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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닥터 최기석-138화 (137/407)

해야 할 일 (3)

최기석은 에어 샤워를 마친 후 문민경이 있는 격리실로 들어갔다.

어제와 달리 문민경이 깨어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몸은 좀 어떠세요?"

"다른 건 괜찮은데 가슴이 너무 아파요. 왜 그런 거죠?"

"수술 후유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며칠간은 계속 될 거예요."

최기석은 그녀의 통증이 정중흉골 절개술과 견인기 사용에 의한 것임을 덧붙였고, 문민경은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식이 돌아온 후에 생각해 봤는데요. 역시 수술받기를 잘한 것 같아요. 바보같이. 요상한 민간요법에 혹해서."

"너무 자책하실 필요 없습니다. 몸이 아프면 누구나 유혹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환자분은 좋은 시기에 수술을 잘 받으셨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문민경이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이 절 설득하지 않았다면 전 아마 킬라렌 치료를 받느라 쓸데없는 시간을 보냈을 거예요. 병세도 악화됐겠죠."

"……."

"보답으로 뭐라도 해 드리고 싶은데. 필요한 거 있으세요?"

"환자분이 건강을 되찾으시는 걸로 충분합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진심으로 선물을 주셔도 촌지를 받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 모가지예요."

"참 나. 세상이 너무 각박하네요."

문민경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하여간 선생님 정말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당분간 격리실에서 편히 쉬시고요. 나흘 정도 있다가 순환기내과 병동으로 가실 거라는 거 알아 두세요."

최기석은 문민경과 대화를 끝내고 흉부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환자를 치료한 것으로 별도의 보상을 받으려는 생각은 없다.

환자를 치료하는 일 자체가 목적이기에.

드르르륵.

희의실로 들어가자 이영호가 곰 인형을 꿰매고 있었다.

"선배, 안녕하세요."

"오늘도 열심이네?"

"부지런해야 실력이 늘죠. 제가 꿰맨 거 한번 보실래요?"

이영호가 자랑스럽게 방금 막 꿰맨 곰 인형을 내밀었고 최기석은 가만히 인형을 살폈다.

확실히 얼마 전에 비해 솜씨가 좋아졌다.

우선 매듭 간의 간격이 균일했다.

봉합사는 너무 느슨하지도, 너무 타이트하지도 않았다.

일취월장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상황.

이영호의 노력, 그리고 사제지간을 맺으면서 얻은 버프가 시너지를 일으킨 덕분이리라.

"이제 잘하네. 오늘 아침에 보낸 준 논문도 좋았다."

"정말요?"

"그럼 가짜일 것 같아?"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최기석은 자리에 앉아서 레지던트 1년 차의 잡무를 처리하고 곰 인형을 손에 쥐었다.

연습이 필요한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다.

끼기기긱.

니들홀더를 조이며 상태창을 살폈다.

[망가진 봉제인형(145/150)]

필요한 인형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

최기석은 손에 모터를 단 것처럼 봉합에 나섰다.

인형의 왼팔에는 단순 단속 봉합을, 오른팔에는 연속 봉합을 펼쳤으며 복부에는 세이버 수술의 핵심 처치라 볼 수 있는 쌈지 봉합을 펼쳤다.

그 밖에 유치 봉합과 함몰 봉합, 수평 매트리스 봉합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와, 미쳤다.'

이영호는 봉합하던 중 맞은편에 있는 최기석의 봉합을 보곤 흠뻑 빠졌다. 봉합사를 인형 표면에 통과시키는 속도, 매듭을 짓는 속도가 발군이다.

속도가 빠르면 봉합이 허접할 법도 하건만, 최기석의 봉합은 그의 봉합과 별 차이가 없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영호가 인형 하나로 연습하는 동안 최기석은 무려 네 개의 인형을 봉합했다.

찰칵!

가위를 내려놓으며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기분 좋은 알림이 귓가를 스쳤다.

[특별 임무, '스킬 배우기2'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신규 스킬 고속집도가 생성됩니다.]

[빠른 임무 완수로 특수 보상이 주어집니다!]

[새로운 얻은 고속집도의 레벨이 2단계부터 시작됩니다.]

[고속집도 Lv.2]

- 수술 시간이 대폭으로 단축됩니다.

- 수술 난이도에 따라 단축 시간, 수술 실패 및 환자예후가 달라집니다.

고속집도는 시간을 다투는 응급수술에 최적화된 수술이다.

어제 연습했던 대동맥 박리나 흉부외상을 입은 환자에게 특히 유용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로 인해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처치 정확도를 1.5배 올려 주는 젬과 봉합의 견고함을 2배로 상승시켜 주는 젬.

이 두 가지가 고속집도의 단점을 보완해 주리라.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윤지혜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최기석과 이영호가 인사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기석아. 괜찮으면 잠깐 나 좀 볼까?"

"네."

최기석은 윤지혜와 휴게실에 자리 잡았다.

"교수님하고 이렇게 둘이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너나 나나 워낙 바빴잖아. 나는 심포지엄하고 해외 논문 준비했고 넌 세이버 수술이 있었으니까."

윤지혜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세이버 케이스 수술 끝나니까 좀 살 만하지?"

"네. 그래도 아직 긴장을 늦추면 안 될 것 같아요. 장 교수님 이야기로 이번 수술은 환자 케이스가 워낙 좋았대요. 상태가 나쁜 환자가 들어오면 만만치 않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건 나도 동감이야. 좌심실류에 복합질환이 겹쳐지면 난이도가 확 뛰니까."

윤지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도 지금의 세이버 팀이라면 앞으로도 충분히 잘하겠지."

"네. 응원 감사합니다. 그런데 해외 논문 준비는 끝내셨나요?"

"어젯밤에 간신히 끝냈지. 잠을 못 잤더니 피곤해."

윤지혜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신뢰하는 최기석에게만 보여 주는 표정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교수님. 죄송한데 부탁 한 가지 드려도 될 까요?"

"말해 봐."

"그게…… 제가 로봇 수술을 배워 보고 싶은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로봇 수술? 갑자기 왜?"

"미리 배워 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예전하고 달리 요즘은 로봇 수술 많이 하잖아요. 한 번 제대로 배워 두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요."

최기석은 말을 마치고 윤지혜의 눈치를 보았다.

윤지혜의 로봇 수술 능력은 흉부외과 톱이다.

더불어 로봇 수술에 관한 스킬을 유일하게 보유했으며 스킬의 레벨은 만렙 직전인 4단계다.

그녀에게 로봇 수술을 배우면 앞으로가 편해진다.

"너 진짜 욕심쟁이구나."

윤지혜가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욕심쟁이요?"

"그럼 욕심쟁이가 아니면 뭔데?"

최기석은 수술을 가리지 않고 어시스트에 들어가며 세이버 팀에 소속되어 있다. 지금 당장의 일만 해도 벅찰 텐데 로봇 수술까지 탐내고 있었다.

그것이 치료에 대한 욕심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세상에 너 같은 의사는 대한민국에 또 없을 거야."

"그럴까요?"

최기석이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단 알았어. 어떤 식으로 가르쳐 줄지 생각해 보고 자리를 만들어 볼게."

"감사합니다."

"덕분에 심포지엄도 무사히 넘겼는데. 이 정도쯤이야. 슬슬 일어날까?"

두 사람은 그대로 회의실에 돌아갔다.

이윽고 스태프들이 하나둘 모였다.

"그럼 권 교수님, 이제 슬슬 회의를 시작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과장님 아직 안 오셨는데?"

장혁필의 말에 권일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권 교수님은 아직 못 들으셨습니까? 과장님 오늘 아침에 급하게 중국으로 가셨습니다. 저번에 창진대 병원과 협력 관계를 맺는 일로요."

"……."

"이상하군요. 제가 아는 걸 권 교수님이 모르다니."

장혁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조지환의 마음이 본인에게 쏠렸다는 것을 은근히 어필하는 것이다. 이에 권일수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탁자에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오늘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신다니까 알아 두시……."

"그럼 회의 시작하지."

권일수는 장혁필의 말을 자르며 회의를 주도했다.

같은 조교수라 해도 연차는 권일수가 훨씬 높았다.

회의의 첫 순서는 케이스 발표.

이영호가 긴장한 얼굴로 스크린 앞에 섰다.

그는 이미 흉부외과에서 한 달을 지냈기에 흉부외과의 케이스 발표가 빡세다는 것을 잘 알았다.

'침착하자.'

심호흡하며 권일수를 힐끔거렸다.

주제에 대한 공부는 충분히 끝마쳤다.

팩트 폭격기인 권일수의 질문 세례만 잘 피한다면 무사생환이 가능했다.

"제가 오늘 발표할 주제는 승모판 치환술입니다. 지금부터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영호가 스크린에 발표 자료를 띄우고 설명을 이었다.

'잘하는데?'

최기석은 이영호를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준비를 많이 했는지 자료를 읽지 않은 채 스태프와 눈을 맞추며 발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료의 퀄리티가 자세하면서 최근 흐름까지 반영하고 있었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영호 잘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장혁필이 박수치며 이영호를 치켜세웠다.

다른 스태프들의 반응도 대체적으로 좋았다.

"그건 두고 봐야지. 승모판막 재건술을 할 건지, 치환술을 할 건지 결정하는 건 승모판막의 역류구간의 면적이다. 면적의 기준은 어떻게 되지?"

"0.20 제곱센티미터 미만이면 경도의 역류증, 0.20 제곱센티미터 이상에서 0.40 제곱센티미터 미만이면 중도의 역류증, 0.40 제곱센티미터 이상이면 중증으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승모판 치환술의 기능 부전 세 가지를 말해 봐."

"판막의 협착, 판막의 역류, 판막의 협착과 역류가 혼합된 타입입니다."

이영호의 대답에 권일수가 됐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일종의 합격신호.

이영호는 팩트 폭격기의 공세에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케이스 발표 이후 입원환자 상태 보고, 수술환자 스케줄 확인 등이 순서대로 끝났다.

"오늘 회의는 이걸로 끝입니다. 참고로 이틀 뒤 노우드 팀의 케이스 수술이 예정되어 있어요. 여유가 되는 사람은 참관하러 오세요."

권일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스태프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어진 회진 역시 별 탈 없이 끝났다.

타다다다닥.

최기석은 빠른 걸음으로 순환기내과 외래를 찾았다.

환자 대기석에 앉아 있는데 복도 끝에서 다가오는 김철우가 보였다.

김철우는 최기석이 순환기내과에서 일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정설화와 사제 관계를 맺었고 말이다.

더불어 그는 특이하게 순환기내과와 호흡기내과 진료를 동시에 보는 능력자기이도 했다.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기석이. 오랜만이다."

김철우가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어? 외래가 시작하기도 전에 달려오고 말이야."

"아픈 건 아니고 교수님께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럼 안에서 하지."

최기석은 김철우와 외래진료실로 들어갔다.

"할 말이 뭔데?"

김철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최근에 출시된 폐암 치료제 엘리타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

"엘리타라…… 내과 약에 관심 있는 줄 몰랐는데?"

"지인이 본원에서 투약 중이라서 남 일 같지 않습니다."

"그래? 지인이 입원했다고?"

"네. 오늘 아침에 발작을 일으킨 최미순 환자입니다."

최기석의 말에 김철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신경 쓰이겠군. 엘리타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자면…… 솔직히 좋게 보지는 않으니까."

"혹시 어떤 이유 때문인지 궁금합니다."

"뭔가 석연치 않아. 부작용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엘리타 투약 이후에 피부발적이 생긴 환자도 있고 오늘 아침에는 네가 말한 그 환자가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키기도 했고."

"……."

"어제 내과의들끼리 모임을 가졌는데 몇몇 병원에서 비슷한 케이스가 있더군. AMI랑 피부발적이 공통점이야."

"그럼 문제가 있는 약 아닙니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 문제는 이 정도 부작용으로 제약회사가 꿈쩍이나 하겠냐는 거지. 동기 중 하나가 이미 식약처에 민원을 넣었는데 단번에 잘렸다더군."

김철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게도 당장 엘리타를 끌어내릴 방법은 없어.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부작용이 있는 환자들에게 선택적으로 투약을 중단하는 것뿐이지."

최기석은 김철우의 말을 곰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됐을까?"

"네. 그런데 교수님. 만약 교수님께서 엘리타 처방을 금지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한 걸 뭐하러 물어.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약은 사라져야 해."

"저도 교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제가 이번 일에 판을 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기석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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