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버 수술 (6)
"이제 됐습니다."
장혁필의 말에 다시 간호사들이 플래시를 켰다.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뀐 것을 아는 이는 이제 세이버 팀 인원뿐이다.
세이버 수술의 플랜 B.
이것은 최기석이 제1보조로 올라가고 제2보조로 김태식이 내려가는 것이다.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을 때, 내외적인 참관이 없을 때 장혁필이 최기석을 키워 주려고 만들었다.
더욱이 지금은 최기석을 제1보조로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의 김태식의 보조는 수준 미달이기에.
"지금부터 본격적인 좌실심류 처치에 들어간다. 메스."
장혁필이 메스를 들었다.
스으으으윽.
칼날이 힘없이 늘어난 좌심실을 잘라 냈다.
최기석은 석션기로 피를 흡입하며 포셉으로 죽은 조직과 살아 있는 조직의 경계를 가리켰다.
이에 장혁필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메스를 들었다.
거침없는 손놀림에 죽거나 두꺼워진 심장조직이 떨어져 나갔다.
다음은 심실중격을 손볼 차례.
좌심실류 수술의 발달에 따라 운동성이 없는 심실중격 또한 제거 대상이다.
텅!
장혁필의 손에서 손상된 심실중격이 뭉텅이로 잘렸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최기석은 뱃속 깊은 곳에서 야릇한 기운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이건······.'
아침에 수술 동영상을 살필 때의 그 느낌.
자각몽을 꾸는 듯한 그 감각 속에서 수술 동영상 속 장혁필이 된 것 기분이다.
최기석은 어느새 동영상 속 장혁필과 똑같이 움직였다.
우선 포셉을 양손에 쥐고 잘린 심실중격 조직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누구의 지시도 없이 봉합을 도운 것이다.
끼기기긱.
장혁필이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고 끊어진 심실중격을 봉합했다.
최기석의 깔끔한 어시스트로 봉합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어진 좌심실류의 쌈지 봉합.
최기석은 최적의 위치에서 조직을 잡아 주었다. 수술 동영상 속 장혁필이 송명진을 도왔던 것처럼.
그뿐만이 아니다.
석션이나 봉합사를 끊는 일, 기타 다른 잡무까지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로 인해 김태식이 할 일이 없을 정도다.
'이상해.'
최기석은 보조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동안 수술보조 능력을 꾸준히 키워 왔지만 이렇게까지 정교한 보조는 한 적이 없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은 단순히 보조를 하는 게 아니라 집도의와 함께 호흡하는 것과 같았다.
'참나. 이래도 돼?'
놀란 건 장혁필 역시 마찬가지.
최기석을 제1보조로 키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이버 수술의 보조는 일반 심장 수술의 보조와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특히 수술의 백미인 쌈지 봉합을 할 때는 더더욱.
그런데 대타인 최기석이 김태식을 능가해 버렸다.
최기석의 보조에서 본인의 보조가 겹치는 것은 단순한 착각일까.
파바바박. 파바바박.
전기 튀는 소리와 함께 수술등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정전 후 20분, 전력이 복구되려는 모습이다.
"잘됐다. 이제 보조 배터리도 다 나갔는데."
"아우. 팔 아파."
"두 분 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플래시 끄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완전히 복구는 안 됐는데······."
장혁필의 말에 간호사가 천장을 응시했다.
수술실 내부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어두웠다 밝아졌다를 반복 중이다.
"이 기회에 잠깐 숨 좀 돌리죠."
"알겠습니다."
플래시가 꺼지면서 찾아온 암흑, 최기석과 김태식이 다시 자리를 바꿨다.
전기가 들어오면 참관실에서 로젯을 볼 수 있다.
내부 스태프와 외부 스태프이 있는 자리.
이 자리에서 최기석이 더 이상 제1보조로 나서는 것은 좋지 않다.
'아쉽네.'
최기석은 견인기를 당기며 입맛을 다셨다.
자리를 바꾸자 수술 속 장혁필과 혼연일체가 됐던 감각이 사라졌다. 몽롱했던 정신은 맑아졌고 온몸이 붕 뜬 기분도 온데간데없었다.
수술이 끝나면 아까의 감각을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띠리리링.
전기가 들어오면서 로젯이 완전히 밝아졌다.
몇몇 스태프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뱉었다. 밝은 시야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수술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끝까지 힘냅시다."
"네!"
우렁찬 대답이 로젯에 퍼졌다.
이윽고 좌심실 재건술이 재개되었다.
"병원장님께 이야기를 드리던가 해야지."
조지환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세이버 케이스 수술 중 정전이 일어날 건 뭐란 말인가. 참관을 제대로 못한 것도 짜증에 일조했다.
"흠흠. 송 교수님이 보기에 지금 진행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훌륭하군요."
송명진이 탄복하며 말을 이었다.
"쌈지 봉합을 마무리하면 수술은 사실상 끝입니다. 다들 악조건을 잘 이겨 냈어요."
"그럼 환자에게 문제는 없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송명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세이버 팀은 정전이라는 벽을 마주하고도 수술을 무사히 끌고 왔다. 수술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으며 정확도 또한 나무랄 때가 없었다.
'못 본 사이에 더 성장했구나.'
송명진의 시선이 최기석에게 고정되었다.
본인의 빈자리가 무색할 만큼 최기석의 성장은 놀라웠다.
정전이 발생하자마자 휴대폰을 사용한 센스, 제2보조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처치 등등.
메이죠에서 실력을 쌓는다면 괴물이 되리라.
찰칵!
가위 소리가 경쾌했다.
좌심실 재건술이 끝나면서 스태프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장혁필은 그동안 열었던 부위를 닫으며 인공심폐기를 이탈시켰다.
"······."
"······."
모두의 시선이 환자 감시 장치에 쏠렸다.
인공심폐기 이탈 후에 심장이 제대로 뛰어야 수술 성공이다.
"교수님. 혈압 없고 맥박도 뛰지 않습니다."
마취의 신아름이 비보를 알려 왔다.
"기석이는 에피네프린 IV로 주고 태식이는 심장 마사지 들어간다. 영호는 패들 준비."
"네!"
장혁필의 지시에 스태프가 숨 가쁘게 움직였다.
'역시 그때ㅁ날.'
장혁필은 입술을 깨물며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정전으로 인공심폐기가 몇 분간 멈췄다.
그때 환자에게 데미지가 왔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수술 자체는 무난하게 완료했기 때문이다.
"태식아. 나와!"
장혁필은 김태식을 물리고 패들을 손에 쥐었다.
주걱 모양의 도구를 심장에 갖다 대자 전류가 심장을 자극했다.
그로 인해 심장이 꿈틀거렸지만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자극이 끝나자 심장은 다시 잠잠해졌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분투가 20분 가까이 지속되었다. 김태식과 최기석이 개흉 심장 마사지를 번갈아 했으며 이영호가 에피네프린 투여를, 장혁필은 전기 자극에 나섰다.
어느새 스태프 전원 말이 없어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처치에만 열중할 따름이다.
그런데 그 순간이다.
쿵. 쿵. 쿵.
심장이 미세하게나마 박동을 시작했다.
"교수님. 혈압과 맥박이 다시 살아납니다."
"처치 계속 간다!"
팀원들의 끈질긴 응급처치에 결국 바이탈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스태프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이버 수술이 마침내 끝났다.
"다들 고생 많았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스태프들의 밝은 목소리가 로젯에 울렸다.
띠링!
[첫 번째 세이버 수술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000 P.
P를 지급합니다.]
[신규 스탯, 팀 능력치가 개방되었습니다.]
[용의 눈이 Lv.3으로 상승하였습니다. 신규 효과 물아일체가 개방되었습니다.]
알림이 정신없이 뇌리를 스쳤다.
* * *
그날 오후.
최기석은 할 일을 마치고 중환자실을 찾았다.
문민경은 격리실에서 치료받았는데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히포크라테스의 눈으로 살핀 상태는 보통.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증거다.
'그래도 신경 써야지.'
최기석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만큼 중요한 것이 수술 후 관리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에도 관리를 못해 환자가 죽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중환자실 케어가 끝나면 순환기 내과로 갈 테니 정설화에게 특별히 부탁을 할 생각이다.
그녀의 스킬이라면 환자를 잘 지켜 주리라.
최기석은 중환자실을 나와 인근 고깃집을 찾았다.
수술 성공 후 조지환이 세이버 팀의 회식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다들 기다렸잖아요."
방 안으로 들어가자 강하나가 투덜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그를 제외한 모든 팀원들이 모여 있었다.
"갑자기 응급환자가 생겨서······."
"하긴 너라면 그럴 만도 하다."
"기석이는 자타공인 최고의 환타니까.
최기석이 되는 대로 둘러댔건만 팀원들은 순순히 믿었다.
이윽고 장혁필이 술과 고기를 주문하면서 본격적인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태식아. 너만 죽을상이다. 얼굴 좀 펴라."
"아······ 네."
장혁필의 지적에도 김태식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직도 정전이었을 때 생각하고 있어? 훌훌 털어 버려. 네 탓이 아니잖아."
"하지만······ 전 아무 것도 한 게 없습니다."
김태식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정전이 일어난 후 그의 보조능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두운 것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하지만 환자의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 그런 변명은 의미가 없었다. 당시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무력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정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네 보조는 훌륭했어.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 그리고 전력이 돌아왔을 때 제 실력을 보여 줬잖아. 그거면 됐어."
"······."
"이 자리에서 한잔하고 털어 버리자."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잔을 부딪치고 소주를 들이켰다.
"저는 개인적으로 최 선생님 센스에 놀랐어요."
잠자코 있던 신아람이 입을 열었다.
"정전이 되자마자 휴대폰 쓸 생각을 했잖아요. 다들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그건 저도 인정이요."
유병세가 대화에 껴들었다.
최기석의 대처로 수술을 계속했던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만약 그대로 수술이 멈췄다면 환자는 다시 눈을 뜨지 못했을 것이다.
"교수님. 혹시 정전의 원인은 밝혀졌나요?"
"서버 교체 중에 문제가 생겼는데 자세한 원인은 전산 팀도 파악 못 했대. 다른 수술장에서도 문제가 안 생겨서 다행이지. 환자라도 죽었으면 어휴."
장혁필은 최기석의 질문에 답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면 북한의 소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유병세의 농담에 스태프들이 깔깔 웃었다.
"그건 그렇고 너 어떻게 된 거야?"
"네? 무슨 말씀이세요?"
장혁필의 질문에 최기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태식이 대타로 제1보조 했잖아. 그런데 네가 보조했던 모습이 어제의 나를 꼭 닮았던데? 조직 잡는 방식이나 석션하는 방식 같은 거 말이야."
"그게······ 어제 카데바 연습할 때 장 교수님을 유심히 살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최기석은 대충 말을 지어냈다.
지금은 그 비법이 무엇인지 알지만 설명했다가는 미친 놈 소리 듣기 딱 좋았다.
"하여간 잘했다. 덕분에 수술이 무사히 끝났어."
"아닙니다. 다 같이 고생했는데요."
"그럼 이쯤에서 다들 건배합시다."
장혁필의 제안으로 모두가 술잔을 부딪쳤다.
최기석은 분위기를 낼 겸 딱 한 잔만 비웠다.
술잔이 연거푸 돌면서 회식 자리가 무르익었다.
김태식도 마음의 짐을 던져 버렸는지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했다.
최기석은 팀원들에게 인사하고 병원으로 복귀했다.
조지환의 지시로 민주혁이 당직을 서게 되었지만 그에게 짐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루라도 빠지면 100일 당직이 아니니까.
지이이이잉.
갑작스럽게 휴대폰이 울렸다.
송명진이 건 전화다.
"교수님. 비행기 타고 메이죠로 가신 거 아니셨나요?"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그렇죠. 하지만 시간을 내서라도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혹시 아직 회식 중이에요?]
"아닙니다. 방금 막 끝내고 올라가는 중입니다."
[잘 됐네요.]
송명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아지트로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