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1)
소아흉부외과 외래진료실.
권일수는 벽시계를 바라봤다.
현재시간 오후 5시 40분, 슬슬 외래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휴우……."
한숨 쉬며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오후 진료만 봤으며 환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납덩이를 단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아마 오전에 세이버 수술을 참관한 후유증이리라.
"하늘이 돕는 건가?"
권일수는 장혁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장혁필의 세이버 팀은 정전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수술을 성공시켰다. 정전에 대처한 방식이 뛰어날 뿐 아니라 뛰어난 팀워크까지 선보였다.
[권 교수. 긴장해야겠어요.]
수술이 끝난 후 했던 조지환의 말이 귓가에 선명했다.
만약 노우드 팀이 케이스 수술에 실패한다면 어떨까.
양 팀의 균형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노우드 팀은 찬밥 신세가 될 것이다.
권일수는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세이버 팀을 앞질러 갈 지름길이 없는지를.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환자와 보호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환자의 이름은 나재현, 나이는 1세로 소아흉부외과 외래는 처음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이쪽에 앉으시죠."
권일수의 손짓에 보호자 장소라가 환자를 품에 앉은 채 맞은편에 앉았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그게…… 아이가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수술이요?"
권일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가끔 보호자 중에 의사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마치 본인이 의사가 된 것처럼 질병을 설명하며 스스로 처방까지 내리곤 한다.
한마디로 피곤한 타입이다.
"그게…… 사실은 우리 아이가 발육부전성 좌심 증후군을 앓고 있거든요. 원래 진성대 병원 심장내과에서 진료받고 있었는데 그쪽은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해서요."
장소라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당황해서 따졌더니 수술할 수 있는 의사분이 안 계신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의진대 병원의 권 교수님을 추천했어요."
"그러셨군요."
권일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성대는 빅5 병원 중 하나지만 소아흉부외과 쪽은 강하지 않다. 더군다나 환자를 치료할 방법이 노우드뿐이라면 더더욱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네."
권일수의 위로에 장소라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참는 모습이다.
"그럼 진료를 보겠습니다."
권일수는 청진기로 아이의 심음과 폐음을 청취했다.
심음의 경우 비정상적인 제3심음과 제4심음이 강하게 들렸다. 폐음의 경우 울혈성 심부전증 환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각종 음조가 들려왔다.
이어서 문진을 하며 영상의학과에 등록된 검사를 살폈다.
환자는 발육부전성 좌심 증후군이 분명했다.
그것도 일반적인 케이스보다 중증이다.
"선생님. 우리 아이 수술받을 수 있을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그리고 보호자 분께서 선택할 수 있는 수술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소아 심장이식 수술이고 다른 하나는 노우드 수술입니다."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장소라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권일수의 말이 이어졌다.
심장이식 수술의 장점은 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가 된다는 점이다. 다만 부담스러운 수술비와 긴 대기기간, 수술 후 발생하는 다양한 적응증이 단점이다.
반면 노우드 수술은 대기기간 없이 수술할 수 있으나 사망률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저는 노우드 수술을 추천드립니다."
"……."
"재현이는 내과치료를 받으며 심장이식을 기다릴 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가능한 빨리 수술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가요?"
장소라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재현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재현은 계속 허공에 손을 휘둘렀다.
"어쨌든 수술은 가능한 거죠?"
"네. 더 이상 병원을 찾아 헤매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보호자분의 판단뿐입니다."
"알겠습니다. 남편하고 상의하고 다시 찾아뵐게요."
장소라가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갔다.
'드디어!'
권일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침내 노우드 수술의 케이스 환자를 찾았다.
수술만 성공한다면 세이버 팀에게 쏠린 관심을 단번에 되찾을 수 있다.
애초에 두 수술의 난이도는 배 이상 차이 난다.
난이도 높은 수술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권일수는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노크 소리와 함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뜻밖의 인물이 진료실을 찾았다.
얼마 전 군의관 제대하고 복귀한 서지훈이다.
"무슨 일이지?"
"진료 끝날 시간에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염치 불구하고 왔습니다."
"일단 앉아 봐."
권일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서지훈을 응시했다.
서지훈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후했다. 과거 천재 소리를 들으면 인턴 생활을 했으며 흉부외과를 택한 후에도 처치나 술기가 뛰어났다고 들었다.
특히 폐식도 전임의인 박용일이 서지훈을 좋아했다.
"바쁘실 듯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지훈이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저를 노우드 팀에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지훈의 당당한 부탁에 권일수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이런 허무맹랑한 녀석을 봤나.
* * *
최기석은 먹자골목을 빠져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왜?'
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스승인 송명진이 비행기 시간까지 늦추며 자신을 찾은 이유.
그것이 너무 궁금했다.
최기석은 걷던 도중 상태창을 띄웠다.
이번에 새로 얻은 스탯인 팀 능력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소속: 팀 세이버]
[팀 레벨: 1.5/5]
[단결력: 3/5]
[처치레벨 2/5]
팀 능력치는 소속 팀 아래에 위치했으며 설명이 간단했다.
이 수치를 보면 세이버 팀의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수술 중 돌발 상황이 생긴다면, 환자 상태가 나쁘다면 수술 성공률이 낮다고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살핀 것은 3단계로 상승한 용의 눈.
이제 용의 눈에 특수효과인 물아일체가 생겼다.
[물아일체: 집도의 또는 다른 스태프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흡수합니다. 용의 눈으로 저장한 수술 동영상에 집중했을 경우 30퍼센트의 확률로 발동됩니다.]
'아…….'
낮에 장혁필 수준의 보조를 펼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우연히 물아일체가 발동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물아일체를 활용한다면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으리라.
"교수님. 퇴근하세요?"
상태창을 살피던 중 정문에서 마주친 박용일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일찍 들어가 봐야지. 그건 그렇고 세이버 수술 성공했다고 들었다. 정전이었는데도 무사히 마쳤다면서?"
"네. 스태프들 고생이 많았습니다."
"대단한 팀이네. 폐식도 쪽에서도 믿을 만한 팀원을 꾸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곧 그렇게 되시지 않을까요?"
"글쎄다. 조 과장님 성격으로 봐서는……."
박용일이 말끝을 흐렸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최기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궁세포 환자 수술이 오늘이셨죠?"
"잘 기억하고 있구나. 나는 세이버 수술이 끝날 때쯤에 로젯에 들어갔다."
박용일이 최기석에게 수술 과정을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본래 최기석은 이 환자의 수술보조로 들어가기를 희망했다.
워낙 희귀한 케이스인데다가 그가 직접 첫 진료를 봤기 때문이다.
다만 세이버 수술과 스케줄이 겹쳐서 무산되고 말았다.
"설명은 이 정도면 될 거다. 부족한 게 있으면 수술기록지 확인해 보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환자 관련 논문은 다 써 놨어. 아마 다음 말일에 흉부외과협회지에 실릴 거다. 공동 연구원으로 네 이름을 넣었으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용일과 헤어진 후 재빨리 아지트로 향했다.
아지트에 도착하자 송명진이 내부를 이리저리 살피보고 있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오는 길에 박 교수를 만나서……."
"신경 쓰지 말아요. 비행기 시간도 일부러 넉넉하게 미뤄 뒀으니까. 그건 그렇고 아지트에 여자를 데려오나 봐요?"
송명진의 질문에 허를 찔렸다.
"죄송합니다. 교수님이 떠나신 후에 동기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둘이 같이 있을 공간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변명할 필요 없어요. 나쁜 뜻으로 한 소리 아닙니다."
송명진이 다가와 최기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이제 보니까 최 선생도 남자네요?"
"아. 네. 저도 달릴 건 다 달려 있습니다."
최기석의 농담에 송명진이 배를 잡으며 웃었다.
"여자친구는 무슨 과죠?"
"순환기내과 전공입니다. 제가 흉부외과에 간다고 하니까 내과에서 제 환자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착한 애인을 뒀군요."
"네. 그런데 저를 찾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오늘 최 선생이 보조하는 걸 보니까 궁금한 게 생겨서요."
송명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최 선생, 집도 어디까지 할 수 있습니까?"
송명진이 본론을 꺼냈다.
어제 만나서 최기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실력에 대해 물어봤을 때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나 정도 되면 보조하는 솜씨만 봐도 써전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어요. 내가 봤을 때 최 선생은 웬만한 수술은 집도까지 가능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송 교수님에 비하면 아직 새 발의 피입니다."
"그럼요. 비교 대상을 나로 잡는 건 당연히 무리가 있고."
송명진이 농담을 섞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최기석은 고민 끝에 상태창을 띄웠다. 그리고 수술 마스터리를 살피며 집도 가능한 수술들을 나열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송명진이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내 눈으로 직접 봅시다."
"직접 보신다 하면……."
"아까 정육점에 들려서 소 심장 받아 왔어요. 제일 자신 있는 수술을 펼쳐 봐요."
송명진이 구석에 숨겨 두었던 스티로폼 박스를 꺼냈다.
바로 그 순간이다.
띠링!
[돌발 임무, '스승의 시험'가 생성되었습니다. 임무 완수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알림을 확인한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할 수 있겠어요?"
"네!"
최기석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송명진을 만나서 본인의 실력을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
그것은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기 싫었던 탓이다. 이렇게 판이 깔린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탁자에 수술보를 깔고 필요한 도구를 펼쳐 놓았다.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일 분.
"내게 보여 주고 싶은 수술은 뭐죠?"
"대동맥 박리 수술입니다."
"그날의 일, 잊지 않은 모양이군요."
"네."
과거 최기석과 송명진이 함께 대동맥 박리 수술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수술은 순조로웠지만 병원을 늦게 찾은 환자의 병세가 악화되어 환자는 사망했다.
최기석은 그때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지우고자 대동맥 박리 수술을 택했다.
제일 자신 있는 수술이 CABG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준비됐으면 시작해요."
"알겠습니다."
심호흡하고 혈관겸자를 손에 쥐었다.
스승 앞에서 하는 첫 집도, 겸자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얼어붙은 심장 덕택에 떨림이 금방 잦아들었다.
여러 가지 스킬이 그에게 도움을 주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이 히포크라테스의 눈과 얼어붙은 심장이다.
"부담되죠?"
송명진이 최기석을 응시했다.
"부담감이 있어야 해요. 써전의 칼질 한 번, 바늘 한 번에 환자와 보호자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니까."
송명진의 말에 최기석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과연 스승다운 가르침이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최기석은 혈관겸자로 소 심장의 상행대동맥을 조였다.
딸칵!
겸자 소리가 경쾌하게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