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버 수술 (4)
"교수님께서 실패하셨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만만치 않은 수술이고 국내 흉부외과들이 꺼리겠죠."
송명진이 담담하게 설명을 이었다.
환자가 수술 중 사망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었다.
하나는 환자가 60세가 넘는 고령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메이죠 병원 스태프의 수술 이해도가 낮았다는 점이다.
세이버 케이스는 메이죠에서조차 희귀했기에…….
"하지만 여러분들은 나와 다를 겁니다. 세이버 팀의 케이스 환자 상태와 여기 있는 팀원들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수술이 성공하리라 믿습니다."
송명진은 수술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법, 환자의 활력징후 관리법, 돌발 상황 대처법을 추가적으로 알려 주었다.
이에 팀원들이 필기까지 하며 열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장 내일 앞으로 닥친 세이버 수술.
여기에 환자의 목숨은 물론 팀원들의 미래까지 달려 있다.
"설명은 이쯤이면 된 것 같은데."
"네.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장혁필이 송명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에 팀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쑥덕거렸다.
지금까지의 강연만으로 충분히 큰 도움이 되었다.
여기서 더 부탁할 게 있단 말인가.
"교수님. 저희는 수술이 잡혀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강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병세와 신아름이 따라 일어났다. 세 사람은 삼십 분 후 조지환 과장의 폐암 수술 스크럽을 서야 했다.
"고생 많았어요. 컨디션 관리 잘하고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봅시다."
"네."
"수고 하십시오."
보조 스태프가 떠나면서 써전들만 남았다.
"교수님, 이쪽으로. 너희 둘도 따라와."
장혁필이 앞장서고 그 뒤를 세 사람이 뒤따랐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수술실.
최기석과 김태식은 영문도 모르고 스크럽을 했다.
박. 박. 박. 박.
베타딘을 발라진 솔로 손가락부터 팔꿈치까지 긁어 대자 피부가 따가웠다. 하지만 아파도 철저해야 하는 것이 스크럽이다. 어설픈 스크럽으로 환자에게 감염이 생길 바엔 잠깐 아픈 것이 백배 낫다.
스크럽이 끝나고 스태프들이 일제히 로젯으로 들어갔다.
'오늘 수술 스케줄은 없을 텐데…….'
최기석은 수술대로 다가가 누워 있는 환자를 살폈다. 그러던 중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마취를 하지 않았음에도 환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손가락을 환자의 코끝에 댔지만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 혹시 어제 말씀하신 게……."
"맞아. 이게 프레시 카데바야."
프레시 카데바란 포르말린 처리를 하지 않은 카데바다.
프레시 카데바의 장점은 관절과 근육이 움직일 만큼 신선하다는 것이다. 단점이라면 구하기 어렵다는 것과 감염의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이거 구하느라 발바닥에 불나는 줄 알았어. 아마 심장이 멈춘 지도 얼마 안 됐을 걸?"
"정말 대단하시네요."
최기석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프레쉬 카데바를 구한 집념과 해외에 있는 송명진을 불러들여 가르침을 받으려고 한 발상.
두 가지 모두 박수 받아 마땅하다.
정치력 7단계의 고수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고 할까.
"알면 내일 열심히 해. 첫 단추부터 꼬이면 답 없으니까."
"잡담은 그만하고 이제 시작하죠."
"죄송합니다, 교수님. 애들아."
장혁필의 지시에 따라 프레시 카데바를 이용한 세이버 수술의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집도의는 송명진과 제1보조는 장혁필.
소독간호사 역할은 김태식, 견인기를 벌리는 일은 최기석이 맡았다.
써전 사이의 약식수술이기에 가능한 조합이다.
"두 번은 없습니다. 다들 한순간도 놓치지 말아요."
"네!"
송명진의 당부에 세 사람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용의 눈을 사용합니다. 자동으로 최적의 수술 시야를 확보합니다. 동영상 모드에 돌입하여 영상을 녹화합니다.]
최기석은 스킬을 사용하고 수술 과정을 주의 깊게 살폈다.
내일로 다가온 세이버 수술,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
* * *
다음 날 새벽.
최기석은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다가 눈을 떴다.
멍한 얼굴로 천장을 응시하자 어제 틀어 놓고 잤던 카데바 세이버 수술 영상이 펼쳐졌다.
"나도 참."
영상을 끄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주 잠깐 잤음에도 세이버 수술을 직접 집도하는 꿈을 꿨다.
그만큼 모든 몸과 마음이 세이버 수술에 빠져든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도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살핀 동영상 수술은 없었다.
쏴아아아아.
욕실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자 피로가 싹 가셨다.
최기석은 침대에 앉아서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 다시 카데바 세이버 수술 영상을 재생했다.
첫 번째 재생에서는 수술 과정에 집중했다.
좌심실의 혈전 제거부터 관상동맥 우회술, 승모판막 재건술, 좌심실 축소술과 재건술까지.
미세한 과정의 변화를 머릿속에 담았다.
두 번째 재생에서는 송명진의 집도와 장혁필의 보조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송명진의 거침없는 메스.
속도와 정확함을 갖춘 봉합술.
송명진의 움직임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 장혁필의 완벽한 보조 등.
'이건 뭐지?'
최기석이 흠칫 몸을 떨었다.
동영상에 몰두했던 탓인지 본인이 장혁필이 된 것 같았다.
영상을 보고 있음에도 직접 석션하며 봉합조직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다.
삐리리리~
알람이 울리면서 낯선 감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최기석은 아쉬움을 느끼며 당직실을 나왔다.
현재 시간은 오전 6시.
오전 회의 전에 레지던트 1년 차로써 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회의실에서 작업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어. 설화야."
[오늘이 세이버 수술 하는 날이지? 힘내라고 전화했어.]
"역시 날 걱정해 주는 건 설화밖에 없네."
[알면 됐어.]
정설화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감돌았다.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 하면 돼. 난 너를 믿어.]
"고마워.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걱정 말고."
[응. 파이팅!]
정설화가 입술로 쪽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었고 최기석은 미소를 띤 채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으로 온몸이 따뜻해졌다.
드르르르륵.
"선배. 문민경 환자 좀 봐주실래요?"
이영호가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게…… 갑자기 수술을 안 받겠다고 해서요."
"알았어."
최기석은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문민경의 병실로 향했다.
문민경은 초조한지 이를 딱딱딱 부딪치고 있었다.
"선생님, 오셨어요? 저요. 다시 생각해 봤는데 수술 안 받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가 뭔가요?"
"수술이 무서워졌어요. 수술대에서 눈 감으면 다시는 못 깨어날 것 같아요."
"환자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번 수술이 처음인데다가 고난도 심장수술이니까요."
최기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을 문민경의 손에 포갰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환자분을 살리기 위해 많은 스태프들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절대로 헛되지 않을 겁니다."
"정말로 괜찮겠죠?"
문민경의 말에 최기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다.
"죄송해요. 괜히 변덕 부려서. 그런데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너무 무서워서."
"당연한 일입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최기석은 문민경에게 격려를 사용하고 병실을 나왔다.
"휴우……."
저절로 한숨이 터졌다.
세이버 수술보다 무서운 게 있다면 그건 문민경이 수술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녀를 설득하지 못했을 때를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와. 선배 침착하시네요."
곁에 있는 이영호가 말을 걸었다.
"저는 저 환자가 수술하기 싫다고 했을 때 머리가 하얗게 비었거든요."
"환자가 강하게 나온다고 해서 너무 당황할 필요 없어. 일단 환자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파악하고 차분하게 달래면 되니까."
"행동을 파악하고 차분하게 달래라……."
이영호가 중얼거리며 수첩에 메모했다.
"부끄럽게 뭘 그런 것까지 일일이 적냐?"
"전 선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닮고 싶어요."
"됐거든?"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오전 회의와 회진이 무사히 끝났다.
최기석은 회의실에서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며 시계를 응시했다.
결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 *
오전 10시.
참관용 수술실이 흉부외과 스태프들로 북적거렸다.
오늘은 세이버 팀의 첫 번째 케이스 수술이 있는 날, 모두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흉부외과 수술에 관심을 가진 몇몇 다른 과 스태프까지 참관에 나섰다.
그중에는 성형외과 과장 노기형도 포함되었다.
'복잡하군.'
노기형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환자가 죽는 것은 바라지 않지만 수술이 실패하기를 바랐다.
조지환의 성격이라면 수술에 실패한 팀원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세이버 팀은 자연스럽게 해체되며 조지환의 압력으로 일부 직원은 병원을 그만둘지 모른다.
바로 그때가 노기형이 나설 때다.
그는 버림받은 최기석을 성형외과로 데려올 생각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수지접합 보조를 하던 최기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레지 1년 차라고는 믿기지 않는 완벽한 보조실력.
최기석을 성형외과에서 잘 키운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노 과장님이 흉부외과 수술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흠흠. 분야는 달라도 외과는 외과니까요."
"노 과장님의 흉부외과 참관은 처음인 걸로 아는데……."
"조 과장님이 없었을 때 종종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앞으로도 자주 들러 주세요."
조지환은 더 이상 참관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노기형 입장에서는 잘 된 일이다. 혹시 참관한 수술이 뭐냐고 물어봤으면 버벅거렸을 테니까.
"권 교수는 이번 수술 어떻게 생각해요?"
"세이버 팀이 준비를 잘했다면 성공률이 70퍼센트는 넘는다고 봅니다."
"점수가 후하네요?"
"네. 어제 송 교수님이 세이버 팀에게 특별 레슨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성공률은 50퍼센트까지 내려갔을 겁니다."
"송 교수의 레슨이라……."
조지환이 턱을 쓸어내렸다.
인간 송명진은 싫어하지만 써전으로서의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오늘 수술 중 문제가 생긴다면 슬쩍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테고.
"그나저나 노우드 팀은 케이스 수술 안 합니까? 이제 리모델링이 2주도 채 남지 않았어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송명진이 들어왔다.
송명진은 일부러 다른 스태프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너는……."
"네. 지훈이입니다."
서지훈이 깍뜻하게 인사하고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송명진은 한동안 말없이 서지훈을 응시했다.
감정이 복잡했다.
서지훈은 그가 고심 끝에 택한 첫 번째 제자였다. 인턴 때부터 워낙 특출난 재능을 보였기에 간신히 설득해서 흉부외과로 데려왔다.
하지만 서지훈은 그를 떠났다.
사전에 상의 없이 병원을 나와 군의관이 되었다.
흉부외과 일이 힘들어서 그만뒀다는 것을 뒤늦게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
"예전에는 죄송했습니다."
"옛날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송명진이 담담하게 손을 내저었다.
"그건 그렇고 다시 흉부외과로 돌아왔네요? 다른 과로 갈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쩌다 보니라……. 그런 생각으로 복귀했을 거란 생각은 안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석이 때문입니다."
서지훈이 뜸을 들인 후 말을 이었다.
"기석이가 저보다 뛰어나다는 이야기에 자극 받았습니다. 어떤 친구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꺾고 싶었습니다."
"서 선생답네요. 하지만 서 선생은 최 선생을 절대로 이기지 못해요. 그건 내가 장담합니다."
"지금이야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사실 전 한 번도 전력으로 처치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아직도 뭘 모르는 군요."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서 선생과 최 선생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어요. 그 차이는 아마 평생 메워지지 않을 겁니다."
송명진은 할 말을 마치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세이버 팀원들이 로젯으로 들어오고 있었다.