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134화 (133/407)

세이버 수술 (5)

B 로젯 앞.

세이버 팀원들이 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첫 케이스 수술을 앞두고 모두가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조지환의 성격을 감안하면 수술의 실패에 따른 여파가 어떨지 너무나 잘 알았다.

"너무 초초해할 필요 없어요."

장혁필이 운을 뗐다.

"우리는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실력을 검증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제는 송명진 교수님의 특강까지 있었고요. 평소처럼 한다면 문제없이 성공할 겁니다."

"네!"

"혹시 몸이 불편한 사람 있어요?"

장혁필의 물음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괜찮으니까 미리 말해요. 그래야 수술실에서 대처할 수 있으니까."

"없습니다."

"없습니다."

스태프들의 대답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장혁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파이팅하고 들어갑시다."

장혁필의 제안에 팀원들의 손이 한데 모였다.

"세이버 팀 파이팅!"

힘찬 구호와 함께 스크럽이 시작되었다.

쿵. 쿵. 쿵.

최기석의 심장이 요동쳤다. 환자의 생명, 그리고 수술의 무게감이 주는 압박이 유난히 컸다.

심호흡하며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지이이이잉.

문이 열리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로젯으로 들어갔다.

순간 긴장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수술을 인식하면서 얼어붙은 심장 패시브가 발동되었다. 가슴이 차가워지자 수술 과정이 물 흐르듯 머리를 스쳤다.

'가자!'

최기석은 각오를 다지며 스킬을 퍼부었다.

[살려야 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한 단계 상승합니다.]

[얼어붙은 심장의 혹한(팀원들이 침착해짐), 용맹(병인 파악 능력 상승) 효과가 적용됩니다.]

[팀 버프 이심전심이 활성화됩니다.]

[이심전심: 스태프 간의 신뢰가 상승하며 동료의 의도를 읽어 미리 처치합니다.]

['마음을 돌려라' 임무의 보상 버프, 바람돌이가 활성화됩니다.]

[바람돌이: 스태프 전원의 처치 속도가 2배 증가합니다.]

상태창을 확인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수술은 어쩌면 하늘이 돕는 건지 모르겠다.

써전들이 자리 잡는 사이 보조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인공심폐기사 유병세는 인공심폐기의 상태를 살폈으며 강하나는 수술도구들을 가지런히 펼쳐 놓았다.

마취의 신아름은 커튼 뒤에서 약물을 준비했다.

"마취 준비 끝났습니다."

"수술 도구 준비 끝났습니다."

"인공 심폐기 이상 없습니다."

스태프들의 보고에 장혁필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에 신아름이 환자에게 환자 감시 장치를 달고 전신마취를 시작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장혁필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신아름을 응시했다.

"그게······ 마취가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아서요."

"마취가 안 된다고요?"

"의식이 희미하게 남은 데다가 근육 이완 상태도 좋지 않아요.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신아름이 다시 커튼 뒤로 이동했다.

"혹시 그거 때문인가?"

제3보조로 수술실에 들어온 이영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짚이는 거라도 있어?"

"사실 베드 옮기던 도중 환자랑 눈이 마주쳤는데 환자가 뭔가 오물거리고 있더라고요. 그때 이상한 걸 먹지 않았나 싶어서요."

"확실히 그럴지도."

장혁필이 미간을 찌푸렸다.

신아름이 연거푸 마취에 실패한 것을 보면 환자의 취식물이 마취약물과 충돌했을 가능성이 높다.

메스를 잡기 전부터 암초에 부딪치다니······.

예감이 좋지 않다.

잠시 후 신아름의 분투 끝에 정상적인 마취가 끝났다.

지금부터는 수술을 위한 밑작업이 필요하다.

스으으으윽.

최기석은 포비돈 솜으로 환자의 가슴을 소독한 후 방포를 덮었다.

"메스."

장혁필이 메스를 움직이자 목 아래부터 명치 부위까지의 피부가 갈라졌다.

"흉골 절개하겠습니다."

위이이이잉.

최기석은 전기톱을 들고 능숙하게 흉골을 반으로 갈랐다. 그리고 이영호와 견인기로 가슴 부위를 벌렸다.

"C/S액!"

장혁필의 외침에 신아름이 심정지액을 주입했다.

"캐뉼라(몸속에 삽입하는 튜브) 연결합니다."

김태식이 동맥 캐뉼라를 환자의 넙다리 동맥과 겨드랑이 동맥에, 정맥 캐뉼라를 우심방을 삽입했다.

덜컹! 드르르륵.

인공심폐기가 돌아가면서 수술의 막이 올랐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알았지."

"네!"

최기석은 씩씩하게 대답하며 수술 과정을 다시 되뇌었다.

관상동맥 우회술, 승모판 재건술, 좌심실 혈전 제거술, 좌실심류 절제 및 재건술.

이것이 앞으로 있을 세이버 수술의 과정이다.

"션트."

"네."

장혁필의 지시에 김태식이 작은 침을 협착된 관상동맥에 밀어 넣었다.

환자의 혈류를 돕기 위함이다.

"메스."

장혁필이 메스를 받아 환자의 갈비연골과 근막을 박리해 나갔다.

그러자 그 안에 숨어 있었던 내흉동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 되겠지?"

"네. 교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장혁필의 말에 김태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회로로 사용하려 했던 내흉동맥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럼 요골동맥(아래 팔 바깥쪽 동맥)에서 그래프트(이식혈관) 채취할까요?"

"그래. 기석이랑 위치 바꿔라. 태식이가 그래프트 채취하는 동안 기석이는 나랑 승모판 재건하자."

"네."

최기석은 제1보조 자리에 서서 장혁필을 돕게 되었다.

스으으윽.

장혁필의 메스가 좌심방과 좌심실 사이의 승모판을 갈랐다.

'쉽지 않겠는데?'

최기석은 승모판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판막이 힘없이 늘어져 있었으며 판막을 고정해 주는 건삭은 너덜너덜했다.

회의할 때 예상했던 것보다 심한 손상.

수술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5-0 prolene."

끼기기기긱.

장혁필이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였다. 이에 최기석은 포셉으로 늘어진 승모판을 팽팽하게 잡아당겼고, 그사이 장혁필이 승모판막의 끝자락을 봉합했다.

"교수님. 그래프트 채취 끝났습니다."

"미안한데, 잠시만 대기."

장혁필은 승모판막 봉합을 끝내고 포셉으로 판막을 살살 건드렸다.

팽팽히 당겨 봉합했던 덕분에 탄성이 느껴졌다.

이만하면 훌륭한 재건이다.

그래프트 채취가 끝났기에 최기석과 김태식이 다시 자리를 바꾸었다.

이어지는 승모판막 재건술.

'역시 선배.'

최기석은 보조하던 중 곡반에 담긴 이식혈관을 응시했다.

김태식이 채취한 혈관은 깔끔했다.

혹시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해서 용의 눈으로 살폈지만 흠잡을 곳이 없었다.

"휴우······ 간신히 끝났네."

장혁필이 수술 도구를 손에 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은?"

"90분가량 지났습니다."

"승모판 상태만 좋았으면 1시간 만에 끝났을 텐데. 이제 와서 한탄해 봐야 소용없지. 곧바로 CABG 가자."

요골동맥에서 채취한 이식혈관을 가지고 관상동맥 우회술이 시작됐다.

장혁필은 대동맥에 작은 구멍을 내고 이식혈관의 한쪽을 연결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수술실에 암흑이 찾아왔다.

전기가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이다.

"코드 블랙. 코드 블랙.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코드 블랙. 예기치 못한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UPS(무정전전원장치)의 일시적 오류로 비상 전력망 공급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알려 드립니다. 코드 블랙. 코드 블랙."

캄캄한 어둠 속에 방송이 울려 퍼졌다.

"씨발!"

장혁필이 큰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뱉었다.

일반적인 정전이었다면 그나마 괜찮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환자 감시 장치와 인공심폐기마저 꺼졌다.

수술은커녕 환자의 목숨조차 보존하기 힘든 상황이다.

"미치겠군."

조지환은 팔짱을 낀 채 꺼진 모니터를 응시했다.

수술이 만족스럽게 진행돼서 기분이 좋았건만 정전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정전 앞에서는 그 어떤 의사라도 장사가 없다.

일반적인 외과 수술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인공심폐기를 돌리는 흉부외과 수술은 데미지를 걷잡을 수 없다.

인공심폐기가 몇 분만 돌아가지 않아도 환자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마니까.

"UPS 복구는 아직인가? 누가 중앙 공급실에 연락 좀 해 봐."

"알겠습니다."

조지환의 지시에 민주혁이 휴대폰을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영호야. 잠깐 내 거까지 잡고 있어."

"왜요?"

"설명할 시간 없다."

최기석은 캄캄한 로젯을 빠져나가 수술실 깊숙한 곳에 있는 로커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한곳에 모아 놓은 팀원들의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챙겼다.

"선생님. 지금 여유 있는 순환간호사분 있죠?"

"네. 있기는 한데 어쩌시려고요? 어차피 정전이라 수술 못 할 텐데."

데스크에 있는 간호사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일단 두 분만 B 로젯으로 보내주세요. 빨리요!"

최기석은 휴대폰을 데스크에 올려놓으며 사정을 설명했다.

이후 재차 스크럽하고 로젯으로 들어갔다.

로젯은 여전히 암흑천지였으며 이따금 장혁필의 욕지거리만 들려왔다.

"교수님. 수술 계속 진행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회의할 때 일분일초가 부족한 수술이라고 말한 건 바로 교수님이었습니다."

"그거야 정상적인 상황일 때의 이야기지."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로젯문이 열리고 두 명의 순환간호사가 나타났다.

"저건 또 뭐야?"

"지원군입니다."

최기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윽고 순환간호사가 플래시를 켠 휴대폰으로 수술대를 비췄다.

갑작스런 환한 빛에 몇몇 스태프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 정도면 될까요?"

"네. 감사합니다."

"······정말 못 말리겠다. 너란 녀석."

장혁필은 피식 웃으며 메스를 쥐었다.

최기석의 발 빠른 행동과 의지에 감명 받았다.

정전이 됐다고 해서 써전으로서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갈 수 있는 곳까지는 가 봐야 한다.

"수술······ 계속한다."

"교수님. 인공심폐기가 돌아가지 않는 이상 수술은 의미가 없는······."

"내 말 못 들었어? 수술 계속한다고."

"······알겠습니다."

휴대폰 불빛 속에 관상동맥 우회술이 재개되었다.

장혁필은 채취한 혈관을 우회술이 필요한 혈관에 연결하여 봉합했다.

시야가 열악함에도 봉합은 완벽에 가까웠다.

덜컥. 드르르르륵.

삐이이이. 삐이이이.

반가운 소리가 스태프의 귓가에 울렸다.

완벽한 정전 후 3분이 지난 시점, 환자 감시 장치와 인공심폐기에 전원이 들어왔다.

UPS가 작동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전기가 완벽하게 복구된 것은 아니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히 수술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인공심폐기 정상적으로 가동합니다. 기능상에 오류는 없어 보입니다."

"환자 혈압과 맥박이 바닥입니다."

신아름과 유병세가 상황 보고를 했다.

장혁필은 신아름에게 환자의 바이탈을 일임하고 수술에 집중했다.

관상동맥 우회술이 끝났기에 이제 본 게임인 세이버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부터 좌심실 혈전을 제거한다."

"네!"

장혁필이 긁개로 혈전을 살살 긁어냈고, 김태식과 최기석이 식염수를 묻힌 거즈로 혈전을 닦아 제거했다. 그런데 김태식의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거즈를 쥔 손이 달달 떨렸다.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김태식, 왜 그래?"

장혁필이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잖아. 혈전을 제거하는데 이 따위면 세이버 수술은 어떻게 하려고!"

"그게 사실은······ 제가 어두운 걸 무서워해서······."

김태식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껏 예비 전력이 들어왔건만 제1보조의 상태가 최악이다.

"어쩔 수 없지. 플랜 B로 간다."

장혁필의 지시에 써전들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한데, 불빛 잠깐만 꺼 주실래요?"

"왜요?"

"그럴 일이 있어서요. 잠시면 됩니다."

최기석의 부탁에 보조하던 순환간호사들이 플래시를 껐다.

다시 깜깜해진 로젯, 최기석과 김태식의 자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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