도 시켜야겠죠?"
최기석은 커피를 주문한 후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확실히 의외는 의외네요. 최 선생님이 먼저 전화할 줄은 몰랐는데."
"하하하…… 저도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의진대는 여러모로 이슈가 많이 되네요."
박광수가 화제를 돌렸다.
폐암 심포지엄 개최, 중국 창진대 병원과의 협력체결, 세이버 수술과 노우드 수술의 성공, 심장 클리닉의 대규모 리모델링 등등.
대형 포털사이트 뉴스를 보면 의진대 소식만 보일 정도다.
"과장님이 원하는 게 그런 거니까요."
"뭐. 병원 입장에서는 그런 걸 선호하겠죠. 하는 꼴을 보니까 과장 2년 정도 해먹다가 부병원장 선거에 나가겠네요."
"아마도 그렇겠죠?"
"저도 동감입니다."
위이이잉.
때마침 울리는 진동벨.
최기석은 진동벨을 가지고 계산대에 가서 커피를 받아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박 기자님을 찾은 이유는 엘리타에 대한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주셨으면 해서입니다."
"엘리타라면…… 얼마 전에 출시된 폐암 치료제군요."
"네. 그 약, 문제의 소지가 있는 약입니다. 제 지인은 엘리타 투약 후에 급성 심근경색을 겪었어요."
"흐흠…… 안 그래도 항간에 부작용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기는 합니다."
박광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최 선생님 말대로 부작용의 주 증상이 피부발적하고 급성심근경색이고요."
"이미 알고 계신다니 마음이 편하네요. 제가 부작용 케이스 자료를 넘기면 크게 터뜨려 주실 수 있나요?"
"못할 거야 없죠. 하지만 그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왜죠?"
"엘리타는 양천제약에서 크게 밀고 있는 신약입니다. 이미 식약처에서 정식승인까지 받았고요. 부작용 케이스 몇 건으로 판매 중단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박광수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피해자가 늘어납니다. 먼저 조치를 취해야 해요."
"그거야 그렇지만……."
"기자님은 기사만 잘 내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최기석은 가운 속에서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했다.
이윽고 정장을 차려입은 사내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부터 지원군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