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37화 (136/407)

해야 할 일 (2)

대동맥 박리.

이것은 대동맥류(대동맥이 탄력 없이 늘어지고 약해지는 현상) 또는 기타 외상으로 대동맥이 파열된 상태를 말한다.

이 파열로 인해 새롭게 생겨난 부위를 가성, 원래 피가 흐르던 공간을 진성이라 부른다.

치료법은 가성 부위를 완전히 절제하고 진성 부위를 인조혈관으로 대체해 주는 것이다.

스으으으윽.

메스가 대동맥을 수직으로 갈랐다.

대동맥이 벌어지면서 내부의 모습이 한눈에 드러났다.

'자. 시작해 볼까?'

최기석은 일부러 혈관을 망가뜨렸다. 과거 송명진과 수술했던 환자의 수준으로.

그러자 대동맥 내부가 금세 피로 흥건해졌다.

치이이이익.

한손으로 석션하며 다른 손으로는 전기 소작기를 들었다.

소작기가 가성에 닿는 순간 살 타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소작기를 이용한 응급지혈 후 메스로 과감하게 가성을 잘랐다.

텅!

흐물흐물한 혈관이 곡반에 떨어졌다.

'더 빨리!'

스스로를 다그치며 진성 봉합에 나섰다.

대동맥 박리 수술의 핵심은 속도다.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하거나 여유 부릴 틈이 없다.

최기석은 포셉으로 인조혈관을 들어서 진성 부분에 맞췄다.

'젠장!'

진성에서 계속 피가 흘렀다.

시야가 방해를 받으면서 진성과 인조혈관의 끝을 맞추는데 애를 먹었다.

본래라면 수술 보조가 곁에서 석션을 하며 진성과 혈관의 끝이 잘 닿도록 잡아 줘야 한다. 그래야 봉합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지트에서 그것을 바랄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 최기석은 집도의면서 수술보조이고 간호사 역할까지 해야 한다.

가까스로 진성과 가성혈관을 맞추고 봉합에 들어갔다.

단단문합술(end-to-end anastomosis).

수술 부위의 양쪽 끝부분을 연결해 주는 봉합법이다.

최기석은 봉제인형 꿰맬 때를 떠올리며 손놀림에 박차를 가했다.

모처럼 스승 앞에서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성장한 모습을, 써전으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는가.

찰칵!

가위로 봉합사를 자르면서 첫 번째 단계가 끝났다.

최기석은 다음 수술 부위인 대동맥궁을 살폈다.

대동맥궁이란 쭉 뻗어 나가던 대동맥이 활처럼 굽어진 부위를 일컫는다. 상행대동맥 파열을 손본 후에 대동맥궁을 처치하는 것이 정석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마. 이쯤이었지?'

최기석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과거 수술에서는 대동맥 궁에 처치하려고 할 때 가강이 터지고 말았다.

그 출혈을 잡지 못해서 환자는 사망했고 말이다.

스으으윽.

최기석이 메스를 움직이자 대동맥 궁에 있는 혈관 분지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쳤다.

"최 선생. 혹시 그때 상황까지 재현하는 겁니까?"

"……네."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양손에 석션기를 쥐어 피를 빨아들였다.

치이이이익.

아지트에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다만 양손으로 석션하고 있음에도 피가 계속 차올라 수술 시야를 가렸다. 양손 석션조차 진성과 가성에서 동시에 터지는 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것 역시 예전과 같은 상황.

'혼자서 정답을 찾았단 말인가?'

송명진은 물끄러미 최기석을 응시했다.

지금의 송명진은 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메이죠 병원에 간 후 다른 흉부외과의와 대화하면서 새로운 요령을 터득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최기석이 발견했는지는 의문이다.

'가자!'

최기석은 석션을 끝낸 직후 한손으로 진성의 혈관 한쪽과 인조혈관을 붙잡았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 봉합을 시도했다.

이른바 한손 봉합이다.

석션을 하지 않으면서 대동맥 궁은 금세 피바다로 변했다.

더불어 진성과 가성이 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최기석은 자신감을 가지고 봉합술을 이어 갔다.

비록 보이지는 않아도 진성과 인조혈관의 감촉이 손에 남아 있었다.

이 감각을 믿으며 봉합하면 문제는 없다.

한쪽 측면을 봉합한 후 같은 방식으로 다른 측면을 봉합하자 출혈이 줄었다.

최기석은 가성을 조심스럽게 박리하고 전기 소작기로 지졌다. 이에 피바다였던 대동맥궁이 원 상태로 돌아왔다. 상행대동맥 박리 처치술과 대동맥궁 박리 처치술을 완벽하게 끝낸 것이다.

수술을 끝내자 뿌듯함이 밀려왔다.

각고의 노력으로 스승 앞에서 과거의 아픔을 떨쳐 냈다.

짝. 짝. 짝. 짝.

처치가 끝나자 송명진이 박수를 쳤다.

"대단해요, 최 선생."

"감사합니다. 하지만 교수님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거야 그렇죠."

송명진은 농담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최기석의 성장속도를 과소평가했던 모양이다.

그가 보여 준 솜씨는 레지던트 1년 차가 아니라 펠로우에 육박했다. 그 어떤 레지던트가 어시스트 없이 대동맥 박리를 집도하며 매끄러운 결과를 뽑아낼 수 있을까.

게다가 출혈에 대처하는 방식 또한 경이 그 자체다.

그가 외국 흉부외과의와 토론 끝에 발견한 방식을 최기석은 혼자서 터득했다.

"고생했고 오늘 집도 잘 봤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수준에서 의진대 병원에 있는 건 너무 아깝군요."

"……."

"벌써 집도 가능한 수준인데 수술 보조만 해야 한다니……. 주변 사람 눈치 없이 수술하려면 펠로우는 되어야 할 텐데."

"……네."

송명진이 정곡을 찌르자 최기석은 힘없이 대답했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장혁필의 도움으로 CABG를 한 적이 있다지만 그건 매우 특수한 경우다.

실제로 이후 단 한 번도 집도를 한 적이 없었다.

"최 선생이 메이죠에 오는 시기를 좀 당겨 봐야겠군요."

송명진이 턱을 쓸어내렸다.

"메이죠는 아무래도 집도 쪽이 자유로우니까요. 그리고 내가 힘쓰면 못할 것도 없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일찍 메이죠에 가면 세이버 팀은 어떻게 되는지……."

"그건 걱정 말아요. 내가 장 교수에게 잘 말해 둘 테니까. 게다가 장 교수가 최 선생의 메이죠 행을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맞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최 선생 본인만 생각해요. 잘 성장하면 언젠가 주변 사람을 챙길 수 있는 위치에 가기 마련이니까."

"네."

"최 선생 실력을 보고 나니까 속이 후련하네요. 마음 놓고 메이죠로 돌아갈 수 있겠어요."

송명진이 웃으며 최기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 * *

다음 날 아침.

최기석은 당직실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이제 신경 좀 쓰네."

이영호가 보낸 논문 감상평을 확인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저번에 갈군 이후 감상평의 퀄리티가 눈에 띄게 상승했다. 국내외 자료를 참고하는 부분이나 본인의 생각을 담은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이런 수준으로 훈련을 계속 한다면 금방 지식이 늘어나리라.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고 아지트로 향했다.

"잘 됐네."

아지트 앞에 놓인 작은 스티로폼 박스가 반가웠다.

오늘은 모처럼 새끼 양 심장으로 소아심장 수술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재빠르게 세팅을 마치고 팔로 4징증 수술을 시작했다.

팔로 4징증 수술은 소아흉부외과에서 가장 많이 하는 수술 중 하나다.

또한 장기 미션인 최고를 향해서에 필요한 수술이기도 하다.

필히 마스터할 필요가 있었다.

"휴우……."

최기석은 니들홀더를 손에서 놓으며 휴대폰을 응시했다. 모처럼 알람이 울리기 전에 수술을 끝냈다. 그만큼 수술이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띠링!

[수술 마스터리가 1단계 상승하였습니다.]

[팔로 4징증 수술: 4/5]

기분 좋은 알림을 뒤로 하고 아지트를 떠났다.

최미순을 볼 겸 호흡기내과 병동으로 향하는데 방송이 귓가를 때렸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호흡기내과에서 코드 블루 발생.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호흡기내과에서 코드 블루."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훑었다.

타다다다닥.

최기석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호흡기내과에 도착하자 맞은편 복도에서 호흡기내과 스태프 두 명이 침상을 끌며 달려왔다.

'아…….'

침상에 누운 사람을 확인한 순간 신음이 터졌다.

코드 블루의 주인공은 바로 최미순이다.

"도와줄 거 없어?"

최기석은 침상 끄는 동기 유철환과 달리는 속도를 맞췄다.

"앰부(호흡을 돕는 에어백) 좀 짜 주라."

"알았어."

최기석은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하고 각성 CPR 버프를 걸었다.

더불어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최미순을 상태를 살폈다.

진단명은 급성 심근경색.

상태는 응급이고 경과는 불량이다.

위암과 위암으로 인한 전이성 폐암을 앓는 최미순이지만 그녀의 심장만큼은 건강했다. 그런데 급성 심근경색이 찾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윽고 최기석과 스태프들이 내과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에피네프린 IV로 부탁해. 나는 흉부압박 할 테니까."

"아니. 흉부압박은 내가 할 테니까 IV를 네가 놔. 그게 좋겠다."

최기석이 서둘러 흉부압박에 나섰다.

본인이 흉부압박을 해야 각성 CPR의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진 십여 분간의 사투.

최미순은 간신히 자발순환 회복을 되찾았다.

나이와 지병, 제세동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쾌거다.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유철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뭐. 근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게…… 나이트 간호사가 바이탈 체크하는 중에 할머니가 발작을 일으켰대."

"발작이라……."

최기석이 턱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어르신이 AMI(Acute Myocardial Infarction, 급성 심근경색)를 겪을 이유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고혈압도 없고 가족력도 없고, 담배도 안 피시고."

"내 생각에는 폐암 치료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심한 과로가 심근경색의 원인이 될 수 있잖아."

"글쎄. 어르신은 치료받고 침상에만 누워 계셔. 과로는 납득하기 힘들어."

최기석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혹시 엘리타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엘리타 투약한 지 얼마 안 됐잖아."

"엘리타라…… 생각해 보니까 부작용에 AMI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적응증 확인 안하고 투약한 건 아니지?"

"……너 죽을래?"

"미안."

최기석은 금방 사과했다.

최미순을 걱정한 나머지 실언을 하고 말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최기석의 시선이 최미순에게 머물렀다.

그에게 있어 최미순은 각별한 환자다.

그녀와 초턴 시절을 함께 보냈으며 그녀를 통해 처음으로 칭호를 얻었다.

'어르신. 조금만 더 힘내세요.'

최기석은 입술을 깨물며 각오를 다졌다.

반드시 그녀가 급성 심근경색을 겪게 된 원인을 찾겠다고.

그래야만 정상적으로 폐암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떠날 수 있을 테니까.

"김철우 교수님 오늘 출근하시지?"

"왜? 교수님하고 엘리타 이야기해 보게?"

"어. 교수님이라면 뭔가 알고 계실 것 같아."

"설마 너 제약회사랑 싸울 생각은 아니지? 최미순 환자 케이스 하나로 이미 출시된 신약을 뒤집을 수는 없어."

"그건 두고 봐야지."

"하여간 패기하고는. 김 교수님은 오늘 오전 진료만 있다. 늦게 가면 못 봐."

"땡큐."

최기석은 미소를 지으며 격리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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